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 2일차 (5th May 2019, Sun): 바스-스톤헨지 투어

Doubletree by Hilton Chelsea @06:10 (BST)

평소 한국에서도 새벽 6시 전에 일어나는 우리 부부는 영국 여행 중에도 무척 일찍 일어났다. 특히 이날은 한국에서 미리 신청해둔 바스(Bath)-스톤헨지(Stonehenge) 투어가 있어 일찍 일어나야 하기도 했다.

호텔 조식은 오전 7시부터 제공됐는데, 투어 집합시간인 8시에 맞추려면 호텔 조식을 챙겨먹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그래서 호텔 조식 대신 전날 패딩턴역 M&S에서 사 온 샌드위치와 우유로 아침을 대신하기로 했다.

샌드위치 안에는 쇠고기가 빈틈 없이 채워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육향과 소금간이 꽤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 각각 머스타드향과 허브향이 제법 났다. 다행히 나는 이런 향이 강한 음식에 별 거부감 없어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었다.

우유에서는 의외로 한국의 저온 살균된 우유 정도의 맛 정도만 느낄 수 있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좀 더 크리미하고 고소할 거라는 기대는 채워주지 못 했다.

해머스미스역 (Hammersmith Station) @7:40 (BST)

투어 출발 예정시간에 맞추어 해머스미스역으로 출발했다. 숙소에서 해머스미스역까지는 호텔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다보니 도시 전체가 대체로 인적 드물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내 트래블카드가 전날 패딩턴역에서 구입하자마자 망가져놔서, 여행 내내 개찰구 지날 때마다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하는 튜브보다 그냥 트래블카드를 보여주면 그만인 버스 타는 쪽이 훨씬 편했다.

해머스미스역은 아케이드가 결합된 제법 규모 있어 보이는 역이었다. 역시 인적은 극히 드물고 열린 가게도 없었다. 그 와중에 개찰구 앞에 ‘Thought of the DAY’라고 해서 적어둔 인용구가 눈에 띄기도 했다. (근데 구글링 해보니 에머슨이 한 말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는 모양이다.)

투어 출발 시간인 8시에 임박하자 한국 사람 여럿이 집합 장소였던 테스코 앞으로 모여들었다. 스무 명 가까운 투어 참가자 중 절대 다수가 여성이었고, 남성은 나처럼 가족 동반으로 온 서너 명 밖에 없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하긴, 나 같아도 런던에 동성 친구와는 같이 오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바스 가는 길 @8:51 (BST)

투어비는 1인당 한국에서 지불한 예약금 4만원에 현지지불금 £60, 현지 입장료와 식비 별도였다. 투어에는 한국인 가이드와 버스, 안내를 위한 무선 수신기 대여까지만 포함이었다. 생각보다 비싼 투어다.

먼저 바스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일랜드와 영국에 각각 2년씩 살았다는 가이드로부터 영국과 영국 문화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재미있고 유용한 내용이 많았지만, 다들 아침 일찍 나와서인지 졸려하는 분위기였다.

런던을 벗어나 교외로 접어들자 버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생경했다. 한국의 교외는 논밭 너머로 푸른 산이 겹겹이 펼쳐지는데, 잉글랜드의 교외는 높아봐야 야트막한 언덕 정도를 빼면 평탄한 농경지와 방목지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중간중간 말이나 양이 흩어져 풀 뜯는 모습, 꽤 자주 눈에 띄었던 로드킬 사체, 하늘을 둥글게 맴도는 맹금류까지 모두가 낯선 느낌이었다.

바스(Bath) @11:17 (BST)

저 멀리 보이는 곳이 바스

서양 역사서나 소설에는 계곡이 들어간 지명이 종종 등장한다. 계곡에 사람들이 모여살기도 하고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왜 굳이 그런 곳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지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국에서의 계곡이란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곳이니까.

하지만 바스에 와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스는 강 양안을 따라 완만하게 솟은 언덕에 자리 잡은, 말 그대로 계곡 도시였다. 낮은 산비탈을 따라 18세기 양식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어, 런던보다도 훨씬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이날 오전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 새파란 하늘과 서늘하고 맑은 공기, 따뜻한 햇빛의 조화 덕에 도시가 더욱 아름다워보였다.

