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기 (6) 가구배치


2023 내집 마련기


가구배치를 하려면 정확한 도면이 필요한데 이걸 확보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보통 관리사무소 등에 평면도가 있지만 집집마다 실제 치수가 조금씩 다르다 보니 결국은 직접 실측하는 것만 못하다.

그런데 원래 살던 매도인의 짐이 워낙 많았고 콘센트 위치까지 정확하게 다 측정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라 매도인이 이사나가기 전까지는 정확한 실측 도면을 따기가 곤란했다. 결국 매도인이 이사 나간 당일에서야 인테리어 업체에 요청드려 받은 실측 도면이 손에 들어왔다.

문제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가구와 가전 배치를 해봤는데 혹시 콘센트나 스위치를 손대야 하면 전기공사 전까지는 업체와 협의를 마쳐야 한다. 예전 이사 때는 FloorPlanner나 AutoCAD 이용해서 가구와 가전을 전부 모델링해서 배치를 짰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해보려니 내 구형 인텔 맥북에서 3D 캐드 프로그램은 너무나도 느리게 도는데다 몇 년 안 썼다고 손에 익지도 않아 작업이 영 어려웠다. 결국 아이패드에다 실측 도면 띄워두고 쌀집 계산기 두드려가며 수기로 배치를 진행했다.

내가 가구배치 할 때는 평면도 상에서 구성원들의 생활동선을 최단거리로 구성한 다음 남는 공간에 필요한 가구와 가전을 채워나가곤 한다. 집에서 돌아다닐 때 동선상에 뭔가가 걸리적거리는 게 싫고, 물건을 피해서 멀리 돌아가는 것도 싫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같은 방법으로 동선과 가구배치를 짰다.

거실에는 지금까지처럼 TV와 소파를 두지 않았다. 대신 매립배관 때문에 위치를 옮기기 어려운 스탠드 에어컨을 먼저 한쪽 벽에 배치하고, 같은 벽면에 수납장을 쭉 이어 배치했다. 수납장 앞에는 신혼집에서부터 책상과 식탁 겸용으로 써온 정사각 테이블을 뒀다. 대리석 아트월이 시공되어 있던 반대쪽 벽면과 나머지 공간은 텅 비웠다. 반 공간은 발코니 출입문과 공간이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배치했다.

주방도 배치해보고 나니 공간이 많이 남았다. 식탁은 거실로, 냉장고는 뒷발코니로 갔기 때문이다. 대신 팬트리가 따로 없는 구조라 식자재 보관할 낮은 수납장을 조리대 반대쪽 벽에 배치하고, 모서리에는 무선청소기와 로봇청소기를 숨겨 배치했다. 보조주방이 있는 뒷발코니에는 원래 있던 냉장고장에 냉장고를 넣고, 빈 공간에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직렬 배치했다. 세탁기가 빠지니 다용도실 공간이 남아 대신 분리수거장으로 꾸몄다.

안방에는 침대, 옷장, 화장대, 의류관리기를 배치했다. 드레스룸을 따로 만드는 경우도 많은데 우리 부부는 옷 욕심이 없어 안방 옷장 3통만으로도 충분했다. 안방 한쪽 벽에 옷장과 역시 원래 쓰던 의류관리기를 넣으니 딱 맞게 들어갔다. 다만 의류관리기 넣을 자리에 콘센트가 없어 인테리어 업체에 요청해서 해결했다.

방 3개 짜리 아파트인데 막상 배치하고 보니 방 2개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게 생겼다. 필요에 비해 너무 큰 집을 산 게 분명했다. 아마 방 하나는 취미 겸 운동방, 다른 하나는 서재 겸 홈오피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해 잘 들고 전망 좋은 앞발코니에는 티테이블과 화단, 뒷발코니에는 선반을 짜서 팬트리를 꾸밀 아이디어도 있긴 했다. 당장 급한 건 아니니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나온 가구 배치안을 갖고 인테리어 업체와 현장 미팅을 추가로 진행했다. 실제로 실현 가능할지 확인하고 구체적인 위치를 잡는 작업을 했다. 가전과 가구 위치를 감안해서 조명 위치도 조정해줬다.

가구와 가전 배치가 나왔으니 이제 실제 물건을 보고 사서 채워야 한다. 입주일까지는 이제 보름 남짓 밖에 안 남았다. 또 시간에 쫓기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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