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브롬톤 국토종주 5일차: 충주-수안보온천-소조령-이화령-문경불정역-점촌

2023 브롬톤 국토종주 끊어달리기

구분구간날짜인증센터주행거리 (km)
/상승고도 (m)
아라뱃길인천-서울1.31 화아라서해갑문, 아라한강갑문, 여의도59.2 / 328
한강양평-서울2.12 일양평군립미술관, 밝은광장, 능내역, 광나루, 뚝섬71.5 / 282
북한강춘천-남양주2.17 금신매대교, 경강교, 샛터삼거리, 밝은광장85.3 / 352
남한강양평-충주2.24 금이포보, 여주보, 강천보, 비내섬, 충주댐, 탄금대120.4 / 678
새재충주-점촌4.1 토수안보온천, 행촌교차로, 이화령휴게소, 문경불정역90.5 / 835
낙동강점촌-안동4.7 금상주상풍교, 안동댐102.7 / 489
낙동강예천-대구4.21 금상주보, 낙단보, 구미보, 칠곡보, 강정고령보123.1 / 497
낙동강대구-창녕5.19 금달성보, 합천창녕보100.0 / 677
낙동강창녕-부산11.10 금창녕함안보, 양산물문화관, 낙동강하굿둑87.5 / 412
후기/교훈/팁국토종주 + 구간종주(한강/남한강/북한강/새재/낙동강)총 840.1 km

준비

드디어 이화령 가는 날입니다. 이번 국토종주 목표 중 하나가 소조령과 이화령을 무정차로 오르는 거였죠. 이걸 위해 겨우내 브롬톤 마개조도 하고, 꾸준히 자출하며 마일리지도 쌓고, 남산과 북악에서 업힐 연습도 하고, 국토종주 중에도 주행거리를 서서히 늘려왔습니다.

원래는 2월 말 내지 3월 초 쯤 갈 생각이었는데 4월 초에 가게 됐으니 많이 늦었습니다. 지난번 양평에서 충주 가는 길에 노면 상태가 나쁜 길이 많았었는데 손목에 무리가 오는 바람에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는 동시에 3월은 개점휴업을 하고 말았습니다.

손목 상태가 좀 괜찮아진 3월 중순부터 날을 잡아보려고 했는데 유독 이번 일정은 날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사이 미세먼지가 무척 심했거든요. 매일 같이 미세먼지 예보를 매의 눈으로 노려보다 그나마 덜 심한 날을 골라냈습니다. 예보상 바람이 남동풍이길래 상행 방향으로 탈까도 싶었지만 소조령 다음 이화령 순서로 가고 싶어 하행으로 결정했습니다.

출발

짐은 미니오백에 평소처럼 챙겼습니다. 봄이 오니 동계용 장갑과 의류를 챙길 필요가 없어 공간에 여유가 제법 생겼습니다. 의류는 일반인 코스프레용 패트롤캡 하나, 다운힐 때 춥지 않을까 싶어 윈드브레이커 재킷에 버프만 챙겼습니다.

  • 필수품: 현금, 신용카드, 신분증, 인증수첩
  • 안전장구: 헬멧, 고글, 장갑
  • 전자제품: 스마트폰, 보조배터리, 충전케이블, 무선이어폰
  • 의류: 패트롤캡, 윈드브레이커 재킷, 버프
  • 기타: 비상식량(프로틴바), 예비 튜브, 예비 펌프(프레임 수납), 브롬톤 툴킷(프레임 수납)

서울에서 충주까지는 아침 7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예매했습니다. 요즘 회사에 일이 많아 매일 야근이다보니 아침 6시 버스는 탈 자신이 없었거든요. 5시 30분에 일어나 채비하고 나와서 집에서 터미널까지는 가볍게 라이딩을 했습니다. 새벽이다보니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만개한 벚꽃을 즐기며 여유롭게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센트럴시티터미널 (6:30)

터미널 도착하니 사람이 제법 많네요. 다들 봄놀이하러 가시는 모양입니다. 커다란 스크린마다 인디에프 브랜드들 광고가 깔리는데 역시나 샤랄라한 봄옷들이 많았습니다.

