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기 (5) 인테리어


2023 내집 마련기


내가 계약한 집은 굳이 따지자면 준신축 아파트다. 단지 상태는 처음 임장 와서 반해버렸을 정도로 좋았다. 반면 집안 상태는 분양 받아 쭉 살았던 매도인의 관리 부실로 연식에 비하면 영 좋지 못했다.

공용욕실은 어찌나 관리를 안 했던지 폐가 수준이라 전면 공사가 필요했다. 다용도실은 창문이 있는데도 환기를 전혀 안 하고 살았는지 결로와 곰팡이가 심각했다. 같은 단지 다른 집에 비해 유독 심한 걸로 보아 관리 문제임이 분명했다. 그 밖에도 마루는 삐걱거리고 벽지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으며 거실 매입등은 녹슬어 있었다.

집을 사는 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고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인테리어 비용이 급상승했기에 전체 리모델링보다는 부분 수리로 가닥을 잡았다. 수리가 가장 시급했던 공용욕실과 다용도실만 공사를 하고 나머지는 청소로 버텨 볼 작정이었다.

먼저 웹서핑을 통해 목표 예산을 뽑았다. 네이버 ‘셀인’ 카페와 오늘의집을 뒤져보며 최저가보다는 내가 지출할 의향이 있는 최대 금액을 산출했다. 수리가 가장 시급했던 공용욕실은 올철거 후 재시공하는데 500만원, 다용도실 단열공사와 탄성코트 작업에 200만원을 각각 예산으로 잡았다.

인테리어 업체 비교 견적은 두 곳에서 진행했다. 구체적인 견적이 나오려면 방문 견적을 진행해야 하는데 아직 매도인이 살고 있던 집이라 협조가 아주 원활하지는 않았고, 계약 후 잔금까지 일정이 두 달 밖에 남지 않아 다양한 업체의 견적을 받아볼 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 곳은 한샘리하우스 계열의 A업체, 다른 한 곳은 오늘의집에 같은 단지 시공 사례가 여러 건 올라와 있던 B업체였다. 각 업체마다 현장견적 1번, 자재 선택과 구체적인 견적을 협의하는 디자인 미팅 1번 씩을 진행했다.

현장견적은 재밌는 경험이었다. 역시 전문가들이신지라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을 짚어주셨다. 나는 원래 공용욕실과 다용도실만 수리하려고 했는데 담당자와 얘기를 하다보니 공사 범위가 자꾸 넓어졌다. 한 번 이사 들어가고 나면 큰 수리를 다시 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불어나는 견적에 당위성을 제공했다.

다용도실 단열공사를 하려면 어차피 목공 작업이 필요해서 목수가 와야 하고, 목수가 온 김에 거실 우물천장과 낡은 등기구를 싹 철거해서 평천장으로 만들고, 천장을 하려면 도배는 어차피 해야 하고, 도배 하는 김에 필름도 치고 삐걱거리는 마루도 교체하는 식이다. 그나마 섀시 상태가 괜찮아 교체가 필요 없어 다행이었다.

디자인 미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구체적인 바닥재, 벽지, 필름, 타일 색상과 재질을 미리 정해두고 갔기에 자재 선택은 실물 샘플만 확인하는 선에서 금방 마무리됐다. 내 요구사항은 철거 중 실측 도면 제공, 밝은 거실, 주백색 조명, 공용 욕실에 욕조 설치, 발코니마다 블라인드 설치 정도 였고 나머지는 업체에 모두 맡기기로 했다. 각 업체 미팅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이렇게 디자인 미팅이 금방, 그것도 한 번에 끝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하셨다.

미팅 후 구체적인 견적을 받았다. A업체는 2800만원, B업체는 2000만원이었다. 34평 발코니 비확장 아파트의 전체 마루, 도배, 필름, 거실 천정과 조명, 욕실 1개 올철거 재시공, 발코니 3곳 단열공사, 그 외 각종 설치, 철거, 절차 등을 턴키로 맡기는 기준이었다. A업체는 계약금 입금 전까지는 견적서를 눈으로만 볼 수 있었고, B업체는 자재명과 공정별 인건비가 포함된 구체적인 견적서를 메일로 보내줬다.

계약은 B업체로 했다. 가격이 비교적 합리적이었고 같은 단지 시공 이력이 많았기 때문이다. 계약서는 인테리어 표준계약서 양식을 사용했고, 대금은 계약금 10%, 중도금 30%, 잔금 60% 기준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도급인 입장에서는 잔금이 무거울수록 좋은데 협의가 잘 된 편이다.

공사는 매도인과 협의한 대로 잔금일 일주일 전부터 시작했다. 실제 공사기간은 13일에 입주청소 1일을 추가해서 총 14일 일정이었다. 공사는 평일에만 진행하니 실제로는 3주 가까이 걸렸다. 업체에서 미리 관리사무소 신고, 주민동의서 준비, 공사안내문 부착까지 알아서 처리해주셨다.

공사 중 틈 날 때마다 현장을 찾았다. 감리 담당자께서 중간중간 사진을 보내주셨고, 내가 방문할 때마다 집 전체 동영상을 촬영해뒀는데 디테일을 챙기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현장에 방문할 때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여러 부분에 대한 협의가 계속됐다. 덕분에 불필요한 가스배관을 깔끔하게 철거 후 마감할 수 있었고, 하마터면 냉장고가 못 들어갈 뻔한 냉장고장을 미리 손 볼 수 있었고, 또 뒤늦게 나온 가구배치에 따라 조명 위치를 조정할 수 있었다. 역시 일에 방해되지 않는 한에서 현장은 자주 가보고 볼 일이었다.

사실 인테리어가 정확히 되려면 미리 가전과 가구까지 배치된 도면이 있어야 한다. 내 경우는 이게 쉽지 않았다. 관리사무소에서 미리 도면을 받더라도 세대마다 치수에 미묘한 차이가 있어 내 취향대로 딱 맞게 떨어지는 치수가 나오려면 결국 실측을 해야 한다. 근데 매도인이 이사 나간 당일 저녁, 다시 말해 철거 전날에서야 정확한 실측 도면을 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구와 가전 검토를 정말 후다닥 진행해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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