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 8일차 (11th May 2019, Sat): 런던-인천


2019 런던 여행


Doubletree by Hilton Chelsea @7:56 (BST)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챙겼다. 나와 아내 둘 다 영국 올 때보다 조금씩 짐이 늘었다. 나는 추위를 이기지 못 해서 구입한 바버 재킷 때문에, 아내는 포트넘&메이슨 등에서 구입한 선물들 때문이다. 다행히 둘 다 가방에 여유가 있어서, 짐 싸기 어렵지 않았다.

Peak Design Travel Backpack

여느 유럽 도시가 그렇듯이, 런던도 바퀴 달린 캐리어 가방으로 다니기 만만치 않아보였다. 다른 도시들의 장애물이 코블스톤이라면, 런던에서는 유독 좁은 인도와 튜브역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계단이 캐리어 가방 사용을 힘들게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짐가방으로 Peak Design의 Travel Backpack 45L, 보조가방으로 Peak Design의 Everyday Sling 5L를 각각 사용했다. 둘 다 몸에 잘 고정되어 기동성 있게 움직이기 좋고, 메고 벗기 편하고, 방수에 충실해서 비가 잦은 영국에서도 소지품을 잘 지켜줬다. 백팩은 대한항공과 영국항공 모두의 기내 반입 기준을 충족해서, 굳이 수화물 위탁할 필요가 없었다.

체크아웃 전 호텔 조식을 마지막으로 먹었다. 막날에서야 말로만 듣던 영국의 명물, 마마이트가 식당에 구비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호기심에 집어들어 식빵에 아주 얇게 발라 먹어봤다. 묘한 시큼함에 강렬한 단짠, 감칠맛이 몰려왔다. 익숙한 맛은 아니지만, 어울리는 음식에 곁들이면 맛을 더욱 돋구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Tesco Express, Imperial Wharf @8:54 (BST)

호텔에서 나와 바로 옆 테스코 익스프레스에 음료수를 사러 갔다. 사실 음료수가 꼭 필요한 건 아니었는데, 파운드화 잔돈이 어중간하게 남아있어 모두 털어내기 위함이었다. 치열한 고민 끝에 몇 가지 음료수를 조합해서 동전 하나 남기지 않고 파운드화를 깔끔하게 다 털어낼 수 있었다. (£2.47)

영국 히드로 국제공항 @10:18 (BST)

패딩턴 역을 떠나는 히드로 익스프레스 안에서

호텔 근처 임페리얼 워프역에서 튜브로 패딩턴역으로 와서,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타니 순식간에 공항에 도착했다. 피카딜리선 타는 것보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역시 좌석이 편하고 넓고 조용해서 좋았다.

공항에서는 위탁할 수하물이 없다보니 줄 서지 않고 간편하게 셀프 체크인을 했다. 기계에서 인쇄되어 나온 항공권 재질이 너무 저렴해보여 공항에서의 재미가 좀 떨어지는 게 아쉬웠다.

바버 재킷 택스 리펀도 신청했다. 히드로 공항의 택스 리펀 창구가 줄이 긴 걸로 악명 높아서, 안 되면 에어 사이드에서 택스 리펀 신청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랜드 사이드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보다 먼저 온 중국 사람은 서류 작성을 안해놔서 담당자와 한참 실랑이 중이었는데, 나는 호텔에서 미리 서류 준비를 다 해온 덕에 금방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택스 리펀을 현금으로 받으면 또 귀찮은 파운드화가 생기는데다 추가 수수료가 있어 신용카드로 신청했는데, 5월 11일에 신청한 택스 리펀이 6월 25일에 카드 일부 승인취소 형태로 완료됐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처리는 정상적으로 되어 다행이다.

입국 때보다는 훨씬 간단한 보안 검색을 통과하고 출국장으로 들어서면 난민촌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 중 하나 답게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앉을 자리조차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저런 가게들도 많았는데, 특히 해리포터 샵이 눈에 띄었다. 킹스크로스역에서 들렀던 9 3/4 정거장 샵과는 물건 구색이 미묘하게 달라서 또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위스키의 나라 답게 면세점에는 위스키가 아주 다양하게 갖춰져 있었다. 특히 처음 보는 위스키가 많아 눈 호강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BA 17 기내 @12:12 (BST)

오는 길은 대한항공 일등석이었는데 가는 길은 영국항공 이코노미석이다. 어마어마한 간극이 느껴진다. 대신, 영국항공 이코노미석은 마침 런던 착발 항공편에 대한 마일리지 발권 50% 할인이 있어 원월드 마일리지 이용해서 저렴하게 발권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마스크를 당기세요

누가 영국항공 아니랄까봐, 기내 안내방송에 유명한 영국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마이클 케인 경을 보고서는 너무 황송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승무원들은 대체로 연세 지긋한 분들이셨다. 한국 항공사 승무원들의 나긋나긋한 서비스도 좋지만, 무거운 짐을 번쩍번쩍 들어올리거나 기내 난동자를 제압할 수 있는 강인한 팔뚝을 가진 승무원 쪽이 왠지 좀 더 안심이 된다.

바로 뒷자리에는 한국 여자분 여럿이 탔는데, 비행기 타자마자부터 몇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수다를 떠는 통에 편안한 비행에 많은 방해가 됐다.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했다. 어쩜 저렇게 남의 얘기를 몇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륙하자마자 음료 서비스가 먼저 시작됐다. 아내와 같이 영국 맥주를 외친 끝에 스코틀랜드 브루어리인 브류독(Brewdog)의 캔 맥주를 받을 수 있었다. 영국항공과 콜라보한 제품이었는데 ‘Transatalantic IPA’라니, 비록 인천 갈 때는 대서양을 건너지 않지만 네이밍 한 번 신박했다. 맛도 깔끔하고 좋았다.