7시 버스 시간에 맞춰 승차홈으로 나가니 저 말고도 자전거 갖고 온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다들 앞바퀴를 뺀 다음 반대쪽 짐칸에 넣으시더라구요. 저도 브롬톤을 접어서 세운 채로 짐칸에 넣고 싯포스트를 뽑아서 천정에 고정했습니다. 근데 기사님께서 자전거 갖고 온 사람들한테 아침부터 그렇게 짜증을 많이 내셨습니다. 다들 질문 하나 않고 기사님이 하라는대로 했는데두요.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일단 브롬톤 싣고 출발하는 게 중요해서 참았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습니다.

충주터미널 (8:40)

서울에서 충주까지는 1시간 40분 걸린다고 합니다. 7시에 출발해서 8시 40분 즈음 도착했으니 딱 맞게 왔습니다. 도중에 고속도로가 꽤 막혔는데도 늦지 않았습니다. 오는 길에 밖을 보니 여기저기 전부 꽃이라 기분도 조금 풀리더라구요.

충주터미널 안에는 중화요리 식당이 있는데 아침 7시부터 영업합니다. 여기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보통 아침에는 면보다는 밥을 먹기 마련인데 저는 면에 미친 자라 그런지 면이 먹고 싶더라구요. 짬뽕 먹을까 했는데 맵찔이다보니 혹시 배앓이할까 걱정돼서 대신 간짜장을 먹었습니다. 서울에서 같이 버스 타고 온 국토종주 하신다는 어르신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오늘 충주댐부터 가신대서 오픈라이더 경로 찾아드리느라 정작 음식 사진을 못 찍었네요.

밥 먹고 나와 터미널 앞에서 헬멧 쓰고 장갑 끼고 출발하려는데 근처에 있던 브롬톤 라이더 두 분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두 분은 봄꽃 구경하러 남한강 따라 강천섬으로 가신다고 합니다. 저는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라 낯선 사람과 대화를 잘 못 하는데 국토종주 중에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게 됩니다. 말이 너무 길어지지만 않으면 불편하기 보다는 재미가 있더라구요. 자전거 타고 먼 길 가는, 힘든 일을 굳이 사서 한다는 공통주제가 있어 그랬던 것 같습니다.

탄금대부터는 이제 남한강이 아니라 달천과 석문동천을 따라 달립니다. 자전거길도 남한강자전거길이 끝나고 새재자전거길 안내가 나타납니다. 탄금대 인증센터는 인증수첩에 도장 찍는 곳이 남한강자전거길과 새재자전거길 두 군데입니다. 한 군데만 찍어도 종주 인증 받는데 문제는 없겠지만 이런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저는 지난번에 왔을 때 남한강길에만 도장을 찍었는데 이번에도 깜빡하고 그냥 지나쳐버리고 말았네요.

이날은 확실히 어딜 가나 벚꽃이 가득했습니다. 충주 시내는 물론이고 교외 도로변에도 벚나무마다 꽃이 한창이었습니다. 동네에 따라 아직 살짝 덜 핀 곳도 있고 꽃잎이 날리는 곳도 있었는데요. 오늘이 확실히 벚꽃이 절정에 달한 날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충주 시내에서 수안보 가는 길은 경치가 무척 좋았습니다. 그동안 삭막한 겨울에 주로 달렸다보니 북한강이나 남한강의 좋은 경치를 봐도 색이 풍부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요, 딱 시기가 좋았다보니 회색, 갈색, 청색 말고도 녹색, 분홍색, 노랑색 같이 울긋불긋한 색채를 즐기며 달리는 재미가 좋았습니다. 길도 좋아서 정말 기분 좋게 달렸습니다.

도중 수주팔봉 구름다리를 지났습니다.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한 번 올라가봐도 좋았을텐데 오늘은 일단 지나치기로 합니다. 소조령과 이화령 올라가는데 얼마나 걸릴지, 사실 올라갈 수는 있을지조차 자신이 없어서 시간을 아끼고 싶었거든요.

잘 닦인 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수안보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도중 양평해장국 간판이 서 있는 수안보 만남의광장 휴게소 앞에서 왼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자전거 겸용도로로 빠질 수 있습니다. 근데 저는 여기서 직진하는 바람에 차들이 쌩쌩 달리는 3번 국도를 몇백 미터 달렸습니다. 다행히 금방 수안보 방향 진출입로가 나와서 그리 빠졌더니 다시 자전거도로와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굽이길을 몇 번 돌아가면 수안보에 금새 도착합니다. 수안보 주변도 꽃이 많이 피어 풍경이 참 예쁘더라구요. 수안보 초입에 인증센터 안내가 있으니 따라가면 됩니다. 저 멀리 흰색 지붕이 보이면 바로 거깁니다.

