런던 여행 3일차 (6th May 2019, Mon): 시티 오브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런던박물관-런던탑-코번트 가든)


2019 런던 여행


Doubletree by Hilton Chelsea @7:05 (BST)

전날 바스-스톤헨지 투어가 꽤 피곤했는지 평소보다 일어나는 시간이 늦었다. 원래는 이날 대영박물관에 갈 예정이었지만, 바깥 날씨가 좋아보여 시티 오브 런던(The City of London)에 가는 걸로 일정을 변경했다.

시티에서는 세인트폴 대성당-런던 박물관-런던탑-코번트 가든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이 중 런던 박물관은 무료, 세인트폴 대성당과 런던탑에서는 2-for-1 할인을 이용해 반값에 입장할 수 있었다. 모두 입장료가 비싼 곳들이라 여행 비용 절감에 많은 도움이 됐다.

임페리얼 워프역 오버그라운드 승강장

런던 와서 평일 러시아워에 튜브를 처음 타보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이날은 공휴일(Bank holiday)라 튜브는 한산하기만 했다. 역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한국보다 속도가 훨씬 빨라 적응 여부와는 별개로 신나게 탔고, 종이 트래블카드는 오늘도 튜브 개찰구에서 인식이 안 되어 짜증이 났다.

세인트폴 대성당 (St. Paul’s Cathedral) @08:41 (BST)

세인트폴 대성당 입장 시작 시간인 아침 8시 30분에 맞추어 도착했다. 결과적으로 아주 잘 한 선택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사람이 많이 몰려 구석구석 둘러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장료는 £20.00이었는데, 2-for-1 할인을 이용해서 한 명 입장료만 내고 아내와 둘이 입장할 수 있었다. 런던 와서 2-for-1 할인을 처음 받았는데, 할인 받는데 필요한 쿠폰에 필요한 내용을 미리 적어갔더니 낭비되는 시간 없이 빠르고 편리하게 입장할 수 있었다. 2-for-1 할인을 받을 수 없다면 인터넷에서 사전 예매하는 쪽이 저렴하고 별도의 줄을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원래 계획은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딱 한 시간 반만 있다 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내부가 아주 흥미로워서 예정보다 훨씬 긴 두 시간 반 동안 둘러보게 됐다. 입장료에 포함된 멀티미디어 가이드는 동선이 좀 헷갈렸지만 내용은 아주 재미있고 유익했다.

안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성당답게 다양한 부조물과 많은 유명인들의 무덤이 있었다. 오디오 가이드에서 설명해주는 것 말고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 많았다. 미리 공식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부해놓고 가면 훨씬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중앙 홀에는 스톤 갤러리, 골든 갤러리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입구 앞에 심약자는 이용을 삼가라는 경고가 붙어있었는데, 막상 올라가보니 그럴만하다 싶었다. 500개나 되는 계단을 오르는데 상당한 체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톤 갤러리에서 골든 갤러리로 올라가는 층계는 아주 가파르고 발밑이 아찔하게 뚫려있어 내려다보기 무서웠다.

골든 갤러리에서 바라본 런던 시내 전경

대신 골든 갤러리에서 바라보는 런던 전경은 기가 막혔다. 발판이 좁고 바람이 불어 공포스러웠던데다 줄 때문에 계속 앞으로 걸어야 해서 여유 있게 전망을 감상하기는 어려웠다. 대신 그만큼 아찔한 높이에서 바라보는 런던은 정말 멋졌다. 스톤 갤러리에서는 공간으로나 시간으로나 여유 있게 경치를 즐길 수 있었지만, 역시 이런 광경은 높은 곳에서 보는 쪽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주의할 점은 입장하기 전에 가방 검사가 있고, 특히 여행용 캐리어 가방처럼 큰 가방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이는 런던에 있는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안 되고, 화장실도 없다. 입장하기 전 광장에 유료 화장실이 하나 있고, 지하 묘지 관람을 마친 후 나가는 길에 무료 화장실이 하나 있으니 계획적으로 이용하자.

런던 박물관 (Museum of London) @11:28 (BST)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300m 정도만 걸어가면 런던 박물관이 있다. 대체로 런던 여행 코스에 자주 포함되는 곳은 아니지만, 여행 가서 그 지역 박물관은 꼭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들르게 됐다. 입장료는 무료다.

잉글랜드나 영국이 아닌, 런던의 도시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목요연하게 훑어볼 수 있었다. 역시 시각적인 자극이 끊임 없이 이어지도록 잘 구성되어 있었다.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시간 소모가 컸던 덕에 런던 박물관은 나름 서둘러 둘러봤는데도 한 시간이 걸릴 정도로 전시의 양 역시 충실했다.

이런 지역사 박물관이 대체로 그렇듯 성인보다는 아이들 내지는 학생들에게 유익한 내용 위주로 짜여 있었다. 그럼에도 꽤 재밌었는데, 런던에 오기 전에 런던의 역사에 대해 미리 공부했던 내용을 실제 유물이나 자료를 통해 다시 확인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물관 근처에는 로마 시대 론디움의 성벽 일부가 아직 남아있다. 현대적인 마천루들 바로 옆에 길드홀 같은 중세 건물이 남아있고, 모퉁이를 돌아서면 로마시대 건축물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pod Bank Station @12:52 (BST)

이날 가장 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공휴일 때문에 시티 오브 런던 안에 문 연 식당이나 가게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인적 드문 시티를 걸어 걸어 헤매다 겨우 문 연 식당 한 군데를 찾아 들어온 곳이 pod이었다.

pod은 런던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체인점인데, 야채 가득한 건강식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다른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 가지 못 한 건 아쉬웠지만, 이미 추운 날씨 속에 도심을 한참 헤맸던지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현지에서의 평소 식단 느낌으로 한 번 먹어보기로 했다. (£13.98)

1층은 카운터와 키친이 있었고, 2층에는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따끈한 치킨 커리를 먹으며 몸을 녹일 수 있었다. 가격에 비해 양은 좀 적다 싶었지만 맛 자체는 괜찮았다. 고수가 들어있어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나는 ‘호’ 쪽이라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런던탑으로 가기 전에 리든홀 마켓(Leadenhall Market)에 있는 바버(Barbour)에서 비바람을 피하게 해줄 왁스 재킷 한 벌을 사러 갔다. 그런데 역시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월요일임에도 Bank holiday라 문이 닫혀있어 헛탕을 쳐야만 했다.

리든홀 마켓은 해리포터 영화판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모르고 갔었는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광경이 펼쳐져서 놀랐었다. 역시 열지 않은 가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돌아다니는 관광객이 꽤 있었다. 한창 영업할 때 가면 꽤 붐비는 곳일 것 같다.

런던탑 (The Tower of London) @13:46 (BST)

이번 런던 여행의 주목적은 역시나 박물관들이지만, 몇 가지 건축물을 직접 보는 것 역시 크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런던탑이었다. 인터넷에서 봤을 때는 아이보리 색의 화이트 타워 하나 달랑 서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런던탑은 중세 초기의 성채 도시 규모로, 화이트 타워는 그 중 일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꽤 큰 규모였다.

입장료는 £27.50으로 꽤 비싼 편이지만, 2-for-1 바우처를 이용해 한 명 무료 입장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 오디오 가이드는 내부에서 £5.00을 또 추가로 내야 대여할 수 있다. 한국어도 지원된다.

오디오 가이드 대여할 때 같이 제공되는 지도는 효율적으로 동선을 짜는데 도움이 됐지만, 오디오 가이드 자체는 건물이나 역사 설명은 괜찮았고 특히 당시의 분위기를 살린 음향 효과가 아주 재미있었다. 대신 세부 전시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열심히 영어 안내문을 읽어야 했다.

화이트 타워

구석구석 둘러볼 곳이 많고, 오디오 가이드에서 알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보니 다 둘러보는데 3시간 이상 걸렸다. 특히 화이트 타워는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내부 동선이 길고 층계가 많아 체력 부담이 크니 시간을 갖고 천천히 둘러보는 게 좋겠다.

영국 왕실 소장 보석 전시인 크라운 주얼(The Crown Jewels)은 워낙 인기가 많아 건물 밖 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줄을 길게 서야 했다. 그 와중에 중국 관광객들의 새치기와 고성방가가 아주 불쾌했고, 그래서인지 보석들 자체는 그렇게 큰 감흥이 없었다.

런던탑의 명물은 요먼 경비대와 까마귀라고들 한다. 매시 정각과 30분에 런던탑 정문으로 시간 맞춰 가면 요먼 경비대원을 따라 가이드 투어를 돌 수 있다.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지나가면서 본 걸로는 유쾌하고 유머 넘치는 설명을 해주고 계셨다. 까마귀들은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을 쪼기도 한다니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말자.

런던탑을 빠져나오면 바로 옆이 탬즈 강변이다. 바로 앞에 타워 브리지(Tower Bridge)가 있어, 딱 보기 좋은 각도에서 타워 브리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이날은 하루 종일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는 강행군이었기에 지친 아내와 잠시 벤치에 앉아 쉬어가기에도 좋았다.

