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기 (1) 배경, 결심


2023 내집 마련기


2023년 상반기에 집을 샀다. 그것도 서울 아파트를 매수했다. 살면서 이렇게 큰 돈을 써 본 건 처음이다. 흔치 않게 거대한 구매 경험을 했으니 후기를 안 남길 수가 없겠다.

사실 작년만 해도 나는 집을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집을 투자자산으로 보든 주거공간으로 보든 나에게 집은 별로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부동산은 다루기 까다로운 자산이다. 거래 과정이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며 수익은 물론 보유만으로도 과세된다. 위험 분산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면 다주택자라며 중과세, 임대를 놓자니 임차인이 복불복에 토지는 몰라도 건물은 감가와 유지보수도 생각해야 한다. 암만 봐도 주식, 채권, 원자재, 외화 등 각종 유가증권이 부동산보다 다루기는 편하면서 수익률이 좋다. 그래서 꾸준히 분산투자를 하면서도 부동산에는 관심을 끊고 지냈다.

주거공간으로 봐도 굳이 집을 사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 했다. 학생 때는 원룸 월세, 취업 후에는 원룸 전세, 결혼하고서도 쭈욱 작게는 8평에서 크게는 16평까지의 오피스텔에 전세로 살았다. 전철역과 대형마트가 인접한 원룸에서 살림을 줄여 미니멀하게 사는 삶이 좋았다. 임대차보호법이나 보증보험 같은 제도도 있고, 월세나 세금은 없고, 이직이나 타 사업장 발령 때 이동도 쉬운 장점이 있었다.

그러다 집을 사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이성으로는 만족한다며 살아왔지만 실상은 심리 저 너머 기저에 조금씩 쌓여가던 짜증이 폭발한 비합리적 결과였다.

나는 철저한 ‘J’형 인간이라 계획 외의 큰 일이 불쑥 생기는 게 싫다. 몇 년 전, 살던 전세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대항력 있는 선순위 임차인이었고 보증보험도 전액 가입해두어 약간의 마음 고생만으로 무사히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고 이사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연초부터 전세를 반전세로 바꿔달라던 임대인의 요구가 결정적이었다. 싫다고 하니 임대인은 계약 끝나는대로 나가달라고 했다. 법적으로 내게는 전월세전환은 물론 재계약 거절을 다시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법보다 임대인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가 더욱 중요하다. 특히 임대인이 마루 한 장까지 직접 챙기며 잘잘못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럼에도 집을 사겠다는 결정에 이르기는 쉽지 않았다. 애초에 집을 산다는 선택지가 내 삶의 계획에 없었기도 하거니와, 우리 부부는 2022년 초 최고점을 찍었던 집값이 적어도 향후 몇 년의 경기침체 동안은 별 재미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집값이 떨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집을 사는 결심은 아무래도 짜증에 기반한 비이성적 판단에 기인했음이 분명했다. 계약 만료까지는 아직 시간이 충분했고 시장 상황상 전세 매물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집값 하락에 의한 경제적 손해보다 다시는 이런 생각지 않은 삶의 장애물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의 평화에서 오는 이득이 더 크다고, 당시에는 잘 따져보지도 않은 채 터무니 없는 결심을 했고 결국 주택 구입을 결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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