BA 17 기내 @18:34 (BST)

이제 절반쯤 왔다. 아무래도 완전히 다리 뻗고 누울 수 있었던 일등석에 비하면 많이 불편하다. 그래도 기내식(토마토소스 파스타)가 영국 요리의 악명이 무색하게 꽤 괜찮았던데다 양도 다 먹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푸짐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매그넘 초콜릿까지 나눠줬는데, 나는 안 먹었지만 아내 말로는 맛있었단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사방에서 라면 냄새가 진동한다. 대체 왜 기내에서 굳이 컵라면 서비스를 하는걸까. 나도 평소에는 라면 좋아하지만, 맵고 기름진 냄새를 맡으니 속이 메슥거렸다. 그렇게 푸짐한 기내식에 간식까지 먹고서 컵라면을 또 드시는 분들이 참 대단해보이기도 했다.

인천국제공항 @7:55 (KST+1)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위탁 수하물 없이 기내 수하물만으로 하는 여행의 장점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부터 입국장을 나오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여기에 한 번 맛들이고 나면 다시는 수하물을 위탁할 수 없게 된다.

일정이 생각보다 길지 않아 아주 밀도 높고 빡빡하게 다녀온 영국 여행이었다. 특히 영국 날씨를 만만히 보고 옷을 얇게 입고 갔다 제대로 감기가 들어 여행기간 내내 고생한데다 예상치 못한 큰 지출(바버 왁스재킷)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스톤헨지와 대영박물관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인 런던 시내를 걸어서 또 버스를 타고 돌아보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대도시의 독특함을 느껴볼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런던 여행 7일차 (10th May 2019, Fri): 사우스 켄싱턴(자연사/과학/V&A 박물관-하이드 파크)


2019 런던 여행


Doubletree by Hilton Chelsea @8:25 (BST)

런던 여행의 사실상 마지막 날이다. 다음날이면 오전 중에 짐 싸서 공항으로 가야한다. 바깥 날씨는 여전히 흐리다. 런던 온 이래 처음 며칠 빼면 맑은 날씨 본 때가 정말 손에 꼽는 것 같다.

호텔 조식을 매일 같이 먹다보니 물리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여행이나 출장 다니면서도 호텔 조식에 만족해본 적은 몇 번 없긴 한데, 이번에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게다가 굳이 꼬박꼬박 챙겨먹었기까지 했으니 당연히 물릴만도 하다.

베이컨은 소금 뿌린 삼겹살 같아서, 기대했던 달콤한 훈연향을 느끼기 어려웠다. 소시지와 해시 브라운도 그저 그렇다. 그나마 시큼하고 달짝지근해서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HP 소스를 곁들이니 먹을만 했지만, 대신 소스맛 밖에 나지 않았다는 게 함정. 버진 메리는 시큼하고 짭잘했다.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스탬퍼드 브릿지 앞 (Stamford Bridge) @9:56 (BST)

이날은 사우스켄싱턴에 나란히 위치한 박물관 세 곳에 가보기로 했다.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이 그곳이다. 사실 하루에 다 보기는 힘든 곳이지만 여행 일정이 부족해서 약간 무리를 하기로 했다.

원래 목표는 오전에 자연사 박물관, 오후에 과학박물관, 저녁에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을 보는 것이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22시까지 연장 개관을 하기 때문에 잡은 일정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금요일 야간에는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극히 일부 전시관만 개방됐다. 홈페이지에도 지나가듯 언급되어 있었는데, 잘 못 보고 지나친 탓이었다.

호텔에서 나와 버스 타러 갔는데, Citymapper가 알려준 정류장이 마침 스탬퍼드 브릿지 바로 앞이었다. 전날 유로파리그 경기가 있었던 곳인데, 그래서인지 방송사에서 리포트를 녹화하는 모습도 보였다.

런던 와서 길 찾는 데는 구글맵과 Citymapper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구글맵은 주로 식당 같은 장소에 대한 평이나 길 찾는 데 쓰고, Citymapper는 ‘여기에서 저기까지’ 가는 방법에 대한 안내를 받는 데 썼다.

특히 Citymapper는 튜브 공사 정보가 빠르게 반영되고, 탑승 중 목적지가 다가오면 미리 알림을 띄워주어 편했다. 실시간으로 GPS를 쓰니 배터리 소모가 컸지만 충분히 감수할만한 편리함이었다.

Natural History Museum (자연사 박물관) @10:20 (BST)

자연사 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아름다운 건물 외관이었다. 멀리서 본 자연사 박물관 건물은 마치 거대한 독일식 궁정 건물 같아보였다. 가까이 다가서면, 여러 동식물의 모습이 빼곡히 세공된 부조물이 눈에 띈다. 여느 장식 하나 허투로 만들어지지 않으면서도 건물의 목적을 뚜렷이 나타내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기부 창구를 지나 로비로 들어서면,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대왕고래(Blue whale)의 거대한 골격이 위압감과 함께 경의로움을 느끼게 했다. 로비 양측에는 마스토돈, 공룡 화석, 운석, 산호, 청새치 등 자연사 박물관에서 다루는 주제를 상징하면서도 흥미를 강하게 잡아끌 수 있는 전시물이 하이라이트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역사가 19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박물관이지만, 많은 전시물들이 21세기의 눈높이에 맞게 잘 관리되어 둘러보기 좋았다. 특히 공룡관은 마치 다크라이드를 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흥미로운 구성이었다. 일부 오래되어 보이는 전시관도 있었지만, 내용을 읽어보고 즐기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대부분의 성인에게는 흥미끌 만한 요소가 별로 없기는 하다. 대신 아이들이 보기에는 정말 구성이 잘 되어 있었고, 이런 전시물을 둘러보는 걸 좋아하는 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날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세 시간 정도 머물렀다. 이 정도 시간으로는 당연하게도 모든 전시실을 다 볼 수 없어서, 블루존 전부와 그린존, 레드존 전시 중 관심가는 곳 몇 군데를 꼽아서 둘러보는 선에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레드존은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로도 갈 수 있지만, 1층 Earth Hall에서 스테고사우루스 화석 옆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는 경로가 더 나은 것 같다. 체력을 아낄 수도 있고, 에스컬레이터가 관통해서 지나가는 구조물이 꽤나 멋지기 때문이다.