코번트 가든(Covent Garden) @16:41 (BST)

아침에 사지 못 했던 바버 재킷 구입과 저녁 식사를 위해 시티 오브 런던을 벗어나 코번트 가든으로 이동했다. 2층 버스 맨 앞 자리에 탔는데, 평소와는 다른 눈높이로 거리를 바라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행복은 살 수 없지만 맥주는 살 수 있지요 – 그것들은 별 다를 것 없답니다

거의 열린 가게가 없었던 시티 오브 런던과는 달리, 코번트 가든은 공휴일인데도 어지간한 가게는 다 영업 중이었다. 그만큼 사람도 북적거렸다. 골목마다 자리 잡은 극장들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뮤지컬 극장들이 눈에 띄었는데, ‘마틸다’, 유명 작품이 많았다.

코번트 가든의 바버는 영업 중이었는데,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있었지만 몸에 맞는 사이즈가 없어 구입은 하지 못 했다. 구글맵 리뷰 중에는 한국인 직원이 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보지 못 했다. 그래도 직원분들이 아주 친절해서 비록 구입은 못 했지만 기분 좋게 돌아나올 수 있었다.

Hawksmoor Seven Dials @17:47 (BST)

육식의 나라 영국에 왔으니 역시 고기를 먹어야 하겠는데, 이왕이면 맛있는 걸 먹고 싶어 찾아온 집이다. 사람이 아주 많아 북적였는데, 다행히 빈 테이블 하나가 있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서로인(400g), 램 토마호크(모두 미디움-레어)에 그레이비 소스를 주문했고, 여기에 콘월 지방의 마이크로 브루어리인 Harbour Brewing Co.의 August Town Pale Ale을 주문했다. 모두 해서 £77.79로, 분명 적은 금액은 아닌데 한국에서 한우 로스구이 먹는 금액과 비교해보면 그렇게 비싼 금액은 아니었던 것 같다.

스테이크는 둘 다 겉은 아주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잘 가둬져 촉촉했다. 특히 램 토마호크는 양 특유의 냄새는 분명 있었지만 기분 나쁘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 신기했다. 여기에 그레이비 소스가 아주 좋았다. 진한 육즙에 강렬한 감칠맛이 어우러져서, 입맛을 더욱 북돋아주었다. 중량이 중량인만큼 양도 적지 않아서 정말 배터지게 먹을 수 있었다.

에일은 별로였다. 탭 아니면 적어도 병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받아보니 캔이었다. 그래서인지 에일만 마셨을 때는 쇠맛이나 쇠향이 좀 나서 그리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고기나 그레이비 소스와 먹었을 때는 쇠맛이 거의 나지 않았지만 이래서야 아무맛도 안 나는 일본식 드라이 라거를 곁들이는 것과 차이가 없잖은가.

피카딜리선 @19:14 (BST)

부른 배를 두드리며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피카딜리선을 탔다. 하루 종일 상당한 강행군의 연속었는데, 잘 먹고 맛은 별로였지만 어쨌든 술까지 마시고 보니 노곤함이 쏟아진다.

피카딜리선은 휴일 저녁 도심 구간이라 그런지 좁은 객차 안에 사람이 많아 붐볐다. 런던을 돌아다닐 때 큰 가방이나 큰 짐을 갖고 다니는 건 역시 안 될 것 같다. 튜브 뿐만 아니라 보도도 좁은 편이고, 어차피 주요 관광지들에는 짐 검사와 가방 크기 제한이 있어 큰 가방은 못 가지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호텔 들어가기 전에 호텔 바로 앞 테스코 익스프레스에서 생수 12팩 짜리를 샀다. 추운 날씨에 제대로 감기 들고 보니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물 두 병(심지어 한 병은 탄산수)로는 잔뜩 부어 화가 난 목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다행히 단돈 £2.00 밖에 하지 않아 큰 부담이 없었고, 여행 내내 큰 도움이 됐다.

비용 결산

  • 세인트폴 대성당 입장료 £20.00 (2-for-1)
  • 점심 (pod) £13.98
  • 런던탑 입장료 £27.50 (2-for-1)
  • 런던탑 오디오 가이드 £5.00
  • 저녁 (Hawksmoor Seven Dials) £77.90
  • 생수 12팩 (테스코 익스프레스) £2.00
  • 합계 £146.38

런던 여행 2일차 (5th May 2019, Sun): 바스-스톤헨지 투어


2019 런던 여행


Doubletree by Hilton Chelsea @06:10 (BST)

평소 한국에서도 새벽 6시 전에 일어나는 우리 부부는 영국 여행 중에도 무척 일찍 일어났다. 특히 이날은 한국에서 미리 신청해둔 바스(Bath)-스톤헨지(Stonehenge) 투어가 있어 일찍 일어나야 하기도 했다.

호텔 조식은 오전 7시부터 제공됐는데, 투어 집합시간인 8시에 맞추려면 호텔 조식을 챙겨먹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그래서 호텔 조식 대신 전날 패딩턴역 M&S에서 사 온 샌드위치와 우유로 아침을 대신하기로 했다.

샌드위치 안에는 쇠고기가 빈틈 없이 채워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육향과 소금간이 꽤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 각각 머스타드향과 허브향이 제법 났다. 다행히 나는 이런 향이 강한 음식에 별 거부감 없어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었다.

우유에서는 의외로 한국의 저온 살균된 우유 정도의 맛 정도만 느낄 수 있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좀 더 크리미하고 고소할 거라는 기대는 채워주지 못 했다.

해머스미스역 (Hammersmith Station) @7:40 (BST)

투어 출발 예정시간에 맞추어 해머스미스역으로 출발했다. 숙소에서 해머스미스역까지는 호텔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다보니 도시 전체가 대체로 인적 드물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내 트래블카드가 전날 패딩턴역에서 구입하자마자 망가져놔서, 여행 내내 개찰구 지날 때마다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하는 튜브보다 그냥 트래블카드를 보여주면 그만인 버스 타는 쪽이 훨씬 편했다.

해머스미스역은 아케이드가 결합된 제법 규모 있어 보이는 역이었다. 역시 인적은 극히 드물고 열린 가게도 없었다. 그 와중에 개찰구 앞에 ‘Thought of the DAY’라고 해서 적어둔 인용구가 눈에 띄기도 했다. (근데 구글링 해보니 에머슨이 한 말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는 모양이다.)

투어 출발 시간인 8시에 임박하자 한국 사람 여럿이 집합 장소였던 테스코 앞으로 모여들었다. 스무 명 가까운 투어 참가자 중 절대 다수가 여성이었고, 남성은 나처럼 가족 동반으로 온 서너 명 밖에 없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하긴, 나 같아도 런던에 동성 친구와는 같이 오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바스 가는 길 @8:51 (BST)

투어비는 1인당 한국에서 지불한 예약금 4만원에 현지지불금 £60, 현지 입장료와 식비 별도였다. 투어에는 한국인 가이드와 버스, 안내를 위한 무선 수신기 대여까지만 포함이었다. 생각보다 비싼 투어다.

먼저 바스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일랜드와 영국에 각각 2년씩 살았다는 가이드로부터 영국과 영국 문화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재미있고 유용한 내용이 많았지만, 다들 아침 일찍 나와서인지 졸려하는 분위기였다.

런던을 벗어나 교외로 접어들자 버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생경했다. 한국의 교외는 논밭 너머로 푸른 산이 겹겹이 펼쳐지는데, 잉글랜드의 교외는 높아봐야 야트막한 언덕 정도를 빼면 평탄한 농경지와 방목지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중간중간 말이나 양이 흩어져 풀 뜯는 모습, 꽤 자주 눈에 띄었던 로드킬 사체, 하늘을 둥글게 맴도는 맹금류까지 모두가 낯선 느낌이었다.

바스(Bath) @11:17 (BST)

저 멀리 보이는 곳이 바스

서양 역사서나 소설에는 계곡이 들어간 지명이 종종 등장한다. 계곡에 사람들이 모여살기도 하고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왜 굳이 그런 곳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지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국에서의 계곡이란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곳이니까.

하지만 바스에 와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스는 강 양안을 따라 완만하게 솟은 언덕에 자리 잡은, 말 그대로 계곡 도시였다. 낮은 산비탈을 따라 18세기 양식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어, 런던보다도 훨씬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이날 오전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 새파란 하늘과 서늘하고 맑은 공기, 따뜻한 햇빛의 조화 덕에 도시가 더욱 아름다워보였다.

바스에서는 로열 크레센트(Royal Crescent), 서커스(The Circus), 제인 오스틴 센터(The Jane Austin Centre) 순서로 가이드 인솔 하에 워킹 투어가 진행됐다. 이후 외부 가이드 투어가 안 되는 로만 바스(The Roman Bath)에 입장해서 각자 둘러보고, 점심 식사 후, 풀테니 다리(Pulteney Bridge)를 버스에 탄 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로열 크레센트
서커스 중 일부

로열 크레센트와 서커스는 건물의 외관과 특징, 역사적 배경 설명을 들은 후 여기에서 누가 살았었는지에 대해 듣는 정도였다. 제인 오스틴 센터는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15분정도 주어졌는데, 화장실 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거의 둘러보질 못 했다. 건물 자체는 아주 작고 좁았지만 전시물이 꽤 충실해보였고, 기념품 가게도 괜찮아보였는데 제대로 둘러보질 못 했다.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되는 단체 투어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로만 바스 가는 길에는 로마 시대 성벽이 조금 남아있는 곳이 있었다. 따로 관리는 안 되는 모양인지 성벽 위에 쓰레기와 빈 술병이 널부러진 걸 보니 안타까웠다. 로만 바스 바로 앞에서는 바스 수도원(Bath Abbey)도 있었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중세 수도원으로, 시간이 허락한다면 둘러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 해 아쉬움이 있었다.

