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브롬톤 국토종주 8일차: 대구-달성보-합천창녕보-박진고개-영아지고개-남지

2023 브롬톤 국토종주 끊어달리기

구분구간날짜인증센터주행거리 (km)
/상승고도 (m)
아라뱃길인천-서울1.31 화아라서해갑문, 아라한강갑문, 여의도59.2 / 328
한강양평-서울2.12 일양평군립미술관, 밝은광장, 능내역, 광나루, 뚝섬71.5 / 282
북한강춘천-남양주2.17 금신매대교, 경강교, 샛터삼거리, 밝은광장85.3 / 352
남한강양평-충주2.24 금이포보, 여주보, 강천보, 비내섬, 충주댐, 탄금대120.4 / 678
새재충주-점촌4.1 토수안보온천, 행촌교차로, 이화령휴게소, 문경불정역90.5 / 835
낙동강점촌-안동4.7 금상주상풍교, 안동댐102.7 / 489
낙동강예천-대구4.21 금상주보, 낙단보, 구미보, 칠곡보, 강정고령보123.1 / 497
낙동강대구-창녕5.19 금달성보, 합천창녕보100.0 / 677
낙동강창녕-부산11.10 금창녕함안보, 양산물문화관, 낙동강하굿둑87.5 / 412
후기/교훈/팁국토종주 + 구간종주(한강/남한강/북한강/새재/낙동강)총 840.1 km

준비

한 달 만에 다시 국토종주를 떠납니다. 너무 더워지기 전에는 부산까지 가고 싶어 서두르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출발이 늦어졌습니다. 장염에 걸리기도 하고, 건강검진 때문에 단식을 하기도 했구요. 특히 계절이 바뀌며 남풍이 자주 부는데 이게 하행 방향으로는 역풍입니다. 그나마 남풍이 안 부는 날은 미세먼지가 심해서 출발할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같이 국내외 여러 웹사이트에서 기온, 풍향, 미세먼지 등을 살피던 끝에 다시 보기 힘들 좋은 날씨가 있는 날이 있어 휴가를 냈습니다. 예보상으로는 새벽까지 비가 오지만 아침 일찍 그치고 오후에는 완전히 갤 예정입니다. 바람은 약한 북동풍에 미세먼지 농도는 ‘매우 좋음’까지 떨어진다고 하네요.

이번에 갈 대구에서 창녕 사이 구간은 인천-부산 국토종주 중 최대 난코스로 꼽힙니다. 이른바 영남 4대 업힐이라 불리는 다람재, 무심사, 박진고개, 영아지고개가 이어지는데 반해 보급할 곳은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람재는 도동터널로, 무심사는 공식우회코스가 있고 박진고개와 영아지고개도 비공식 우회로가 있어 원한다면 모두 우회 가능합니다.

이미 새재자전거길에서 소조령과 이화령을 무정차 무끌바로 잘 넘어온터라 이번에는 영남 4대 업힐은 모두 우회하며 힐링 행복 라이딩 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짰습니다. 업힐 오를 일이 없으니까 체인링은 원래 쓰던 44T 짜리를 50T로 키우고, 리어 휠셋은 21스포크 경량 휠셋에서 28스포크 2크로스로 무겁지만 튼튼하게 새로 짠 휠셋으로 바꿨습니다. 그간 날씨가 많이 따뜻해져서 아우터는 윈드브레이커와 긴팔 셔츠만 챙겼고 더울 경우에 대비한 반팔 티셔츠와 암슬리브를 추가로 챙겼습니다.

출발

서울은 전날 밤 늦게까지 비가 온 후 화창하게 갠 날씨였습니다. 공기는 시원하고 바람은 산들거려서 자전거 타기 좋은 날이었습니다.

청파로를 따라 서울역까지 라이딩 후 동대구행 KTX를 탔습니다. 지난번에 동대구역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는 객차 사이 짐칸이 꽉 차서 브롬톤은 객실에 둬야 했었습니다. 이번에는 짐칸에 여유가 있어 무사히 싣고 왔습니다.

