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기 (7) 가전 구입


2023 내집 마련기


결혼 후 지금까지 오피스텔이나 주상복합에만 쭉 살았다. 붙박이장과 기본적인 생활가전이 풀옵션으로 갖춰져 있어 흔히 얘기하는 혼수가전 대부분이 필요 없어 좋았다. 하지만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드디어 가전제품을 여럿 마련해야 할 때가 왔다.

구입해야 할 가전은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건조기, 인덕션, 로봇청소기 정도다. 서큘레이터, 에어드레서, 전자렌지, 무선청소기, 와인셀러 같은 자잘한 생활가전은 이미 갖고 있어 새로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로봇청소기는 원래 갖고 있던 제품이 10년 다 되어 가는 구형이라 요즘 제품들과는 기능 차이가 너무 커서 순전히 내 욕심으로 바꾸기로 했다.

우리집 가전 구입 리스트의 특이점은 TV와 식기세척기가 없다는 점이다. TV는 벌써 몇 년 동안 없이도 잘 살았기에 굳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TV가 있으면 하루 종일 TV만 볼 것 같다는 경각심도 있었다. 식기세척기는 사실 사고 싶었는데 아내의 반대 때문에 빠졌다. 본인의 몇 안 되는 취미생활을 빼앗지 말라는데 달리 도리가 없다.

필요한 가전의 가짓수부터가 다른 집에 비해 적은 편이다보니 일반적인 혼수가전 구입 코스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신규 입주장도 아니고, 신혼부부도 아니다 보니 애초에 받기 힘든 혜택이었다. 실제로 백화점에서 견적도 뽑아봤지만 인터넷 가격에 비하면 너무 비쌌다.

대신 오늘의집에 입점된 삼성전자 인증점들을 통해 가전제품을 마련했다. 배달 일정을 지정할 수 있었는데 도배 끝난 뒤 입주청소 바로 전날에 가능한 모든 제품이 다 들어올 수 있도록 일정을 맞췄다.

에어컨은 인공 바람에 예민한 아내를 위해 무풍 기능이 있는 삼성 제품으로 골랐다. 덕분에 다른 가전도 삼성 제품으로 통일됐다. 같은 회사 제품으로 몰아서 사면 IoT 연동이 편해서다. 34평 집에 에어컨이 스탠드 하나, 안방 벽걸이 하나 밖에 없다 보니 스탠드 제품 용량을 19평형용으로 키웠다. 여기에 공기청정기를 따로 두기 싫어 제대로 된 공기청정 필터와 센서가 들어 있으면서 에너지효율 높은 제품을 고르다 보니 가격대가 좀 올라갔다.

지금까지는 주로 LG 시스템에어컨을 써왔는데 삼성 스탠드 에어컨을 써보니 대체로 괜찮은 것 같다. 전에는 좁은 집에서 침대 둘 공간이 마땅 찮아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에어컨 바람을 직격으로 얻어맞으며 살았었다. 무풍 기능은 바람을 거의 직접 맞질 않으니 딱 쾌적한 온도를 맞출 수 있어 좋았다. 곰팡이 걱정이 있긴 한데 이건 관리를 잘 하는 수 밖에 없겠다. 스탠드 에어컨 디자인이 예뻐서 거실에 두는 것에 별 불만은 없는데 그래도 시스템 에어컨처럼 바닥 면적을 차지하지 않는 편이 더 좋긴 할 것 같다. 다음 집이나 미래에 집을 전체수리하게 되면 그때 생각해봐야겠다.

냉장고는 거거익선이라고 800L 이상 되는 큰 걸 사고 싶었는데 냉장고장을 실측해보니 깊이가 얕아 어쩔 수 없이 600L대의 키친핏 제품으로 골랐다. 좀 작지 않을까 싶었는데 사용해보니 아직은 공간이 많이 남는다. 작은 오피스텔 빌트인 냉장고 사용에 생활 습관이 맞춰져 있는데다 성격상 식재료를 대량으로 쟁여두지도 않다보니 그런 것 같다.

세탁기는 어차피 살 거였지만 건조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아내는 건조기에 큰 관심이 없었고 나는 건조기를 사고는 싶었지만 정작 내 옷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메리노울 의류는 내구성과 수축 때문에 건조기를 못 돌린다. 그러면 수건과 이불 건조만 보고 사야 하는데 그래서야 돈값을 할지가 의문이었다.