로만 바스

로만 바스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티켓을 구입하는데도 한참 줄을 서야 했다. 입장료는 £20.00으로, 한국어 멀티미디어 가이드 포함이었다. 제공된 멀티미디어 가이드가 꽤 잘 되어 있는데다 시설 자체의 복원도 충실히 해놓아 아주 흥미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적어도 서너 시간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는데, 투어 일정상 단 한 시간 밖에 허락되지 않아 대충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전시 막바지에는 온천수를 직접 마셔볼 수 있는데, 쇠맛이 아주 강렬했다. 비위가 약하면 굳이 마셔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후 주어진 점심식사 겸 자유시간에는 구글맵에서 평이 좋은 식당 몇 군데에 도전해봤지만 대부분 예약이 다 차 있거나 자리가 없어 앉을 수 없었다. 펍에도 가봤는데, 일반 식당과는 자리 잡고 주문하는 방법이 다르다보니 한참 헤매기만 하다 결국 아무것도 못 먹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대신 길거리의 작은 인도 음식점에서 팔라펠(Falafel)과 사모사(Samosa)가 든 커리랩과 차이(Chai)로 점심식사를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좌석 없이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양이 푸짐하고 내용물이 실해서 먹고 보니 꽤 든든했다. 커리랩 £5.00, 차이 £2.00으로, 영국 치고 가격도 저렴했다.

이후 버스에 올라 간단히 풀테니 다리를 둘러봤다.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와 유명해졌다는데, 다리 자체는 영화 ‘향수’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위에 건물이 있다는 것 말고는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보다 근처의 공원이 잘 꾸며져 있어 보기 좋았다.

바스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근처 언덕 위에 잠시 멈춰 바스를 전체적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포토 타임이었던 모양인데, 그 사이 날씨가 궂어져 사진 찍기 적당치 않기도 했고 역시 눈으로 직접 보고 기억에 남기는 쪽이 더 좋았다.

바스는 전체적으로 18세기의 영국 도시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장소였다. 비록 관광지의 느낌이 강했고 투어로서는 불과 서너 시간 밖에는 머물지 못 했지만, 둘러볼만한 건축물이나 박물관이 있어 자유여행으로 왔다면 적어도 만 하루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있는 곳 같았다.

스톤헨지 가는 길 @14:23 (BST)

이날 투어 중 둘러본 잉글랜드 교외에는 목초지가 아주 많았다. 방목해둔 양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시대의 주력 산업이 모직업이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유채꽃밭도 많았다. 한창 꽃이 핀 시기라 햇빛 아래 유채꽃밭 근처를 지나가면 눈부실 정도로 시야가 샛노랗게 빛났다. 한국 같았으면 이 정도 유채꽃밭에는 으레 유채꽃 축제가 열리고 관광객으로 넘쳐났을텐데 영국의 유채꽃밭에는 아무도 없는 게 신기했다. 처음에는 바이오 디젤 용도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질 좋은 유채유(또는 카놀라유)를 얻는 용도인 모양이다.

날씨는 하루 종일 변덕스레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했다. 해가 나면 쾌적했지만, 흐리고 바람이 불면 한기가 돌았다. 역시 옷을 좀 더 따뜻하게 입고 왔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스톤헨지(Stonehenge) @15:09 (BST)

스톤헨지 비지터 센터

스톤헨지 주차장에 내리면 주변은 비지터 센터(Visitor Centre) 외에는 허허벌판이다. 비지터 센터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21.10) 제법 시각적으로 잘 꾸며진 박물관을 먼저 관람했다. 확실히 박물관에서 사전 정보를 충분히 읽어보고 가는 쪽이 실제 스톤헨지에 도착해서도 이것저것 찾아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다.

박물관에서 나와, 입장료에 포함된 셔틀버스를 타고 비지터 센터에서 약 2km 떨어진 스톤헨지로 향했다. 걸어가는 사람도 많아보였는데, 스톤헨지 가는 길에도 여러 유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걷는 것도 꽤 끌렸지만, 투어 중이다보니 얌전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셔틀버스에 올랐다. 셔틀버스는 승하차 때 차고가 낮아져 오르내리기 편했다.

예전에는 스톤헨지 한가운데까지 직접 걸어들어갈 수도, 돌을 직접 만져볼 수도 있었다는데 이제는 보존 목적으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적당히 떨어진 관람로를 따라 둥글게 걸으며 스톤헨지를 여러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관람로 입구 근처는 관광객, 특히 중국 사람들로 아주 붐볐다. 대신 관람로를 따라 입구 반대쪽으로 가면 스톤헨지를 제법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영국 오기 전에 읽었던 책들이나 박물관에서 보고 온 정보들을 실물과 맞춰보는 과정도 재미있었지만, 내가 스톤헨지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토머스 하디의 소설 ‘더버빌가의 테스’ 후반부의 한 장면이었다. 결국 고립되어 사회적 편견의 제물로 바쳐지고 만 주인공의 운명을 나타내는 장치로 나온 것이 스톤헨지였는데, 실제로 와보니 황량한 벌판 가운데 홀로 솟아있는 모습 덕에 소설 속의 장면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스톤헨지 관람을 마치고 비지터 센터로 다시 돌아왔다. 나가는 길에는 당연하게도 기념품 가게를 거치도록 동선이 짜여 있었다. 나는 여행 와서 기념품이나 쇼핑에 돈 쓰는 걸 아주 싫어하는데, 스톤헨지 기념품 가게는 구색이 아주 훌륭했다. 특히 영국의 유명한 왁스 재킷 회사인 바버(Barbour)와 콜라보한 후드 재킷이 있었는데 워낙 예쁘기도 했고 마침 평원에서 칼바람 맞다 온 터라 정말 구입해버릴 뻔 하기도 했다.

다시 투어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린 끝에 런던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동안 가능하면 잉글랜드 교외의 정경을 좀 더 눈에 담고 싶었지만, 하루 종일 추위에 덜덜 떨었던 터라 극심한 피로감에 결국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래도 잠들기 직전 자유질문 시간에 가이드에게 영국식 펍(Pub) 이용법을 물어볼 수 있었다. 일반 식당은 입구에서 좌석 배정, 주문, 계산까지 모두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루어진다. 펍은 정반대로, 들어가면 알아서 자리를 잡고, 역시 알아서 카운터로 가서 선불로 주문하고 필요하면 자리를 알려주는 식이란다. 이때 들었던 내용 덕분에 이후 여행 중에는 펍에서 즐거운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Nando’s Hammersmith @19:22 (BST)

투어 출발했던 해머스미스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역시 스톤헨지에서 덜덜 떨며 돌아다녔던 통에 배가 고팠다. 아내가 미리 알아뒀던 닭요리 전문 체인점인 Nando’s가 해머스미스역 바로 근처에 있어, 그리로 향했다.

치킨 한 마리에 사이드 큰 것 2개 또는 작은 것 4개가 제공되는 Full Platter(2인분)에 IPA 2병을 주문했다. 주문할 때 소스의 매운 정도(Extra mild-Mild-Medium-Hot-XX Hot)를 선택할 수 있었다. 사전 정보에 의하면 한국사람들에게는 ‘XX Hot’도 그리 매운 편이 아니라고 했는데, 나는 유독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편이라 ‘XX Hot’ 대신 한 단계 아래인 ‘Hot’으로 주문했다. (£31.15)

일단 양이 굉장히 많았다. 2인분이라고 했는데 치킨 뿐만 아니라 사이드의 양도 굉장히 많아서 사이드는 거의 남겼다. 맛은 아주 약간 매콤한 굽네치킨 비슷했다. 소스의 맛과 닭의 식감이 모두 비슷한 느낌이었다.

가게 한켠에는 여러 종류의 소스가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는 주문할 때 선택할 수 있었던 매운 소스들도 있었는데, 막상 가장 맵다는 ‘XX Hot’ 소스도 먹어보니 아주 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시 한국의 매운맛에 대한 기준이 유럽에 비해 꽤 높은 편인 모양이다.