수안보온천 인증센터 (10:40)

수안보온천 인증센터 근처에는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단체만 해도 두 팀 정도 있었는데요. 2월에 국토종주 다닐 때는 인증센터 근처에서도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았었죠. 확실히 날이 풀리니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구나 싶었습니다.

충주 시내에서 새재자전거길을 따라 수안보까지 오면 딱 30 km 정도가 됩니다. 충주에서 수안보까지도 아주 완만한 오르막이었지만 수안보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경사도가 가팔라집니다. 마침 수안보는 온천관광지구라 보급부터 숙박까지 해결하기 좋은 곳이라 잠깐 쉬었다 가기 적당합니다.

아침 먹은지 아직 두 시간 밖에 안 됐지만 이른 점심을 수안보에서 먹고 가기로 했습니다. 수안보는 꿩으로 유명한 동네라 꿩칼국수 같은 걸 먹고 싶었는데요, 관광객 대상으로 꿩 코스요리를 내는 식당이 많다보니 혼밥하기 마땅한 곳이 잘 안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플랜 B로 생각해뒀던 국수집에 대신 들렀습니다.

국수집에서는 잔치국수를 먹었습니다. 주인분께서 굉장히 사람 좋으시더라구요. 오늘 자전거 타고 이화령 가는 길이라고 하니 떡도 내어주시고, 국수 다 먹고 나서 믹스커피도 내어주셨습니다. 국수는 고소한 멸치육수에 양이 굉장했습니다. 여기에 반찬을 곁들여 먹으니 간도 딱 맞고 좋더라구요.

식당이 약간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었는데요, 식당에 앉아 계시던 다른 분들과도 대화를 좀 나눴습니다. 대부분 이 근처 사시는 분들이셨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연풍면에 시외버스 운행이 중단됐는데 아직도 안 다니는 것 같다거나, 이화령휴게소 사장님이 부자로 알려져 있다거나, 뭐 그런 얘기들을 재미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조령 (11:40)

수안보를 나오면 바로 업힐이 시작됩니다. 여기는 아직 소조령은 아니구요, 굳이 따지자면 과속방지턱 같은 작은 언덕입니다. 소조령 넘기 전 워밍업으로 딱 좋은 정도였습니다.

2 km 정도 더 가면 은행정교차로에서 3번 국도 아래 굴다리를 지나게 되는데요. 굴다리 건너 보이는 오르막이 바로 소조령 시작점입니다.

소조령은 굴다리부터 정상까지 길이 2.2 km, 평균경사도 5.5% 정도 됩니다. 체감은 딱 남산과 북악 중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경사가 심한 건 아닌데 중간에 쉬어가는 구간이 전혀 없습니다. 스트라바를 보니 오르는데 12분 정도 걸렸네요. 무정차로 오르느라 업힐 중간에는 사진이 없습니다. 일단 소조령은 무정차 성공했습니다.

소조령 업힐 정상에는 별 다른 시설물이 없습니다. 다만 여기부터 충주가 아니라 괴산이네요. 행정구역 경계를 또 하나 넘어왔습니다.

업힐이 끝났으니 신나게 다운힐을 즐겨줍니다. 소조령과 이화령 공도 구간은 미시령처럼 지금은 잘 이용하지 않는 옛길이라 차량 통행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오토바이 라이더나 뜬금 없이 나타나서 속도를 올리는 차량이 있으니 조심해서 내려가는 게 좋겠습니다. 브레이크 정비를 신경써서 하고 왔더니 그래도 좀 안심이 됐습니다.

내려가는 길에 도로 오른쪽으로 무언가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말로만 들었던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입니다. 무려 보물급 문화재인데 너무 보호설비 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느낌도 드네요. 마애불상 바로 앞에는 약간의 공간이 있어서, 잠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왔습니다.

