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 4일차 (7th May 2019, Tue): 대영박물관-영국도서관-킹스크로스역

디스트릭트선 (District Line) @09:34 (BST)

런던에 온 이후 계속 추위에 떨며 다녔더니 감기가 너무 심했다. 결국 아침 10시에 여는 대영박물관으로 가기 전에, 전날 공휴일이라 못 갔던 리든홀 마켓(Leadenhall Market)의 바버(Barbour)에 가서 비바람을 제대로 막을 수 있는 옷을 한 벌 사기로 했다.

공휴일 지난 후 첫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튜브가 많이 붐볐다. 러시아워의 전철이 미어터지는건 서울과 런던이 다를 게 없었다. 특히 오버그라운드역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 처음 온 차는 타지 못 했고, 다음 차도 유지보수 때문에 운휴되어 일정이 더 늦어졌다.

리든홀 마켓 (Leadenhall Market) @10:22 (BST)

리든홀 마켓 바버 매장

전날 코번트 가든에서는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사지 못 했던 바버 왁스재킷을 리든홀 마켓 바버에서 구입했다. 역시 한국인 직원은 없었지만 점원들이 아주 친절해서 기분 좋았다. 바버 옷은 참 예쁜데 비싸고, 비싼데 예쁜 것 같다. (£228.00) 택스 리펀이 가능해서 필요한 서류를 발급 받았고, 귀국 때 히드로 공항에서 신청한 후 두 달 만에 리펀을 받을 수 있었다.

구입한 옷은 비 올 때 쓸 수 있는 후드가 달린 비데일 라이트웨이트(Bedale Lightweight) 모델이다. 키 178cm의 마른 체형이 입기에는 M사이즈가 가장 좋았는데, 몸통 품이나 기장은 적당한 대신 서양 의류가 으레 그렇듯 소매가 손등을 거의 다 덮을 정도로 길었다. 왁스를 덜 먹인 대신 가벼운 모델로 골랐는데, 방수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무게도 그렇게 가볍다는 느낌은 받지 못 했다.

아내도 바버 재킷의 디자인과 색상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은데, 왁스재킷 특유의 촉감이 싫다고 구입하지 않았다. 확실히 미묘한 촉감이다. 여기에 주기적으로 리왁싱도 해줘야 하고, 보관에도 신경 써야 하니 가볍게 살 수 있는 옷은 아닌 것 같다.

대영박물관 가는 길 @10:24 (BST)

2층 버스에서 내려다 본 런던 도심

역시 평일 답게 사람이 북적거린다. 전날 Bank holiday의 황량했던 모습과 너무 큰 차이라 신기했다. 도로에는 자전거도 많은데, 브롬톤의 고향 답게 자전거 중 1/5 정도는 브롬톤인 것 같았다. 특히 다채로운 색상의 프레임을 섞은 믹스톤이 많고, 거의 빠짐 없이 헬멧을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10:59 (BST)

대영박물관 앞에 도착하자 짐검사 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런던의 여느 유명 관광지가 그렇듯 무기류나 캐리어 가방은 반입이 안 되니 주의하자. 짐 검사를 마치면 도네이션 해달라는 봉사자들과의 1:1 면담이 기다리고 있다. 남의 유물 뜯어다 전시하면서 도네이션 받는 것도 양심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 유물 관리에 기여하고 싶으면 박물관 내에도 도네이션 할 수 있는 곳이 많으니 여기는 가볍게 지나쳐도 좋다.

대영박물관 Great court
오디오 가이드; 다들 대영박물관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영국박물관

입장하자마자 바로 중앙의 Great Court로 가서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7.00) 대한항공에서 오디오 가이드 제작을 후원한 덕에 스카이패스 회원권이 있으면 할인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봤었는데, 막상 가보니 할인해주지 않았다. 오디오 가이드는 일부 유물에 한해 설명이 제공되었지만, 그 정도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됐다.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전에 먼저 이른 점심을 먹었다. Great Court 한켠에 식음료를 파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크림티 세트를 주문했다. (£5.50 x2) 근데 이게 아주 꿀맛이었다. 스콘, 클로티드 크림, 홍차로 구성된 세트인데 있을 건 다 있는데다 꽤나 든든하기까지 하다. 가격도 대영박물관 Great Court에서 먹는 것치고 저렴하게 느껴졌다.

