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K DESIGN Everyday Backpack 사용기

제조사 Peak Design
품명 Everyday Backpack 20L (Charcoal)
Everyday Backpack 30L (Charcoal)
무게 1.81 kg (20L)
2.04 kg (30L)
크기 46 x 30 x 17 cm (20L)
51 x 33 x 20 cm (30L)
용량 12 – 20 L (20L)
18 – 30 L (30L)
전자기기 랩탑 38 x 25 x 2.5 cm (20L), 40 x 27 x 4 cm (30L)
태블릿 33 x 22 x 1 cm (20L), 33 x 23 x 1 cm (30L)
구입비용 USD 259.95 (20L)
(배송대행료 21,600원, 관부가세 59,360원 별도)
사용기간 6개월

장점

  • 카메라 가방 같지 않은 디자인
  • 훌륭한 재질과 마감
  • 세세한 수납공간과 재미있는 디바이더

단점

  • 무거운 무게
  • 가방 외부 및 내부 디바이더의 패딩 두께 부족
  • 가방 상부가 완전히 밀폐되지 않아 방수 취약

Peak Design Everyday Backpack 30L vs. 20L

들어가며

픽디자인(Peak Design)은 킥스타터(Kickstarter)에서 몇 가지의 성공적인 캠페인을 진행하며 성장해온 회사다. 몇 년 사이 꽤 많은 제품을 시장에 출시했고 대체로 좋은 평을 얻고 있다.

픽디자인의 제품 중 이번에 사용해본 가방은 Everyday Backpack이다. 20L와 30L 제품이 있는데 두 제품을 모두 구입했다. 미국 픽디자인 공식 홈페이지에서 직접 주문했으며 20L 제품은 배송대행료와 관부가세를, 30L 제품은 한국으로 바로 배송 받으며 관부가세를 납부했다.

20L vs. 30L

픽디자인 홈페이지에 게시된 외관 치수만 보면 20L 제품보다 30L 제품이 가로, 세로, 높이에서 각 3~5 cm 정도씩 더 크다. 숫자로만 보면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물을 받아보면 크기 차이가 상당하다. 30L의 경우 기내 반입용 캐리어 가방 크기와 맞먹는다. 주 수납공간의 부피도 큰 차이가 있으므로 수납할 물건들을 정확히 실측해봐야 크기 선택에 실패하지 않을 것 같다.

크기와 무게를 제외한 기능이나 구조는 두 제품이 완전히 동일하다. 내 경우 평소 사용하기에는 20L 제품이면 충분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내부 공간이 부족할 때는 가방 외부에도 물건 수납이 가능한 구조라 더욱 별 문제가 없었다. 30L 제품은 여행이나 특별히 짐이 많을 때를 위해 남겨두었다.

외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올드스쿨 스타일의 매끈하게 잘 빠진 디자인이다.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각지고 뭉툭한 모양을 가진 다른 카메라 가방과는 달리, 보통의 데일리백과 비교해도 큰 위화감이 없다.

재질은 400D 나일론에 방수 레이어 달린 지퍼가 사용되었다. 굉장히 튼튼해서 지금까지 사용하면서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방수 역시 문제 없는 재질이지만 구조상 가방 뚜껑을 닫을 때 신경써서 닫지 않으면 가방 상부가 뚜껑에 의해 완전히 보호되지 않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어깨 스트랩과 등판에는 그리 두껍지는 않지만 밀도가 아주 높은 패딩이 사용되었다. 말랑말랑하지는 않지만 패딩으로서의 역할은 부족함이 없다. 최초 구입시에는 꽤 뻣뻣해서 길들이는 기간이 필요하다. 각종 스트랩은 모두 안전벨트 재질을 사용해서 굉장히 질기고 튼튼하다.

전반적으로 좋은 소재를 아낌 없이 투입했다는 인상을 주는 백팩이다. 원단, 지퍼, 스트랩, 패딩, 금속 버클이 모두 아주 잘 만들어졌고 그만큼 훌륭히 제 역할을 다한다.

수납

Quick side loading

카메라 가방으로서 다양한 바디와 렌즈를 분리수납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종이접기에 영감을 받았다는 디바이더가 3개 들어있는데, 필요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접었다 펼 수 있어 사용성이 무궁무진하다. 가방 내부 전면과 후면 대부분이 벨크로 처리되어 공간을 유연하게 나눌 수 있다.

디바이더 자체는 아주 재미있는 물건이지만 패딩 두께가 아쉽다. 다른 카메라 가방의 디바이더와 비교하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디바이더를 적절히 활용하면 부품들 간의 충격을 줄일 수 있겠지만 좀 더 확실한 보호가 필요하다면 다소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가방 외부에도 많은 물건을 적재할 수 있다. 가방 양 측면의 수납공간은 자석과 고무줄로 고정되어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필요할 경우 삼각대 다리 등을 수납할 수 있다. 가방의 양 측면 수납공간과 가방의 정면 하단의 숨겨진 공간에는 후크 달린 스트랩이 들어있는데, 이를 가방 여기 저기에 달린 고리와 결합하면 삼각대를 단단하게 고정하거나 드론, 담요 등을 가방 외부에 거치할 수 있어 편리하다. 내 경우 자전거 헬멧이나 여분의 휠셋을 고정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했다.

노트북은 15인치 랩탑과 12인치 태블릿을 각각 한 대씩 수납할 수 있다. 태블릿 수납 공간에 스마트키보드를 장착한 아이패드 프로 2세대 10.5인치를 넣어보니 상당히 여유가 있었다. 다만 랩탑과 태블릿 수납 공간 모두 두께가 얇은 편이라 특히 랩탑의 경우 맥북이나 울트라북 위주로 활용하는 것이 적당해보였다.

Both sides organiser

그 외에도 꽤 다양한 수납 공간을 제공한다. 오거나이저 역시 가방의 양쪽 플랩 내부에 각각 존재하는데 한 쪽은 메모리카드, 배터리 등 작은 물건, 다른 한 쪽은 충전기, 필터 같은 덜 작은 물건을 보관하기에 적당하다. 오거나이저에는 늘어나고 방수 되는 재질의 지퍼 커버가 있어 주 수납공간의 물건들과 부딪히고 뒤섞이는 것을 막아준다. 다만 데일리백으로 사용할 때는 오거나이저에 접근하기 위해 가방 외곽의 지퍼를 한 번, 오거나이저 커버의 지퍼를 또 한 번 열어야 해서 번거로웠다.

기능

Main compartment opening

가방 뚜껑의 구조가 재미있다. 보통은 버클, 지퍼나 자석 버튼을 사용하는데 이 가방은 자석으로 된 래치를 사용한다. 자석에 걸림쇠가 결합된 구조로, 올바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걸림쇠가 여러 군데에 있어 오버패킹하더라도 뚜껑을 닫을 수 있다.