행촌교차로 인증센터 (12:15)

소조령 다운힐이 끝나면 이내 연풍면입니다. 연풍면 초입에서 새재자전거길과 오천자전거길이 갈라집니다. 회전교차로에서 길이 헷갈리기 쉬운데 이화령으로 가려면 새재자전거길 방향(좌회전), 오천자전거길로 가려면 괴산 방향(우회전), 그리고 행촌교차로 인증센터나 보급을 위한 연풍면내로 들어가려면 면사무소 방향(직진)입니다.

행촌교차로 인증센터는 오천자전거길에 포함된 곳이라 국토종주만 하려면 굳이 안 와도 됩니다. 저는 장기적으로는 그랜드슬램까지 할 생각이라 결국 한 번은 더 와야 합니다. 다시 올 때는 연풍버스정류장 운영이 재개된다면 제일 좋고, 안 된다면 수안보에서 농어촌버스나 택시로 점프해서 와야 할 것 같고, 그것도 안 되면 소조령을 한 번 더 넘어야겠지요.

연풍면을 지나면 곧바로 이화령 시작입니다. 인증센터 바로 근처에는 그늘에서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있고, 연풍면내에는 마트, 식당, 여관이 여럿 있습니다. 소조령을 넘으며 비운 음료를 여기서 다시 채우고서 이화령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화령 (12:25)

드디어 왔습니다. 이화령. 국토종주가 올해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죠. 그 중에서도 이화령 무정차는 국토종주 중 꼭 이루고 싶었던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연풍에서 좀 쉬었다 갔어야 했는데 이화령 앞두고 너무 설렌 나머지 인증센터에서 사진 찍고 마트에서 음료수 사는 것 말고는 쉬지도 않고 바로 출발했습니다.

이화령은 길이 5 km, 평균경사도 6% 정도 되는 업힐입니다. 경사도에 큰 기복이 없는 대신 쉬어가는 구간도 전혀 없습니다. 오직 지구력으로 꾸준히 올라가야 한다는 점에서 소조령 상위호환이라고 할 만 했습니다. 올라가는 중간중간 전망대를 겸한 쉼터가 잘 갖춰져 있었고, 사람 구경하기 힘들었던 소조령과는 달리 이화령에서는 많은 분들이 쉼터에서 쉬거나 끌바 중이셨습니다. 그렇다 보니 무정차를 향한 멘탈을 부여잡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2 km도 못 온 시점에서 이미 심박수가 190을 찍으며 ‘힘들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웠고, 3 km 정도 왔을 때부터는 페달을 밟을 때마다 ‘그냥 끌바할까’라는 유혹을 이 악물고 이겨내야 했습니다. 3.5 km 지점에서는 저 멀리 정상이 보이는데 또 그 사이 구불구불 끝없이 올라가는 오르막도 같이 보이니 정말 욕 밖에 안 나오더라구요. ‘여기까지 무정차로 올라온 게 아까우니 어떻게든 간다’, ‘이번에 무정차 못 하면 여길 또 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악으로 올라갔습니다.

이화령휴게소 인증센터 (13:00)

그렇게 이화령 무정차 완등에 성공했습니다. 도착하고서 너무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한참을 빙글빙글 걸으며 몸을 추스려야 했습니다. 나중에 기록을 보니 32분 걸렸더라구요. 32분 동안 계속 쉬지 않고 심박수 180 이상을 유지하며 고갯길을 올라왔으니 몸에 꽤 무리가 갔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고통이 한 순간에 보상될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몸을 추스르는 사이, 제가 앞질러 왔던 다른 분들도 이화령 정상에 도착해서는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바퀴 작은 자전거로 그렇게 고통스럽게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 어지간히 인상 깊었던 모양입니다. 특히 엔진 좋다는 얘기를 제 평생 처음 들어봤는데 참 황송할 정도였습니다. 저도 그분들께 고생하셨다고 인사를 건네며 서로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국토종주 하면서 굳이 제 사진은 남길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브롬톤, 풍경, 음식 사진만 찍어왔는데요, 유일하게 여기 이화령에서 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 자신이 피사체가 되는 일이 무척 어색하다보니 어정쩡한 자세로 웃긴 사진이 나왔는데요. 그래도 그 사진을 보면 이화령휴게소 앞에서 느꼈던 기쁨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는 블로그니까 또 브롬톤 사진만 올라갑니다.