설치도 문제다. 직렬 설치가 제일 좋은데 다용도실 구조상 그러면 보일러를 완전히 가린다. 보일러에 문제 있을 때마다 출장비 주고 사람 불러야 하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보일러 같은 위험물 앞을 그것도 전자제품으로 바짝 막아두는 건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병렬 설치하자니 바닥 공간이 너무 아까웠다.

결국 머리를 쥐어짠 끝에 다용도실 대신 보조주방에 공간을 확보해서 세탁기와 건조기를 직렬 설치했다. 보조주방에는 전원 콘센트와 수도가 없어서 인테리어 공사 때 미리 위치를 잡아서 전원선을 새로 땄고, 다용도실에서 세탁기용 급수 배관을 끌어오고 하수 배관을 끌고 가서 연결하기로 했다. 보조주방과 다용도실 사이에 문이 없어서 연결이 어렵지는 않았다.

이불 빨래가 주목적이니 용량은 제일 큰 걸로, 일체형 제품을 살까 하다가 혹시 병렬로 쓸 일이 생길지도 몰라서 세탁기에서 건조기를 조작할 수 있는 올인원컨트롤 지원 제품으로 골랐다. 나중에 써보니 굳이 올인원컨트롤 기능이 없어도 됐을 것 같다. 나도 아내도 둘 다 키가 170cm를 훌쩍 넘다 보니 상단의 건조기 패널을 직접 조작하는 데 별다른 불편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건조기는 이번에 구입한 가전 중 만족도 2위를 차지했다. 코인세탁소 갈 필요 없이 집 안에서 세탁한 이불을 바로 열풍건조하니 이루 말할 것 없이 편했다. 수건은 원래 다 종잇장 마냥 납작한 줄 알고 살았는데 건조기를 거치면 뽀송뽀송한 부피감이 살아나서 만질 때마다 기분이 좋다. 건조기가 없던 시절 아내는 빨래할 때마다 내 양모옷에서 나온 먼지가 세탁조를 통해 여기저기 묻어나온다며 투덜거리곤 했었다. 건조기에 돌리면 먼지를 싹 털어주는 점도 마음에 든다.

인덕션도 굳이 안 사도 됐지만 내 욕심으로 구입하기로 한 가전이다. 집을 매수했을 때 주방에는 쓸만한 가스 쿡탑이 설치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냥 인덕션으로 바꾸기로 했다. 음식할 때 가스냄새 맡기 싫고, 작은 냄비를 쓰면 손잡이가 달궈지는 것도 싫고, 불 앞이 더운 것도 싫고, 가습기 돌리면 불꽃이 빨개지며 불완전연소 되는 것도 싫고, 선풍기나 서큘레이터 돌리면 불꽃이 날리는 것도 싫고, 가스 밸브 잠그기도 귀찮고, 가스쿡탑은 청소도 번거로운 까닭이다.

해외제품이 출력은 더 높지만 전기공사를 새로 해야 하고, 가격이 더 비싸고, A/S도 아무래도 국내 업체들에 비해서는 못 미치고, 나는 그렇게 출력에 목숨 걸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다 보니 역시 삼성 제품으로 골랐다.

가스 쿡탑에서 인덕션으로의 변경을 위해 몇 가지를 미리 확인했다. 주방 상판의 가스 쿡탑용 타공 치수는 인덕션 타공 치수랑 똑같아서 더 손 댈 필요 없었다. 대신 주방으로 들어오는 가스배관을 철거하고, 가스배관 때문에 타공된 벽과 상판의 구멍은 실리콘으로 메꾸기로 했다.

인덕션은 이번에 구입한 가전 중 만족도 3위다. 원래 쓰던 2kW에 1구 짜리 인덕션도 만족스러웠는데 하물며 3.3kW 짜리일까. 가스쿡탑 철거하고 인덕션으로 바꾼 보람을 톡톡히 느끼며 잘 쓰고 있다.

