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내집 마련기
결심은 어려웠지만 이후로는 일이 제법 빠르게 진행됐다. 먼저 임대인과 협의를 진행해서 집을 구할 시간을 추가로 벌고,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에 들어갔다. 다행히 자료를 조사하고 계획을 세워 그대로 실행하는 작업은 내가 딱 좋아하는 일이라 약간의 압박감을 제외하면 즐겁게 일했다.
꼭 매매가 아니더라도 새 집을 찾을 때는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하다. 내가 얼마까지 쓸 수 있는지(예산), 내가 편히 살 수 있는 집은 어때야 하는지(조건)이다.
예산
예산을 뽑기 위해 부부 각자의 자산을 먼저 확인했다. 전세보증금의 비중이 가장 컸고, 여기에 다년 간의 셋방살이 중에서도 나름 모아둔 저축과 투자금이 제법 됐다. 퇴직연금도 금액이 꽤 됐고 주택 구입 목적의 중도인출도 가능하지만 이번에는 손대지 않기로 했다.
예전 신혼 때에 비하면 집값이 워낙 많이 올랐다 보니 대출도 고려를 했다. 전세 살면서는 보증금 증액에 대비해 매달 최소 n백 만원씩을 따로 모아뒀었다. 만약 대출이 꼭 필요하다면 매달 원리금을 이 금액 이내로 묶는 범위까지는 감당을 해보기로 했다. 그러면 기존 생활수준과 노후 대비 적립식 투자에는 영향이 없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매월 원리금을 바탕으로 여러 금리, 대출조건, 대출기간 별로 최대 빌릴 수 있는 금액을 확인했다. 단순히 원리금 뿐만 아니라 LTV, DSR 등 규제도 생각해야 했는데 인터넷 상의 부동산 계산기 웹사이트가 유용했다.
조건
내가 원하는 집의 최우선 조건은 명확했다. 회사까지 대중교통 1시간 이내, 그리고 전철역과 대형마트를 도보 10분 내에 갈 수 있는 계단식 아파트다. 여기에 20평형대, 500세대 이상, 평지, 채광, 뻥뷰, 맞통풍, 판상형,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 연결, 조경관리, 상권, 공원, 자전거도로 등에 가산점이 있었다.
이번에 집을 알아보며 느낀 점은 설령 예산에 제약이 없더라도 내가 원하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집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원하는 조건의 우선순위와 더불어 포기할 수 있는 부분도 명확히 해야 했다. 내 경우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은 학군(‘초품아’)과 소음이었다. 둘 다 어차피 교통 편한 도심 지역에서는 만족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예산을 포함한 조건이 확정되는대로 손품을 팔았다. 동네에 대한 편견이나 오래되고 잘못된 기억을 배제하기 위해 서울 전지역과 인접 수도권까지 범위를 넓혀 기계적으로 조건에 맞는 단지를 추려냈다. 필터링에는 호갱노노를 가장 많이 이용했고, 네이버부동산의 매물 현황과 KB부동산의 시세정보를 같이 활용했다. 그 결과 후보 단지를 총 7곳까지 압축했다.
임장
7개의 후보 단지에 모두 임장을 갔다. 그것도 자주 많이 갔다. 매번 갈 때마다 단지 안과 주변을 샅샅이 훑는 건 물론이고 서로 다른 요일과 시간대에 여러 번 방문해서 혹시 놓친 부분은 없는지 확인했다. 시간을 쪼개가며 낮밤으로 임장 다니려니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다양한 삶의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임장 결과를 바탕으로 후보군을 3개 단지까지 줄였다. 3개 단지는 모두 실제 아침저녁으로 회사까지 출퇴근하는 검증 과정까지 거친 끝에 ‘가격만 맞으면 계약해도 좋다’는 생각이 든 곳들이었다.
이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찾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