평일 오전에 방문했는데도 사람이 아주 많았다. 특히 아이들이 아주 많아서, 특히 공룡관 같은 곳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아이들이다보니 시끄럽기도 해서, 시간을 들여 전시물을 깊이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박물관은 규모가 크고 동선이 복잡해서 길을 헤매기 딱 좋은 구조다. 지도를 무료로 주면 좋겠는데, 지도나 가이드북은 유료인데다 한국어는 제공되지 않는다. 대신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PDF 파일로 된 지도를 이용하면 그나마 편리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

The Kitchen @13:28 (BST)

점심은 자연사 박물관 1층의 키친에서 크림티 세트 2인분을 주문해서 먹었다. (£13.60) 대영박물관보다는 아주 약간 못하다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박물관 안에서 먹는 식사치고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특히 영국에서 먹는 클로티드 크림의 맛이 신기하게 좋아서 크림티 먹는 재미가 있었다. 여기 말고도 박물관 안에는 간단한 식사나 간식을 파는 곳이 있어, 시간만 충분하다면 하루 종일 죽치고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과학박물관 (Science Museum) @14:21 (BST)

자연사박물관 바로 북쪽에 위치한 과학박물관은 이날 방문한 다른 박물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았다. 대신, 전시물의 밀도가 굉장히 높아 제대로 둘러보려면 다른 박물관들 못지 않게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과학박물관 역시 1층(Ground Floor)에 방문자의 흥미를 끌기 좋은 상징적인 전시물들이 전진배치되어 있었다. 증기기관, 방직기, 애플 1, DNA 나선구조, 브롬톤 자전거 등 현대 과학기술 분야의 발견과 발명을 나타내는 다양한 전시물들, 그리고 우주 탐사에 실제로 사용되었던 장갑이나 우주선 모듈을 보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산업혁명의 고향인 영국답게 산업혁명 시기의 전시물이 아주 훌륭했고, 합리주의 시대와 항공우주 분야의 전시 아주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인터액티브 프로그램도 꽤 많았는데, 특히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아이들에게 좋아보였다.

원래는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정성껏 둘러보려고 했는데, 역시 오늘 일정이 너무 빡빡했던데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써서 서둘러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특히 4층(Floor 3)의 시뮬레이터 체험을 못 해본 게 아쉽다.

엑시비션 로드 (Exhibition Road) @15:43

과학박물관과 V&A 박물관 사이 익시비션 로드 길가에 있는 벤치에 잠시 앉았다. 자연사 박물관 못지 않게 과학박물관에서도 많이 돌아다녔더니 다리에 피로가 쌓였다. 마침 날씨가 개어 하늘에서 해가 나기 시작했고, 길거리에서는 비누방울 거리공연도 한창이었다. 짧은 휴식이었지만 여유로운 오후였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Victoria and Albert Museum) @16:02

이날 V&A 박물관을 맨 마지막 방문지로 잡은 건 이유가 있었다. 매일 17:45까지 개관하지만 매주 금요일에는 22:00까지 개관한다는 안내를 V&A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봤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좀 많이 늦게 먹는다면, 오후 늦게 방문해도 V&A 박물관을 둘러보기에 시간이 꽤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분명 V&A 박물관은 금요일에 22시까지 열긴 열었다. 단, 17:45면 지하, 1층, 그리고 3층 전시실 중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시실을 닫아버린다. 상설전시를 제대로 보려면 금요일에도 17:45까지는 관람을 마쳐야 한다고 보는 게 맞겠다.

어쨌든 V&A 박물관은 생각보다 아주 거대한 곳이었다. 자연사 박물관과 과학박물관을 합쳐놓은 것 같은 크기였는데, 기나긴 회랑을 따라 지하(Floor -1)부터 5층(Floor 4)까지 다양한 연대와 분야에 걸친 엄청난 양의 전시물들이 있었다.

SOFT Brexit or HARD Brexit?

대영박물관에서 로마, 비잔틴, 중세 유물이 생각보다 적다고 생각했는데, 딱 그 시대의 각종 미술품들이 V&A 박물관에는 넘쳐났다. 엊그제 내셔널 갤러리에서 회화로 본 그 시대 그 장면들을 V&A 박물관에서는 조각과 직물, 건축물로 볼 수 있었다. 기념품 가게도 독특한 것이 많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제대로 보려면 여기도 대영박물관 못지 않게 적어도 하루 이상을 온전히 투자해야만 할 것 같다. 그만큼 전시물이 많고, 또 꼼꼼하게 읽어볼만한 거리도 많았다. 개인적으로도 영국에 와서 본 박물관 중에서는 대영박물관만큼이나 V&A 박물관이 손에 꼽을만큼 좋았다.

어마어마한 양의 귀금속들

다만 방문 시간을 잘못 맞춰 보고 싶었던 전시관의 절반도 채 보지 못 했다. 지하층의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품들, 1층의 주요 전시들, 3층의 어마무시한 양의 은세공품들을 보는 정도 밖에는 할 수 없었다.

V&A 박물관 역시 내부 구조가 복잡해서 지도 없이는 길 잃고 헤매기 딱 좋은 구조였다. 다행히 여기저기에 배치된 자원봉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길 잃지 않고 무사히 잘 둘러보고 나올 수 있었다.