가방 양 측면에는 주 수납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지퍼가 있다. 가방을 완전히 벗어 뚜껑을 여는 대신 슬링백처럼 옆구리로 가져와서 사용할 수 있어 특히 렌즈 교환할 때 편리하다.

Shoulder strap

스트랩의 기능성은 훌륭하다. 가방의 측면 수납구를 활용하려면 어깨 스트랩의 길이를 자주 조정해야 한다. 어깨 스트랩에 각각 길이를 줄일 때와 늘릴 때 사용할 수 있는 고리들이 있어 아주 편리하다. 앞서 언급했던 다양한 숨겨진 스트랩은 가방의 활용성을 크게 높여준다.

가슴 스트랩과 허리 스트랩 역시 갖추어져 있다. 둘 다 필요에 따라 탈착 가능한데 특히 사용 빈도가 잦은 가슴 스트랩은 사용하지 않을 때 어깨 스트랩에 깔끔하게 달아둘 수 있다. 덜렁거리는 스트랩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 기능이다.

아쉬운 점

이 가방은 주 수납공간이 180도로 열리는 여행에 최적화된 가방은 아니다. 그럼에도 훌륭한 분리수납 구조, (특히 30L의 경우) 기내 반입기준에 거의 근접한 크기, 가슴과 허리 스트랩, 비행기 좌석 아래에 딱 들어가는 크기를 가져서 좋은 여행용 가방의 조건을 상당수 갖추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주 수납공간을 쉽고 눈에 덜 띄게 잠글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여행 목적에서의 활용성에 한계가 뚜렷한 점이 아쉽다.

가방을 닫기 전에 윗쪽 입구 부분을 잘 정리해주지 않으면 뚜껑 옆으로 삐져나오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도 완전한 생활방수를 보장할 수 없는 구조 역시 아쉽다.

고품질의 재료를 아낌 없이 투입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만큼 무게와 가격이 부담스럽다. 빈 가방의 무게도 상당해서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잘 사용하지 않은 스트랩과 디바이더는 모두 분리해서 따로 보관해야 했다. 그나마 재질과 구조에서 더 좋은 가방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기에 가격에 대한 불만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측면 수납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깨 스트랩을 자주 조정해야 하는데, 안전벨트 재질의 스트랩이 금속 재질의 버클과 마찰하며 조금씩 보풀이 일어나는 현상이 있었다. 표면의 보풀일 뿐이라 기능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픽디자인에 문의한 결과 교환을 받을 수 있었다. 포럼을 찾아봐도 다른 유사사례는 보이지 않았고 픽디자인의 대처가 괜찮아서 만족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Strap fuzzing

결론

지금까지 경험해본 가방 중 완성도로는 한 손에 꼽히는 가방이다. 구조와 무게 측면에서 아쉬운 점은 있지만 더 편리한 카메라 백팩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와 정성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나는 주로 출퇴근용 데일리백으로 사용했는데 그러기에도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이 가방을 시작으로 이후 픽디자인의 제품을 여러 개 구입했고 또 추가로 더 구입할 예정이다. 최소 몇 달 이상의 사용기간을 채우고 나서 그들에 대한 사용기도 써보려고 한다.

2018년 2월의 독서기록

1월에 이어 소설 위주로 읽어나갔다. 특히 <마스터스 오브 로마>가 분량이 많아 적어도 3월에서 4월까지는 계속 붙잡고 있게 될 것 같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2부: 풀잎관> (전 3권)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신봉아/이은주/홍정인 옮김, 교유서가 펴냄

<마스터스 오브 로마 1부: 로마의 일인자>에서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로마를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구해냈지만 이미 로마 공화정은 망조가 단단히 들었다. 외국과의 전쟁을 결정함에 있어서조차 로마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이 우선시된다. 반면, 고귀하고 명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은 혹평을 받는다.

“퀸투스 오피우스는 고루한 사람입니다. 로마는 영원해야 하고, 명예가 가장 중요하며, 다소 미심쩍은 가외활동으로 돈을 약간 챙기는 걸 대단한 패악으로 생각하지요. 그러니 이 군사행동의 목적이 카파도키아에서의 정의 실현만은 아닌 것 같다고 퀸투스 오피우스가 생각하게 할 만한 말이나 행동을 삼가십시오.”
아퀼리우스가 킬킬 웃었다, “우리 몫이 더 많아지겠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카시우스가 흐뭇하게 대꾸했다. (풀잎관 3권 8장 중)

하지만 가이우스 마리우스 역시 두 번의 뇌졸중을 거치며 예전의 명민함을 잃고 만다. 그 빈자리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파고들며 화려하게 비상한다. 술라의 부상 역시 마리우스의 그것만큼이나 평탄치 않았지만 타고난 운과 능력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마리우스파와의 내전에서 승리한다.

인명이나 지명이 수도 없이 등장해서 대체 이 사람이 누구고 그 곳이 어디였는지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게 만드는 점은 여전하다. 그리고 1부에 비해 2부에서는 번역의 긴장도가 조금 떨어졌다고 느꼈다. 특히 영미권 소설을 한국어로 옮길 때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외래어를 지양하는 쪽이 좋다. 몇몇 단어가 외래어 그대로 표기된 통에 비교적 잘 윤문된 번역문 사이에서 직역문이 툭 튀어나온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우스와 술라의 사투는 워낙 재미있는 이야기라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다음 세대의 기수인 카이사르, 키케로, 폼페이우스가 마침내 성인이 되어 스스로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달려나가는 모습 역시 흥미로웠다.

<심플 플랜> 스콧 스미스 지음, 조종섭 옮김, 비채 펴냄

리디북스가 설 연휴 즈음해서 무료책을 마구 살포했는데 그 와중에 한 권 골라잡은 것이 이 책이다. 이야기의 구조 자체는 연극 <라이어>와 꼭 닮았다. 작은 부정을 덮기 위한 <라이어>의 거짓말이 커져가듯, 우연히 얻은 거금을 숨기기 위한 <심플 플랜>의 범죄도 더 커져간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았던 인간상들인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어떻게 점점 타락하고 망가져가는지 한 발짝 옆에 떨어져 관찰하는 것이 감상의 주목적이 된다.

찾아보니 90년대 스릴러 소설로 아주 유명한 작품이었는데 막상 다 읽고 나니 드는 생각은 ‘글쎄’다. 사건 자체가 주는 스릴보다는 인간 내면에 대한 관찰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큰 소설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아내 정도를 제외하면 인물들이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예상가능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 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흐느껴 올 때는 내 자신이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으로 여겨진다. 내가 저지른 그 모든 일들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없다 하더라도. (본문 중)

NOMATIC Travel Bag 1년 사용기

Nomatic Travel Bag

들어가며

Nomatic Travel Bag킥스타터에서 구입해서 수령한지 어느새 1년이 지났다. 그 동안 여러번의 국내외 여행이 있었고 그 중 절반이 Nomatic Travel Bag과 함께였다. 후덥지근한 타이베이의 여름부터 눈보라 휘몰아치는 홋카이도의 겨울까지. 비교적 다양한 환경에서 이 가방을 사용해볼 기회가 있었다. 이제 지금까지의 경험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장점

직접 사용해본 결과, 이 가방의 가장 큰 장점은 크기, 수납, 방수로 요약할 수 있다.