동대구역 (8:35)

오늘은 라이딩 시간에 여유가 있습니다. 계획상 83km 정도만 타면 되니 평소 속도에 맞춰보면 휴식과 식사를 포함해도 6시간이 채 안 걸릴 예정입니다. 역풍도 아니고 업힐도 없으니 더 빠를 수도 있겠습니다. 동대구역에 8시 좀 넘어 도착했는데 남지버스터미널에서 서울 가는 차는 14:50 아니면 18:50 출발입니다. 14:50 차를 타기는 여유가 없어 18:50 차를 탄다고 보면 시간이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대구역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날립니다. 일기예보상 아침 일찍 비가 그치는 걸로 되어 있었는데 좀 더 오는 모양입니다. 우산을 써야 할 정도로 많은 비는 아니라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도 볼 겸 동대구역 근처에 아침을 먹으러 왔습니다. 잠시 밖에 브롬톤을 세워뒀더니 그새 가죽안장 위에 물방울이 제법 맺히길래 서둘러 브롬톤도 실내로 갖고 들어왔습니다.

아침은 동대구역 근처 써브웨이에서 로스트치킨 샌드위치를 골랐습니다. 아침 일찍이라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기도 하고 제가 워낙 좋아하는 메뉴라서요. 세트 메뉴를 주문하고 받은 쿠키는 오늘 라이딩 중 비상식량으로 쓰려고 챙겨뒀습니다. 써브웨이 쿠키는 하나에 200kcal가 넘어서 라이딩 중 열량 공급용으로 쓰기에도 나쁘지 않습니다.

설화명곡역 (10:00)

동대구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지난번 라이딩을 마쳤던 설화명곡역으로 다시 왔습니다. 평일 출근시간대라 사람이 제법 많았습니다. 맨 끝칸에서 계속 서서 왔는데 크게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도착하니 비가 좀 더 잦아들긴 해서 바로 출발했습니다.

설화명곡역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아래를 지나 비슬로495길을 따라가면 지난번 라이딩 때 건넜던 화원교가 나옵니다. 지난번에는 사진상 저 건너에서 와서 오른쪽으로 갔었습니다. 오늘은 사진상 오른쪽에서 와서 다리를 건너지 않은채 옥포생태공원 방향인 왼쪽으로 갑니다.

바로 익숙한 자전거도로로 들어옵니다. 가는 내내 길가에 꽃이 무척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푸릇푸릇해진 나무들도 싱그럽습니다. 날씨가 궂은 대신 자전거 타기 시원한데다 지금까지 국토종주 했던 날들 중 거의 유일하게 미세먼지가 없었던 날이었습니다.

달성보 (11:00)

평탄한 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저 멀리 달성보가 보입니다. 달성보 앞에는 길안내 표지판도 세워져 있습니다. 우회전해서 달성보를 건너면 청룡산 MTB도로인데 아주 힘든 길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표지판대로 직진하면 편한 길입니다.

달성보 인증센터에서는 좀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인증센터에 들를 때마다 수첩에 도장도 찍고 사이버 인증도 병행해왔습니다. 인증센터에 도장이 없거나, 잉크가 말라 도장이 안찍히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인데요, 달성보의 도장 상태는 훌륭했지만 사이버 인증이 되질 않았습니다. 다시 보니 지난번 낙단보, 구미보에서도 분명 사이버 인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앱을 보니 인증이 빠져 있었습니다. 메시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었던 모양입니다. 역시 국토종주 중에는 도장과 사이버인증을 병행하는 편이 안전하겠습니다.

달성보에서 강을 건너지 않고 합천창녕보 방향으로 계속 직진합니다. 5월이라 여기저기 꽃이 정말 많습니다. 지난번 새재자전거길 지날 때는 벚꽃을 실컷 봤었는데 오늘은 종류를 안 가리고 정말 많은 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길은 대체로 평탄합니다. 중간에 짧고 급한 오르막이 드문드문 나오는 정도입니다. 체인링을 큰 것으로 바꿨더니 오르막 오르기는 조금 더 힘들어졌는데 잠깐이니 탄력 받아 오르면 됩니다.

현풍읍 (11:30)

달성보 지나 5 km 정도만 가면 현풍읍입니다. 강변을 따라 달리다 잠깐 5번 국도를 따라 가게 되는데 그때 현풍읍 초입을 지나갑니다. 현풍읍은 자전거길에서 가깝고 읍내가 커서 보급 여건이 매우 좋은 곳입니다.

