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 5일차 (8th May 2019, Wed): 내셔널 갤러리-레스터 스퀘어-소호

DoubleTree by Hilton Chelsea @7:56 (BST)

전날 대영박물관에서 하루 종일 걸어다닌 여파에 더 심해진 감기가 겹쳐 제대로 씻지도 않고 침대에서 기절해버렸다. 그러고 새벽에 일어났더니 당연하게도 감기가 더 심해졌다. 목이 심하게 부어서 말을 하거나 침을 삼키기 힘들고, 코에서는 누런 콧물이 수도꼭지 연 것처럼 줄줄 흐른다. 덕분에 호텔 조식도 과일 위주로 간단히 챙겨먹었다.

해열진통제 중 염증 없을 때는 아세트아미노펜, 염증 있을 때는 이부프로펜

더 이상은 약 안 먹고 버틸 수가 없어 아내에게 이부프로펜을 좀 사와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호텔 근처 테스코 익스프레스에서 뉴로펜(Nurofen)을 찾을 수 있었단다. 이부프로펜 200mg 짜리 당의정 16개에 £2.20이었는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포함된 설명서를 잘 읽어본 후 첫날은 매 끼니마다 두 알씩, 이후에는 끼니마다 한 알씩 챙겨먹었다. 다행히 약이 잘 들어 몸이 점점 나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트라팔가 광장 가는 버스 @9:24 (BST)

호텔에서 나오니 비가 한창 쏟아졌다. 그런데도 우산 쓴 사람보다 그냥 맞고 가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워낙 비가 잦으니 현지인들도 그냥 체념하고 다니는 것 아닐까. 바스-스톤헨지 투어를 안내해준 가이드도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나도 우산 대신 그냥 전날 산 바버 왁스재킷의 후드를 뒤집어썼다. 다행히 제 역할을 잘 해서, 비바람을 완벽히 막아줬다. 어깨에 맨 가방과 신발도 방수가 되는 것으로 챙겼더니 걱정 없었다.

옥스퍼드 서커스 가는 22번 버스

비 오는 날 2층 버스 앞자리는 정말 의미 없다. 와이퍼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나마 옆유리로 보이는 런던의 아침 풍경을 열심히 바라봤다. 런던의 도로는 참 좁아서, 예전 마차 다니던 길 그대로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10:18 (BST)

원래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잠시 시간을 보낼 생각도 있었지만, 감기 때문에 일정이 조금 지체된데다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 바로 내셔널 갤러리로 들어갔다. 정문보다 솔즈버리 분관(Salisbury Wing) 쪽 입구로 들어가는 쪽이 연대순으로 감상하기 좋다고 해서 그리로 들어갔다.

역시나 입구에서는 짐 검사가 있었다. 특히 가방 크기 제한이 있었는데, 45 x 25 x 25 cm였다. 커다란 캐리어 가방은 반입하기 어렵고 맡겨 놓을 곳도 마땅치 않으니 아예 가지고 오지 않는 쪽이 좋겠다. 지하에는 무조건 외투를 맡겨둘 수 있는 클록룸이 있었다. 내셔널 갤러리를 제대로 보려고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이 걸어야 하니 최대한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게 좋겠다.

내부 구조가 아주 복잡하다. 회랑과 통로가 여기저기 얽혀있어 지도를 보고도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도는 유료(£2)로 판매되므로, 미리 인터넷에서 확인 가능한 PDF 지도를 참고하는 쪽이 경제적이겠다.

한국어 지원 오디오 가이드는 유료(£5.00)로 대여할 수 있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영어에 비하면 해설을 지원하는 작품 수가 아주 부족하다. 영어 해설도 속도나 발음이 알아듣기 어렵지 않았지만, 이날 시간이 부족해서 해설을 많이 듣지는 못 했다.

미술에는 별 조예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내셔널 갤러리에서의 그림 구경은 재밌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성화들에 흥미가 갔다. 그림의 주제로 제시된 성경의 사건들, 그 속에 화가가 숨겨놓은 의미들을 찾아보는 과정이 특히 즐거웠다. 기독교도는 아니지만 성경 자체는 유대 민족 신화의 알레고리이자 서양 문화의 원천으로서 여러번 읽었는데, 그때 얻은 배경 지식이 많은 도움이 됐다.

오전 10시쯤 들어간 내셔널 갤러리에서 그림 보는 데 정신이 팔려있다 보니 어느새 오후 4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점심도 굶어가며 열심히 봤지만 결국 모든 그림을 다 보지는 못 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그림은 주요 작품에만 선택과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여느 대형 미술관이 으레 그렇듯, 여기도 그림을 마음껏 보려면 적어도 이틀은 필요할 것 같다.

오전에는 비가 워낙 많이 와서 제대로 못 봤던 트라팔가 광장을 내셔널 갤러리 본관 2층에서 이어지는 주랑 현관에서 내려다봤다. 어느새 비가 잦아들고 군데군데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트라팔가 광장을 약간 높은 곳에서 조망하기 괜찮은 장소였다.