매우 적절한 크기

Nomatic Travel Bag은 조그만 보조가방을 대체하기 위한 가방이 아니다. 크기와 부피가 큰 짐을 수납하는, 바퀴 달린 캐리어 가방을 대체하는 가방이다. 때문에 많은 짐을 담을 수 있도록 충분히 커야 하며, 또 기내수하물로 반입할 수 없을만큼 너무 커서는 안 된다.

EVA 항공 기내수화물 크기 제한과 비교

Nomatic Travel Bag의 크기는 딱 그 중간 어딘가의 적당한 지점에 위치한다. 기준이 넉넉한 항공사의 제한에는 여유있게 맞다. 기준이 빡빡한 항공사의 제한에는 꾹꾹 눌러 맞추면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수 있다. 가방이 형태가 잡혀 있으면서도 말랑말랑한 편이라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Nomatic Travel Bag을 기내수화물로 가지고 타면서 단 한 번도 제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

이런 절묘한 크기와 낭비되는 공간이 없는 직육면체 형태 덕에 생각보다 많은 짐을 수납할 수 있다. 사나흘 정도 일정의 짧은 여행용으로는 오히려 공간이 많이 남아서 돌아올 때 쇼핑 결과물을 가득 담아올 수 있다. 일주일을 넘어가는 겨울철 여행짐 역시 이 가방 하나로 넉넉히 쌀 수 있었다.

매우 적절한 수납

Nomatic Travel Bag의 또 다른 장점은 수납이다. 단순히 짐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방 여기저기에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납공간이 골고루 마련되어 있다.

이 가방이 가진 수납공간은 열거하기에도 벅차다. 태블릿 하나와 노트북 하나를 분리수납할 공간, 전자제품을 담기 위한 플리스 안감의 공간, 물통이나 비에 젖은 우산을 넣을 수 있는 방수 공간, 신발 두 켤레를 다른 짐과 완전히 분리해서 수납할 수 있는 공간, RFID 차단 기능이 있으며 자물쇠로 따로 잠글 수 있는 공간, 외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측면의 크고 작은 수납공간까지. 그 어떤 복잡한 짐도 용도와 목적에 맞게 분리해서 정리할 수 있다.

가장 커다란 주 수납공간도 활용하기 쉽다. 수납과 정리가 쉽도록 뚜껑이 180도로 열리는, 여행용 가방의 가장 기본적인 미덕 역시 놓치지 않았다. 주 수납공간의 깨끗한 옷과는 분리해야 할 신발, 세탁이 필요한 의류 등은 각각 가방 하단과 상단 공간에 분리수납 할 수 있어 여행의 마지막 날까지 깨끗하게 입을 수 있다. 자잘한 액세서리들 역시 측면의 분리수납 공간을 활용하면 별도의 파우치 없이도 서로 섞이지 않게 정리할 수 있다.

매우 적절한 방수

내가 Nomatic Travel Bag을 구입하기 전에는 Incase EO Travel Backpack을 여행 가방으로 큰 불만 없이 수 년 동안 잘 썼었다. 그럼에도 여행 가방을 바꾸기로 결심한 이유는 우기의 페루에서 소나기를 맞으며 길을 잃고 헤매다 겨우 숙소로 왔더니 가방 안에서 물이 찰랑이던 끔찍한 경험 때문이다.

레인커버를 별도로 구입해도 되지만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데 레인커버를 계속 가지고 다니면서 씌우고 벗기는 것이 번거롭다. 레인커버를 씌운 상태에서는 가방에 물건을 넣고 빼기 어려운 것 역시 불편하다.

Nomatic Travel Bag은 타프용 방수원단인 타폴린으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자연스레 생활방수가 된다. 보통 방수가 가장 취약한 부분은 지퍼인데, Nomatic Travel Bag의 모든 외부 지퍼는 방수 커버가 덮여있다. 이 정도면 가방 자체가 물에 잠기지 않는 이상 여행 중 만나는 어지간한 비는 버틸 수 있다.

소나기를 맞은 후

실제로 대만에서 소나기를 만났을 때나 홋카이도에서 눈보라를 맞았을 때 모두 가방 겉면에는 물이 송글송글 맺혀있었지만 안의 내용물은 전혀 젖지 않았다. 가방 겉면도 물이 스며들지 않아 그냥 툭툭 털어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겉면 뿐만 아니라 가방 윗쪽의 큼직한 수납공간 중에도 방수가 되는 곳이 있다. 찬물을 담으면 겉에 물방울이 맺히는 물통, 비에 젖은 우산이나 윈드브레이커 재킷 등을 넣어도 다른 수납공간을 적시지 않아 활용하기 좋았다.

그 외의 적절함

이만한 크기의 가방치고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는 모양새를 가졌다. 좋게 말하면 미니멀리즘, 나쁘게 말하면 투박하게 생겼다. 물론 크기가 크기인지라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도 거리에서 소음을 내며 다니는 알록달록한 캐리어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 국내보다 치안 사정이 나쁜 해외에서는 남들 눈에 띄어 좋을 게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눈에 띌 여지가 적다는 건 분명 장점이다.

가방 상하에 달려있는 손잡이, 캐리어 가방 손잡이에 결합할 수 있는 부분, 소매치기가 어렵도록 착용자의 등 쪽으로 난 (대부분의) 수납공간 입구, 태블릿 수납공간 벨크로 결합부의 케이블 연결용 구멍, RFID 차단 공간 등 여행용 가방으로서의 자잘한 디테일 역시 나쁘지 않았다.

구입시 추가 금액을 지불하면 같이 받을 수 있는 액세서리도 대체로 괜찮았다. 나는 허리스트랩, 빨래바구니, 진공백을 골랐다. 세면도구백은 투명하지 않아 기내 액체류 반입 규정에 어긋나고 셔츠 정리도구는 더 저렴한 대체제가 많기 때문이다.

허리스트랩은 가방의 무게가 무거울 때 가슴스트랩과 같이 사용하면 중량을 분산하는데 도움이 된다. 양쪽 스트랩에 모두 지퍼로 된 수납공간이 있는 것도 좋다. 다만 모양새가 예쁘지는 않고 탈착은 연습이 좀 필요하다. 나는 짐을 최대한 작고 가볍게 싸는 편이라 가슴스트랩만으로 충분해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접어서 가방 내에 수납 가능한 빨래바구니

빨래바구니는 가방 하단의 신발 수납공간에 있는 고무 스트랩에 결합해서 휴대할 수 있다. 숙소에 도착하면 풀어서 사진처럼 문고리에 걸어주고 세탁해야 할 옷이 생길 때마다 바구니 안에 던져넣으면 된다. 코인세탁기 등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바구니 째로 들고 가서 세탁하면 되고, 숙소 간을 이동할 때는 쌓인 빨래를 밑의 진공백에 옮겨담으면 편리했다.