비용 결산

  • 바스-스톤헨지 투어 현지지불금 £60.00 ×2
  • 로만 바스 입장료 £20.00 ×2
  • 점심 (Chaiwalla Indian Street Food) £7.00 ×2
  • 스톤헨지 입장료 £21.10 ×2
  • 저녁 (Nando Hammersmith) £31.15
  • 합계 £247.35

런던 여행 1일차 (4th May 2019, Sat): 인천-런던(대한항공 일등석), 종이 트래블카드 발급


2019 런던 여행


인천국제공항 @11:27 (KST)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대한항공 퍼스트 클래스 발권 라운지

여행의 출발이다. 인천에서 런던까지는 아내가 마일리지와 편도 신공을 이용해 발권한 대한항공 일등석을 이용하기로 했다. 일등석 자체는 처음이 아니지만,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노선에서는 처음이다. 얼마나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일등석 탑승의 혜택은 일찌감치부터 시작된다. 발권과 수하물 위탁이 별도의 조용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번잡하지 않고 깔끔한 일등석 전용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라운지에서는 요청시 금속 플레이트에 스카이패스 번호와 이름을 새긴 네임택을 기념품으로 받을 수 있었다.

점심 식사로, 라운지에서 카르보나라를 주문했다. 크림이 대신 염장육, 계란 노른자, 치즈가 꾸덕하게 어루어진 이탈리아식이었다. 염장육의 향과 노른자의 고소함이 좋았고, 면과 소스의 조화도 적당했다. 여기에 이런 저런 주전부리들과 아이스크림, 커피로 거나한 식사를 마무리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탑승 전에 굳이 이렇게 많이 먹을 필요가 없었다. 비행 시간 내내 식사와 간식, 마실거리가 쉴 틈 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KE 907 기내 @14:37 (KST)

기종은 B777-300. 항덕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왠지 기록해두고 싶었다. 특히 B737 MAX의 결함 논란이 터진지 얼마 안 되어 더욱 그랬다.

좌석은 1A. 이 좌석만 따지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가운데 복도를 두고 좌우로 하나씩 배열된 좌석이라, 어떻게 앉아도 아내와 얼굴을 마주볼 수 없었다. 게다가 첫줄 좌석은 짐을 보관할 수 있는 곳이 캐빈 맨 앞의 공간을 승무원, 옆 자리 승객과 같이 사용해야 해서 더욱 불편했다.

대신, 일등석 그 자체에 대해서라면 역시 돈을 들인만큼 꽤 괜찮은 것 같다. 정식의 형태를 갖춘 코스 요리가 느긋하게 제공되고, 주전부리나 마실거리가 끊임 없이 제공된다. 무엇보다 이런 장거리 노선에서 좌석을 180도 펼쳐서 두 다리 쭉 뻗고 누워서 올 수 있다는 가 가장 큰 장점이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카스피해

특히 한국에서 낮에 출발해서, 계속해서 해를 따라가는 일정이라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일등석은 좌석당 창문을 서너개씩 이용할 수 있어 창 밖을 바라보기 더욱 좋았다. 황량한 몽골의 사막이나 아직 얼음에 반쯤 덮인 카스피해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다만, 가는 내내 터뷸런스가 심해서 불편했다. 음료가 넘쳐 테이블보를 적시고, 누워서도 깊이 잠들 수가 없었다. 소화도 더 안 되는 것 같았다. 터뷸런스야 자연현상이니 딱히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영국 히드로 국제공항 @18:00 (BST)

일등석의 좋은 점을 딱 두 가지만 꼽자면, 첫째는 누워서 올 수 있다는 점이요, 둘째가 바로 공항에서의 Fast Track 이용인 것 같다. 히드로 공항에서 사용할 수 있는 Fast Track Pass가 제공되었는데, 덕분에 줄을 길게 서지 않고 입국 심사를 아주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들의 입국 심사가 워낙 까다롭다고 해서 많이 긴장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같이 심사 받으러 들어간 아내와는 어떤 관계인지, 영국에 왜 왔는지, 며칠 머무를지, 어디에 머무를지, 머무르는 동안 구체적으로 뭐할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나름대로 대답을 잘 했는지 서류 요구 없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터미널 4였다. 미리 예약해둔 런던 패딩턴(Paddington)행 히드로 익스프레스는 터미널 4에는 서지 않아서, 터미널 2, 3으로 이동해야 했다.

‘Trains’ 표지를 따라가다, ‘Train tickets’ 표지 아래 있는 자동판매기에서 ‘Terminal 2, 3 & 5 via Free train transfer’ 티켓을 무료 발권 받으면 된다. 주변에 있는 TfL 직원들이 친절하게 안내해주어 어렵지 않았다.

히드로 익스프레스

터미널 2, 3역에서 히드로 익스프레스로 기차를 갈아탔다. 히드로 익스프레스는 한국으로 치면 ITX새마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깔끔하고, 넓고, 런던 도심인 패딩턴역까지 15분이면 갈 수 있다.

가격이 비싸지만, 일찌감치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큰 폭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원래 정가는 편도 £22-25(왕복 £37)이지만, 90일 전에 예약하면 편도 기준 £5.5에도 발권할 수 있다. 이 정도면 훨씬 오래 걸리는 피카딜리 선과도 별 차이 없는 수준이다.

보통은 히드로 공항에서 오이스터 카드를 처음 구입하게 된다. 내 경우, 공항에서 패딩턴역까지는 이미 예약된 히드로 익스프레스가 있었고, 패딩턴역에서 위클리 트래블카드를 구입할 예정이라 이번 여행 중 오이스터 카드는 구입하지 않았다.

히드로 익스프레스는 워낙 소요시간이 짧아 창 밖을 넉넉히 구경할 틈도 없었다. 공항을 벗어나자 잠시 교외의 풍경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도심 느낌 물씬 나는 현대 구조물 속에 파묻힌다. 중간중간 보이는 풍경에서는 왜인지 일본 같다는 인상도 받을 수 있었다.

패딩턴역 (Paddington Station) @18:53 (BST)

패딩턴역 플랫폼

히드로 익스프레스 열차의 종점인 패딩턴역에 도착했다. 패스트 트랙과 히드로 익스프레스 조합 덕분에 비행기에서 내린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패딩턴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빠듯한 일정이라, 돈을 써서 시간을 번 보람을 느꼈다.

숙소가 첼시 쪽이다보니 공항에서 패딩턴역으로 온 건 길을 꽤 돌아가는 셈이다. 그럼에도 패딩턴역으로 온 이유는, 런던 시내 일부 역에서만 발권 가능한 종이로 된 위클리 트래블카드(Weekly travelcard)를 발급받기 위해서였다. 종이 트래블카드로만 이용 가능한 2-for-1 할인 혜택이 많아 여행 내내 많은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종이 위클리 트래블카드와 포토카드

미리 조사했던 내용으로는 National Rail 창구(위 트래블카드 왼쪽 하단 마크)를 찾아야 했는데, 패딩턴역에서 찾질 못해 한참 헤맸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패딩턴역에서는 National Rail 대신 GWR(Great Western Railway) 창구에서 발급 받을 수 있었다.

종이 버전의 위클리 트래블카드(Zone 1-2, £35.1)은 발급 받는데 여권 사진 1장이 필요하다. 근처 자판기를 이용해도 되지만, 미리 준비해가는 게 편리하다. 발급 받으면 위 사진처럼 트래블카드와 포토카드를 함께 파우치에 넣어준다. 2-for-1 할인 받을 때 드물게 포토카드까지 확인하는 곳이 있었으니 잘 챙겨둬야 한다.

내셔널레일 2-for-1 Offer 바우처와 쿠폰

트래블카드를 발급 받으면 2-for-1 할인 받을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와, 할인 받을 때 제출해야 하는 바우처가 포함된 책자도 함께 받을 수 있다. 바우처 끝에는 한 장씩 뜯어 쓸 수 있는 쿠폰이 있는데, 기재해야 할 내용이 생각보다 많으니 미리미리 써두면 입장할 때 편하다.

종이 트래블카드는 전자기장에 무척 약하므로, 특히 스마트폰과는 반드시 분리해서 보관해야 한다. 내 경우 방금 구입한 트래블카드가 패딩턴역 튜브 개찰구에서 인식되지 않아서 TfL 직원에게 개찰구를 열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여행 내내 TfL 직원들은 이런 경우가 흔하다며 쉽게 개찰구를 열어줬지만, 어마어마하게 귀찮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트래블카드 발급 때문에 헤매느라 패딩턴역에서 시간을 꽤 써버렸다. 이미 식사하기가 영 애매한 시간이기도 했고, 비행기에서 워낙 많이 먹었더니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아 저녁은 그냥 건너뛰기로 했다.

대신 패딩턴역 M&S(Marks & Spencer)에서 다음날 아침으로 먹을 간단한 먹거리를 샀다. 영국에 온만큼 쇠고기를 듬뿍 채워넣은 샌드위치 위주로 몇 가지, 여기에 과일과 요거트, 우유를 집어들었다. (£13.6)

더블트리 첼시(Doubletree by Hilton Chelsea) @21:24 (BST)

패딩턴역에서 디스트릭트선(District Line)을 타고 풀럼 브로드웨이(Fulham Broadway)에서 내렸다. 여기서 오버그라운드역인 임페리얼 워프(Imperial Wharf) 바로 근처에 있는 숙소까지는 15분 정도 걸어왔다. 여행 전, 구글 스트리트 뷰에서 봤을 때는 거리가 으슥해보여 걱정했는데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에도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 큰 걱정 없이 걸어올 수 있었다.