마침 점심 먹을 때이기도 해서 나름 지역에 여러 체인점이 있는 닭칼국수집 본점에 가봤습니다. 들깨 들어간 국물이 특징 있는 집이었습니다. 곱배기 주문했더니 양이 아주 많아서 배불리 잘 먹고 나왔습니다. 칼국수집은 김치가 너무 매운 경우도 많은데 이집은 매운맛과 순한맛 김치가 따로 비치된 점이 맵찔이로서 좋았습니다.

다람재 (우회, 12:30)

현풍읍에서 다시 자전거길로 접어들어 달리다 보면 드디어 영남 4대 업힐의 첫 주자인 다람재가 나옵니다.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산허리를 타고 가로등과 전신주가 지나가는 게 딱 저기다 싶었습니다. 바닥 표지만 보고 진행하면 자전거길은 자연스럽게 다람재로 이어집니다.

저는 원래 계획했던 대로 도동서원터널을 통과하는 방법으로 다람재는 우회했습니다. 도동서원터널은 차도와 완전히 분리된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가 널찍하게 잘 깔려 있어 자전거로 지나가기 편리합니다.

터널에서 나오면 바로 도동서원입니다. 주변 경치가 제법 호젓합니다. 견학 온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근처에 카페가 몇 군데 있으니 쉬어가기도 좋은 곳입니다.

도동서원을 지나면 익숙한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구지면 구간을 지나게 되는데요, 이 구간은 길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시멘트와 데크로 포장된 도로상태 자체는 괜찮지만 짧고 급한 경사가 많은데 우거진 수풀과 급구배 때문에 전방시야 확보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자전거 타는 재미만은 좋았던 곳이었습니다.

무심사 (우회, 13:10)

현풍 근처부터 무심사 안내 간판이 조금씩 보였는데 드디어 바로 근처까지 왔습니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저 멀리 석탑과 전각도 언뜻 볼 수 있었습니다. 초입의 표지판에는 시간이 가장 좋은 상담사라는 말이 있었는데 공감이 갑니다. 성격이 워낙 예민해놔서 작은 일에도 아등바등하며 살았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 없었던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표지판을 보니 드디어 길고 길었던 달성군 구간이 끝나고 경남 창녕군이라고 합니다. 뭐 그건 그거고, 영남 4대 업힐 2번째인 무심사도 우회합니다. 시간에 여유가 있어 무심사 업힐은 오를까도 싶었는데 당일 아침까지 비가 꽤 많이 왔었어서 안 오르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심사 업힐 중에는 비포장 구간이 꽤 있어서 완전히 진흙탕이 됐을 것 같아서요.

무심사 진입로를 앞에 두고 돌아서면 바로 옆으로 우회도로 안내가 있으니 따라가면 됩니다. 우회로를 곧이 곧대로 따라가면 농로를 따라 약간 우회하는 길로 갑니다. 저는 이방면에도 들를 겸 공도인 이방로를 따라 갔습니다.

이방면에는 마침 장날(4일, 9일)이라 장도 섰고, 근처에는 여러 식당과 마트, 편의점이 있었습니다. 원래 코스 짜면서는 이 동네에서 유명한 수구레국밥을 먹고 갈 계획이었는데 아직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지나쳤습니다. 제가 아주 선호하는 음식은 아니기는 한데 먹어볼 수 있는 곳이 드문 편이니 기회가 되면 한 번 드셔보셔도 좋겠습니다.

이후 장천우회로를 따라갑니다. 근처는 양파밭인 모양입니다. 달리는 내내 달큰한 향이 코를 간지럽혔습니다.

합천창녕보 (13:30)

우회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합천창녕보에서 다시 자전거도로와 합류합니다. 여기서도 사이버인증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도장 상태는 좋아서 인증수첩에 잘 찍어뒀습니다.