진공백은 안에 옷을 넣고 뚜껑을 닫은 뒤 누르면 공기를 빼내서 부피를 줄여준다. 나는 여행갈 때 챙겨가는 옷이 적은 편이라 짐을 쌀 때는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빨래바구니에 쌓인 옷을 여기에 넣고 압축하면 부피가 줄어들고 수분이나 냄새를 새 옷으로부터 차단할 수 있어 유용했다.

단점

Nomatic Travel Bag의 가장 큰 단점은 무게다. 가방 외곽이 튼튼하지만 무거운 타폴린 소재로 되었기 때문인데 텅 빈 가방 무게가 이미 1.8 kg에 달한다. 어지간한 나일론 백팩 두 개 무게다. 어깨 스트랩의 패딩은 가방의 무게와 크기에 비해 불충분하다. 등판에는 패딩이 아예 없다. 때문에 짐이 많고 무거울 때는 가슴스트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몸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처음 Nomatic Travel Bag이 킥스타터에서 캠페인을 시작할 때 내세웠던 기능 중 하나는 ‘Innovative strap system’으로, 하나의 스트랩으로 백팩과 더플백 기능을 동시에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가방은 더플백으로 쓰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다. 차라리 가방 위에 달린 두툼한 손잡이를 잡는 쪽이 더 편하다. 쓰지도 않는 더플백 기능 때문에 남는 스트랩이 거추장스럽다.

외부 지퍼에 별도의 고리가 없어 자물쇠로 잠글 수 없다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되곤 한다. 시각에 따라 단점일 수 있기에 여기에 쓰긴 하지만 나는 별 달리 단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외부 지퍼를 자물쇠로 잠그고 다니는 건 ‘이 안에 귀중품이 있어요!’라고 소리치고 다니는 것과 다름 없다. 도둑 입장에서는 지퍼 옆을 면도칼로 째버리면 그만이다. 내가 보기에는 눈에 띄는 곳에 자물쇠를 채우기보다는 귀중품을 최대한 가방 안팎, 몸 여기저기, 숙소 안전금고 등에 분산하는 쪽이 나은 선택으로 보인다.

결론

겨울 홋카이도 7박 8일 여행짐

내가 7박 8일 일정으로 한겨울 홋카이도로 여행갈 때 쌌던 짐이다. 다른 물건들은 별도의 파우치 없이 가방 상하좌우에 다 분리수납했고 주 수납공간에는 옷가지와 투명 지퍼백에 담긴 세면도구 뿐이었다. 그러고도 가방 안에는 저만큼의 공간이 남아서, 겨울 재킷 안에 레이어드해서 입고 있던 플리스 재킷을 벗어서 넣거나 현지에서 산 물건을 넣어오는 용도로 활용했다.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Nomatic Travel Bag과 얇은 보조가방 하나면 가방에 대해서만큼은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공항이나 숙소를 오갈 때는 Nomatic Travel Bag에 모든 짐을 넣어다니고, 숙소에 짐을 놓고 가볍게 움직일 때는 보조가방에 꼭 필요한 물건만 넣어 사용하는 식이다.

공항에 갈 때는 내용물(특히 액체류)를 기내 반입 기준에 맞춰주면 이 가방을 기내수하물로 들고 탈 수 있다. 도착하면 위탁수하물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나오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수속 밟고 공항에서 나갈 수 있다. 대중교통에서도 캐리어 가방처럼 별도의 짐칸에 넣지 않고 손 뻗으면 닿는 곳에 둘 수 있으니 편하다.

그렇게 짐에 낭비되던 시간을 대신 여행 그 자체를 위해 사용하라는 것. 이것이 가방에 동봉되어 온 택에 적힌 이 가방의 제작 의도였다. 정확히 이런 의도로 사용하는데 최적화된 가방이고, 이런 목적으로 사용할 때 이 이상 유용한 가방을 나는 아직 찾지 못 했다.

아이폰 6s 노혼 배터리 자가 교체 후기

Update (19/02/03)
이 글을 쓴지 1년 후, 다시 한 번 노혼 배터리로 자가 교체를 진행했습니다.
노혼 배터리 관련된 유입 키워드가 많아, 배터리 교체시 요령에 대해서도 별도 정리했습니다.

교체의 배경

아이폰 6s를 구입한지 이제 2년이 되었다. 그 사이 큰 문제 없이 잘 썼던 아이폰이지만, 언젠가부터 속도가 크게 느려지고 배터리도 너무 빨리 방전된다고 느껴졌다.

그 사이 배터리 게이트가 터졌고, 애플에서는 남은 리퍼기간에 상관 없이 아이폰 6s의 배터리를 할인된 가격으로 교체해주는 기간 한정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대상이 아니었다. MMCX 케이블과의 매칭 문제 때문에 사설 센터에서 액정을 열었다 닫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되면 아이폰 6s를 좀 더 오래 쓰고 잘못되면 아이폰 8을 사자는 생각에 알리익스프레스에 노혼 배터리를 주문했다. 사실 배터리 도착한지는 꽤 됐는데, 귀찮음에 계속 미루고 미루다 결국 교체 작업을 하게 됐다.

교체 전

교체 전에 배터리 상태다. iOS 11.3 Beta 2부터 위와 같이 배터리 성능 상태를 보여주는 메뉴가 새로 생겼다. 내 아이폰 6s는 주변 온도에 따라 성능 최대치 80~81% 사이를 오갔다. 밑에 설명된 것처럼, 배터리 성능에 문제가 있어 아이폰의 전원이 꺼진 적이 있었다. 때문에 클럭 제한이 걸려있었고, 이를 수동으로 비활성화해둔 상태다.

교체 작업

배터리 교체 과정은 이미 많은 곳에 소개되어 있으니 굳이 내가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국내보다는 해외 쪽이 자료의 양도 많고 설명도 훨씬 자세하게 잘 되어 있었다. iFixit의 설명만으로도 별 문제 없이 교체할 수 있었다.

예전에 카메라 모듈 제조사에 근무하며 많은 스마트폰을 뜯고 조립해본 경험이 도움이 됐다. 아이폰은 처음이었고 배터리 양면테이프가 중간에 끊어지는 사고가 있었지만 약 25분 정도 걸려 교체를 마쳤다. 노혼 배터리팩 안에 포함된 공구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나는 전동드라이버가 편해서 샤오미 Wowstick을 대신 사용했다.

iFixit에 있는 내용 외에 도움이 될만한 팁은 이렇다.