그보다 날씨가 생각보다 추웠다. 계속 실내에만 있어 느끼지 못했었는데, 5월 초의 런던은 한국 늦가을 날씨처럼 서늘하고 차가웠다. 얇지 않은 긴팔 셔츠 위에 윈드브레이커 재킷을 걸쳤는데도 몸속을 파고드는 습한 한기에 몸서리가 쳐졌다. 나중 일이지만, 결국 감기 걸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외투 사느라 예상 외의 지출을 하고 말았다.

숙소는 나쁘지 않았다. 아내가 미리 힐튼 공홈에서 끈질긴 Price match를 시도한 끝에 숙박비가 끔찍하게 비싼 런던 시내 치고 비교적 저렴하게 묵을 수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연식이 좀 되어 보였지만 깔끔하게 잘 관리된 것 같았다. 와이파이도 업/다운 모두 300Mbps 이상 측정될 정도로 빨랐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어메니티 중 1회용품(칫솔, 면도기 등)은 리셉션에 따로 요청해야 한다는 점, 욕실에 빨래줄이 없었다는 점 정도다.

비용 결산

  • Weekly travelcard £35.10 ×2
  • M&S £13.60
  • 합계 £83.80

2019 런던 여행기


2019 런던 여행


여행의 이유

사실 런던 여행이 결정된 시기는 해외여행에 대한 회의가 한창일 때였다. 큰 돈과 시간을 들여 멀리 나가봐야 별반 느껴지는 건 없고 몸만 힘들다는 생각이 쌓이다보니, 나이가 들수록 어디 돌아다니는 것보다 그냥 집에서 책 읽고 요리하며 쉬는 게 어느 측면에서 보나 더 좋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그럼에도 여행의 기회란 의도치 않은 시기에 불쑥 생겨나곤 한다. 이번 여행의 계기가 정말 그랬다. 대한항공 가족 마일리지가 유럽행 일등석 좌석을 살 수 있는 정도로 쌓였고, 선택 가능한 행선지 중 가장 먼 곳 중 하나가 바로 런던이었다. 이번 런던 여행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London Landscape from St. Paul's Cathedral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바라본 런던 탬즈강

여행 준비

항공권 및 숙소

이번 여행만큼은 항공권과 숙소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내가 대부분 알아서 준비해줬기 때문이다.

항공권은 인천에서 런던까지는 대한항공 일등석을, 돌아올 때는 영국항공 이코노미석을 예약했다. 대한항공 일등석은 장거리 노선을 누워서 갈 수 있는 장점 외에도 악명 높은 영국 입국 심사 때 Priority Line을 이용해서 시간 절약할 수 있었던 점이 특히 좋았다. 돌아오는 영국항공 이코노미석도 생각보다 탈 만 했다. 그나마 마일리지 50% 할인 이용해서 발권 받은 항공권이라 가성비 측면에서는 좋았던 것 같다.

숙소는 Doubletree by Hilton London Chelsea로 잡았다. 런던은 숙박비가 워낙 비싸 숙소를 시티나 웨스트민스터에서는 좀 떨어진 곳으로 정했다. 그나마 아내가 Price Challenge를 끈질기게 한 끝에 숙박비를 좀 더 아낄 수 있었다.

숙소 근처에는 오버그라운드를 탈 수 있는 Imperial Wharf 역과 버스정류장이 몇 있었다. 런던은 대중교통이 워낙 잘 되어 있어 일단 오버그라운드든 언더그라운드든 탈 수 있는 역 근처이기만 하면 놀러다니는데 별 불편함은 없었다.

여행 계획

얼마 전에 썼던 여행 준비: 여행 계획 짜기의 예시에 이번 런던 여행 일정을 짰던 방법이 포함되어 있다. 굳이 다시 정리하자면, 이런 순서로 일정을 짰다.

  1. 영국, 잉글랜드, 런던에 대한 책이나 자료들을 찾아 읽으며 가보고 싶은 곳들을 정리
  2. 구글맵에서 ‘가고 싶은 곳’ 지정 후 가까운 곳들끼리 그룹핑 및 목록화
  3. 목록에 각 장소마다 영업시간, 휴무일, 교통편 등을 확인한 후 일정 구체화

특히 런던 이야기: 천 가지 역사를 품은 살아 있는 도시라는 책이 유용했다. 자료 조사 단계에서는 가이드북보다는 역사서를 더 선호하는 편인데, 중간중간 장난치는 듯한 문체가 조금 거슬렸지만 개별 도시의 역사를 책 한 권으로 훑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됐다.

그 외 각 여행지의 예상 소요시간은 구글과 트립어드바이저를, 시내 교통편에 대한 세부 정보는 역시 구글맵과 CityMapper 앱을 이용했다.

Hyde Park
하이드 파크

여행 비용

미리 지불한 항공권과 숙소 비용을 제외하면, 성인 두 명이 런던에서 일주일 동안 여행하는 비용으로 120만원 정도 들었다. 환전은 인터넷 환전 한도(100만원)을 꽉 채워 환전했더니 650파운드 정도를 가지고 갈 수 있었다. 런던의 물가가 워낙 비싸다보니 환전해간 현금은 단 1페니도 남기지 않고 다 썼고, 여기에 신용카드로 20만원 정도를 더 쓰고 왔다. 그나마 신용카드가 대부분의 장소에서 잘 통용되어 추가 환전이나 출금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나마 할인 혜택은 어느 정도 챙겨본 편이다. 히드로 공항과 런던 도심 간의 이동은 피카딜리선 대신 빠르고 넓고 편한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이용했다. 90일 전에 미리 예약하면 할인폭이 70% 이상이라 부담이 적다. 특히 아내와 둘이 간 여행이었기에, 둘이 가면 한 명 요금이 공짜인 내셔널 레일의 2-for-1 할인을 활용할 수 있었다. 런던 탑, 세인트폴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IWM 처칠 워룸에서 총 100파운드 가까운 입장료를 할인받았다.

내셔널 레일 2-for-1 할인 이용하기

런던 여행에서 있어 가장 금전적으로 이득을 가장 많이 본 프로그램이 내셔널 레일 2-for-1 바우처다. 어차피 런던에 며칠 이상 머무를거면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Weekly travelcard를 구입하게 되는데, 이를 이용해 교통비 절약은 물론 많은 관광지에서 입장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요령이 잘 정리된 페이지를 미리 정독하고 간 덕분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까다로운 점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2-for-1 offer가 런던 대중교통을 관할하는 TfL이 아닌, 내셔널 레일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교통공사와 코레일의 차이 정도) 때문에, 반드시 내셔널 레일(또는 GWR) 창구에서 종이로 된 Travelcard를 구입해야 하며, 오이스터 카드에 Travelcard를 충전하면 안 된다.

몇 군데 안 되는 종이 Travelcard를 구입할 수 있는 역에 굳이 찾아가야 하고, 대부분의 기차역이 튜브역도 겸하고 있기에 TfL의 자판기나 창구에 낚이지 말고 내셔널 레일 창구를 잘 찾아가야 하는 난제도 있다. 그나마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종점역인 패딩턴역에서 구입할 수 있어 덜 불편하다.

그리고 종이 Weekly travelcard를 구입하려면, 여권 사진 1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진 자판기에서 만들어도 되지만, 미리 챙겨가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마지막으로, 종이 Travelcard는 구식 마그네틱 방식이라 외부 전자기장에 의해 손상되기 쉽다. 반드시 스마트폰이나 다른 전자제품들과 분리해서 보관하자. 내 경우, 구입하자마자 개찰구에서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서 매번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만 했다.

Stonehenge
스톤헨지

여행 짐싸기

여행 짐을 싸는 것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어, 그에 따라 준비했다. 이번 여행짐은 35L 짜리 백팩을 70% 정도 채우는 정도로, 그리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구성의 봄옷 위주로 준비했다.

다만, 막상 런던에 가보니 숫자로 보이는 기온보다 훨씬 추웠다. 워낙 날씨가 변화무쌍하고 갑작스런 비바람이 잦았기 때문이다. 긴팔 셔츠에 바람막이 정도를 들고 갔더니 하루종일 덜덜 떨며 다니다 결국 감기까지 걸렸다. 덕분에 부랴부랴 외투(바버 왁스재킷)을 구입하느라 예상 외의 큰 지출마저 있었다.

런던이나 영국 여행을 준비할 때는 기온에 따라 쉽게 덧입거나 벗어버릴 수 있는 옷들을 꼭 챙겨야 할 것 같다. 특히 짧고 굵게 내리는 비가 잦은데, 워낙 좁고 붐비는 도시라 우산 쓰고 다니기보다는 후드 달린 방수 재킷 쪽이 편했다. 현지인들도 우산보다는 후드를 찾아서 쓰거나 그냥 맞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보였다.

여행 후기

On the double-decker bus
2층 버스 맨 앞 자리에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19세기에 시간이 멈춘 나라라는 느낌을 받았다. 도로는 마차가 다니던 좁은 길을 그대로 포장해서 쓰고 있고,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새로 지은 건물이 하나도 없어보이는 동네도 많았다.

물가는 끔찍하게 비쌌다. 특히 숙박비, 외식비, 교통비가 비싸다보니 여행자로서의 체감 물가는 더욱 비싸게 느껴졌다. 그나마 많은 유명 박물관이 무료이고, 2-for-1 offer 같은 할인 혜택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 다행이었다.