합천창녕보를 건너면 잠시 합천을 지납니다. 미세먼지 없이 탁 트인 정경이 보기 좋았습니다. 하늘도 조금씩 개나 싶었는데 아직은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적포교 앞두고 약한 오르막이 하나 있습니다. 오르막은 힘들지 않았는데 내리막 구간 도로에 세로로 홈이 파여 있는 점이 힘들었습니다. 자전거 타이어가 홈을 만날 때마다 미세하게 미끄러지면서 자전거가 휘청거립니다. 정말 식은땀 흘리면서 조심히 내려왔습니다.

적포삼거리 (14:00)

내리막을 지나면 바로 적포교와 적포삼거리가 나옵니다. 적포삼거리 근처에는 몇몇 식당과 가게, 그리고 말로만 듣던 적포장모텔이 있습니다. 여기를 지나면 남지까지 30 km 동안 보급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저도 편의점에서 잠시 쉬면서 보급도 하고 남은 코스를 어떻게 달릴지 계획도 정리를 해봤습니다.

여기서 적포교를 건너지 않고 자전거길을 따라 계속 진행하는 방향이 공식 국토종주 코스입니다. 영남 4대 업힐 중 나머지 2곳인 박진고개와 영아지고개를 넘어 남지로 갑니다. 대신 적포교를 건너 유어삼거리, 동정삼거리, 강리삼거리를 지나 남지장마로를 따라 가는 비공식 우회코스로 가면 박진고개와 영아지고개를 둘 다 우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라이딩 거리도 10km 이상 줄일 수 있습니다.

원래는 우회코스로 갈 생각이었는데 여기서 계획을 바꿨습니다. 우회코스로 가면 남지버스터미널까지 20여 km만 가면 되는데 아직 서울행 버스 시간은 5시간 가까이 남았거든요. 게다가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다람재와 무심사 우회는 공식 코스로 취급되는 것 같지만 박진고개와 영아지고개 우회는 비공식이니만큼 박진고개와 영아지고개는 넘어보기로 했습니다.

적포삼거리를 지나면 다시 평이한 자전거길이 이어집니다. 박진고개의 유명세를 익히 들어왔던 터라 폭풍전야 같아서 긴장이 됐습니다.

의령군에 진입합니다. 박진고개 소재지가 바로 의령군 낙서면입니다. 어렸을 때 의령에는 한우나 의령소바 사먹으러 왔던 기억이 납니다. 의령에 왔으면 읍내 가서 소바나 먹고 가면 참 좋을텐데, 굳이 자전거로 고생해서 고갯길 넘으러 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은 남강에 자전거종주코스가 없지만 나중에라도 혹시 생긴다면 의령에서 소바, 진주에서 냉면 먹고 산청, 함양까지도 가볼 수 있겠습니다.

박진고개 (14:50)

잘 가다 저 앞에 수상한 구간이 나타납니다. 강변을 따라 쭉 이어지던 도로와 전봇대가 저 멀리서부터 갑자기 사라집니다. 아니나 다를까, 도로가 산쪽으로 급격히 굽어지더니 말로만 듣던 박진고개가 시작됩니다.

박진고개는 영남 4대 업힐 중 3번째로, 길이 1.4km, 평균경사도 10% 짜리 업힐입니다. 그 중 초반 400m의 경사도가 그나마 한 자리라 평균을 많이 낮춰줍니다. 나머지 1km는 10% 이상 경사도가 꾸준히 유지되어 악명 높은 구간입니다. 이화령은 경사가 아주 급하진 않아도 5km에 달하는 거리를 꾸준히 오르는 게 힘들다면 박진고개는 길이는 남산보다도 짧은 대신 소조령이나 이화령 두 배 수준의 경사도가 난이도를 높입니다.

올라보니 확실히 지금까지 국토종주 중 올라본 업힐 중 제일 힘든 곳이었습니다. 국토종주 하면서 이렇게 필사적으로 ‘와리가리’를 시전한 건 처음이었는데 가끔 차량 통행도 있는 길이라 그마저도 마음 편히 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업힐 안 갈 줄 알고 체인링을 한 사이즈 더 키워서 달고 온터라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저는 국토종주를 끊어서 하는데다 앞서 다람재와 무심사 업힐을 우회해서 체력이 많이 남은 상태로 왔는데도 그렇게나 힘들었는데 인천에서부터 쭉 타고 오신 분들에게는 정말 큰 벽처럼 느껴졌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어떻게든 간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오른 끝에 무정차 무끌바로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는 참 좋았습니다. 카메라가 습기를 먹었는지 이날 사진은 다 이 모양인 게 아쉽습니다. 힘들어서 벤치에 널부러져 있는데 주변에 계시던 분들로부터 ‘브롬톤으로 여길 올라왔느냐’, ‘사무실 복장에 구두 신고 이런델 오느냐’, ‘대단하다’ 같은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맛에 힘들어도 브롬톤으로 업힐 타는 것 같습니다.