이화령휴게소는 생각보다 시설이 괜찮았습니다. 먹을거리도 다양하고, 화장실도 깨끗한 편이고, 쉴 자리도 여러 군데 있구요. 한참 몸을 추스른 다음 이화령휴게소 매점에서 물 하나 사들고 다시 출발했습니다.

문경읍 (13:50)

이화령 정상의 터널을 지나면 바로 경상북도 문경입니다. 드디어 영남 지방까지 왔네요. 문경읍까지는 쭈욱 내리막입니다. 제법 강한 맞바람이 엔진브레이크처럼 속도가 너무 나지 않도록 막아줘서 다운힐을 비교적 쉽고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내리막 끝에는 ‘영남대로’라고 적힌 문경문이 있습니다. 문경문을 지나 과속방지턱 수준의 언덕을 하나 넘으면 문경읍내로 들어갑니다.

문경읍내는 자전거길이 빨간바탕으로 표기되어 있었는데요, 오히려 이것 때문에 새재자전거길 찾아가기가 어려웠습니다. 빨간바탕만 쫓아가다 길을 잘못 들어 읍내 한바퀴를 돌고 나왔거든요. 근데 문경읍내는 온통 벚꽃이라 오히려 기분이 좋았습니다. 인적이 드물어 이 좋은 풍경을 혼자 만끽하는 것 같았거든요. 기온도 너무 덥지 않게 따뜻한 정도라 딱 좋았구요.

문경읍을 지나면 점촌까지는 대체로 한산한 시골길입니다. 벚꽃이 없는 곳에서도 봄의 생기가 느껴집니다. 길가에 파릇파릇 올라오는 풀이 그렇고, 논밭이 갈린 모습도 그렇구요. 경치 구경하며 편하게 달리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물론 잊을만 하면 또 벚꽃이 나타납니다. 이날 벚꽃은 정말 원없이 봤습니다. 맞바람에 내리는 꽃비 속을 달려보는 진기한 경험도 했습니다. 이화령 갔다오고 바로 다음날 여의도로 꽃놀이 갔었는데 전날 벚꽃을 워낙 많이 봐놓으니 여의도 벚꽃을 봐도 그리 큰 감흥이 없을 정도더라구요. 사람보다 벚나무가 더 많은 곳에 종일 있었으니 그럴만도 한 것 같습니다.

진남휴게소 (14:30)

이날 식사시간과 이화령휴게소 말고는 휴식 없이 계속 자전거를 탔다 보니 70 km 넘어가는 시점에서 슬슬 몸에 신호가 옵니다. 바람도 강하진 않았지만 꾸준히 역풍이다보니 체력 소모가 심했습니다. 마침 지나가는 길에 휴게소가 있어 잠시 쉬었다 갔습니다. 여기도 벚꽃이 많이 피어 있었고 근처에 있는 다리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근처에 꽃놀이 나온 분들이 많은지 휴게소는 무척 붐볐습니다. 그래도 카페에 자리를 하나 잡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국토종주 하다가 카페에서 커피 사마시는 건 또 처음이네요. 그동안 너무 삭막하게 종주에만 몰두했던 것 같습니다. 천천히 달리며 이런저런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겠고, 잔가지를 다 쳐내가며 목표 달성에만 집중하는 사람도 있겠는데요. 저는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네요.

진남휴게소에서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문경불정역 도착하기 전에 물굽이를 타고 도는 도로를 달립니다. 여기도 오른쪽으로 깎아지르는 산을 두고 돌아가는 강의 풍경이 예뻐서 사진을 찍어놨는데 느낌을 잘 못 살린 것 같습니다.

문경불정역 인증센터 (15:15)

오늘의 마지막 인증센터인 문경불정역 인증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이화령이나 진남휴게소는 꽤나 붐볐는데 여기는 아무도 없이 조용합니다. 꽃구경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라 그럴까요.

문경불정역도 꽤 예쁜 곳이었습니다. 폐역된 곳이지만 역사도 잘 꾸며져 있었고요. 역시 지금은 운영하진 않지만 열차를 개조한 펜션이 있던 곳도 가림막 너머로 보이는 벚꽃과 어우러진 열차의 모습이 예뻤습니다.

