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내집 마련기
최종 후보에 오른 3개 단지는 확실히 사겠다는 결심이 든 곳들만 추렸다. 급매면 좋고, 급매가 아니더라도 최근 시세에 맞으면 살 생각이었다. 이 3곳도 나름의 우선순위가 있었다. 우선순위가 높았던 곳부터 각각 A, B, C라고 하겠다.
단지와 입지에 대한 임장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 실제 집 내부를 구경하고, 조건이 맞는 집이 있으면 계약을 해야 한다. 부동산중개사무소에 가야 할 때였다.
부동산 방문
우선 각 단지마다 부동산 한두 곳에 연락처를 남겼다. 임장 갔다가 우연히 발길 닿은 곳도 있었고, 네이버 부동산에 등록된 매물수가 가장 많아서 고른 곳도 있었다. 처음엔 어차피 공동중개 하겠거니 싶어 단지마다 한 곳씩만 연락했었다. 막상 보니 다른 사무소와 공유하지 않고 꿍쳐두는 매물도 있어서 한두 곳 씩을 더 뚫어뒀다.
부동산에는 내 요구사항을 명확히 말씀드렸다. 실거주 목적이고, 희망 입주시기는 언제쯤이며, 각 평형 별로 내가 생각해둔 최대 금액이 얼마인지 등이다. 가격은 나름대로 통계에 기반해서 합리적이다 싶은 금액을 말씀드렸는데 A, B단지는 좀 더 써야 한다는 분위기였고 C단지는 그 정도면 협의를 해 볼 수 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정해진 가격이 없는 부동산은 결국 급한 사람이 양보해야 하는 시장이다. 내 경우 원래 살던 전세집 임대인과 협의가 잘 되어 시간을 넉넉히 벌어둔 상태였다. 부동산에는 입주시기는 매도인이 원하는 대로 맞출 수 있으니 대신 가격을 협의해달라고 요청했뒀다.
부동산은 결국 사람끼리 얼굴 맞대는 일인만큼 진행이 원만하려면 부동산과도 잘 지내는 게 좋았다. 이 시기에는 부동산에 종종 찾아가서 싹싹하게 인사하고, 손님 없으면 앉아서 빵긋빵긋 웃으며 수다도 떨고, 전화로도 수시로 내 존재와 요구조건을 상기시켜 드렸다.
사실 나는 극단적인 내향형이라 사람 대하는 게 좀 어렵다. 타고난 성격과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려니 부동산 갔다 올 때마다 굉장히 피곤했다. 그래도 나중에 계약할 때 부동산에서 내가 인상 좋고 재밌었다며 따로 말씀을 안드렸는데도 중개수수료를 절반만 받으셨으니 효과는 있었던 셈이다.
집 구경
부동산에는 불쑥 찾아가는 것보다 미리 전화해서 시간 약속을 잡고 방문해야 물건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집집마다 시간을 맞춰야 하니 나와 있는 물건을 다 보려면 한 번 방문해서는 어렵고 여러 번 찾아가야 했다. 매물 중에는 임차인이 비협조적이라 집안은 못본다는 매물도 있었는데, 이런 복불복 물건은 후보에서 제외했다.
집을 보는 기준은 인터넷을 뒤져 찾은 체크리스트를 활용했다. 단기간에 많은 집을 구경하다 보니 나중에 기억이 잘 안 나는 경우도 많았다. 매도인이나 임차인의 양해를 얻어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찍고, 아니면 스마트폰 메모앱으로 최대한 자세히 기록을 해뒀다.