음식에 대해서는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생각보다 먹을만 했다. 런던은 대도시이다보니 영국 전통요리보다는 세계요리 식당이 많고, 전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다보니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날씨는 정말 지랄맞았다. 나름 하이시즌에 가까운 숄더시즌에 잘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해가 쨍쨍하다가도 수시로 구름 끼고 비가 쏟아진다. 중간중간 불어주는 찬바람은 덤이다. 방심하지 말고 방풍, 방수, 보온되는 옷을 잘 챙겨입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생각보다 LTE가 잘 안 터진다.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아예 안 된다고 보는 게 맞고, 도심 거리 한복판에서도 전파가 약하거나 끊기는 일이 잦았다.

크고 유명한 박물관이 많지만 정작 자기네들 유물은 별로 없다. 대영박물관에 영국 것은 건물 밖에 없다는 유명한 이야기처럼 말이다. 설령 영국 유물이 있더라도 비슷한 시기의 다른 나라 유물에 비하면 좋게 말하면 수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시선이 잘 안 가는 것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이니 입장료를 안 받는 건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느꼈다.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은 박물관 관람이었다. 때문에 박물관에 꽤 넉넉한 일정을 할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계속 시간에 쫓겨야 했다. 특히 대영박물관은 하루를 몽땅 투입했지만 1층조차 다 보지 못 했고, 내셔널 갤러리 역시 하루 종일 봤지만 일부 전시실을 못 봤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순수히 박물관 투어에만 7일 이상을 써도 좋을 것 같다.

런던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교통문화다. 좁은 도로가 많아서인지 보행자가 있으면 운전자들이 거의 항상 양보해줬다. 오토바이가 없는 대신 자전거가 아주 많았는데, 다들 헬멧을 잘 갖춰쓰고 있었고 패니어 달린 자전거도 많았다. 역시 자동차들이 자전거를 많이 배려해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서울역 유즈라멘 – 유즈시오라멘, 시오라멘

유즈라멘
유즈시오라멘 9,000원
2019년 5월 30일 목요일 저녁

자전거 동호회에 벙개의 목적지로 자주 언급되는 가게가 몇 있다. 보통은 서울 변두리나 근교의 맛집이 많은데, 이 집만큼은 서울 도심인 서부 서울역 쪽에 자리잡고 있어 독특했다. 맛에 대한 평도 꽤나 괜찮아서 눈여겨 보고 있던 차에,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어 방문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높낮이가 포함된 독특한 가게 구조가 눈에 띈다. 크지 않은 가게 안에 계단이 있어 공간 활용이 어려웠을텐데 불편하지 않게 배치를 잘 해냈다. 여기에 입구 근처에 비치된 자전거용 펌프에서 자전거 동호인들의 방문이 잦은 집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주문은 자판기로 한 다음 교환권을 점원에게 건네는 식이다. 손님이 끊이지 않다보니 약간의 대기는 있었고, 음식 나오는 것도 아주 빠르지는 않았다. 대신 점원의 접객이 아주 인상 깊었다. 일본식처럼 너무 과해서 부담스러운 대신, 편안한 친절함이 듬뿍 느껴져 기분 좋았다.

첫 방문이라, 이 집의 대표 메뉴라는 유즈시오라멘을 주문했다. 여기에 야끼교자와 기린 생맥주(400mL)도 추가하니 금액이 꽤나 가파르게 올라간다. 라멘에 토핑까지 추가했으면 한끼 식사로서는 양적으로나 금액적으로나 아주 호화로웠을 것 같다.

다른 눈에 띄는 점은 메뉴에 하이볼이 있었고, 따로 요청하면 앞치마를 내어주는 모양이다. 나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점원이 흰 드레스 셔츠를 입은 손님에게 앞치마를 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먼저 나온 교자는 대체로 평이했다. 내 취향에는 바삭함이 약간 부족했지만 대신 아주 부드럽고 촉촉했다. 함께 나온 간장에서 나는 유자향이 노골적이다. 이 집의 셀링포인트가 유자임이 실감났다. 좌석마다 유자 착즙액까지 비치되어 있었다. 유자향 나는 간장과 교자의 육향 간의 조합은 좀 미묘하다. 각각의 맛이 분명한 대신 시너지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이어 주문했던 유즈시오라멘이 나왔다. 먼저 수프를 맛봤는데, 독특했다. 멸치와 밴댕이에서 나는 해물 특유의 강렬한 감칠맛이 먼저 올라오는데, 해물 수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드러움도 넉넉히 들어 있었다. 벽에 붙은 설명을 보니 해물육수와 닭육수를 섞어쓰신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 모양이다. 여기에 라멘의 이름만큼이나 진한 유자향이 먹기 전부터 다 먹은 후까지 은근히 올라온다. 꽤 다양한 맛과 향이 복잡하게 엉긴 수프였다.

면은 통밀을 이용해서 자가제면 한다고 한다. 실제로 면을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거뭇한 점이 보인다. 두께는 평범하게 얇은 편이지만, 뜨거운 수프에 한참 잠겨 있더라도 쉬이 풀어지지 않아 마지막 한 젓가락까지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강한 면이었다.

면을 입 안에 넣으면 겉면에 충실히 묻은 수프가 감칠맛과 유자향을 전해준다. 씹을 때 느껴지는 반발감은 아주 강한 편이었다. 특히 면 가장 안쪽의 심지 뿐만 아니라 중간부분, 겉면까지 조금씩 달라지는 반발감을 느껴보는 재미가 좋았다. 그래서 후루룩 마시는 대신 꼭꼭 씹어보게 되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통곡물의 고소함 역시 충실히 올라와 입 안을 채워주었다.

기본으로 들어 있는 면의 양도 그리 적은 편이 아니었는데, 면이 워낙 맛있어서 추가까지 하게 되었다. 면은 반 개 또는 한 개 단위로 무료 추가 가능한데, 한 개를 주문했더니 처음 주문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정도의 면이 나왔다. 이 역시 기분 좋게 싹 비워낼 정도로 마음에 드는 면이었다.

토핑은 독특한 부분이 많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루꼴라였다. 유자 라멘은 일본에도 유명한 가게가 있지만 루꼴라 들어간 라멘은 처음이었다. 여기에 아지다마고, 멘마, 김, 그리고 이베리코 돼지고기로 만든 차슈가 얹혔다.

온센다마고는 다른 강렬한 재료들에 비하면 은은한 느낌으로 냈고, 익힘 정도는 적당했다. 멘마에서는 유자향이 특히나 더 강렬했다. 식감은 역시 부드러운 편. 차슈는 꽤 두께감이 있는 편인데, 씹을 때마다 어마어마한 고소함과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을 즐길 수 있었다. 여기에 중간중간 들어간 지방이 맛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 챠슈의 겉면을 따로 구워내어 불맛 역시 빠지지 않았다.

여기에 루꼴라와 김까지 하면 맛, 향, 식감까지 특징이 강한 재료가 대부분이다. 토핑 뿐만 아니라 면과 수프 역시 마찬가지다. 먹다보면 여기저기서 ‘저요! 저요!’하고 다양한 식재료들이 존재감을 강렬하게 어필한다.

그렇다보니 전반적으로 퓨전 요리의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특별히 불협화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깔끔히 정돈된 맛은 아님이 확실하다. 매일 같이 찾아가서 먹는 것보다는 가끔의 별미 정도로 좋아보인다.

그래도 서울역 근처를 지날 일이 있을 때면 이 집에 다시 방문하게 될 것 같은 이유는 면 때문이다. 면의 질감과 익힘 정도가 내 취향을 정확히 저격했다. 비교적 맛이 투명한 편인 시오라멘이었던 덕분에 면의 특징도 더욱 적나라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2019년 6월 24일 업데이트

거의 한 달 만에 재방문했다. 이번에는 유즈시오라멘 대신, 유자가 안 들어간 시오라멘을 주문했다. 가격은 동일하다.

막상 먹어보니 내 취향에는 유자가 들어가지 않은 쪽이 더 좋았다. 유즈시오라멘은 유자와 루꼴라와 챠슈와 김 등이 서로 다투는 느낌이었다면 시오라멘은 한층 정갈해진 느낌이다. 차슈 먹을 때는 약간의 시큼함이 있으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자리마다 비치된 유자 착즙액을 한두 방울 뿌려먹으니 딱 좋았다.


2019년 6월 25일 업데이트

하루 만에 또 방문했다. 이번에도 시오라멘. 유즈시오라멘보다 좀 더 좋은 균형감에, 취향을 정확히 자극한 면의 식감이 역시나 훌륭했다. 스프도 스프지만, 자가제면했다는 면이야 말로 전날 와서 먹었음에도 또 와서 먹게 된 강력한 동기였다.

