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기 (12) 후기


2023 내집 마련기


드디어 내집 마련과 이사가 모두 마무리됐다. 결심부터 입주까지 다 해도 서너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제일 어려웠던 과정은 역시 결심이었다. 일단 홧김에 결심이 이루어지자 이후 과정은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물론 아무일 없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예민하고 걱정 많은 내 성격 덕분에 수많은 불면의 밤이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이사까지 다 마무리되고 시간이 꽤 지난 시점이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여전히 에어비앤비에 투숙 중인 것처럼 많이 어색했었다. 이제는 한밤 중에 화장실 갈 때 눈 감고도 별로 헤매지 않을 정도로 많이 익숙해졌다. 여전히 임장 온 것 같은 기분이었던 아파트 단지와 동네 역시 이제는 골목길과 샛길을 찾아 잘 돌아다니고 있다.

집과 동네에 제법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내 집’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다. 전에 전셋집에 살 때도 임대인과 갈등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남의 집’이라는 인상 없이 살았던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정확히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사는 집’일 뿐, 집을 산 뒤에도 ‘내 소유의 집’이라는 실감은 안 든다.

이사 전후 생활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통근 경로가 달라졌고, 재활용품 내놓는 일정이 달라졌고, 이불 빨래 주기가 달라졌고, 이전의 단골 초밥집에 자주 못 가는 대신 동네 평냉집에 얼굴도장을 찍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이 모두는 사는 동네가 달라졌고 집의 형태가 달라졌기 때문이지 내집 마련 때문이 아니다. 결국 집을 삼으로써 내 마음이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은 아직 못 찾은 셈이다.

경제적으로도 크게 체감되는 차이는 없다. 이번에 집을 사면서 각종 세금과 수수료, 가전, 가구, 인테리어 공사 등에 큰 돈을 쏟아부으며 그간 쌓아둔 저축을 탈탈 털어먹었다. 하지만 월급 들어오면 일부는 전세금인상분으로, 또 일부는 적립식 투자와 저축에, 나머지는 생활비로 쓰는 현금흐름은 그대로다. 전세금인상분으로 떼두던 돈을 원리금 상환과 재산세로 쓴다는 점만 달라졌을 뿐이다. 매달 원리금의 몇 배나 되는 돈을 중도상환 중이니 언젠가 주담대를 다 갚아 더 이상 원리금 상환을 하지 않게 되면 그때는 비로소 차이를 체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비어있다. 거실은 바깥쪽 절반만 겨우 쓰고 있어 발코니 문을 닫아두면 목소리가 울릴 정도다. 방 3개 중 안방을 제외한 방 2개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 앞으로 어떻게 더 채우겠다는 계획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이상 그냥 비워두는 것도 나름의 사치로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께서는 30대 중반에 지방 신규택지지구에 33평 아파트를 분양 받아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셨다. 방 3개 짜리 복도식 아파트였다. 나중에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그 집에서 나와야 했을 때 무척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는 고향에도 잘 찾아가지 않게 됐다. 내게는 그 아파트야말로 유일하게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예전의 고향집 이후 처음으로 마음 놓고 오래 눌러앉을 수 있는, 눌러앉아도 되는 집이 생겼다. 앞으로 이 집에서 많은 기억들, 가능하면 기분 좋고 행복한 추억을 쌓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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