집을 보다 보니 확실히 임차인으로서와 매수인으로서 집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느꼈다. 임차인일 때는 큰 수리는 결국 임대인 몫이기에 집 안 시설이 생활에 큰 지장만 없으면 아무래도 좋았다. 반면 매수인 입장에서는 하자를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면 결국 내 돈 깨지는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발코니 확장은 했는데 바닥에 난방 배관을 안 깔았거나, 바닥재가 따로 놀거나, 이중 창호나 단열재 시공이 부실한 집들이 의외로 많았다. 욕실도 타일을 덧방했더니 바닥이 높아져 슬리퍼 때문에 문이 안 닫히는 집이 있었다. 내가 임차인이었으면 좀 불편해도 계약기간 끝나고 나가면 그만이니 큰 문제는 아니었을텐데 매수인으로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 외에 동물 키우는 집도 개인적으로는 별로였다. 벽지, 마루, 가구는 전부 교체해야 냄새가 그나마 빠질 것 같았는데 그러자니 가격을 더 깎아야 해서 협의가 쉽지 않았다. 몇 번 겪어보고 나서는 아예 싸게 나왔거나 협의가 가능한 매물이 아니면 아예 구경도 가지 않았다. 전세집 구할 때 동물 사육 금지 특약을 넣는 임대인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집 결정
결과적으로 A단지는 세대수가 적다보니 매물 자체가 없었고, B단지는 물건 몇 개를 협의 요청 후 몇 주 기다려봤지만 결국 내가 원했던 가격에는 결국 맞추지 못 했다. 대신 C단지 매물 중 하나가 내가 생각했던 가격까지 협의가 되어 계약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도 몇 가지 타협이 있었다. 내가 원래 생각했던 건 20평형대였다. 그런데 급매가 소진되면서 24평 물건 호가가 가파르게 올라 34평 물건과 별 차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수요가 많아서 그런지 상승 심리 때문인지 협의도 잘 안 됐다. 대신 34평 물건 중 협의가 된 건이 있어 선택하게 됐다.
다른 조건들 역시 타협이 필요했다. 전철역과 버스정류장이 아주 가까운 대신 간선도로가 가까워 교통소음이 있고, 판상형 뻥뷰인 대신 서향이고, 발코니 비확장인건 좋았지만 대신 시스템 에어컨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 부부의 생활습관에는 장점이 단점보다 크다고 판단했다.
계약
부동산에 계약 의사를 밝히면 가계약을 먼저 진행해준다. 부동산에서 주요 거래 조건, 다시 말해 금액과 시기를 거래 당사자들과 협의하고 문자메시지로 만들어 양측의 확인을 받게 된다. 특히 가계약 파기시 배상 조건이 중요한데 부동산에서 매수인인 나는 가계약금 포기, 매도인은 배액배상으로 조건을 만들어줬다. 총액의 1%를 가계약금으로서 먼저 입금함으로써 계약이 시작됐다.
거래조건은 계약금 10%, 중도금 20%, 잔금 70%로 협의됐다. 임대차 계약 때는 없었던 중도금의 존재가 생소했다. 예산 중 많은 부분이 전세금으로 묶여 있는 상태에서 중도금 비중이 컸으면 좀 귀찮았을 것 같다. 신규 분양이 아닌 경우 중도금 대출은 일반적인 주택담보대출보다 절차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금 조달에 문제 없는 선에서 협의가 됐다.
계약서 쓴 날, 중도금이나 잔금 치른 날, 등기 나온 날, 이삿날 등 보다도 가계약금을 입금한 날 가장 떨리고 설렜다. 가계약금만 해도 천만 원 단위의 큰 돈이라 떨렸고, 계약이 파기되지 않는 한 내집 마련이 사실상 확정된 날이기에 설렜던 것 같다. 처음이 어려웠을 뿐 나머지 절차는 피곤이 동반됐을 뿐 무덤덤하게 진행됐다.
계약서 쓰는 날 부동산에서 매도인과 직접 만났다. 매수인 입장에서의 준비물은 신분증, 도장, 계약금이다. 계약금 이체를 위해 통장 잔고와 이체한도, OTP를 미리 확인해뒀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집을 다시 한 번 구경하면서 확인된 하자를 재점검하고, 인터넷 검색과 부동산 도움을 받아 확인 필요했던 부분을 정리해서 특약에 기입했다. 특히 잔금 일주일 전부터 먼저 인테리어 공사를 할 수 있도록 매도인과 협의가 된 점이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계약금을 입금함으로써 내집 마련의 한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원래 생각했던 20평형대 대신 30평형대 집을 계약하게 된 덕분에 돈이 더 필요하게 생겼다. 이제 계약서를 들고 은행에 찾아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