그런데 추가해서 먹는 면에 문제가 있었다. 마감에 가까운 시간이라 그런지 온센다마고 반 개를 더 얹어주신 것까지는 좋았었는데, 면의 식감이 지금까지 먹었던 그것이 아니었다. 젓가락으로 들어올렸을 때 이미 떡져서 스프에 담근 후에도 잘 풀어지지 않았다. 입 안에 넣고 씹으니 깔끔하게 쫄깃했던 원래 그 맛 대신, 끈적하게 치아에 달라붙는 불쾌한 느낌이었다. 혹시나 싶어 재차 면 추가를 주문해봤는데, 그 역시 똑같았다.

이전까지는 추가한 면이라도 상태가 이렇지 않았었기에,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 그냥 나와버리고 말았다. 다음번 방문 때도 추가 면의 상태를 잘 보고, 또 그러면 원래 의도된 것인지 한 번 물어봐야겠다.


2019년 7월 4일 업데이트

열흘 만에 다시 방문했다. 이번에는 한창 디너 타임이 진행 중인 18시 30분 정도였고, 사람이 많아 잠시 대기 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시오라멘을 주문했다. 전체적으로는 역시 유자향이 없는 게 내 취향에 맞다. 대신 차슈에만 유자착즙액을 몇 방울 떨어뜨렸을 때 느껴지는 조화가 좋다.

이날도 면을 두 번 추가해서 먹었는데, 처음 나온 면과 추가해서 먹은 면 모두 괜찮았다. 특히 탄력 있게 씹히는 느낌이 참 좋았다. 시간대에 따라 편차가 있는게 아닌가 싶다. 역시 몇 번 더 가보는 수 밖에 없겠다.

여행 준비: 여행 계획 짜기

여행 계획의 필요성

여행의 결심이 섰으면 계획을 짜야 한다. 아무런 계획 없이 일단 떠나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최소한의 틀은 미리 잡아둬야 마음이 편하다.

여행 전 계획에 열 올리는 것에는 한국의 비극적인 노동 환경 탓도 있다. 휴가를 한 번에 길게 쓰기 어려우므로 제한된 시간을 가능한 낭비 없이 쓰고 싶은 것은 사람의 당연한 심리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슬픈 일이다.

예전에는 분 단위로 꽉 짜인 여행 계획을 따라가곤 했었는데, 요즘은 그보다는 여유 있게 준비한다. 무리한 여행 계획을 짜느라 출발하기도 전에 미리 진 빠질 필요가 없기도 하거니와, 여행은 항상 계획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계획을 짜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 순서는 이렇다: 먼저 여행 갈 시기를 결정하고, 가고 싶은 곳들을 나열하고, 효율적인 동선을 짜고, 시간 대비 일정이 너무 많으면 날짜를 추가하거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시간이 남으면 다른 계획을 추가하거나 만약을 위한 여유 시간으로 잡아둔다.

여행 시기의 선택

보통 여행 준비는 여행 시기나 여행지 둘 중 하나를 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 경우, 시기보다는 주로 여행지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가 먼저 정해진다. 홋카이도에서 펭귄을 본다거나, 마추픽추에 가본다거나 하는 식이다. 때문에 여행지보다는 시기를 정하는 것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각자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 정해진 휴가 일정이 없다. 공식적인 여름휴가, 비공식적인 겨울휴가가 있긴 하지만 둘 다 특정 주차로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적당히 편할 때 쓰면 되는 식이다. 그래서 여행의 시기는 한국에서의 사정보다는 현지의 사정을 보고 결정하는 편이다.

한겨울의 모스크바도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만, 끔찍하게 춥고 일조시간이 짧아 여행하기에는 좋지 않다. 술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옥토버페스트 기간의 뮌헨은 비싸고 붐비기만 하는 곳이다. 전자는 비교적 보편적인 비수기이고 후자는 특정 사람에게 적용되는 비수기라고 볼 수 있다.

성수기가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유명 관광지는 사람이 특히 많이 몰려 제대로 즐기기 어려운데다 숙소나 음식이 호되게 비싸기 때문이다. 기껏 아까운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 사람의 홍수에 치이기만 해서야 즐거운 휴가를 보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성수기와 비수기를 모두 빗겨간 중간 시즌을 좋아한다.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시즌을 고를 수 있는 여건은 안 되지만,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중간 시즌을 고르는 편이다.

일정 구체화

일단 출국일과 귀국일이 정해지면, 항공권이나 숙소를 예약하기 앞서 일정을 조금 더 구체화해본다. 아주 세세할 필요는 없고, 현지에서의 동선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그래야 다양한 조건의 항공권과 숙소 중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london travel plan based on a map

먼저 구글맵에 가보고 싶은 곳들을 검색해서 저장해본다. ‘저장’ 메뉴에서 ‘가보고 싶은 곳’ 항목을 활용하면 된다. 어느 정도 채워나가다 보면 서로 인접한 목적지들이 보이는데, 그런 곳들끼리 묶어서 그룹으로 만들어준다.

(위 지도에서 그룹으로 묶인 곳들은 실제 소요시간 등을 감안해서 조정된 결과다. 처음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워보이는 곳들 위주로 묶어주면 충분하다.)

london travel attractions business time table

그리고 종이나 Excel을 이용해서 표를 만들어본다. 이렇게 하면 된다. 특이사항이 있는 날짜에는 색상 등을 이용해서 강조해준다. 위 표 기준으로, 금요일에 평소보다 늦게까지 여는 박물관이 몇 곳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예상 소요시간은 구글에서 “How much time is needed to see the british museum” 같은 식으로 검색하면 알 수 있다. 단, 구글이 찾아주는 예상 소요시간은 대부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한 바퀴 돌아보는 기준이므로 항상 여유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요일별 영업시간은 구글맵에서도 알 수 있지만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보는 쪽이 더 정확하다. 여기에 각 그룹간 이동거리가 멀다면 필요한 교통편도 추가한다. 하루에 몇 번 없는 교통편이라면 시간표를 미리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이제 다 됐다. 현지에 머무르는 여행 일정에 그룹 단위의 방문지들을 채워넣으면 된다. 하루로 부족하면 우선순위에 따라 일정을 조정하거나 여러 날에 걸쳐 채우면 되고, 시간이 남으면 근처의 다른 곳을 찾아보거나 휴식, 쇼핑 등을 위한 여유시간으로 쓰면 된다.

사전에 예약을 받는 방문지도 있는데,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다면 너무 일찍 예약할 필요는 없다. 현지에서는 물론, 출발 전까지 많은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마지막 순간까지 일정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사전 예약

항공권

가격도 중요하지만 공항과 항공사를 잘 보자. 저가 항공사 중에는 목적지에서 말도 안 되게 먼 시골 공항을 쓰는 경우도 있고, 수화물 개수나 무게 제한이 서로 다르기도 하다. 많은 저가 항공사들은 위탁 수화물에 무조건 요금을 부과하고, 중국 항공사들처럼 기내 수화물 무게 제한이 5kg(!!)에 불과한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특히 나처럼 위탁 수화물 없이 기내용 백팩 하나만 활용하는 경우 무게 제한은 특히 치명적이다.

그리고 최초 입국편, 최후 출국편은 미리 예약해둬도 좋다. 특히 일부 국가는 출국 항공권이 없으면 입국을 거부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전에 발권은 아니라도 최소한 확정까지는 해둬야 한다.

대신 입국과 출국 사이의 이동수단의 확정은 가능한 뒤로 미루자.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여행 중에서는 많은 일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마지막 순간까지 일정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숙박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 위주의 여행은 굳이 모든 일정의 예약을 미리 할 필요가 없다. 요즘은 워낙 인터넷 서비스들이 잘 되어 있어 당일에도 몸 누일 침대 하나 정도는 구하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옥토버페스트나 카니발 같은 세계구급 행사가 있을 때는 예외.)

그에 반해 호텔은 당일 예약하려면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뛰므로, 한 달 전에는 예약해두는 게 좋다. 취소가 가능한 일반 예약과 환불 불가(no refund) 예약의 가격차가 크지 않다면 일반 예약으로 진행하자. 역시 여행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함으로, 경험상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숙소의 위치를 정할 때 최우선은 교통의 편리함이다. 구글맵에서 대중교통 세부정보 옵션을 켜주면 적당한 동네를 시각적으로 찾아보기 쉽다. 도심에 비해 부도심이나 교외는 숙소의 가성비가 좋지만 러시아워와 치안에 유의하자.

최종 일정 점검

늦어도 여행 출발 일주일 전에는 미리 세워뒀던 일정을 점검하자. 특히 방문할 곳들의 영업시간이나 영업일이 달라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보고, 중기 일기예보도 참고해서 일정을 최대한 최적화해보자. 대부분은 그룹 단위의 순서를 조정하는 것만으로 대응 가능하다.

아이폰 6s 노혼 배터리 두 번째 자가 교체 후기

들어가며

내 아이폰 6s는 이제 사용한지 만 36개월을 채웠다. 그 동안 새 기기도 많이 나왔지만, 3.5mm 이어폰 단자도 없어지고, 보기 싫은 노치는 계속 들어가고, Touch ID도 없어지는 등 좀처럼 마음에 드는 기기가 없었다. 게임을 전혀 안 하다보니 6s로도 실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기도 했고.