대영박물관은 내부 구조가 무척 복잡해서 동선 짜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도 많고 유물도 많아 자칫 길 잃기 십상이다. Floor Plan을 잘 보고 돌아다니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무거운 짐이나 옷도 Cloakroom(유료)에 맡겨두고 최대한 가볍게 움직이는 게 좋겠다. 박물관 여기저기에 비치되어 무료로 이용 가능한 접이식 스툴은 가끔 앉을 때 편하긴 하겠지만 들고 다니기에는 꽤 묵직해서 체력 안배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대영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면 전시물의 높은 수준과 아름다움, 어마어마한 양에 반함과 동시에 끈질긴 약탈혼에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로제타석이나 이집트 미라 실물, 이스터섬 석상을 파내오거나 아시리아 궁전 벽체나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물을 통째로 뜯어와 전시할 정도다.

양적으로도 어마어마해서, 이날 6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유물만 보고 다녔지만 전체 전시실 중 절반도 채 못 봤을 정도였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서 평생 볼 세발솥을 다 봤듯, 대영박물관에서는 평생 볼 그리스 도기를 다 보고 온 것 같다. 한나절로는 하이라이트 유물만 겨우 둘러볼 수 있을 것 같고,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이틀 이상은 잡아야 할 것 같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다양한 문화권의 수준 높은 예술품을 보며 자라날 영국의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오직 대영박물관을 다 둘러보기 위해서라도 런던에 한 번 더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다른 나라에서 뜯어온 유물로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입장이니 무료 입장은 혜택이 아니라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드는, 복잡한 감상이 든 곳이었다.

영국도서관 (British Library) @17:29 (BST)

대영박물관에서 나와, 그리 멀지 않은 영국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 역시 처음 입장할 때 짐 검사가 있었다. 실제로 테러를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겠지만 꽤 철저하다는 생각을 했다.

도서실에 들어가려면 신분증(여권도 가능)을 이용해 등록해야 하고, 들어갈 때도 아주 까다로운 규정을 지켜야 한다. 카를 마르크스의 영국 망명 시절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 바로 영국도서관 도서실이어서 관심이 있었는데, 마르스크가 머물렀던 그 공간은 현재의 영국도서관이 아니라 대영박물관의 Great Court다보니 굳이 도서실에는 들어가보지 않았다.

전시실(Treasure Gallery)은 그런 번거로운 절차 없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영국도서관에 방문한 목적 역시 전시실이다. 1215년 잉글랜드의 존 왕에 의해 서명된 이래 사실상 영국의 헌법이자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마그나 카르타는 현재까지 4부의 원본이 남아있는데, 그 중 2부가 영국도서관에 있기 때문이다.

전시실 안쪽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 마그나 카르타가 전시되어 있었다. 사실 중세 영어로 적힌데다 세월이 흐르면서 글씨가 희미해져 문서에서 완전한 문장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았지만, 직접 본 것만으로도 묘한 만족감이 있었다. 바로 근처에 마련된 다양한 멀티미디어 매체를 이용해 마그나 카르타의 주요 내용과 영향에 대한 설명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전시실에는 마그나 카르타 뿐만 아니라 다른 귀중한 판본들이 많았다. <로빈슨 크루소>나 <레비아탄> 초판본, 간디가 인도 부왕에게 보낸 편지, 아일랜드 부활절 봉기 당시 보고서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종의 기원>도 있다고 들었는데 전시실에서 찾지는 못했다.

전시실 내부는 유독 어둡고 서늘한데다 조용하기까지 하다. 귀중한 판본을 보존하기 위해 플래시 사용 여부와 상관 없이 사진 촬영도 금지다. 스마트폰을 꺼내들면 어디선가 직원이 나타나서 제지한다.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말자.

