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 7일차 (10th May 2019, Fri): 사우스 켄싱턴(자연사/과학/V&A 박물관-하이드 파크)


2019 런던 여행


Doubletree by Hilton Chelsea @8:25 (BST)

런던 여행의 사실상 마지막 날이다. 다음날이면 오전 중에 짐 싸서 공항으로 가야한다. 바깥 날씨는 여전히 흐리다. 런던 온 이래 처음 며칠 빼면 맑은 날씨 본 때가 정말 손에 꼽는 것 같다.

호텔 조식을 매일 같이 먹다보니 물리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여행이나 출장 다니면서도 호텔 조식에 만족해본 적은 몇 번 없긴 한데, 이번에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게다가 굳이 꼬박꼬박 챙겨먹었기까지 했으니 당연히 물릴만도 하다.

베이컨은 소금 뿌린 삼겹살 같아서, 기대했던 달콤한 훈연향을 느끼기 어려웠다. 소시지와 해시 브라운도 그저 그렇다. 그나마 시큼하고 달짝지근해서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HP 소스를 곁들이니 먹을만 했지만, 대신 소스맛 밖에 나지 않았다는 게 함정. 버진 메리는 시큼하고 짭잘했다.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스탬퍼드 브릿지 앞 (Stamford Bridge) @9:56 (BST)

이날은 사우스켄싱턴에 나란히 위치한 박물관 세 곳에 가보기로 했다.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이 그곳이다. 사실 하루에 다 보기는 힘든 곳이지만 여행 일정이 부족해서 약간 무리를 하기로 했다.

원래 목표는 오전에 자연사 박물관, 오후에 과학박물관, 저녁에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을 보는 것이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22시까지 연장 개관을 하기 때문에 잡은 일정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금요일 야간에는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극히 일부 전시관만 개방됐다. 홈페이지에도 지나가듯 언급되어 있었는데, 잘 못 보고 지나친 탓이었다.

호텔에서 나와 버스 타러 갔는데, Citymapper가 알려준 정류장이 마침 스탬퍼드 브릿지 바로 앞이었다. 전날 유로파리그 경기가 있었던 곳인데, 그래서인지 방송사에서 리포트를 녹화하는 모습도 보였다.

런던 와서 길 찾는 데는 구글맵과 Citymapper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구글맵은 주로 식당 같은 장소에 대한 평이나 길 찾는 데 쓰고, Citymapper는 ‘여기에서 저기까지’ 가는 방법에 대한 안내를 받는 데 썼다.

특히 Citymapper는 튜브 공사 정보가 빠르게 반영되고, 탑승 중 목적지가 다가오면 미리 알림을 띄워주어 편했다. 실시간으로 GPS를 쓰니 배터리 소모가 컸지만 충분히 감수할만한 편리함이었다.

Natural History Museum (자연사 박물관) @10:20 (BST)

자연사 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아름다운 건물 외관이었다. 멀리서 본 자연사 박물관 건물은 마치 거대한 독일식 궁정 건물 같아보였다. 가까이 다가서면, 여러 동식물의 모습이 빼곡히 세공된 부조물이 눈에 띈다. 여느 장식 하나 허투로 만들어지지 않으면서도 건물의 목적을 뚜렷이 나타내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기부 창구를 지나 로비로 들어서면,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대왕고래(Blue whale)의 거대한 골격이 위압감과 함께 경의로움을 느끼게 했다. 로비 양측에는 마스토돈, 공룡 화석, 운석, 산호, 청새치 등 자연사 박물관에서 다루는 주제를 상징하면서도 흥미를 강하게 잡아끌 수 있는 전시물이 하이라이트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역사가 19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박물관이지만, 많은 전시물들이 21세기의 눈높이에 맞게 잘 관리되어 둘러보기 좋았다. 특히 공룡관은 마치 다크라이드를 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흥미로운 구성이었다. 일부 오래되어 보이는 전시관도 있었지만, 내용을 읽어보고 즐기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대부분의 성인에게는 흥미끌 만한 요소가 별로 없기는 하다. 대신 아이들이 보기에는 정말 구성이 잘 되어 있었고, 이런 전시물을 둘러보는 걸 좋아하는 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날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세 시간 정도 머물렀다. 이 정도 시간으로는 당연하게도 모든 전시실을 다 볼 수 없어서, 블루존 전부와 그린존, 레드존 전시 중 관심가는 곳 몇 군데를 꼽아서 둘러보는 선에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레드존은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로도 갈 수 있지만, 1층 Earth Hall에서 스테고사우루스 화석 옆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는 경로가 더 나은 것 같다. 체력을 아낄 수도 있고, 에스컬레이터가 관통해서 지나가는 구조물이 꽤나 멋지기 때문이다.