하이드 파크 (Hyde Park) @18:55

아쉬움을 뒤로 하고 V&A 박물관을 나왔다. 해가 많이 길어져서, 저녁이 되었는데도 아직 해가 훤했다. 런던에 온 이래 이날 오후가 가장 날씨가 좋아서 이대로 들어가기 아까워 바로 근처에 있는 하이드 파크로 걸어가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의 하이드 파크는 드문드문 인적이 있는 조용한 곳이었다. 일단 날씨가 정말 좋았고, 오래된 나무가 가득한 숲이 자연에 가깝게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이런저런 동물들도 많이 보였고, 그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풀 향기, 꽃 향기가 그윽했다. 수시로 머리 위를 지나다니는 비행기만 아니면 망중한의 느낌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이드 파크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아내와 천천히 걸으며 런던 여행의 마지막날을 정리했다. 참 빠듯하고도 바쁘게 지내온 여행이었다. 아내는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에 체력이 방전되어 힘들어했고, 나도 생각보다 추웠던 런던 날씨에 감기가 제대로 들어 꽤 고생을 많이 했었다. 여행의 마지막에나마 하이드 파크에서 숲과 물, 하늘을 보며 여유를 즐긴 건 정말 잘 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Memories of India Kensington @19:58 (BST)

런던에서 식당을 돌아다니며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건, 세계 요리 전문점에 가면 대체로 그 나라 계통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태리 식당에 가면 정말 남유럽계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고, 인도 식당에 가면 역시 인도계 사람들이 서빙을 한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만찬은 인도 식당에서 하기로 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홀에서 바삐 돌아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인도계였다. 모두가 아주 쾌활하고 친절해서,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았다.

식당에서는 2인 메뉴(Menu for Two; Deluxe Platter)를 주문했다. 나중에 다 먹고보니 양이 어마어마해서, 둘이 아니라 셋이 먹어도 될 정도였다. 아주 배고픈 게 아니면 단품 조합으로 주문해도 될 것 같다.

가장 먼저 나오는 샐러드는 주로 오이에 고수 조합이었다. 나는 둘 다 좋아해서 에피타이저로서 아주 즐겁게 먹었다. 탄두리 치킨은 가슴살 부위였는데 보기보다 맵지 않고, 씹으면 안쪽에서 육즙이 터져나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토마토 기반의 양고기 커리는 이날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었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쪽이 단순히 소스맛만 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맛과 복잡한 향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경단처럼 보이는 고기 덩어리는 좀 짜긴 했지만 다른 향신료향도 잘 배어 있어 밥이나 난에 곁들여먹으니 적당했다.

치킨 커리는 대체로 달짝지근하고 코코넛이 들어간 맛이 났다. 같이 들어간 야채에서는, 잘 우려낸 채수 같은 푸짐한 야채 특유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밥와 난에 곁들여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밥은 인디카(안남미)였는데, 특유의 향과 날리는 느낌이 강했다. 역시 인디카 향에 거부감이 없다보니 맛있게 잘 먹었다. 인디카 향은 역시 한국 음식보다는 커리 같은 강렬하고 다양한 향신료가 가득한 동남아 음식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난도 쫄깃거리고 맛있었는데, 밥이 굉장히 많았던데 반해 난은 한 장 밖에 없어 좀 아쉬웠다.

다 먹고 나면 손 닦는 용도의 물수건과 후식 음료가 제공된다. 커피나 차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이걸 마시고 있으면 오렌지 초콜릿이 또 나온다. 맛은 딱 제주 감귤 초콜릿이다. 정말이지, 먹거리가 끝도 없이 나와서 방심할 수 없었던 식사였다. (£49.95 + Service Charge 10%)

이날 식사에서 가지고 있던 파운드화 지폐를 남김 없이 다 쓸 수 있었다. 또 언제 영국에 올지 알 수 없는 시점에 남은 파운드화를 갖고 있기 싫었는데, 다행히 계산이 잘 맞아들었다. 다음날 남은 동전까지 깨끗하게 다 털어내고 깔끔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임페리얼워프역 (Imperial Wharf Station) @22:06

기나긴 식사를 마치고 호텔 근처로 돌아왔다.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런던 시내는 늦은 시간임에도 행인도 많고 시끌시끌한 분위기였다.

호텔 바로 옆 Imperial Wharf역의 자동판매기에서 다음날 패딩턴역으로 가는 싱글 티켓을 신용카드로 샀다. 이날이 종이 위클리 트래블카드 유효기간 마지막날이어서 다음날 튜브 타려면 따로 티켓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오이스터 카드를 사용하는 게 훨씬 저렴했다. 하지만, 바쁜 출국날 오이스터 카드 환불 받기도 귀찮았고, 환불 받은 파운드화 보증금 역시 처치곤란이라 그냥 싱글 티켓 끊는 쪽을 택했다. (£4.9 x 2명)

비용 결산

  • The Kitchen (Natural History Museum) £13.60
  • The Memories of India Kensington £55.00
  • TfL Single Journey Ticket £4.90 x 2명
  • 합계 £78.40

런던 여행 6일차 (9th May 2019, Thu): 웨스트민스터 (웨스트민스터 사원-IWM 처칠 워룸-옥스퍼드 서커스)


2019 런던 여행


DoubleTree by Hilton Chelsea @7:48 (BST)

호텔 창문으로 보이는 풀럼 지역의 아침

전날 비가 많이 왔었는데 이날 아침은 화창했다. 물론 이제 런던 날씨에도 조금씩 익숙해지던 터라, 언제든 거센 비바람이 불 수 있는 전제 하에 외출 준비를 했다. 방수 되는 가방과 신발, 이틀 전에 산 왁스 재킷을 챙겨입고 우산도 따로 챙겼다.