바스에서는 로열 크레센트(Royal Crescent), 서커스(The Circus), 제인 오스틴 센터(The Jane Austin Centre) 순서로 가이드 인솔 하에 워킹 투어가 진행됐다. 이후 외부 가이드 투어가 안 되는 로만 바스(The Roman Bath)에 입장해서 각자 둘러보고, 점심 식사 후, 풀테니 다리(Pulteney Bridge)를 버스에 탄 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로열 크레센트
서커스 중 일부

로열 크레센트와 서커스는 건물의 외관과 특징, 역사적 배경 설명을 들은 후 여기에서 누가 살았었는지에 대해 듣는 정도였다. 제인 오스틴 센터는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15분정도 주어졌는데, 화장실 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거의 둘러보질 못 했다. 건물 자체는 아주 작고 좁았지만 전시물이 꽤 충실해보였고, 기념품 가게도 괜찮아보였는데 제대로 둘러보질 못 했다.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되는 단체 투어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로만 바스 가는 길에는 로마 시대 성벽이 조금 남아있는 곳이 있었다. 따로 관리는 안 되는 모양인지 성벽 위에 쓰레기와 빈 술병이 널부러진 걸 보니 안타까웠다. 로만 바스 바로 앞에서는 바스 수도원(Bath Abbey)도 있었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중세 수도원으로, 시간이 허락한다면 둘러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 해 아쉬움이 있었다.

로만 바스

로만 바스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티켓을 구입하는데도 한참 줄을 서야 했다. 입장료는 £20.00으로, 한국어 멀티미디어 가이드 포함이었다. 제공된 멀티미디어 가이드가 꽤 잘 되어 있는데다 시설 자체의 복원도 충실히 해놓아 아주 흥미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적어도 서너 시간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는데, 투어 일정상 단 한 시간 밖에 허락되지 않아 대충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전시 막바지에는 온천수를 직접 마셔볼 수 있는데, 쇠맛이 아주 강렬했다. 비위가 약하면 굳이 마셔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후 주어진 점심식사 겸 자유시간에는 구글맵에서 평이 좋은 식당 몇 군데에 도전해봤지만 대부분 예약이 다 차 있거나 자리가 없어 앉을 수 없었다. 펍에도 가봤는데, 일반 식당과는 자리 잡고 주문하는 방법이 다르다보니 한참 헤매기만 하다 결국 아무것도 못 먹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대신 길거리의 작은 인도 음식점에서 팔라펠(Falafel)과 사모사(Samosa)가 든 커리랩과 차이(Chai)로 점심식사를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좌석 없이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양이 푸짐하고 내용물이 실해서 먹고 보니 꽤 든든했다. 커리랩 £5.00, 차이 £2.00으로, 영국 치고 가격도 저렴했다.

이후 버스에 올라 간단히 풀테니 다리를 둘러봤다.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와 유명해졌다는데, 다리 자체는 영화 ‘향수’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위에 건물이 있다는 것 말고는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보다 근처의 공원이 잘 꾸며져 있어 보기 좋았다.

바스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근처 언덕 위에 잠시 멈춰 바스를 전체적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포토 타임이었던 모양인데, 그 사이 날씨가 궂어져 사진 찍기 적당치 않기도 했고 역시 눈으로 직접 보고 기억에 남기는 쪽이 더 좋았다.

바스는 전체적으로 18세기의 영국 도시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장소였다. 비록 관광지의 느낌이 강했고 투어로서는 불과 서너 시간 밖에는 머물지 못 했지만, 둘러볼만한 건축물이나 박물관이 있어 자유여행으로 왔다면 적어도 만 하루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있는 곳 같았다.

스톤헨지 가는 길 @14:23 (BST)

이날 투어 중 둘러본 잉글랜드 교외에는 목초지가 아주 많았다. 방목해둔 양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시대의 주력 산업이 모직업이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유채꽃밭도 많았다. 한창 꽃이 핀 시기라 햇빛 아래 유채꽃밭 근처를 지나가면 눈부실 정도로 시야가 샛노랗게 빛났다. 한국 같았으면 이 정도 유채꽃밭에는 으레 유채꽃 축제가 열리고 관광객으로 넘쳐났을텐데 영국의 유채꽃밭에는 아무도 없는 게 신기했다. 처음에는 바이오 디젤 용도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질 좋은 유채유(또는 카놀라유)를 얻는 용도인 모양이다.

날씨는 하루 종일 변덕스레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했다. 해가 나면 쾌적했지만, 흐리고 바람이 불면 한기가 돌았다. 역시 옷을 좀 더 따뜻하게 입고 왔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스톤헨지(Stonehenge) @15:09 (BST)

스톤헨지 비지터 센터

스톤헨지 주차장에 내리면 주변은 비지터 센터(Visitor Centre) 외에는 허허벌판이다. 비지터 센터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21.10) 제법 시각적으로 잘 꾸며진 박물관을 먼저 관람했다. 확실히 박물관에서 사전 정보를 충분히 읽어보고 가는 쪽이 실제 스톤헨지에 도착해서도 이것저것 찾아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다.

