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런던 여행기


2019 런던 여행


여행의 이유

이번 런던 여행이 결정된 시기는 해외여행에 대한 회의감이 한창일 때였다. 돈과 시간을 들여 멀리 나가봐야 별반 느껴지는 건 없고 몸만 힘들다는 생각이 쌓이다보니, 괜히 어디 돌아다니는 것보다 그냥 집에서 책 읽고 요리하며 쉬는 게 제일이다 싶었던 참이었다.

여행의 기회란 참으로 의도치 않은 시기에 불쑥 생겨난다. 이번 여행의 계기가 그랬다. 만료를 앞둔 대한항공 가족 마일리지가 딱 유럽행 일등석 좌석을 살 수 있을 정도였고, 선택 가능한 행선지 중 가장 먼 곳 중 하나가 바로 런던이었다. 이번 런던 여행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London Landscape from St. Paul's Cathedral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바라본 런던 탬즈강

여행 준비

항공권 및 숙소

이번 여행에서는 아내가 항공권과 숙소를 해결해줬기에 내 역할은 별로 없었다.

항공권은 인천에서 런던까지는 대한항공 일등석을, 돌아올 때는 영국항공 이코노미석을 예약했다. 대한항공 일등석은 장거리 노선을 누워서 갈 수 있는 장점에 더해 영국 입국 심사를 Priority line을 이용해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던 점이 특히 좋았다.

돌아오는 영국항공 이코노미석도 생각보다 탈 만 했다. 특히 마일리지 50% 할인 이용해서 발권 받은 항공권이라 가성비가 좋았다.

숙소는 Doubletree by Hilton London Chelsea로 잡았다. 런던은 숙박비가 비싸기로 악명 높다. 그래서 숙소를 시티나 웨스트민스터에서는 좀 떨어진 곳으로 정했다. 여기에 아내가 Price challenge를 끈질기게 한 끝에 숙박비를 좀 더 아낄 수 있었다.

숙소 근처에는 오버그라운드를 탈 수 있는 Imperial Wharf 역, 그리고 버스정류장이 몇 곳 있었다. 런던은 대중교통이 워낙 잘 되어 있어 일단 오버그라운드든 언더그라운드든 탈 수 있는 역 근처이기만 하면 놀러다니는데 별 불편함은 없었다.

여행 계획

얼마 전에 썼던 여행 준비: 여행 계획 짜기의 예시에 이번 런던 여행 일정을 짠 방법이 포함되어 있다. 굳이 다시 정리하자면, 이런 순서로 일정을 짰다.

  1. 영국, 잉글랜드, 런던에 대한 책이나 자료들을 찾아 읽으며 가보고 싶은 곳들을 정리
  2. 구글맵에서 ‘가고 싶은 곳’ 지정 후 가까운 곳들끼리 그룹핑 및 목록화
  3. 목록에 각 장소마다 영업시간, 휴무일, 교통편 등을 확인한 후 일정 구체화

특히 런던 이야기: 천 가지 역사를 품은 살아 있는 도시라는 책이 유용했다. 여행지에 대한 가이드북보다는 역사서를 더 선호하는 편인데, 진지하지 못한 문체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런던의 역사를 책 한 권으로 훑어볼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그 외 각 여행지의 예상 소요시간은 구글맵과 트립어드바이저를, 시내 교통편에 대한 세부 정보는 역시 구글맵과 CityMapper 앱을 이용했다.

Hyde Park
하이드 파크

여행 비용

미리 지불한 항공권과 숙소 비용을 제외하고, 성인 두 명의 일주일 여행 비용으로 총 120만원 정도가 들었다. 환전은 인터넷 환전 한도(100만원)을 꽉 채워 환전했더니 당시 환율로 650파운드 정도를 가지고 갈 수 있었다. 런던 물가가 워낙 비싸서 환전해간 현금은 다 썼고, 여기에 신용카드로 20만원 정도를 더 쓰고 왔다. 신용카드 받아주는 곳이 많아 추가 환전이나 출금할 필요는 없었다.

할인 혜택은 어느 정도 챙겨본 편이다. 히드로 공항과 런던 도심 간의 이동은 피카딜리선 대신 빠르고 넓고 편한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이용했다. 90일 전에 미리 예약하면 할인폭이 70% 이상이라 부담이 적었다.

여기에 둘이 가면 한 명 요금이 공짜인 내셔널 레일의 2-for-1 할인을 여기저기서 받았다. 구체적으로는 런던 탑, 세인트폴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IWM 처칠 워룸에서 총 100파운드 가까운 입장료를 할인받았다.