킹스크로스역(Kings Cross Station) @18:24 (BST)

영국도서관 전시실을 둘러본 후 고풍스러운 세인트판크라스역(St Pancras International Station)을 지나면 바로 닿을 수 있는 킹스크로스역으로 향했다. 런던의 길거리를 걸으며 한국과는 다르다고 느꼈던 점이 몇 있었다. 수염을 기른 남성이 많고, ‘길빵’과 무단횡단이 잦고, 셀룰러 통신이 실내외를 막론하고 잘 안 터진다는 점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팬이지만, 이번 여행에는 일정이 부족해서 워너 브라너스 스튜디오 런던의 더 메이킹 오브 해리포터(The Making of Harry Potter) 투어에 참가하지 못 했다. 대신, 킹스크로스역에 있는 플랫폼 9 3/4에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별 달리 대단한 게 있지는 않다. 작중에서 짐수레를 끌고 벽 속으로 사라지던 바로 그 지점에 반쯤 벽에 박힌 짐수레가 있고, 기숙사 목도리를 빌려준다. 그리고 직원이 사진을 찍어주면 돈을 주고 사는 식이다. 가격은 꽤 비쌌다. (1장 £9.50, 2장 £15.00, 3장 £20.00) 사진을 직접 찍으면 돈을 안 내도 된다는데, 왠지 다들 돈을 내고 찍고 있었다. 나는 기념 사진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눈으로만 훑어보고 지나쳤다.

바로 옆에는 열댓평 정도 되어 보이는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물건의 구색이 꽤 잘 갖춰져 있어서 둘러볼만 했다. 가격은 역시나 꽤 비쌌는데, 구경하다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도비 틴싸인(£7.00) 하나와 도비 티셔츠 한 벌(£19.99)을 구입했다.

Nenno Pizza @18:55 (BST)

킹스크로스역 근처에 있는 Nenno Pizza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 편안하고 캐주얼한 느낌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주문은 카프리치오사 피자, 카르보나라 스파게티, 하우스와인 중 레드로 했다. 먼저 나온 와인은 약간의 산미와 페퍼민트, 블랙커런트향이 풍겼다. 너무 가볍지도 끈적이지도 않아서, 이후 나온 요리왁 함께 먹기 좋았다.

카르보나라는 기대했던 이탈리안식이었다. 달걀의 꾸덕한 맛과 염장육의 향이 잘 배어든 오일의 조화가 좋았다. 카프리치오사 피자 역시 맛있었다. 도우가 얇은데도 아주 쫄깃해서 식감을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토마토 소스는 감칠맛이 어마어마했다. 역시 어지간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실패할 수 없는 선택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38.50 = 카프리치오사 £11.25 + 스파게티 카르보나라 £10.25 + 하우스와인 250mL £6.75 x2 + 서비스 차지 10%)

피카딜리선(Piccadilly Line) @20:05 (BST)

아침에는 그렇게 붐볐었는데, 늦은 저녁 시간의 튜브 안은 꽤 한산하다. 튜브 안에서는 셀룰러 데이터 통신이 잘 안 되다보니, 미리 볼 거리나 읽을 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파리 브라우저의 읽기목록에 넣어둔 문서들을 읽으니 시간이 잘 갔다.

종이 트래블카드는 끝까지 말썽이다. 그나마 아내 것은 개찰구에서 이상 없이 동작하는데, 유독 내 것만 구입 이래 단 한 번도 정상동작하지 않았다. 매번 개찰구에서 직원에게 트래블카드를 보여주며 이거 동작 안 된다는 얘기를 해야 했다. 이런 일이 잦은지 다들 별 말 없이, 또는 스마트폰에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주의와 함께 수동으로 개찰구를 열어주었다.

비용 결산

  • Barbour Bedale Lightweight Waxjacket £228.00
  • 대영박물관 오디오 가이드 £7.00
  • 대영박물관 크림티 세트 £5.50 x2
  • 킹스크로스역 플랫폼 9 3/4 기념품 가게 £26.99
  • Nenno Pizza £38.50
  • 합계 £56.50 (+ 옷 £228.00, 선물 £2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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