문경불정역 지나고부터는 누적된 피로 때문에 달리기가 영 쉽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역풍이 강하지 않았고 평지에 가깝지만 어쨌든 내리막이라 계속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계획 세울 때는 점촌까지 갈 수 있으면 가되, 안 되면 문경까지만 가려고 했었는데요, 문경까지는 상태가 괜찮다가 점촌까지 거의 절반을 오고서 갑자기 퍼진거라 어떻게든 점촌까지 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중간중간 나타나는 벚꽃길과 그늘은 큰 도움이 됐습니다. 반면 신호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보행신호가 정말 안 바뀌던 저 횡단보도, 고즈넉한 느낌의 견탄교는 생각이 납니다. 견탄교 아래로 흐르며 점촌까지 계속 따라가게 되는 저 강줄기가 영강입니다. 새재자전거길도 영강을 따라 계속 이어지다 상주상풍교 인증센터 가는 길 도중에 낙동강과 합쳐지게 됩니다.

나중에 보니 저 횡단보도는 굳이 안 건너도 되는 곳이었습니다. 문경불정역에서 조금 더 가면 불정교를 통해 강 좌안으로 건너가게 되는데요, 이때 다리 건너자마자 오른쪽을 보면 자전거도로로 바로 이어집니다. 이리 가면 저 횡단보도를 건널 필요 없이 바로 견탄교로 갑니다. 근데 오픈스트리트맵에는 그 자전거도로가 반영이 안 되어 있어서인지 네비는 견탄리 농로를 따라가는 길로 안내를 해주더라구요. 아무래도 내륙 지방으로 갈수록 오픈스트리트맵 기반 네비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견탄교를 지나면 점촌 도착 전까지 자전거도로 바로 근처에는 보급할 곳이 없습니다. 다행히 점촌이 멀지 않으니 부지런히 가면 됩니다.

점촌 시내 구간에 들어오면 한강만큼이나 잘 꾸며진 천변공원이 나타납니다. 날씨 좋은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저는 성인이 되고서는 문경에 처음 와봤는데요, 점촌이라는 지명만 보고서는 전형적인 내륙 시골 동네이겠거니 생각했었습니다. 근데 알고보니 문경시의 중심지가 바로 점촌이고, 시내를 보니 이름과는 달리 전형적인 도시더라구요. 예전 문경군 점촌읍이 점촌시로 승격된 후 남아있던 문경군과 통합되면서 통합시 명칭을 문경으로 하면서 생긴 일인데요, 아산(온양)이나 익산(이리) 같은 경우겠네요.

점촌역 근처에서 자전거도로에서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신흥로를 따라 점촌터미널까지 갈 요량이었는데요, 도중 문경문화예술회관 앞에 작은 업힐이 하나 있더라구요. 지금까지 왔던 길에 비하면 과속방지턱 정도여야 할텐데, 체력이 다 떨어진 상태다보니 기를 쓰고 넘어야 했습니다. 아직 국토종주 중 강천보 공인끌바구간 제외하면 끌바를 한 번도 안 했는데 괜히 고집만 세서 몸이 고생하는 것 같습니다.

점촌터미널 (16:10)

예상보다 점촌터미널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국토종주 중에는 식사와 휴식시간 포함해서 시간당 15 km를 나름대로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요, 충주에서 오전 9시 좀 넘어 출발해서 점촌에 16시 좀 넘어 도착하기까지 7시간 동안 90 km 탔으니 소조령과 이화령 넘은 것치고는 1시간 밖에 지연 안 된 셈입니다.

원래 예매했던 버스가 19시 10분이라 시간이 3시간이나 남아 어떻게 할지 고민을 좀 했는데요, 16시 50분 버스로 변경해서 그냥 서울로 일찍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이날이 토요일이고 꽃놀이 나온 행락객이 많아 서울 가는 길이 많이 막힐 것 같았거든요.

아침에 서울에서는 버스기사님께서 짜증을 내셔서 기분이 좀 상했었는데요, 반대로 점촌에서는 아주 친절하게 대응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전에도 브롬톤을 짐칸에 싣는 걸 본 적 있는 기사님이신 것 같았습니다. 세워서 실으면 된다고 먼저 말씀해주셨거든요.