이날 오후에는 특히 비가 거세게 내렸고 바람도 많이 불었었다. 완전히 생쥐꼴이 된 사람들도 많이 봤는데, 나는 준비를 잘 했던 덕분에 발이 젖거나 추위에 떨지 않을 수 있었다.

런던 와서 걸린 감기는 아주 제대로여서, 약을 챙겨먹는 와중에도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았다. 특히 기침 때문에 밤새 잠을 잘 자지 못 했다. 그나마 전날 테스코 익스프레스에서 구입해서 쟁여놓은 생수 12병 덕분에 계속 물을 마시며 버틸 수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아내도 전날까지 워낙 많이 걸었다보니 힘들어했다.

그래서 이날 원래 계획대로라면 웨스트민스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숙소로 오는 길에 첼시에 있는 국립육군박물관(National Army Museum)에 들를 예정이었지만, 일정을 조정해서 국립육군박물관 대신 옥스퍼드 서커스에 잠시 들렀다 일찍 숙소로 돌아오기로 했다.

버스 타고 웨스트민스터 가는 길 @9:38 (BST)

계획대로라면 웨스트민스터 사원 입장 시작시간인 9시 전에 웨스트민스터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출발이 늦었다. 나와 아내 둘 다 몸이 별로 좋지 못했던 탓이다.

종이 트래블카드가 계속 튜브 개찰구에서 인식이 안 된다. 덕분에 굳이 개찰구에 트래블카드를 인식시켜야 하는 튜브보다 기사에게 보여주면 그만인 버스를 더 선호하게 된다. 이날도 버스를 탔고, 윗층 덱 맨 앞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덕분에 가는 길에 런던의 평일 아침을 잘 둘러볼 수 있었다.

런던에 온 이래 적어도 도심에서는 오토바이를 거의 보지 못 했다. 대신 자전거가 정말 많았다. 대부분 헬멧을 쓰고, 교차로에서는 다들 수신호도 능숙하게들 했다. 자전거 중에서도 브롬톤이 꽤 많았는데, 다양한 마개조가 횡행하는 한국과는 달리 거의 순정 그대로 타는 걸로 보였다. 도로는 유독 폭이 좁아보였고, 로터리와 일방통행, 버스와 자전거 전용 신호 등도 자주 눈에 띄었다.

빅벤은 공사 중

원래 웨스트민스터에서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는 빅벤(Big Ben)이 딸린 웨스트민스터 궁전(Westminster Palace)다. 영국의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는 건물인데, 워낙 낡고 위험해 수 년 간에 걸친 공사가 진행 중이라 외부를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가는 길에 잠시 스쳐지나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의회가 열리지 않는 토요일에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일부가 외부인에게 개방되는데, 이번 런던 방문 일정이 토요일에 들어와서 그 다음주 토요일에 나가는 일정이라 시간이 맞지 않아 방문을 못 했다. 특히 BBC PMQ(Prime Minister’s Questions)를 즐겨봤던 터라 그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해 아쉬웠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Westminster Abbey) @10:17 (BST)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입장 개시 전에 미리 도착해서 줄 서 있으려고 했는데, 조금 늦게 도착했더니 아주 긴 줄을 만났다. 소매치기가 많은지 대기열 근처에 주의 표시가 여기저기 서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고딕 양식의 건물 외장도 아주 멋져서, 줄 서 있다 경치에 정신 팔려 있다 보면 주머니를 털려도 쉬이 알아채기 어려울 것 같다.

줄 서 있는 동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아침에 나올 때는 화창했었는데, 역시 런던 날씨의 변덕스러움은 어디 가지 않는다. 우산 대신 재킷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버티다 보니 어느새 입장할 수 있었다. 입장료는 2-for-1 바우처를 이용해 반값 할인을 받았다. (£23.00) 줄 서 있는 동안 바우처의 빈칸을 미리 채워두었더니 금새 처리가 됐다.

입장료에 포함된 멀티미디어 가이드는 한국어도 지원한다. 왠지 한국어 가이드 화자가 외국인인듯 특이한 억양이었다. 알아듣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무엇보다 다른 곳들의 오디오 가이드와 마찬가지로 내용이 충실해서 마음에 들었다.

사원 내부는 사원 외부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고딕 양식의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구조였다. 여기에 다양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성화, 목조 구조물들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많았던 건 무덤이었다. 세인트폴 성당에도 무덤이 많았지만,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시선 가는 곳마다 무덤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잉글랜드 왕가의 무덤처럼 크고 넓은 자리를 차지한 것도 있었고, 성당 바닥에 박힌 묘석이 그간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 덕에 닳고 닳아 거의 알아볼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굳이 멀티미디어 가이드의 도움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이작 뉴턴, 윌리엄 톰슨(캘빈 남작), 폴 디랙, 어니스트 러더퍼드, 조지프 톰슨, 마이클 패러데이, 제임스 맥스웰, 스티븐 호킹 등 물리학 거장들의 무덤 또는 명판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들의 업적 위에 현대 과학이 우뚝 서있듯, 그들이 묻힌 자리를 뒷세대 사람들이 찾아와 추모하며 영감과 동기부여를 받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은 전쟁 전몰자들의 이름을 눈에 잘 띄는 곳 여기저기에 많이 남기고 또 기려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웨스트민스터 내에서 유일하게 발에 밟히지 않는 장소로 알려진 무명 용사의 무덤 외에도, 참전 군인들을 기리기 위한 곳들이 꽤 눈에 자주 띄었다.

멀티미디어 가이드를 따라가는 투어는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멀티미디어 가이드에 포함되지 않은 공간들을 추가로 둘러보는 시간과, 줄 서는 시간까지 총 두 시간 정도면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투어 중에는 화장실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없으며,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럼에도 카메라를 꺼내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동아시아계였는데,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지 모르겠다.