  • 분해 전에 아이폰을 핫팩 위에 잠시 올려두면 액정과 배터리 분리가 쉬워진다.
  • 액정을 분리하는 쪽이 배터리 탈착할 때 걸리적거리는 게 없어서 쉽다.
  • 배터리 양면테이프 분해할 때는 손으로 당기든 드라이버에 감아서 당기든 최대한 힘을 적게 주며 천천히 당겨야 한다.
  • 혹시 양면테이프가 중간에 끊어지면, 금속 스페츌러를 구부려서 본체와 배터리 사이에 천천히 집어넣고 들어내야 한다. 배터리가 조금씩 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휘지 않도록 해야 발화를 막을 수 있다.
  • 전자기기는 정전기에 약하므로 가능하면 금속 공구 대신 플라스틱이나 나무 재질을 사용하고, 작업 전 접지된 금속면(접지 전원선으로 연결된 컴퓨터 본체 등)을 만져서 손의 정전기를 제거하는 것이 좋다.

교체 후

배터리 교체 후, 똑같은 화면에서 확인한 배터리 성능 최대치는 100%를 꽉 채웠다. 순정 배터리보다 노혼 배터리의 용량이 더 크므로 배터리가 불량이 아닌 이상 100%로 나와야 정상이다.

그 아래에는 배터리가 정상적인 최고 성능을 지원하고 있다고 나온다. 실제로 Geekbench 4로 확인한 결과도 그랬다.

일주일 전에 벤치마크를 돌렸던 결과와 비교해보면 두 배 이상의 점수 차이가 난다. 배터리 상태가 좋지 않아 성능 제한이 강하게 걸려있었으므로 체감 성능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서야 정상적인 성능으로 돌아온 셈이다.

배터리 점수도 두 배 좋아졌다. 세부 결과의 방전율로 계산해보면 멀티코어 전부하시 교체 전에는 완충에서 완방까지 1시간 걸렸는데, 교체 후에는 3시간 걸리는 걸로 나온다. 실제 사용시간은 세 배 늘었다고 봐도 좋겠다.

결론

내 아이폰처럼 자가수리 또는 사설센터 수리이력이 있어서 공인센터에서 수리를 받지 못 하는 기기가 아닌 이상, 배터리 교체는 꼭 받으라고 권해주고 싶다. 이왕이면 공인센터에서 정품 배터리로 교체하는 쪽이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구제 받을 여지를 남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노혼 배터리 자가교체를 고려해볼만 하다. 조심히 작업한다면 그리 어렵지도 않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정 자신이 없으면 배터리만 구입해서 사설 센터에 가서 교체를 받을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 공인 센터보다 적은 비용으로 다시 새 것 같아진 아이폰을 손에 쥘 수 있으니 투자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2018년 1월의 독서 기록

길고 길었던 <Harry Potter> 시리즈 원서 독서가 지난 연말로 끝났다. 모국어로 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그만큼 독서 진도도 빨리 나간다. 마침 연초이기도 해서 가볍게 읽히는 책 위주로 읽어나갔다.

<은하영웅전설> (전 10권)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완 옮김, 디앤씨미디어 펴냄

20년 전에 밤을 새며 읽었던 책인데, 그게 해적판인줄은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정식 판권을 갖고 있는 책을 전자책으로, 우선 외전은 제외하고 본편만 구입했다.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의 독서라 그런지 오래 전에 처음 읽을 때만큼의 몰입은 되지 않았다. 게다가 3권 즈음부터 이야기의 흐름이 급격히 느려지고 사족도 늘어난다. 원래 세 권 짜리 기획이 늘고 늘어 열 권이 되었기 때문일까. 3권 이후의 이야기 중 절반 이상은 덜어내도 전혀 상관 없어보인다. 때문에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꽤 지루하게 느껴졌다.

작품에서 제기하는 의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무능한 민주주의와 유능한 전제주의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옳은가. 전제주의는 지도자가 유능할 경우 매우 효율적인 진보가 가능하지만 퇴보 역시 대단히 효율적이다. 민주주의는 그에 반해 진보도 퇴보도 일정한 범위 내로 제한하는 여러 장치가 있다.

작중에서는 결국 유능한 전제주의가 무능한 민주주의를 정복했다. 하지만 이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라는 걸출한 지도자의 개인 역량에 의지한 결과일 뿐이다. 그토록 유능한 지도자가, 그것도 혈통을 이어가며 꾸준히 나타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비록 역사적 전환기에는 특정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더라도 그것이 안정화된 후에는 진보의 속도는 느리더라도 더욱 거대한 퇴보를 막아줄 수 있는 민주주의 쪽이 더 나은 제도로 보인다.

내용과는 크게 상관 없지만 일부 거슬리는 대목이 있다. 이를테면 주군의 명령을 받은 부하장수의 “존명.”이라는 대답이다. 원서에도 그렇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해적판의 “알겠습니다.” 내지는 “명령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쪽이 좀 더 부드럽게 읽힌다.

<번역을 위한 변명> 그레고시 라바사 지음, 이종인 옮김, 세종서적 펴냄

미국의 한 번역자가 자신이 가진 번역에 대한 생각, 그리고 자신이 번역한 작품들의 뒷이야기를 풀어 정리한 책이다. 책의 핵심은 저자의 번역론으로 요약할 수 있는 책의 전반부에 이미 다 나온다. 후반부는 전반부의 내용이 실제 번역 작업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있는 정도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작품의 상당수가 한국에서는 유명한 작품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게 다가온다.

나도 번역서를 읽으며 왜 역자가 글을 이렇게 썼는지에 대해 불평할 때가 많이 있었다. 결국 원서를 찾아서 읽는 결과로 이어질 때도 있었다. 물론 내 외국어 실력은 전문 번역자에 비할 바가 못 되기에, 독해 중 의미를 파악 못 하는 경우나 번역서보다 더 나은 한국어 번역을 제시하지 못 하는 경우가 잦다.

이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는 것처럼,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언어는 단순한 기호 체계가 아니라 해당 문화권의 인문학적 배경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서로 다른 두 문화권의 독자가 같은 내용을 읽고 받아들인 결과물이 같을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한 언어로 쓰인 문장의 함의를 다른 언어로 정확히 옮길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번역은 항상 창의성과 타협의 산물이 된다.

이러한 점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질 낮은 번역물이 계속 출판되어 나오는 현실을 마냥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번역서의 내용이 번역 작업의 한계상 원서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적어도 원작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읽을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번역서를 구입하는 독자들이 가지는 최소한의 기대치일텐데 말이다.