내셔널 레일 2-for-1 할인 이용하기

이번 여행 중 가장 혜택을 많이 본 게 내셔널 레일 2-for-1 바우처였다. 런던은 한국보다 교통비 마저 비싸서 며칠 이상 머무를거면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Weekly travelcard를 구입하게 되는데, 이를 이용해 교통비 절약은 물론 많은 관광지에서 입장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요령이 잘 정리된 페이지를 미리 정독하고 간 덕분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까다로운 점이 있었다.

2-for-1 offer는 런던 대중교통을 관할하는 TfL이 아닌, 내셔널 레일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교통공사와 철도공사 정도의 차이다. 관할이 다르기 때문에 내셔널 레일에서 제공하는 2-for-1 혜택을 보려면 반드시 내셔널 레일(또는 GWR) 창구에서 종이로 된 Travelcard를 구입해야 하며, 오이스터 카드에 Travelcard를 충전하면 안 된다.

덕분에 몇 안 되는 종이 Travelcard를 구입할 수 있는 역에 굳이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나마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이용하면 종점인 패딩턴역 창구를 이용할 수 있어 덜 불편하다.

그리고 종이 Weekly travelcard 발급에는 여권 사진 1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역 근처 사진 자판기에서 만들어도 되지만 사진 한 장 미리 챙겨가면 일이 편해진다.

마지막으로, 종이 Travelcard는 구식 마그네틱 방식이라 외부 전자기장에 의해 손상되기 쉽다. 스마트폰이나 다른 전자제품들과는 분리해서 보관하자. 내 경우, 구입하자마자 스마트폰과 겹쳐 쥐고 다녔는데 이후 매번 개찰구에서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서 직원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해야만 했다.

Stonehenge
스톤헨지

여행 짐싸기

여행 짐을 싸는 것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어, 그에 따라 준비했다. 이번 여행 가방은 Peak Design의 Travel Backpack 45L을 이용했다. 평소엔 35L, 확장하면 45L, 반대로 30L까지 부피를 줄일 수도 있는 여행용 백팩이다. 여행 시기가 5월이라 봄옷 위주로 챙겼더니 가방은 35L 상태에서 7할 정도 채우는 정도였다.

여행 후기

On the double-decker bus
2층 버스 맨 앞 자리에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20세기 초에 시간이 멈춘 나라 같았다. 도로는 마차가 다니던 좁은 길을 그대로 포장해서 쓰고 있고,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새로 지은 건물이 하나도 없어보이는 동네도 많았다.

물가는 듣던대로 끔찍하게 비쌌다. 특히 여행에 필수적인 숙박, 외식, 교통이 비싸다보니 더욱 그랬다. 그나마 많은 유명 박물관의 입장료가 무료이고, 2-for-1 offer 같은 할인 프로그램이 있어 다행이었다.

악명 높은 영국 요리에 대해서는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영국 요리가 아니라도 인도 요리를 필두로 (돈만 있으면)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곳이다. 피쉬앤칩스나 셰퍼드파이 같은 영국 요리도 몇 가지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날씨는 정말 지랄맞았다. 나름 하이시즌에 가까운 숄더시즌에 잘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해가 쨍쨍하다가도 수시로 구름 끼고 비가 쏟아진다. 뼈가 시리는 똥바람은 덤이다. 방심하지 말고 방풍, 방수, 보온되는 옷을 잘 챙겨서 다녀야 할 것 같다. 숫자로 보이는 기온만 보고 봄옷만 들고 갔다가 결국 감기 걸려서 급히 외투를 사입어야 했다.

생각보다 스마트폰 데이터가 잘 안 터진다.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아예 안 된다고 보는 게 맞고, 도심 거리 한복판에서도 전파가 약하거나 끊기는 일이 잦았다.

크고 유명한 박물관이 많지만 정작 자기네들 유물은 별로 없었다. 듣던대로 대영박물관에 영국 것은 사실상 건물 뿐이었다. 영국 유물이 있더라도 비슷한 시기의 다른 나라 유물에 비하면 좋게 말하면 수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시선이 잘 안 가는 것들이 많았다. 다만 스톤 헨지 박물관과 2차 대전 관련 전시는 재밌었다.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은 박물관 관람이었다. 계획상 박물관 보는데 시간을 충분히 배정했다고 생각했는데, 볼 거리가 너무 많아 계속 시간에 쫓겼다. 대영박물관은 하루 종일 봤지만 1층조차 다 보지 못 했고, 내셔널 갤러리도 역시 하루 꼬박 돌았는데도 시간이 모자라 전시실 몇 곳을 못 봤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박물관만 일주일 이상 봐도 여행 본전 뽑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교통문화다. 도로가에 보행자가 있으면 운전자들이 거의 항상 멈춰서서 양보를 해줬다. 오토바이 찾아보기 어려운 대신 자전거가 아주 많았는데, 다들 헬멧을 잘 갖춰쓰고 있었고 패니어 달린 자전거도 많았다. 도로에서 자동차들이 자전거를 많이 배려해준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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