지금까지 고속버스 타고 다니면서 짐칸에 브롬톤 싣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사진도 찍어봤습니다. 완폴한 상태로 사진처럼 세워서 싣되, 프레임을 누른 상태로 싯포스트를 최대한 세게 뽑아서 짐칸 천장에 고정하면 됩니다. 클램프가 헐거워 라이딩 중 싯포스트가 내려가는 상태면 주행 중 진동 때문에 브롬톤이 쓰러질 수도 있어 이 방법을 못 씁니다. 그럴 때는 그냥 완폴한 상태로 눕혀서 가면 됩니다.

복귀

중부내륙고속도로 타고 올라가는 동안 오늘 자전거 타고 왔던 길을 마주치는 순간이 몇 번 있었습니다. 자전거로 올 때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차로 가니 또 그렇게 편할 수가 없네요. 특히 소조령, 이화령 넘느라 고생을 했는데 자동차는 터널로 편히 가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영 오묘해집니다.

서울에는 19시쯤 도착했습니다. 2시간 10분 정도 걸렸는데 예매할 때 확인했던 시간과 딱 맞게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는 피로 때문에 기절한 채 그대로 실려오고 말았는데요, 의외로 길이 안 막혔든지, 기사님께서 안 막히는 길로 잘 돌아오셨든지 둘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터미널에서 브롬톤 타고 집으로 가려는데 허벅지가 무척 아팠습니다. 근육통 같기는 한데 쥐가 나는듯한 통증이 느껴져서 가만 서있기도 힘들다 싶을 정도였는데요, 그나마 안장에 앉아 페달을 밟으면 힘들긴 해도 좀 덜 아프길래 천천히 타고서 집으로 왔습니다. 다행히 집에서 영양 보급 잘 하고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나니 괜찮더라구요. 다음날과 다다음날에도 가벼운 근육통 정도만 앓고 지나갔습니다.

정산

  • 거리: 90.5 km (누적 426.9 km)
  • 비용: 53,000원 (누적 154,000원)
    • 교통비: 고속버스(우등) 서울-충주 (12,700원), 고속버스(우등) 점촌-서울 (18,100원)
    • 식비: 터미널짬뽕 간짜장 (7,000원), 터미널매점 음료수 (2,200원), 이화동잔치국수 (6,000원), 한세마트 음료수 (1,500원), 이화령휴게소 생수 (1,000원), 진남휴게소 커피 (4,500원)

오늘의 교훈

잘한 점

  • 밥을 든든히 챙겨먹은 점. 덕분에 봉크 없이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국토종주를 하면서부터 출발 며칠 전부터 정말 많이 먹곤 하는데 그래도 인바디 찍어보면 체지방이 빠지더라구요. 걱정 말고 잘 챙겨먹고 다니면 되겠습니다.
  • 소조령과 이화령을 무정차로 오른 점. 소조령까지는 오를만 했는데 이화령은 멘탈 유지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유지해온 국토종주 중 업힐 무정차를 깨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고 올랐습니다.

못한 점

  • 휴식에 인색했던 점. 수안보에서 이른 점심식사 직후 소화도 안 된 시점에 바로 소조령을 오르고, 바로 이어 이화령까지 오르느라 다리가 제대로 털려서 라이딩 후반에 평지 코스에서도 고생했습니다. 목 마르기 전에 물을 마셔야 하듯 너무 힘들기 전에 쉬어야 하는데, 저는 이게 참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 오픈스트리스맵에 반영 안 된 자전거길 때문에 몇 번 돌아서 간 점. 최대한 자전거길에 맞게 경로를 보정하되, 정 안 되면 과감하게 네비를 무시하고 도로상 실제 표지를 따라 갈 필요도 있겠습니다.

그 외

  • 역시 장거리 탈 때는 풍향이 결정적입니다. 오늘은 소조령에 이어 이화령을 넘는 순서를 맞추고 싶어 역풍을 감수하고 탔는데, 체력이 다 소진된 라이딩 막바지에는 약한 역풍조차 너무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국토종주까지는 낙동강만 남았는데, 낙동강하굿둑에서 피날레를 찍는 것 말고는 가능한 바람 방향에 맞춰 주행해야 겠습니다.
  • 이제 낙동강 구간입니다. 영남 주요 업힐(매협재, 다람재, 무심사, 박진고개, 영아지고개)은 전부 우회할 예정이라 앞으로는 큰 업힐이 없습니다. 보급만 잘 챙기면 또 날씨가 잘 도와주면 여름 전에 국토종주 구간은 완주 가능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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