<로마의 일인자: 마스터스 오브 로마 1부> (전 3권+가이드북) 콜린 매컬로 지음, 이은주, 홍정인, 강선재, 신봉아 옮김, 교유서가 펴냄

흥미진진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다. 로마 공화정은 그리스 폴리스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뿌리처럼 여겨지는 정치 체제다. 하지만, 작중에서 그려지는 로마 공화정은 뇌물과 우민정치로 오염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듯이, 삼두정치, 카이사르의 독재, 아우구스투스의 황제 즉위를 거치며 로마의 공화정은 소멸되고 만다. 이 소설은 그 거대한 역사적 수레바퀴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음모와 인간 군상을 그려낸다.

이 책을 읽는데 가장 큰 장벽은 보통의 한국 독자로서 로마의 고대사와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가이드북이 첨부되어 있으나 본문을 이해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그리고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책 한 권을 다 읽기도 전에 ‘이 사람이 어디에 나왔었지?’라며 앞장을 뒤적이게 만든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동명이인이 세 명 이상 나온다거나, 같은 사람을 경우에 따라 프라이노멘, 노멘, 코그노멘으로 구분해서 부른다는 점도 적응이 어렵다.

이런 장벽만 극복할 수 있다면 세간의 평대로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임은 분명하다. 실제 역사와 겹쳐지고 또 떨어지며 다양한 복선을 깔아두는 이야기가 훌륭하고, 무엇보다 주요 등장인물 각자가 풍기는 매력이 대단하다. 올 상반기 중에 전 시리즈 완독을 목표로 꾸준히 읽어나갈 생각이다.

<플루언트: 영어 유창성의 비밀> 조승연 지음, 와이즈베리 옮김

원래 이런 류의 책은 잘 구입하지 않는다. 나는 나름대로 외국어를 이해하기 위한 나름의 틀과 학습법을 이미 가지고 있다. 이미 나에게 최적화된 외국어 학습관을 가진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외국어 학습에 대한 책을 읽는 건 그 시간에 외국어를 더 공부하는 것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다고 느낀다.

그래서 예전에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본 이후 기억에서 지웠던 차에 리디북스에서 기간한정 무료대여로 풀렸기에 대여를 해서 읽어보았다. 시간이야 투자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책값은 굳었으니까.

사실 책의 내용 중 그렇게 새로운 것은 없었다. <번역을 위한 변명>에 대해 썼던 것처럼 언어는 단순한 표음 또는 표의기호가 아니라 문화적 상징의 집합체다. 때문에 외국어로 된 단어와 문장을 한국어로 1:1 대응하여 옮기는 식의 외국어 교육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사상누각일 수 밖에 없다. 이 책도 그러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다만 영어에 대해 내가 몰랐던 것 몇 가지를 알게 된 것은 도움이 됐다. 몇 가지 어미가 어근의 유래에 따라 형태를 바꾸어 접속된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단어를 익히며 어근과 어미 사이에 무언가 내가 모르는 규칙이 있을 것 같다는 희미한 느낌은 있었는데 저자의 깔끔한 정리가 도움이 됐다.

하지만 나에게는 딱 거기까지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이는 내가 평소 갖고 있던 외국어관과 저자의 외국어관 중 상당 부분이 일치하는 내용이었기에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사전을 뜯어먹으며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집을 내려놓고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시장에는 건축가가 일반인을 위해 쓴 책이 많다. 그냥 많은 것도 아니고 아주 많다. 하지만 그 중 대부분은 사실 그다지 새로울 내용이 없다. 건축은 역사가 아주 오랜 학문이고, 그만큼 건축이 지켜야 할 틀은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면 아래 잠겨있는 유빙의 대부분은 똑같은데 그 위 드러난 부분 정도가 개별 건축가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전부인 셈이다.

읽으며 느끼기에는 이 책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 했다. 오히려 짧은 글을 모아서 펴낸 책이기에 뒤로 갈수록 일관성에서 벗어나 약간의 산만함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읽은 건축 분야의 책이기에 이전의 기억을 되살리고 저자의 건축관을 살펴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그렇게 인상에 강하게 남지는 않았다.

브롬톤 여행 준비에 대한 정보

들어가며

내 블로그는 방문자가 많지 않다. 딱히 방문자에 대해 의식하는 편도 아니고. 그래도 가끔 리퍼러를 들여다 보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검색어 중 하나가 브롬톤 여행 관련이다. 이전에 썼던 브롬톤 여행기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글이라기보다 개인적인 감상과 느낌 위주여서, 브롬톤 여행 준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내 블로그로 들어왔던 분들이 원했던 답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그래서 자전거, 특히 브롬톤으로 여행 준비를 할 때 필요한 것들에 대해 내 경험에 기반해서 따로 정리해봤다. 내 경험과 관점에 기반해 쓴 글이기에 경우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최대한 보편적일 수 있는 정보를 서술하고자 노력했다.

여행 전 준비물 – 자전거

당연히 자전거 여행을 위해서는 자전거가 있어야 한다. 장시간 타더라도 몸에 불편함이 없도록 적절한 부품으로 적절히 피팅되어 있어야 한다. 가능하면 여행 전에 자전거를 꾸준히 타서 체력과 자전거에 대한 익숙함을 키우는 게 좋겠다. 펑크 등의 비상사태에 대비해 미리 튜브를 교체하는 연습을 해둔다면 더욱 좋겠다.

브롬톤은 여행의 동반자로서 아주 좋은 폴딩 자전거다. 그 어떤 자전거보다도 효율적으로 접힌다. 그만큼 특이한 점도 많아서 익숙해져야 한다.

접고 펴는 것과 가방을 장착한 상태에서 핸들포스트 또는 싯포스트만 뽑아서 이동하는 것을 미리 연습해두면 유용하다. 완전히 폴딩한 상태에서 싯포스트만 뽑아 안장을 잡고 끄는 것이 가장 편하지만 자전거를 들어올리면 폴딩이 풀려버린다. 핸들포스트는 자전거를 들어올려도 폴딩이 풀리지 않지만 부피를 더 차지한다. 가방을 장착하면 폴딩했을 때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쏠려서 브롬톤이 넘어지기 쉽다.

정비에 있어서도 특이한 점이 있다. 다른 일반 자전거와는 호환되지 않는 부품이 상당수 있다. 변속기가 대표적인데, 내장기어든 외장기어든 변속에 문제가 생겼을 때 조정하는 방법을 미리 숙지할 필요가 있다. 방법을 알면 쉬운데 할 줄 모르면 한참 헤매게 된다. 나중에 공구 부분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뒷바퀴 분리를 위해서는 15mm 스패너가 꼭 필요하다는 점도 특이하다.

여행 전 준비물 – 공구

그리고 공구가 필요하다. 최소한 육각렌치 세트, 타이어 펑크 수리 공구, 체인 수리 공구까지 세 가지는 꼭 필요하다.

육각렌치는 자전거에 붙어있는 다양한 부품들을 조이고 조정하는데 필요하다. 보통 2~8mm 범위가 가장 많이 사용되며, 드물게 1.5mm 등도 쓰인다.

