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기 (11) 보관이사, 코리빙하우스


2023 내집 마련기


이사 역시 다른 과정처럼 급하게 진행이 됐다. 계약서를 쓴 후 잔금일까지는 불과 두 달 남짓한 시간이 있었다. 다만 바로 입주할 게 아니라 인테리어 일정도 감안을 해야 해서 인테리어 업체 선정과 공사 일정 협의까지 마친 다음에야 이사 업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매도인께서 잔금일 일주일 전부터 인테리어 공사를 허락해주셨지만 그래도 공정상 일주일 만에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는 건 불가능해서 어쩔 수 없이 보관이사를 했다.

이사일이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니 평일에다 손없는날도 아니었음에도 이미 마감된 업체가 많았다. 부랴부랴 일정에 맞출 수 있다는 업체 두 곳에 대해 견적을 받았다. 보관이사는 금액이 무척 비쌌다. 보관료 자체는 얼마 안 되는데 이사를 두 번 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결과적으로 총액 251만원에 계약했다.

여기에 엘리베이터 예약이 필요했다. 이사 나가는 건물은 엘리베이터 이용료로 5만원을 생활지원센터에 납부했다. 이사 들어가는 건물은 엘리베이터 이용도 가능했지만 이사를 빨리 마치기 위해 엘리베이터 대신 사다리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보관이사하는 동안 지낼 곳도 필요했다. 출퇴근이 편하면서 주변에 외식할 거리가 다양하고 자주 가볼 일이 없었던 동네였으면 했다. 여기에 세탁과 요리를 할 수 있고 재택근무하기 좋은 곳이 필요했다. 호텔, 레지던스, 단기임대, 에어비앤비 등을 다양하게 찾아보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코리빙하우스 중 하나인 로컬스티치 크리에이터타운 을지로에 방을 예약했다. 원했던 조건을 대부분 충족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했다.

매번 이사 나가는 날은 거의 밤을 새게 된다. 전날까지 부지런히 온갖 물건들을 정리하고 팔고 갖다버리고 냉장고를 비워내고 귀중품을 챙기느라 바빴다. 특히 이번에는 숙소 생활 중간에 있을 잔금일에 필요한 서류와 도장, 출퇴근에 필요한 물건들도 잘 챙겨야 했다.

이사는 순식간에 진행됐다. 내 입장에서는 정신이 없었지만 포장이사 하시는 분들은 무척 질서정연하게 움직이셨다. 이사팀은 남성 3명, 여성 1명이었고 남성팀원 중 한 분은 몽골인이셨다. 정신 없는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지난 3년 동안 살았던 집안은 말을 하면 목소리가 울릴 정도로 텅 비어 버렸다. 이어 임대인, 부동산과 집 상태를 확인하고 정산까지 무사히 마쳤다.

캐리어 가방을 질질 끌고서 로컬스티치 을지로에 체크인했다. 숙소 생활은 총 11박 12일이었다. 지내보니 저녁마다 힙지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고 18층의 멤버십 라운지는 훌륭한 뷰를 자랑했다. 지하에는 주방과 세탁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사실 매번 외식하느라 주방은 이용하지 않았고, 빨래도 객실에서 손빨래로 해결했기에 세탁실도 이용하지 않았던 건 함정이긴 하다. 여행이나 출장갈 때마다 대궐 같은 호텔에서 지냈던 내게는 객실이 너무 좁았다는 것 정도가 소소한 불만이었다.

숙소 생활이 몸에 익어갈 때쯤 체크아웃할 날이 왔다. 아침 일찍 체크아웃 후 다시 캐리어 가방을 끌고 새 집으로 갔다. 사다리차와 이삿짐이 일찍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쌀 때보다 푸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역시나 2시간 정도 걸려 이사가 끝났다. 물론 내가 원하는만큼 정리가 잘 된 건 아니었고 그냥 빈 공간마다 잔짐을 우겨넣은 것에 더 가까운 결과물이었다. 원래 가구 배치를 짜면서 수납 계획도 준비했었는데 막상 짐을 넣어보니 수납공간이 예상보다 모자랐던 통에 그렇게 됐다.

이후 시간 날 때마다 꾸준히 짐정리를 했다. 아직도 수납장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다 알지 못 해서 물건 찾으려 서랍을 뒤지는 일이 잦다. 어차피 예전 집의 나름대로 괜찮았던 수납도 하루 아침에 됐던 건 아니었다. 결국 시간과 성실이 해결해 줄 부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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