Osteria dell’Angolo @12:45 (BST)

웨스트민스터역에서 마셤가(Marsham Street)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찾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구글맵이나 트립어드바이저 등에서 보기로는 가격이 꽤 비싸지만 돈값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먹어보니 틀린 평이 아니었다.

식전빵이 꽤 넉넉하게 나왔는데, 같이 나온 올리브 오일의 질이 아주 좋아서 기대가 더욱 높아졌다. 이어 나온 파스타들도 아주 훌륭했다. 메뉴판이나 영수증 사진을 찍어두지 않아 정확한 메뉴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토마토와 치즈의 강렬한 맛이 휘몰아쳐서 강렬한 감칠맛을 혀에 남겼다. 파스타는 핸드메이드로 만든다고 했는데, 노른자로 반죽한 생면 특유의 맛과 식감을 한껏 즐길 수 있었다. (£32.51, Service Charge 12.5% 포함)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 처칠의 전시내각 박물관 (IWM Churchill War Rooms) @13:51 (BST)

점심 식사 후, IWM 처칠 워룸으로 향했다. 식사하러 남쪽으로 꽤나 내려왔는데, 처칠 워룸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처라 다시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야 했다.

런던에서는 방수가 정말 절실하다

점심 먹는 동안 반짝 맑았던 날씨가 다시 험악해지며 비를 어마어마하게 쏟아냈다. 처칠 워룸 앞에 길게 늘어선 입장 대기줄 때문에 비를 쫄딱 맞으며 기다려야만 했다. 그나마 작은 우산과 방수되는 외투, 가방, 신발을 잘 챙겼던 덕분에 큰 불쾌함 없이 기다림의 시간을 젖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다.

처칠 워룸에서도 2-for-1 바우처를 사용해서 한 명치 입장료로 두 명이 입장할 수 있었다. (£22.00) 입장료에는 오디오 가이드 포함되어 있다. 다만 한국어는 지원되지 않는다. 대신 영어 가이드를 들었는데, 비교적 느리고 또박또박하게 읽어주어 알아듣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각 전시물마다 설명도 충실히 붙어있었다. 간단한 요약을 보고 싶을 때는 전시물의 설명을,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을 때는 오디오 가이드를 주의 깊게 들어보는 쪽이 도움이 됐다.

전시물은 2차대전사 또는 윈스턴 처칠 개인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윈스턴 처칠 개인에 대한 내용도 아주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었고, 2차 대전기 중 실제 영국 전쟁 내각의 다양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적당히 들어가며 둘러보는데는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아내가 많이 힘들어해서 조금 서둘러 나왔는데, 오디오 가이드의 내용을 모두 들어가며 충분히 또 꼼꼼히 즐기려면 두세 시간 이상 잡아야 할 것 같다. 윈스턴 처칠에 관심이 있다면 영상이나 연설 등을 듣는데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릴 수도 있겠다.

옥스퍼드 서커스 (Oxford Circus) @15:52 (BST)

처칠 워룸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옅게 흩날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한 그런 날씨였다.

원래는 국립육군박물관(National Army Museum)에 갈 예정이었지만, 나는 감기가 심했고 아내는 체력이 방전되어 오늘의 박물관 투어는 여기까지만 진행하기로 했다. 대신, 길거리나 가게들을 가볍게 둘러보고 저녁도 먹을 요량으로 버스를 타고 옥스퍼드 서커스로 갔다.

날씨가 꽤 궂은데도 옥스퍼드 서커스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런던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을만큼 번화하고 다양한 상점들이 성업 중이었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전광판만큼 유명한 옥스퍼드 서커스의 전광판 역시 이날 또 구경할 수 있었다.

한참 거리를 둘러보다 셀프릿지스 런던(Selfridges London)에 들어갔다. 런던에서도 손꼽히는 백화점 중 하나라고 하는데, 하이엔드 브랜드 가게들이 많았다. 중국인과 한국인이 많이 보였는데, 다들 커다란 쇼핑백을 대여섯개씩 팔에 걸고 다니는 점이 신기했다.

쇼윈도도 단순히 상품만 진열해둔 게 아니라 좀 더 명확한 주제를 표현하고 있었다. 특히 팻맥그라스랩(PAT McGRATH LABS)의 마치 철왕좌처럼 생긴 네온 장식물이 눈길을 끌었다.

Windmill Mayfair @17:07 (BST)

옥스퍼드 서커스에서 조금 걸어, 파이가 유명하다는 영국식 펍에 왔다. 런던에 왔으면서도 정작 펍에서 제대로 식사를 해본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 전에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닌데, 보통의 음식점들과는 이용 방법이 다른데 따로 안내가 없다보니 그냥 헤매다 나오고 말았었다. 막상 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데 말이다.

가게에 들어가서, 가능하다면 빈 테이블 하나를 잡아놓고, 다양한 맥주 탭이 늘어선 카운터에서 메뉴판을 보고 바텐더에게 주문하고 바로 계산하면 그만이다. 테이블을 잡은 경우, 어느 테이블인지를 주문할 때 따로 알려주면 된다. 맥주는 카운터에서 바로 받아오면 되고, 음식은 준비되면 테이블로 서빙해준다.

주문은 섀퍼드 파이(Shepherd’s pie), 스테이크 버섯 파이(Steak and mushroom pie), 그리고 IPA 두 잔으로 했다. (£42.00) 맥주는 탭에서 따라준 걸 바로 받아왔고, 파이는 사이드, 소스와 함께 테이블로 따로 서빙됐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드문드문 빈 자리가 있었는데, 파이를 서빙 받을 때 쯤에는 실내가 사람으로 꽉 차서 아주 시끌시끌해졌다. 가게 안팎에 선 채로 맥주 마시는 사람들도 많았다. 영국식 펍이 이런 분위기이구나 싶어 아주 재미있었다. 이 와중에 실내는 금연이라 담배 피우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 역시 마음에 들었다.