타이어 펑크 수리를 위해서는 15mm 스패너, 예비튜브, 타이어 레버, 펑크패치, 펌프가 필요하다. 펑크가 났을 때 길바닥에서 펑크를 때우는 것보다는 펑크를 유발한 이물질을 제거하고 그냥 예비튜브로 교체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쉽다. 펑크난 튜브는 나중에 시간 있을 때 때우면 그만이니까. 뒷바퀴 튜브를 교체하려면 뒷바퀴를 분리해야 하므로, 브롬톤의 경우 15mm 스패너가 필수 공구이다. 펌프는 브롬톤에 기본 장착된 제팔 펌프를 활용해도 된다. 다른 미니펌프에 비해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비상용으로는서는 쓸만하고, 프레임에 딱 맞게 장착되니 더욱 좋다.

체인 수리를 위해서는 체인커터가 꼭 필요하다. 여기에 여분의 체인과 체인링크가 있으면 더욱 좋다. 체인을 수리하는 동안 체인을 잡아줄 체인후크가 있으면 수리가 훨씬 편해지지만 필수는 아니다.

시중에 많은 종류의 자전거용 휴대용 멀티툴이 나와있다. 이 중 주요 육각렌치, 타이어 레버, 15mm 스패너, 체인커터가 모두 포함된 공구는 드물다. 그나마 턴툴(Tern Tool)이 이 모든 공구를 다 갖추고 있기는 하나, 5mm, 8mm 육각렌치가 스패너에 어중간하게 붙어있어 자전거의 좁은 틈새에서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아 추천하기 어렵다.

때문에 내가 고려했던 공구 조합은 아래와 같다. 모두 왼쪽의 공구를 기본으로 하되, 누락된 것을 오른쪽에 있는 것으로 보완하는 식이다.

  1. 브롬톤 툴킷 + 체인커터(예: 토픽 유니버설 체인툴)
  2. 토픽 헥서스2 + 15mm 스패너(예: 노브 티타늄 스패너)
  3. 시그마 PT-16 + 펑크패치

나는 여행용으로 두 번째 조합을 주로 활용했다. 저것만으로도 여행 중 응급수리용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다른 조합도 직접 써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필요한 기능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므로 괜찮을 것 같다.

여행 전 준비물 – 가방

여행에 필요한 여러 짐을 담을 가방 역시 꼭 필요하다. 보통의 자전거 여행에는 랙과 패니어를 장착한다. 브롬톤에도 랙을 장착할 수 있지만, 순정 부품은 캐리어블럭과 짐받이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깔끔하다.

캐리어블럭을 이용하면 브롬톤의 헤드튜브에 간단히 프론트백을 장착할 수 있다. 중량 제한은 10kg으로, 생각보다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다. 다른 자전거의 프론트백과는 달리 가방이 핸들바가 아니라 프레임에 장착되는 것 또한 큰 장점이다. 가방을 달았을 때 조향감의 변화가 적어 적응이 쉽다.

짐받이에도 물론 가방을 실을 수 있다. 여기도 중량 제한은 10kg이다. 프론트백과 합치면 총 20kg의 짐을 실을 수 있는데, 캠핑이라도 갈 게 아닌 이상 여행짐만으로 이걸 모두 채우기는 쉽지 않을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다. 대신 짐받이에 가방을 실으면 ‘반폴딩’이 불가능해 킥스탠드가 필요할 수도 있다.

가방을 선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공기저항이다. 자전거로 여행을 간다는 건 상당히 먼 거리를 자전거로 이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기저항이 크면 쉽게 지쳐 멀리 가기가 어려워진다. 단면적이 넓은 T백을 달았을 때 강한 맞바람을 맞으면 체감상 평지가 남산 정도의 오르막으로 느껴질 정도로 힘이 들었다.

때문에 며칠 정도의 숙소를 잡아놓고 하는 여행 기준으로는 크지 않은 프론트백 하나, 백팩 하나 정도가 가장 적당했다. 프론트백은 어깨에 맬 수 있는 탈착식 스트랩이 있는 것, 백팩은 스트랩이 주행 중 방해되지 않도록 깔끔하게 수납해버릴 수 있는 것이 편하다.

이동할 때는 백팩을 짐받이, 싯포스트 또는 안장에 고무줄 또는 벨크로 스트랩 등을 이용해서 최대한 공기저항을 덜 받도록 고정한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면 백팩은 풀어놓고 필수 소지품만 작은 프론트백에 넣어 브롬톤에 장착하거나 어깨에 메고 다니면 된다.

여행 전 준비물 – 안전장구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다. 특히 사고의 위험이 항상 상존하므로, 최대한 사고를 예방하고 혹시나 사고가 나더라도 부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장구를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헬멧, 고글, 장갑은 안전장구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된다. 헬멧은 치명적인 두부 부상을 예방한다. 고글은 낮에는 햇빛을 가려 눈의 피로를 덜어주며 공기 중이나 바닥에서 날아오는 이물질로부터 눈을 보호해준다. 장갑은 핸들바를 잡은 손의 통증을 완화하고 넘어졌을 때 찰과상을 어느 정도 막아준다.

전조등과 후미등 역시 꼭 필요하다. 인적이 드문 곳이나 야간주행시 생명을 지켜준다. 배터리에 여유가 있다면 낮에도 켜고 다니는 쪽이 좋다. 여행용으로는 전력에 대해 신경쓸 필요가 없는 자가발전식이 가장 좋지만 비싸고 무겁고 구동저항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 USB 충전식이라면 보조배터리를 연결한 상태에서도 사용가능한 것이 좋고, 아예 건전지 방식을 사용하며 여분의 건전지를 추가로 들고 다니는 것도 좋다.

직접적인 안전장구는 아니지만, 특히 교외 라이딩이 포함될 경우 넉넉한 양의 물과 비상식량이 있어야 한다. 거리와 계절에 따라 다르겠지만 물은 무게가 허락하는 한 넉넉히 챙기는 것이 좋다. 내 경우 시내주행은 500 mL, 한 나절 정도의 교외 주행은 1L, 중간 보충이 어려운 국토종주 등의 경우 2L 이상을 챙긴다.

자전거는 생각보다 열량을 많이 소모하는 운동이므로 비상식량도 꼭 필요하다. 몸에 저장해둔 에너지원이 모두 소모되면 오도가도 못 하는 곳에서 저혈당 증세로 쓰러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선수용 파워젤 같은 것도 있겠으나 여행용으로는 한 입 크기로 포장된 초코바를 적당히 챙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교통수단 이용

브롬톤의 가장 큰 장점은 점프다. 이동거리가 멀거나 여러 이유로 라이딩이 어려울 때 다른 교통수단과 연동이 쉽다. 물론 만원 버스나 전철에서는 민폐가 되기도 하니 상황에 따라 적절한 선택이 필요하다.