박물관에서 나와, 입장료에 포함된 셔틀버스를 타고 비지터 센터에서 약 2km 떨어진 스톤헨지로 향했다. 걸어가는 사람도 많아보였는데, 스톤헨지 가는 길에도 여러 유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걷는 것도 꽤 끌렸지만, 투어 중이다보니 얌전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셔틀버스에 올랐다. 셔틀버스는 승하차 때 차고가 낮아져 오르내리기 편했다.

예전에는 스톤헨지 한가운데까지 직접 걸어들어갈 수도, 돌을 직접 만져볼 수도 있었다는데 이제는 보존 목적으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적당히 떨어진 관람로를 따라 둥글게 걸으며 스톤헨지를 여러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관람로 입구 근처는 관광객, 특히 중국 사람들로 아주 붐볐다. 대신 관람로를 따라 입구 반대쪽으로 가면 스톤헨지를 제법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영국 오기 전에 읽었던 책들이나 박물관에서 보고 온 정보들을 실물과 맞춰보는 과정도 재미있었지만, 내가 스톤헨지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토머스 하디의 소설 ‘더버빌가의 테스’ 후반부의 한 장면이었다. 결국 고립되어 사회적 편견의 제물로 바쳐지고 만 주인공의 운명을 나타내는 장치로 나온 것이 스톤헨지였는데, 실제로 와보니 황량한 벌판 가운데 홀로 솟아있는 모습 덕에 소설 속의 장면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스톤헨지 관람을 마치고 비지터 센터로 다시 돌아왔다. 나가는 길에는 당연하게도 기념품 가게를 거치도록 동선이 짜여 있었다. 나는 여행 와서 기념품이나 쇼핑에 돈 쓰는 걸 아주 싫어하는데, 스톤헨지 기념품 가게는 구색이 아주 훌륭했다. 특히 영국의 유명한 왁스 재킷 회사인 바버(Barbour)와 콜라보한 후드 재킷이 있었는데 워낙 예쁘기도 했고 마침 평원에서 칼바람 맞다 온 터라 정말 구입해버릴 뻔 하기도 했다.

다시 투어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린 끝에 런던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동안 가능하면 잉글랜드 교외의 정경을 좀 더 눈에 담고 싶었지만, 하루 종일 추위에 덜덜 떨었던 터라 극심한 피로감에 결국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래도 잠들기 직전 자유질문 시간에 가이드에게 영국식 펍(Pub) 이용법을 물어볼 수 있었다. 일반 식당은 입구에서 좌석 배정, 주문, 계산까지 모두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루어진다. 펍은 정반대로, 들어가면 알아서 자리를 잡고, 역시 알아서 카운터로 가서 선불로 주문하고 필요하면 자리를 알려주는 식이란다. 이때 들었던 내용 덕분에 이후 여행 중에는 펍에서 즐거운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Nando’s Hammersmith @19:22 (BST)

투어 출발했던 해머스미스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역시 스톤헨지에서 덜덜 떨며 돌아다녔던 통에 배가 고팠다. 아내가 미리 알아뒀던 닭요리 전문 체인점인 Nando’s가 해머스미스역 바로 근처에 있어, 그리로 향했다.

치킨 한 마리에 사이드 큰 것 2개 또는 작은 것 4개가 제공되는 Full Platter(2인분)에 IPA 2병을 주문했다. 주문할 때 소스의 매운 정도(Extra mild-Mild-Medium-Hot-XX Hot)를 선택할 수 있었다. 사전 정보에 의하면 한국사람들에게는 ‘XX Hot’도 그리 매운 편이 아니라고 했는데, 나는 유독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편이라 ‘XX Hot’ 대신 한 단계 아래인 ‘Hot’으로 주문했다. (£31.15)

일단 양이 굉장히 많았다. 2인분이라고 했는데 치킨 뿐만 아니라 사이드의 양도 굉장히 많아서 사이드는 거의 남겼다. 맛은 아주 약간 매콤한 굽네치킨 비슷했다. 소스의 맛과 닭의 식감이 모두 비슷한 느낌이었다.

가게 한켠에는 여러 종류의 소스가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는 주문할 때 선택할 수 있었던 매운 소스들도 있었는데, 막상 가장 맵다는 ‘XX Hot’ 소스도 먹어보니 아주 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시 한국의 매운맛에 대한 기준이 유럽에 비해 꽤 높은 편인 모양이다.

비용 결산

  • 바스-스톤헨지 투어 현지지불금 £60.00 ×2
  • 로만 바스 입장료 £20.00 ×2
  • 점심 (Chaiwalla Indian Street Food) £7.00 ×2
  • 스톤헨지 입장료 £21.10 ×2
  • 저녁 (Nando Hammersmith) £31.15
  • 합계 £2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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