정상 근처 벽면은 이런저런 낙서로 가득합니다. 이 동네 이름이 낙서면인데 그걸 활용한 조형물이 재미있네요. 낙서 내용도 재밌는 것들이 드문드문 있어서 쉬면서 구경 잘 했습니다.

국토종주에 포함되는 도장은 아닌데 박진고개 정상에도 인증부스와 도장이 하나 있습니다. 이왕 올라왔으니 기념으로 찍어갔습니다.

영아지고개 (15:35)

시원한 다운힐을 지나 박진교를 건너면 다시 창녕군으로 돌아옵니다. 평화로운 자전거길은 딱 8km 달릴 수 있습니다. 영남 4대 업힐의 마지막 주자인 영아지고개는 생각보다 가깝기 때문입니다.

영아지고개만 우회하려고 하면 선택지가 많습니다. 영아지고개 진입 전에 멀게는 고곡리 쪽을 지나는 1021번 지방도, 가깝게는 신전터널과 용산터널을 지나면 됩니다. 바위 절벽을 따라 난 남지개비리길을 따라갈 수도 있구요. 그나마 업힐이 좀 있지만 1021번 지방도가 갈만한 길입니다. 터널길은 자동차전용이나 마찬가지고, 남지개비리길은 좁은 비포장 오솔길이라 안전을 생각하면 자전거로는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차피 영아지고개를 넘기로 했으니 자전거길 안내를 따라갑니다. 개비리길과의 갈림길 너머 작은 마을을 지나면 바로 앞에 벽이 하나 나타납니다. 분명 벽인 것 같은데 도로처럼 표기를 해놓은 여기가 바로 영아지고개 입구입니다.

영아지고개는 길이 1.7km, 평균경사도 8% 짜리 업힐입니다. 10%대 경사도가 꾸준히 유지되는 박진고개와는 달리 영아지고개는 위 사진에 보이는 진입부가 고비입니다. 순간경사도가 20~30%까지 올라갑니다. 다행히 급경사 구간은 몇십 미터 안되고 이후로는 경사도가 10% 넘어가는 구간이 별로 없습니다. 도중 영아지쉼터라고 이름 붙여진 정자가 나오는데 실제 정상은 좀 더 가야 하니 무정차 라이딩이 목표라면 그냥 지나치시면 됩니다.

초반부 급경사는 탄력주행과 댄싱으로 극복했고 이후 구간은 약간의 와리가리 끝에 무난하게 넘을 수 있었습니다. 경사도만 보면 더 쉽게 넘을 수도 있었을텐데 박진고개에서 다리를 털어버린 덕에 예상보다 힘들게 넘었습니다. 정상 거의 다 와서 1단 기어로 변속이 안 되어 2단으로 올랐고, 정상에서 변속케이블 조정하다 체인이 빠지는 바람에 고생을 좀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남지읍 (16:30)

영아지고개에서 내려오는데 드디어 날이 갰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든 구간을 달릴 때 구름이 해를 가려준 덕에 덜 힘들게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먼지 없이 아주 깔끔하고 맑은 날씨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최종목적지가 남지버스터미널이라 영아지고개 내려와서 박진로를 타면 평탄한 지방도를 따라 터미널까지 지름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국토종주 중이니 얌전히 자전거길 안내를 따라가 봤는데 남지 읍내 진입 앞두고 과속방지턱 같은 작은 언덕이 하나 있었습니다. 짧지만 생각보다 가팔랐는데 1단 기어로 변속이 안 되던 상태였지만 어차피 목적지까지 거의 다 온 터라 그냥 댄싱으로 올랐습니다.