일반 승용차나 택시는 특별할 게 없다. 완전히 접어서 트렁크에 싣거나 좌석 아래에 실으면 된다. 넣고 뺄 때 차체나 시트를 긁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하면 된다. 버스도 승객이 너무 많지만 않으면 보통 가방 들고 타듯이 들고 타면 된다.

고속버스에 실을 때는 요령이 있다. 완전히 접은 후, 싯포스트를 길게 뽑아 고속버스 짐칸 안에 기둥처럼 고정시키면 된다. 다만 주행 중 진동 때문에 폴딩부의 클램프가 혼자 풀려버려 분실할 우려가 있다. 때문에 클램프를 아예 풀어서 갖고 타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내 생각으로는 폴딩 후 클램프를 적당히 조여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기차에는 비교적 가지고 타기 쉽다. 대부분의 도시철도에는 폴딩 자전거 반입이 허용된다. 무궁화, 새마을, ITX새마을, ITX청춘, KTX, KTX산천, SRT 모두 브롬톤을 폴딩하면 맨 뒷좌석 뒷공간에 넣을 수 있다. (단, KTX는 일부 좌석에 한정되고 누리로는 각 칸의 캐리어 수납공간 활용 필요) 미리 맨 뒷좌석을 예매했다면 부담이 적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통로에 두거나 객실 사이의 짐칸에 둬야 한다. 전자는 다른 이용객에게 민폐가 되고 후자는 자물쇠가 필수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다.

비행기에 브롬톤을 태우는 것이 가장 까다롭다. 브롬톤 전용 하드케이스를 쓰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만, 가격이 만만찮은데다 여행지에 도착하고 나면 가방 자체가 거대한 짐짝이 된다. 공항 수화물 센터에서 수 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박스 포장을 해주기도 한다. 포장 전에 고속버스와 마찬가지로 클램프를 모두 조이거나 아예 빼버리고, 손상 우려가 있는 바깥쪽 부품(특히 이지휠)은 떼어내고, 중량 제한(보통 15kg)을 초과하지 않도록 불필요한 액세서리는 탈거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불편하기는 매한가지라, 차라리 여행지에서의 브롬톤 렌탈 서비스를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여료가 가방값 내지는 포장요금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주요 액세서리(예: 프론트백 등)만 따로 챙겨가서 장착하면 그나마 원래 내 것에 비해 위화감이 적은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여행일정 계획할 때 유의할 점

상당히 많은 관광지에서 자전거의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 곳은 폴딩을 하더라도 제지당할 확률이 높다. 때문에 여행지에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지 미리 확인해야 하고, 자전거를 가지고 갈 수 없을 경우 자전거를 어떻게 보관할지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운 좋으면 관리인이 맡아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민폐임은 매한가지므로 가능하면 선택지에는 넣지 않는 것이 좋겠다.

내 경우에는 자전거를 가지고 갈 수 없는 관광지는 자전거는 숙소에 맡겨둔채 최대한 일정표 한 쪽에 몰아넣어 한번에 관람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자물쇠를 채워 주차한 뒤 탈착식 페달을 분리해서 휴대했다.

자물쇠는 쉽게 끊을 수 없으면서 유연성이 있는 것이 좋다. 사관절락도 좋고 최근엔 케블라 등을 이용한 벨트식 자물쇠 중에서도 가벼우면서 휴대용 절단기로는 끊을 수 없는 제품이 있다. 이런 자물쇠로, 브롬톤을 폴딩 상태에서 프레임, 앞바퀴, 뒷바퀴, 안장을 한 번에 단단하게 고정된 기둥 등에 묶어주면 된다. 탈착식 페달을 쓰는 경우 페달도 분리해서 휴대하는 것이 좋다.

브롬톤이 미니벨로 중에서는 가방을 거치하기 편한 자전거라고는 하지만 여행 중에는 최대한 짐을 줄이는 것이 좋다. 크고 무거운 가방은 숙소에 맡겨두고 작은 프론트백 하나만 자전거에 달고 다닐 수 있도록 동선을 짜면 편리하다.

“Beautiful Tomorrow (뷰티풀 투모로우)” 관람 후기

2017년 10월 26일, CGV영등포

박효신, 정재일 주연의 <Beautiful Tomorrow>를 보고 왔다. CGV 단독 개봉 영화로, 전국 CGV 31개관에서만 볼 수 있다. 상영관이 많지 않은데다 팬들의 화력 덕분에 예매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가까운 CGV도 상영관 중 하나라 어찌 어찌 티켓을 구해서 관람하고 왔다.

나는 지난 박효신 공연에서 듣고 온 것 이상의 사전 정보가 없었기에 당연히 영화이겠거니 하고 보러 갔었는데, <Beautiful Tomorrow>는 그냥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라고 하기에는 각본이 부족하고, 다큐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픽션이고, 여행기라기엔 설명이 부족하고, 버스킹이라기엔 등장한 음원 대부분이 앨범 그대로니까 말이다.

덕분에 보는 동안 ‘이건 영화라기보다 아주 긴 뮤직비디오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정말 그랬다. 다시 말해 <Beautiful Tomorrow>는 박효신 7집 <I am a Dreamer>의 수록곡들을 통째로 들려주는 장편 뮤직비디오인 셈이다.

때문에 <Beautiful Tomorrow>는 보는 사람이 가진 박효신에 대한 팬심의 정도에 따라 달리 보일 수 밖에 없다. 소울트리 준회원인 나에게는 ‘연기가 오그라들지만 그래도 영상 가득 박효신이 나오고 극장의 음향으로 노래를 들으니 괜찮다’ 정도의 느낌이었다.

극장에서 내 자리 근처에 앉았던 분들은 나보다 팬심이 훨씬 더 돈독하셨던 모양이다. 나로서는 감정이 북받칠 지점을 찾기 어려웠는데, 중간중간 훌쩍이는 소리를 꽤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내 바로 옆 자리에 앉으셨던 분은 거의 오열을 하실 정도였다.

반면, 박효신에 대한 팬심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영 추천하기 어렵겠다. 아무리 박효신의 노래가 좋고 쿠바의 풍광이 아름답게 비치더라도 스토리와 연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팬심이 필요해보인다.

신기했던 경험도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스탭롤이 시작되며 극장에 불이 켜졌는데 아무도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다. 극장에 그래도 일 년에 몇 번 씩은 가는 편인데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인 것 같다. 영화제에서조차 이런 적은 없었으니까. 그만큼 관객의 절대 다수가 박효신의 팬들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정리하자면, <Beautiful Tomorrow>는 박효신의 7집 <I am a Dreamer> 앨범 전체에 대한 장편 뮤직비디오다. 박효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68분 동안 쿠바의 풍광을 배경으로 7집 수록곡 대부분을 기분 좋게 즐기고 올 수 있겠다. 팬이라면 사실 이런 리뷰 찾아보기 전에 이미 예매해서 보고 왔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