다만 배터리만은 사용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용량이 자꾸 줄어드는 걸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딱 작년 이맘 때쯤, 만 2년 썼던 배터리를 노혼 배터리로 자가 교체했다. 어렵지 않았던 과정에 비해 결과가 무척 만족스러워서 1년 동안 잘 사용해왔다. (자가 교체하고 얼마 안 되어 애플에서 배터리 교체 프로그램을 시작한 건 함정이었지만.)

그리고 1년 여가 지났다. 지난해 배터리 교체를 고민할 때만큼 배터리 사용 시간이 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 배터리를 교체했을 때에 비하면 사용시간이 영 못 미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비슷한 시기에 애플 배터리 교체 프로그램을 통해 정품 배터리로 교체 받은 아내의 6s보다는 더 사용시간이 길었지만, 어쨌든 체감상 사용시간이 짧아진 것은 분명했다.

실제로 Geekbench 4를 이용해서 벤치마크를 돌려보니 배터리 소모율이 이전보다 높아져 있었다. 벤치마크 1시간 기준, 배터리 성능 최대치 81% 상태의 순정 배터리는 소모율이 90%, 노혼 배터리로 교체한 직후 30%였는데 지금은 44%로, 확실히 좀 더 빨리 소모되고 있었다.

(iOS 설정에서 표시되는 ‘배터리 성능 상태’로 잔여 용량을 가늠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지만, iOS 12부터 배터리에 대한 검증이 추가되었는지 ‘배터리 성능 상태’가 ‘―’로만 표기되는 상태였다. 후술하겠지만 이번에 새 노혼 배터리로 교체하고 나니 ‘배터리 성능 상태’가 정상 표기됐다.)

교체를 결심하기엔 아직 애매한 용량이었지만, 새해를 새롭게 시작할 겸 다시 한 번 배터리를 교체해주기로 했다. 이번에도 역시 노혼이다.

새로운 노혼 배터리

좌측은 작년 1월에 구입한 노혼 배터리(2,060mAh), 우측은 올해 구입한 노혼 배터리(2,175mAh)

아이폰 6s의 순정 배터리 용량은 1,715mAh인데 노혼 배터리의 표기 용량은 항상 그보다 컸다. 작년 초에 구입했던 배터리는 2,060mA로 이미 순정보다 20% 큰 용량이었다. 올 초에 구입한 배터리는 그보다도 용량이 더 커져서, 순정 대비 27% 크다.

뻥용량이 강력하게 의심되지만, 비슷한 시기에 정품 배터리로 교체한 아내의 6s와 비교하면 확실히 노혼 쪽의 사용시간이 더 긴 건 확실하다. 그리고 후술할 변경 전후 Geekbench 결과를 비교해보면 작년 노혼 배터리보다도 올해 노혼 배터리의 용량이 늘어난 것도 분명 맞는 것 같다.

교체 과정과 요령

이번에도 구체적인 교체 과정에 대한 설명은 생략. 유튜브에서도 많은 교체 영상을 볼 수 있고, 지난번 글에서도 참고한 iFixit의 자세한 설명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미 잘 되어 있는 설명이 많은데 내가 굳이 강좌를 만들 필요가 없다.

다만, 내 블로그의 검색 유입 상위가 여전히 노혼 배터리 교체 관련이라 힘들게 검색해서 찾아오신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참고할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봤다.

노혼 배터리 관련

  • 국내든 해외든 노혼 배터리 팩을 구입하면 필요한 공구와 자재는 다 들어있다. 드라이버는 자성이 있고, 마감이 불량하지만 배터리 교체에는 차고 넘치는 핀셋까지 들어있다. 굳이 추가로 샤오미 와우스틱 등을 더 구입할 필요가 없다.
  • 단, 아이폰 6s부터는 디스플레이와 프레임 사이에 간이 방수실링 목적의 양면 테이프가 들어간다. 별 의미는 없는 것 같지만 필요하면 역시 국내외 쇼핑몰에서 구입할 수 있다. 깔끔하게 붙이기가 힘드므로, 6s 오래 쓸 생각이면 여러 장 쟁여놓고 쓰면 좋다.
  • 드라이버는 손잡이 앞쪽을 돌리면 로드(Rod)를 빼낼 수 있다. 로드의 양쪽에는 별나사(Pentalobe screw)와 십자나사(Philips screw)에 쓸 수 있는 드라이버가 각각 달려있다. 필요에 따라 뒤집어 쓰면 된다. 전자는 분해 과정 중 첫 단계인 라이트닝 단자 양쪽의 나사를 푸는데, 후자는 그 외 모든 단계에 사용된다.

분해 과정 관련

  • 액정에 붙인 보호유리 등을 굳이 제거하지 않아도 된다. 보호유리에 압착판을 붙이더라도 보호유리가 액정에서 떨어지기 전에 상판과 하판 사이에 틈이 먼저 생긴다. 여기에 스크래퍼(Scrapper, 주걱, 헤라(箆; へら) 등)를 살짝 밀어넣고 조금씩 비틀어주며 양쪽 측면까지 쭈욱 밀어주면 된다.
  • 많은 분해 영상에서 디스플레이 부분을 분리하지 않고 진행한다. 디스플레이를 분해하려면 시간이 추가로 걸리고 귀찮기 때문인데, 매일 같이 배터리 교체 작업을 진행하는 업자 등이 아니라면 디스플레이를 분리하는 편이 안전하다. 배터리 교체의 가장 큰 난관인 양면 테이프 제거 작업 중 자세를 잡거나 힘조절을 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나사 4개 풀고 커넥터 3개 뽑으면 되므로 그리 어렵지도 않다. 방수 실링용 양면 테이프를 부착할 때도 어차피 디스플레이는 분리해야 한다.

배터리 교체의 가장 큰 난관은 배터리 아랫쪽의 양면 테이프 제거다. 지난번 교체 때는 나도 둘 다 끊어먹어서 배터리 빼는 데 고생을 많이 했다. 이번에는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었는데, 의외로 요령은 단순했다.

  • 테이프 떼기 전에 배터리 아랫쪽의 탭틱 엔진를 꼭 제거하자. 테이프를 후판과 평행한 방향으로 당길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제공해준다.
  • 최소한의 힘으로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당기자. 이게 가장 중요하다. 하판을 굳이 가열할 필요도 없다. 이 겨울날에도 마음을 편히 갖고 집중해서 천천히 당기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교체의 결과

성능 표기가 정상적으로 출력된다.

용량에 앞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iOS 12부터 ‘―’로만 표기되던 ‘배터리 성능 상태’가 정상적으로 표기된다. ‘배터리 성능 상태’는 배터리 교체 시기를 가늠하는 아주 유용한 지표다. 이번에 배터리 교체를 망설인 것도 ‘배터리 성능 상태’를 알 수 없었던 점이 가장 컸는데 앞으로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Geekbench 4의 배터리 성능 측정으로 확인해보니 역시 기존 대비 사용시간이 길어졌다. 스크린을 계속 켜놓은 상태에서 배터리 성능 측정(Full discharge)를 돌려본 결과, 단위 시간당 배터리 소모율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배터리 구분시간당 소모율
순정 (24개월 사용, 배터리 성능 81%)90 %
2018년 노혼 (교체 직후)30 %
2018년 노혼 (12개월 사용)44 %
2019년 노혼 (교체 직후)22 %

정리하면 2년 사용한 순정 배터리를 노혼 배터리로 교체하면 3배 이상의 사용 시간을 기대해볼 수 있고, 그 상태로 1년을 사용했더니 사용시간이 30% 정도 감소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특히 지난번에 교체한 노혼 배터리보다 이번 노혼 배터리의 표기용량이 27% 더 큰데, 두 배터리의 교체 직후 소모율을 비교해보면 표기용량 차이와 엇비슷한 비율로 소모율이 감소했음을 역시 추측해볼 수 있다.

마치며

지난번 글의 결론과 별 다를 것이 없다. 노혼 배터리는 성능이 좋고, 교체도 어렵지 않다. 공식 센터 이용을 포기하고, 불량 배터리의 위험을 감수한다면 말이다. 어차피 아이폰 6s는 단종된 제품이고, iOS 13 지원을 못 받을 거라는 루머도 나오는 중이니 갈수록 리스크는 작아지는 셈이다.

지난번과 달라진 점도 분명 있다. 애플은 갈수록 사용자들에게 매력 있는 제품을 내놓지 못 하고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런데도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팔 생각이 있다면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매력 있거나, 싸거나. 지금의 애플은 둘 다 아니다.

애플 제품군의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워낙 많이 팔리다보니 호환 부품을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가장 교체 수요가 높은 배터리, 스크린은 물론이고, 귀찮고 까다로운 과정을 감수한다면 케이스를 포함한 거의 모든 부품을 바꿀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레거시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을 계속 쓰고 싶은 사용자들은 새 기기를 구입하는 대신, 수명이 다 된 정품 부품을 들어내고 그 자리를 호환 부품으로 대체한다. 애플이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다.

나도 굳이 아까운 시간과 위험 부담을 감수해가며 호환 부품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매력 있는 신제품이 나오면 좀 비싸도 기꺼이 구입할 의향이 있다. 잘 좀 하자, 팀 쿡 아저씨. 제품에 매력이 있으면 마진은 자연히 따라오는 것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