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hone SE에서 iPhone 15 Pro 변경기

구입 전

내 첫 아이폰은 2015년에 발매된 iPhone 6s였다. 처음 나왔을 때는 나름 고성능 기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딱 그때 즈음 내가 스마트폰 게임을 완전히 끊으면서 굳이 신제품에 대한 욕심이 없어져 꽤 오랜 기간 마르고 닳도록 사용했었다. 사용기간이 길어지면 배터리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자가교체가 쉬운 모델이라 가능했었던 것 같다. (첫 번째 교체기, 두 번째 교체기)

그러다 2020년에 하드웨어 버튼이 주저앉는 문제가 생기면서 iPhone SE 2세대를 구입했다. 당시에는 도입된지 몇 년 되지 않았던 Face ID가 마스크를 쓴 상태나 가로 모드에서 잠금 해제가 안 된다는 문제가 있어 일부러 Touch ID가 적용된 기기를 골랐었다. 이 아이폰도 만 3년 넘게 열심히 굴렀고 그 동안 카메라, 배터리, 라이트닝 규격 말고는 큰 불만은 없었다.

구입

새로 나온 iPhone 15를 구입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USB-C 포트 채용 때문이다. 요즘 나오는 전자기기들은 왠만하면 USB-C 포트를 쓰니까 적어도 케이블은 호환이 된다. 단, 아이폰만 빼고. 라이트닝 케이블이나 젠더를 따로 챙기는 일이 귀찮아도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신형 아이폰에 USB-C 포트가 채용된다는 루머가 돌 때부터 이번에는 무조건 갈아타겠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질렀다.

모델은 애플의 급나누기 때문에 Pro 라인업을 골랐다. 다른 차별점도 여럿 있지만 특히 2023년 시점에 일반 모델에다 USB 2.0을 넣어주는 건 좀 너무하다 싶었다. Pro와 Pro Max 중에서는 Pro를 골랐다. Pro Max의 광활한 화면은 좋았지만, 그리고 전작에 비해 가벼워졌다지만 무게가 손목에 부담스러웠다.

지금까지 구입했던 모든 아이폰은 미국 모델이었다. 처음에는 카메라 무음 때문이었고, 한국에서는 별 차이 없었지만 미국 출장 중에는 한국 모델보다 미국 모델의 수신 감도가 더 좋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미국에서 직구했다. iPhone 15 발표되던 시기에 마침 미국 출장 중이었는데 실제 배송 일정은 귀국 후라 현지에서 바로 구입해오지 못 한 점이 아쉬웠다.

사겠다는 생각을 하고서도 만만찮은 가격 때문에 꼭 사야 할지 좀 더 고민을 하느라 주문이 늦었고 그만큼 배송도 늦어졌다. 9월 29일에 주문했고, 당시에는 11월 초에나 배송될 것으로 안내가 됐었다. 하지만 의외로 주문이 많지 않았는지 10월 13일에 카드 결제가 됐고, 10월 18일에 배대지에 도착, 10월 24일에 한국에서 받아볼 수 있었다.

대체로 미국 직구는 한국 정발에 비해 가격 메리트가 별로 없다. 내가 미국 직구에 쓴 돈은 구입가 150만원, 부가세 15만원, 배송대행료 1만원으로 대략 166만원 정도다. 같은 모델의 한국 정발가는 170만원이고, 벌써 한정 수량이지만 10% 할인 행사도 있었던 걸 감안하면 비싸지 않게 산 정도에 그친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본다.

구입 후

아이폰의 마이그레이션은 정말 편리했다. 전에는 ‘영혼 백업’이라는, 아이튠즈 백업을 사용해야 했었다. 지금은 두 아이폰을 가까이 두면 알아서 마이그레이션 과정이 실행되고 터치 몇 번이면 마무리가 된다. 일부 기기 변경을 인지하고 재인증을 요구하는 금융앱 몇 개를 제외하고는 별로 손 댈 것도 없었다.

액세서리는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했다. 특히 나는 Peak Design의 모바일 생태계 제품을 여럿 쓰고 있어 케이스도 같은 회사 제품을 써야 했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애플이 액션 버튼 사양을 미리 제대로 공개하지 않으면서 원래는 액션 버튼 위를 버튼으로 마감해야 하는데 구멍을 뚫어 마감했다는 것. 사실 그냥 팔려면 팔 수도 있었을텐데 Peak Design에서는 전량 폐기하고 재제작하기로 결정하면서 11월에나 배송 예정이라고 한다. 우선 예약주문은 했고 배송은 아직 기다리는 중이다.

그래도 다른 제조사들의 제품들이 여럿 나와있어 급한대로 장착은 해뒀다. 케이스는 제로스킨 제품이다. 처음 써봤는데 얇고 투명하고 카메라 부분 보호에도 나름 신경을 썼다. 보호유리는 신지모루 제품을 샀다. 부착하는 과정에서 기포가 좀 생겼는데 하루 지나니 말끔하게 없어졌다. 주변부 검은 테두리가 화면을 미묘하게 가리는 점은 어쩔 수 없었다.

사용 후

며칠 사용을 해보니 역시 제일 큰 장점은 USB-C 포트다. 이제 라이트닝과는 안녕이다. USB-C 케이블만 갖고 다니면 랩탑도 충전하고, 보조배터리도 충전하고, 이제는 스마트폰까지 해결 가능한 점이 좋아졌다. 충전 뿐만 아니라 데이터 대역폭도 커졌고 USB-C 기반 액세서리, 예를 들면 HDMI 어댑터나 USB-C 꼬다리 DAC같은 것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iPhone SE를 쓰다 넘어와서 체감되는 부분은 크게 네 가지다.

먼저 120Hz ProMotion의 아주 부드러운 화면 전환이 보기 좋았다. 이미 ProMotion 지원하는 iPad Pro를 쓰고 있었기에 예상은 했던 부분이었다. 특히 역체감이 아주 컸다. iPhone SE의 화면을 다시 보니 마치 영하 15도에서 굼뜨게 움직이는 액정을 보는 것 같았다.

화면은 장단점이 있다. 화면이 커진만큼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는 건 분명 장점이다. 대신 베젤 크기가 줄어들고 기기 전면 위아래 끝까지 액정이 자리잡으면서 아이폰 파지 방법을 바꿔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화면 가장자리를 자꾸 손이 건드려서 원치 않는 조작이 되곤 했다.

카메라는 확실히 좋긴 좋다. 광학줌 뿐만 아니라 저조도에서의 품질도 많이 좋아졌다. 다만 카메라가 3개나 장착되면서 아이폰을 잡을 때 렌즈를 피해서 잡으려니 번거롭다. 카메라섬을 인덕션이라고도 부르던데, 볼 때마다 참 못 생겼다 싶은 건 어쩔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오래 가는 배터리가 마음에 들었다. 원래 대중교통 출근길에 유튜브 좀 보는 것만으로도 배터리가 절반 넘게 닳곤 했다. 새 iPhone 15는 같은 조건에서 10%도 채 닳지 않았다. 이건 원래 쓰던 iPhone SE의 배터리 효율이 81%까지 떨어진 상태라 더욱 그럴 수도 있겠다.

다만 배터리 사이클을 보여주는 신기능이 생겼는데 배터리를 사제품으로 교체하면 이 기능이 비활성화된다는 얘기가 있다. 향후 애플 정책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좀 찝찝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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