평일 오전에 방문했는데도 사람이 아주 많았다. 특히 아이들이 아주 많아서, 특히 공룡관 같은 곳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아이들이다보니 시끄럽기도 해서, 시간을 들여 전시물을 깊이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박물관은 규모가 크고 동선이 복잡해서 길을 헤매기 딱 좋은 구조다. 지도를 무료로 주면 좋겠는데, 지도나 가이드북은 유료인데다 한국어는 제공되지 않는다. 대신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PDF 파일로 된 지도를 이용하면 그나마 편리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

The Kitchen @13:28 (BST)

점심은 자연사 박물관 1층의 키친에서 크림티 세트 2인분을 주문해서 먹었다. (£13.60) 대영박물관보다는 아주 약간 못하다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박물관 안에서 먹는 식사치고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특히 영국에서 먹는 클로티드 크림의 맛이 신기하게 좋아서 크림티 먹는 재미가 있었다. 여기 말고도 박물관 안에는 간단한 식사나 간식을 파는 곳이 있어, 시간만 충분하다면 하루 종일 죽치고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과학박물관 (Science Museum) @14:21 (BST)

자연사박물관 바로 북쪽에 위치한 과학박물관은 이날 방문한 다른 박물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았다. 대신, 전시물의 밀도가 굉장히 높아 제대로 둘러보려면 다른 박물관들 못지 않게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과학박물관 역시 1층(Ground Floor)에 방문자의 흥미를 끌기 좋은 상징적인 전시물들이 전진배치되어 있었다. 증기기관, 방직기, 애플 1, DNA 나선구조, 브롬톤 자전거 등 현대 과학기술 분야의 발견과 발명을 나타내는 다양한 전시물들, 그리고 우주 탐사에 실제로 사용되었던 장갑이나 우주선 모듈을 보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산업혁명의 고향인 영국답게 산업혁명 시기의 전시물이 아주 훌륭했고, 합리주의 시대와 항공우주 분야의 전시 아주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인터액티브 프로그램도 꽤 많았는데, 특히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아이들에게 좋아보였다.

원래는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정성껏 둘러보려고 했는데, 역시 오늘 일정이 너무 빡빡했던데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써서 서둘러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특히 4층(Floor 3)의 시뮬레이터 체험을 못 해본 게 아쉽다.

엑시비션 로드 (Exhibition Road) @15:43

과학박물관과 V&A 박물관 사이 익시비션 로드 길가에 있는 벤치에 잠시 앉았다. 자연사 박물관 못지 않게 과학박물관에서도 많이 돌아다녔더니 다리에 피로가 쌓였다. 마침 날씨가 개어 하늘에서 해가 나기 시작했고, 길거리에서는 비누방울 거리공연도 한창이었다. 짧은 휴식이었지만 여유로운 오후였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Victoria and Albert Museum) @16:02

이날 V&A 박물관을 맨 마지막 방문지로 잡은 건 이유가 있었다. 매일 17:45까지 개관하지만 매주 금요일에는 22:00까지 개관한다는 안내를 V&A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봤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좀 많이 늦게 먹는다면, 오후 늦게 방문해도 V&A 박물관을 둘러보기에 시간이 꽤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분명 V&A 박물관은 금요일에 22시까지 열긴 열었다. 단, 17:45면 지하, 1층, 그리고 3층 전시실 중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시실을 닫아버린다. 상설전시를 제대로 보려면 금요일에도 17:45까지는 관람을 마쳐야 한다고 보는 게 맞겠다.

어쨌든 V&A 박물관은 생각보다 아주 거대한 곳이었다. 자연사 박물관과 과학박물관을 합쳐놓은 것 같은 크기였는데, 기나긴 회랑을 따라 지하(Floor -1)부터 5층(Floor 4)까지 다양한 연대와 분야에 걸친 엄청난 양의 전시물들이 있었다.

SOFT Brexit or HARD Brexit?

대영박물관에서 로마, 비잔틴, 중세 유물이 생각보다 적다고 생각했는데, 딱 그 시대의 각종 미술품들이 V&A 박물관에는 넘쳐났다. 엊그제 내셔널 갤러리에서 회화로 본 그 시대 그 장면들을 V&A 박물관에서는 조각과 직물, 건축물로 볼 수 있었다. 기념품 가게도 독특한 것이 많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제대로 보려면 여기도 대영박물관 못지 않게 적어도 하루 이상을 온전히 투자해야만 할 것 같다. 그만큼 전시물이 많고, 또 꼼꼼하게 읽어볼만한 거리도 많았다. 개인적으로도 영국에 와서 본 박물관 중에서는 대영박물관만큼이나 V&A 박물관이 손에 꼽을만큼 좋았다.

어마어마한 양의 귀금속들

다만 방문 시간을 잘못 맞춰 보고 싶었던 전시관의 절반도 채 보지 못 했다. 지하층의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품들, 1층의 주요 전시들, 3층의 어마무시한 양의 은세공품들을 보는 정도 밖에는 할 수 없었다.

V&A 박물관 역시 내부 구조가 복잡해서 지도 없이는 길 잃고 헤매기 딱 좋은 구조였다. 다행히 여기저기에 배치된 자원봉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길 잃지 않고 무사히 잘 둘러보고 나올 수 있었다.