Poppie’s Fish & Chips, Soho @17:18 (BST)

내셔널 갤러리에서 북쪽으로 두 블럭 정도 걸어, 소호에 있는 피쉬앤칩스 가게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 아내가 찾아놨던 가게인데, 1952년부터 영업한 곳이고 상도 받았다고 입구에 적혀있었다. 한국인들에게도 꽤 유명한 곳인 모양이다. 자리 잡고 앉아있는 동안 현지인보다 한국인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가게 내부는 편안한 분위기로, 60-70년대 영국 락 카페처럼 꾸며져 있었다. 좌석은 넓지 않은 편이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스탭들은 징 박힌 가죽옷을 차려입었는데, 아주 유쾌해서 즐겁게 대화할 수 있었다. (게이 코드 아닌가?) 구글 리뷰에서는 인종 차별을 느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나는 딱히 그런 부분은 느끼지 못 했었다.

먼저 맥주를 주문해서 마셨다. Campdon Pale Ale(£4.65)은 도수만 두 자리에 미치지 못한다 뿐이지 홉향이 싱그럽고 강해서 IPA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시원하고 상쾌한 맥주였다.

음식은 피쉬앤칩스 해덕 레귤러(Traditional Fish & Chips, Haddock, Regular £13.95), 칼라마리 링(Calamari Rings, £12.90)을 주문했다. 음식 하나에 한국 돈으로 1만원 중반대니 가격은 꽤 부담스럽다. 여기에 서비스 차지 15%가 또 추가되니 더욱 그렇다.

피쉬앤칩스는 레귤러 사이즈도 양이 어마어마했다. 해덕은 필렛 두 조각을 튀겨냈는데, 겉은 아주 바삭해서 씹는 식감이 좋았다. 속은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워 무난히 먹을 수 있었다. 생선튀김이지만 기름 처리를 잘 했는지 눅눅하거나 쩐내 없이 깔끔했다.

칩스는 피쉬보다 더 인상 깊었다. 한국의 패스트푸드점에서 보던 얇은 감자튀김이 아니라, 엄지손가락만큼 큼직하게 조각내어 튀겨냈다. 겉은 피쉬처럼 바삭한데, 속이 아주 크리미해서 칩스만 먹든 다른 소스와 곁들여 먹든 아주 잘 어울렸다.

칼라마리는 한국에서도 많이 먹던 오징어 튀김 같았다. 튀김옷이 아주 얇고 크리스피한 게 독특했다. 맥주와 곁들여 먹는 술 안주로 괜찮았다.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 @18:26 (BST)

저녁을 배불리 먹고 레스터 스퀘어에서 피카딜리 서커스로 이어지는 영국의 번화가를 걸었다. 이른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고 가게들도 모두 성업 중이었다.

먼저 간 곳은 레스터 스퀘어에 있는 레고스토어였다. 레고 주제의 유튜브 채널에서 본 적 있는 곳이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그리 넓지는 않았다. 대신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대체로 정신 없는 분위기였다. 1-2층에 걸쳐 있는 레고 빅벤이나 벽을 장식한 레고 런던 디오라마가 눈길을 끌었다.

레고스토어 바로 옆의 TWG 역시 아주 붐볐다. 차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다양했고 또 대부분의 차들을 시향해볼 수 있어서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틴캔도 예뻐서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함을 느낄 수 있었다.

BBC 드라마 셜록의 오프닝으로 익숙한 피카딜리 서커스의 피카딜리 라이트를 지나, 포트넘&메이슨에 들렀다. 금방 들렀던 TWG도 차의 가짓수가 많다 싶었는데, 포트넘&메이슨은 다류가 비치된 1층만으로도 TWG보다 규모가 크고 종류도 더 많아보였다. 분위기도 좀 더 고급진 느낌이었다.

“TEA, GLORIOUS TEA!”

한국 사람이 아주 많아서, 수트를 잘 차려입은 점원들이 아니었으면 여기가 런던인지 서울인지 알아보기 힘들었을 것 같다. 다들 바구니 싸가는 분위기였는데, 아내도 선물할 차와 쿠키를 여기서 조금씩 샀다. 포장이 고급져서 확실히 선물용으로 좋아보인다. 나도 다구의 예쁨에 홀려 하마터면 충동구매할뻔 했지만, 겨우 돌아설 수 있었다.

Doubletree by Hilton Chelsea @20:42 (BST)

쇼핑한 물건들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호텔로 돌아왔다. 해가 워낙 길다보니 서머타임 중 저녁 9시가 다 됐는데도 아직 해가 다 넘어가지 않았다.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던 하루였다. 런던에서는 그냥 언제든 비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쪽이 안전할 것 같다.

이날 밥도 거르고 내셔널 갤러리에서 하루 종일 서 있었던 덕에 역시 체력 소모가 컸다. 며칠째 휴식 없이 강행군 중이라 이후 일정은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정해야 겠다.

비용 결산

  • Nurofen 200mg 16 tablets (Tesco Express) £2.20
  • National Gallery, Audio Guide £5.00
  • Poppie’s Fish & Chips £41.23 (Service Charge 15% 포함)
  • 합계 £48.43

2019 런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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