원래 쓰던 로봇청소기는 LG전자의 로보킹 구형이다. 실내 지도 맵핑도 안 되고, 물걸레 청소도 안 되는 거나 다름 없고, 매번 브러시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먼지통을 비워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배터리와 각종 소모품을 교체해가며 정말 오래도록 험하게 굴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놓아질 때가 됐다. 집이 두 배 넘게 커졌으니 바닥 청소를 귀찮아하는 우리 부부 성격상 로봇청소기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만큼 관리 소요도 많아질텐데 원래 쓰던 구형 로봇청소기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원래는 로보락 S8 Pro Ultra 모델을 사고 싶었는데 당시에는 물건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었다. 고민 중에 로보락 S7 MaxV Ultra 모델 리퍼 제품이 저렴하게 나와 있길래 냅다 구입했다. 직배수는 집 구조상 어려웠고 대신 열풍건조키트를 중고나라에서 따로 구입해 장착했다.

그 결과 로봇청소기는 이번에 구입한 가전 중 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매일 물걸레 청소를 예약 걸어 돌리니 바닥에서 머리카락과 먼지 볼 일이 없어졌다. 물통도 알아서 채우고, 물걸레도 알아서 세척하고 말려주고, 먼지통도 알아서 비우고, 유지보수 주기도 앱에서 알아서 알려주니 정말 편했다. 특히 가상벽을 지원해서 더 이상 출근 전마다 욕실 문을 닫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이전 제품 대비 좋았다.

단점은 물걸레 청소 기능 관리에 생각보다 손이 좀 간다. 매주 두세 번 정도는 청수통을 채우고 오수통을 비워줘야 한다. 오수 필터와 물걸레 세척 브러시도 오염되기 쉬워서 한 번씩 구연산으로 세척해줘야 특히 여름에 냄새가 안 났다. 그렇더라도 사실상 매일 관리해줘야 하는 예전 로봇청소기에 비하면 주기와 소요시간이 많이 줄어서 확실히 편해졌다고 느꼈다.

그 외 다른 몇 가지 전자제품을 추가로 구입했다.

먼저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를 샀다. 이전 집에서는 각 층마다 음식물쓰레기 배출구가 있어 편리했다. 이사온 집에서는 1층에 있는 음식물쓰레기 배출함에 내놔야 하는데 매번 내놓기는 귀찮으니 음식물쓰레기가 어느 정도 쌓일 때까지는 집에 둬야 하는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가열건조식 음식물쓰레기처리기를 샀다. 우리집은 음식물쓰레기 양이 적고 나오는 주기도 불규칙해서 미생물식보다는 가열건조식이 맞다고 판단했다. 써보니 효과는 좋았다. 활성탄으로 되어 있는 필터만 잘 갈아주면 악취도 안 나고, 바삭하게 건조된 결과물은 오래 보관해도 냄새 나거나 벌레가 꼬이지 않았다.

주방 후드도 바꿨다. 원래는 청소만 깔끔하게 해서 계속 쓸 생각이었는데 제대로 된 관리 없어 사용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오염이 심각해서 입주청소하시는 분들이 혀를 내두르고 가셨을 정도였다. 여기에 후드를 켰을 때 나는 모터 소음도 너무 심해서 결국 교체했다. 기름받이가 따로 있는 모델을 골랐는데 앞으로 청소가 편할 것 같다.

도어락도 바꿨다. 아주 오래된 푸쉬풀 방식이었는데 관절부가 오래 되어 유격이 있었고, 몇 가지 기능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오래 되어 A/S도 안 된다고 해서 집을 산 기념 삼아 도어락도 새 제품으로 교체해줬다. 지문인식 되는 모델을 골랐는데 따로 카드키를 안 들고 다녀도 되니 편리했다.

마지막으로 형광등과 안정기를 교체했다. 거실, 주방, 욕실 조명은 인테리어하면서 새로 했지만 방등은 그대로였다. 등기구는 아직 깔끔하게 쓸만한데 안정기가 고장난 것들이 군데 군데 있어 교체가 필요했다. 집안 색온도를 주백색으로 맞추는 김에 형광등도 기존 주광색에서 주백색 제품으로 한꺼번에 바꿔줬다. 집안 조명 톤이 통일되니 깔끔하고 보기 좋았다.

가전은 이 정도 채웠고, 이제 가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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