섀퍼드 파이는 양고기였는데, 아주 고소한 맛이 아주 좋았다. 양 냄새는 약간 있었지만, 나는 양 냄새가 너무 없으면 서운하게 느껴는 터라 오히려 반가웠다. 스테이크 버섯 파이는 패스트리 안에 넣어 익힌 장조림 같은 맛이었다. 베이스로 와인이 들어간듯 조금 시큼한 느낌도 있었다. 각각 양 냄새와 시큼함에 너무 예민하지 않다면 한국 사람 입맛에도 무난할 것 같다. 파이 하나의 양은 성인 남성 한 명이 딱 적당히 먹을 정도였다.

사이드로는 칩스와 그레이비 소스가 나왔는데, 이 그레이비 소스가 아주 좋았다. 케첩과 브라운 소스도 같이 나왔었는데, 그레이비 소스가 워낙 좋다보니 손이 잘 가질 않았다. 여기에 탭 IPA까지 곁들여지니 아주 꿀맛 같은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18:36 (BST)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번에도 종이 트래블카드 인식 문제가 번거로워 일부러 튜브 대신 버스를 탔다. 한창 퇴근 시간대라 길이 꽤 막혔다. 그래도 가능하면 버스 타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밖이 보이고, 셀룰러 데이터가 비교적 잘 터진다.

호텔에 가까워지니 불을 훤히 밝힌 펍 몇 개가 눈에 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날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첼시와 독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Eintracht Frankfurt) 간의 유로파리그 4강 경기가 있었다. 어쩐지 동네 골목마다 첼시 유니폼 입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펍에는 ‘Chelsea Fans Only’라고 써붙여놓기도 했더라니. 내가 첼시 팬이었으면 어떻게든 경기를 보려고 동분서주했을텐데, 축구에 관심 없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비용 결산

  • 웨스트민스터 사원 £23.00 (2-for-1)
  • Osteria dell’Angolo £32.51
  • IWM 처칠 워룸 £22.00 (2-for-1)
  • Windmill Mayfair £42.00
  • 합계 £119.51

런던 여행 5일차 (8th May 2019, Wed): 내셔널 갤러리-레스터 스퀘어-소호


2019 런던 여행


DoubleTree by Hilton Chelsea @7:56 (BST)

전날 대영박물관에서 하루 종일 걸어다닌 여파에 더 심해진 감기가 겹쳐 제대로 씻지도 않고 침대에서 기절해버렸다. 그러고 새벽에 일어났더니 당연하게도 감기가 더 심해졌다. 목이 심하게 부어서 말을 하거나 침을 삼키기 힘들고, 코에서는 누런 콧물이 수도꼭지 연 것처럼 줄줄 흐른다. 덕분에 호텔 조식도 과일 위주로 간단히 챙겨먹었다.

해열진통제 중 염증 없을 때는 아세트아미노펜, 염증 있을 때는 이부프로펜

더 이상은 약 안 먹고 버틸 수가 없어 아내에게 이부프로펜을 좀 사와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호텔 근처 테스코 익스프레스에서 뉴로펜(Nurofen)을 찾을 수 있었단다. 이부프로펜 200mg 짜리 당의정 16개에 £2.20이었는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포함된 설명서를 잘 읽어본 후 첫날은 매 끼니마다 두 알씩, 이후에는 끼니마다 한 알씩 챙겨먹었다. 다행히 약이 잘 들어 몸이 점점 나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트라팔가 광장 가는 버스 @9:24 (BST)

호텔에서 나오니 비가 한창 쏟아졌다. 그런데도 우산 쓴 사람보다 그냥 맞고 가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워낙 비가 잦으니 현지인들도 그냥 체념하고 다니는 것 아닐까. 바스-스톤헨지 투어를 안내해준 가이드도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나도 우산 대신 그냥 전날 산 바버 왁스재킷의 후드를 뒤집어썼다. 다행히 제 역할을 잘 해서, 비바람을 완벽히 막아줬다. 어깨에 맨 가방과 신발도 방수가 되는 것으로 챙겼더니 걱정 없었다.

옥스퍼드 서커스 가는 22번 버스

비 오는 날 2층 버스 앞자리는 정말 의미 없다. 와이퍼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나마 옆유리로 보이는 런던의 아침 풍경을 열심히 바라봤다. 런던의 도로는 참 좁아서, 예전 마차 다니던 길 그대로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10:18 (BST)

원래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잠시 시간을 보낼 생각도 있었지만, 감기 때문에 일정이 조금 지체된데다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 바로 내셔널 갤러리로 들어갔다. 정문보다 솔즈버리 분관(Salisbury Wing) 쪽 입구로 들어가는 쪽이 연대순으로 감상하기 좋다고 해서 그리로 들어갔다.

역시나 입구에서는 짐 검사가 있었다. 특히 가방 크기 제한이 있었는데, 45 x 25 x 25 cm였다. 커다란 캐리어 가방은 반입하기 어렵고 맡겨 놓을 곳도 마땅치 않으니 아예 가지고 오지 않는 쪽이 좋겠다. 지하에는 무조건 외투를 맡겨둘 수 있는 클록룸이 있었다. 내셔널 갤러리를 제대로 보려고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이 걸어야 하니 최대한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게 좋겠다.

내부 구조가 아주 복잡하다. 회랑과 통로가 여기저기 얽혀있어 지도를 보고도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도는 유료(£2)로 판매되므로, 미리 인터넷에서 확인 가능한 PDF 지도를 참고하는 쪽이 경제적이겠다.