과속방지턱을 지나면 잘 꾸며진 남지수변공원으로 진입합니다. 남지수변공원은 유채꽃이 한창에다 곳곳에 나팔꽃도 피었고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멋진 곳이었습니다. 시간에 여유가 있어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달리며 꽃구경을 실컷 했습니다.

한강시민공원만큼이나 잘 닦인 자전거도로를 따라가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남지 읍내 동쪽 끝에 위치한 남지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까지 주행거리가 딱 100km 나왔습니다. 이번 국토종주 중 4번째 100km 주행입니다. 각종 우회코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거리가 30km 가까이 줄었을텐데 그래도 박진고개와 영아지고개를 넘은 보람이 있어 즐거운 라이딩이었습니다.

그러고도 아직 서울가는 버스 시간이 2시간이 넘게 남아 남지에서 좀 쉬다 가기로 했습니다. 남지는 인구가 1만명이 넘어가는 큰 동네입니다. 그만큼 어지간한 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습니다. 아까 의령 지나며 생각났던 의령식 소바를 남지에서라도 먹어볼 생각이었는데 어째 소바집들 문이 다 닫혀있었습니다. 대신 밀면을 이른 저녁으로 챙겨먹고, 골목길을 구석구석 돌며 동네 구경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복귀

남지에서 서울가는 버스는 부산사상터미널에서 출발해서 서울남부터미널로 가는 시외버스가 중간경유하는 형태입니다. 언제나처럼 시외버스 짐칸에 브롬톤을 폴딩해서 싣고 싯포스트를 뽑아 천장에 고정했습니다. 근데 싯클램프가 약해졌는지 싯포스트 고정이 제대로 안 되어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짐칸 안에서 브롬톤이 넘어져 있었습니다. 다행히 크게 상처나거나 망가진 곳은 없었습니다.

시외버스다보니 서울경부나 동서울터미널 대신 서울남부터미널에 내려줍니다. 터미널에서 반포대로를 따라 쭉 직진하면 잠수교입니다. 대학생 시절에 다혼 제트스트림 P8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달려본 적 있었는데 국립도서관 근처 업힐에서 한여름 땡볕 아래 끌바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100km 이상 자전거를 탄 날에도 같은 언덕을 별 무리 없이 타고 넘어왔으니 확실히 체력이 좋아지긴 한 것 같습니다.

이후 한강 반포지구의 인파를 피해서 집까지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정산

  • 거리: 100.0 km (누적 752.6 km)
  • 비용: 108,850원 (누적 412,000원)
    • 교통비: KTX 서울→동대구 39,100원, 대구1호선 동대구역→설화명곡역 1,250원, 시외버스 남지→서울남부 31,800원
    • 식비: 써브웨이동대구점 11,300원, 현풍닭칼국수본점 9,000원, 남지가야밀면 8,000원, 편의점 음료수 8,400원

오늘의 교훈

잘한 점

  • 박진고개와 영아지고개 무정차 무끌바 완주. 다람재와 무심사 업힐을 우회한 상태에서 박진고개와 영아지고개마저 우회했으면 오늘 라이딩은 너무 싱겁고 지루할 뻔 했습니다. 업힐은 물론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완주에 성공한 뿌듯한 기분을 안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못한 점

  • 처음 국토종주 할 때에 비해 기온이 많이 올라왔다 보니 땀이 많이 나서 공공시설이나 대중교통 이용할 때 민폐가 될까 신경이 쓰입니다. 부산에서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도착 후 샤워하고 옷도 갈아입은 다음 복귀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타

  • 이제 부산까지는 딱 하루만 더 가면 됩니다. 큰 업힐도 없고 거리도 100km 이하라 역풍만 피하면 정말로 행복 힐링 라이딩이 될 것 같습니다. 근데 이 계절에는 오후면 바다에서 남풍이 불어오기 일쑤라 역풍 피하기는 영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 텐셔너 방식의 브롬톤 외장 7단을 잘 유지하는 게 영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방식은 텐션 풀리 쪽의 부싱이 깨끗하게 유지되어야 하는데 평소 자출 정도면 몰라도 물웅덩이나 흙구덩이가 산재한 국토종주 환경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드레일러 방식으로 바꾸거나 아예 롤로프 14단으로 갈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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