하이드 파크 (Hyde Park) @18:55

아쉬움을 뒤로 하고 V&A 박물관을 나왔다. 해가 많이 길어져서, 저녁이 되었는데도 아직 해가 훤했다. 런던에 온 이래 이날 오후가 가장 날씨가 좋아서 이대로 들어가기 아까워 바로 근처에 있는 하이드 파크로 걸어가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의 하이드 파크는 드문드문 인적이 있는 조용한 곳이었다. 일단 날씨가 정말 좋았고, 오래된 나무가 가득한 숲이 자연에 가깝게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이런저런 동물들도 많이 보였고, 그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풀 향기, 꽃 향기가 그윽했다. 수시로 머리 위를 지나다니는 비행기만 아니면 망중한의 느낌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이드 파크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아내와 천천히 걸으며 런던 여행의 마지막날을 정리했다. 참 빠듯하고도 바쁘게 지내온 여행이었다. 아내는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에 체력이 방전되어 힘들어했고, 나도 생각보다 추웠던 런던 날씨에 감기가 제대로 들어 꽤 고생을 많이 했었다. 여행의 마지막에나마 하이드 파크에서 숲과 물, 하늘을 보며 여유를 즐긴 건 정말 잘 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Memories of India Kensington @19:58 (BST)

런던에서 식당을 돌아다니며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건, 세계 요리 전문점에 가면 대체로 그 나라 계통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태리 식당에 가면 정말 남유럽계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고, 인도 식당에 가면 역시 인도계 사람들이 서빙을 한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만찬은 인도 식당에서 하기로 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홀에서 바삐 돌아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인도계였다. 모두가 아주 쾌활하고 친절해서,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았다.

식당에서는 2인 메뉴(Menu for Two; Deluxe Platter)를 주문했다. 나중에 다 먹고보니 양이 어마어마해서, 둘이 아니라 셋이 먹어도 될 정도였다. 아주 배고픈 게 아니면 단품 조합으로 주문해도 될 것 같다.

가장 먼저 나오는 샐러드는 주로 오이에 고수 조합이었다. 나는 둘 다 좋아해서 에피타이저로서 아주 즐겁게 먹었다. 탄두리 치킨은 가슴살 부위였는데 보기보다 맵지 않고, 씹으면 안쪽에서 육즙이 터져나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토마토 기반의 양고기 커리는 이날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었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쪽이 단순히 소스맛만 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맛과 복잡한 향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경단처럼 보이는 고기 덩어리는 좀 짜긴 했지만 다른 향신료향도 잘 배어 있어 밥이나 난에 곁들여먹으니 적당했다.

치킨 커리는 대체로 달짝지근하고 코코넛이 들어간 맛이 났다. 같이 들어간 야채에서는, 잘 우려낸 채수 같은 푸짐한 야채 특유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밥와 난에 곁들여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밥은 인디카(안남미)였는데, 특유의 향과 날리는 느낌이 강했다. 역시 인디카 향에 거부감이 없다보니 맛있게 잘 먹었다. 인디카 향은 역시 한국 음식보다는 커리 같은 강렬하고 다양한 향신료가 가득한 동남아 음식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난도 쫄깃거리고 맛있었는데, 밥이 굉장히 많았던데 반해 난은 한 장 밖에 없어 좀 아쉬웠다.

다 먹고 나면 손 닦는 용도의 물수건과 후식 음료가 제공된다. 커피나 차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이걸 마시고 있으면 오렌지 초콜릿이 또 나온다. 맛은 딱 제주 감귤 초콜릿이다. 정말이지, 먹거리가 끝도 없이 나와서 방심할 수 없었던 식사였다. (£49.95 + Service Charge 10%)

이날 식사에서 가지고 있던 파운드화 지폐를 남김 없이 다 쓸 수 있었다. 또 언제 영국에 올지 알 수 없는 시점에 남은 파운드화를 갖고 있기 싫었는데, 다행히 계산이 잘 맞아들었다. 다음날 남은 동전까지 깨끗하게 다 털어내고 깔끔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임페리얼워프역 (Imperial Wharf Station) @22:06

기나긴 식사를 마치고 호텔 근처로 돌아왔다.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런던 시내는 늦은 시간임에도 행인도 많고 시끌시끌한 분위기였다.

호텔 바로 옆 Imperial Wharf역의 자동판매기에서 다음날 패딩턴역으로 가는 싱글 티켓을 신용카드로 샀다. 이날이 종이 위클리 트래블카드 유효기간 마지막날이어서 다음날 튜브 타려면 따로 티켓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오이스터 카드를 사용하는 게 훨씬 저렴했다. 하지만, 바쁜 출국날 오이스터 카드 환불 받기도 귀찮았고, 환불 받은 파운드화 보증금 역시 처치곤란이라 그냥 싱글 티켓 끊는 쪽을 택했다. (£4.9 x 2명)

비용 결산

  • The Kitchen (Natural History Museum) £13.60
  • The Memories of India Kensington £55.00
  • TfL Single Journey Ticket £4.90 x 2명
  • 합계 £7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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