한국어 지원 오디오 가이드는 유료(£5.00)로 대여할 수 있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영어에 비하면 해설을 지원하는 작품 수가 아주 부족하다. 영어 해설도 속도나 발음이 알아듣기 어렵지 않았지만, 이날 시간이 부족해서 해설을 많이 듣지는 못 했다.

미술에는 별 조예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내셔널 갤러리에서의 그림 구경은 재밌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성화들에 흥미가 갔다. 그림의 주제로 제시된 성경의 사건들, 그 속에 화가가 숨겨놓은 의미들을 찾아보는 과정이 특히 즐거웠다. 기독교도는 아니지만 성경 자체는 유대 민족 신화의 알레고리이자 서양 문화의 원천으로서 여러번 읽었는데, 그때 얻은 배경 지식이 많은 도움이 됐다.

오전 10시쯤 들어간 내셔널 갤러리에서 그림 보는 데 정신이 팔려있다 보니 어느새 오후 4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점심도 굶어가며 열심히 봤지만 결국 모든 그림을 다 보지는 못 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그림은 주요 작품에만 선택과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여느 대형 미술관이 으레 그렇듯, 여기도 그림을 마음껏 보려면 적어도 이틀은 필요할 것 같다.

오전에는 비가 워낙 많이 와서 제대로 못 봤던 트라팔가 광장을 내셔널 갤러리 본관 2층에서 이어지는 주랑 현관에서 내려다봤다. 어느새 비가 잦아들고 군데군데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트라팔가 광장을 약간 높은 곳에서 조망하기 괜찮은 장소였다.

Poppie’s Fish & Chips, Soho @17:18 (BST)

내셔널 갤러리에서 북쪽으로 두 블럭 정도 걸어, 소호에 있는 피쉬앤칩스 가게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 아내가 찾아놨던 가게인데, 1952년부터 영업한 곳이고 상도 받았다고 입구에 적혀있었다. 한국인들에게도 꽤 유명한 곳인 모양이다. 자리 잡고 앉아있는 동안 현지인보다 한국인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가게 내부는 편안한 분위기로, 60-70년대 영국 락 카페처럼 꾸며져 있었다. 좌석은 넓지 않은 편이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스탭들은 징 박힌 가죽옷을 차려입었는데, 아주 유쾌해서 즐겁게 대화할 수 있었다. (게이 코드 아닌가?) 구글 리뷰에서는 인종 차별을 느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나는 딱히 그런 부분은 느끼지 못 했었다.

먼저 맥주를 주문해서 마셨다. Campdon Pale Ale(£4.65)은 도수만 두 자리에 미치지 못한다 뿐이지 홉향이 싱그럽고 강해서 IPA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시원하고 상쾌한 맥주였다.

음식은 피쉬앤칩스 해덕 레귤러(Traditional Fish & Chips, Haddock, Regular £13.95), 칼라마리 링(Calamari Rings, £12.90)을 주문했다. 음식 하나에 한국 돈으로 1만원 중반대니 가격은 꽤 부담스럽다. 여기에 서비스 차지 15%가 또 추가되니 더욱 그렇다.

피쉬앤칩스는 레귤러 사이즈도 양이 어마어마했다. 해덕은 필렛 두 조각을 튀겨냈는데, 겉은 아주 바삭해서 씹는 식감이 좋았다. 속은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워 무난히 먹을 수 있었다. 생선튀김이지만 기름 처리를 잘 했는지 눅눅하거나 쩐내 없이 깔끔했다.

칩스는 피쉬보다 더 인상 깊었다. 한국의 패스트푸드점에서 보던 얇은 감자튀김이 아니라, 엄지손가락만큼 큼직하게 조각내어 튀겨냈다. 겉은 피쉬처럼 바삭한데, 속이 아주 크리미해서 칩스만 먹든 다른 소스와 곁들여 먹든 아주 잘 어울렸다.

칼라마리는 한국에서도 많이 먹던 오징어 튀김 같았다. 튀김옷이 아주 얇고 크리스피한 게 독특했다. 맥주와 곁들여 먹는 술 안주로 괜찮았다.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 @18:26 (BST)

저녁을 배불리 먹고 레스터 스퀘어에서 피카딜리 서커스로 이어지는 영국의 번화가를 걸었다. 이른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고 가게들도 모두 성업 중이었다.

먼저 간 곳은 레스터 스퀘어에 있는 레고스토어였다. 레고 주제의 유튜브 채널에서 본 적 있는 곳이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그리 넓지는 않았다. 대신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대체로 정신 없는 분위기였다. 1-2층에 걸쳐 있는 레고 빅벤이나 벽을 장식한 레고 런던 디오라마가 눈길을 끌었다.

레고스토어 바로 옆의 TWG 역시 아주 붐볐다. 차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다양했고 또 대부분의 차들을 시향해볼 수 있어서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틴캔도 예뻐서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함을 느낄 수 있었다.

BBC 드라마 셜록의 오프닝으로 익숙한 피카딜리 서커스의 피카딜리 라이트를 지나, 포트넘&메이슨에 들렀다. 금방 들렀던 TWG도 차의 가짓수가 많다 싶었는데, 포트넘&메이슨은 다류가 비치된 1층만으로도 TWG보다 규모가 크고 종류도 더 많아보였다. 분위기도 좀 더 고급진 느낌이었다.

“TEA, GLORIOUS TEA!”

한국 사람이 아주 많아서, 수트를 잘 차려입은 점원들이 아니었으면 여기가 런던인지 서울인지 알아보기 힘들었을 것 같다. 다들 바구니 싸가는 분위기였는데, 아내도 선물할 차와 쿠키를 여기서 조금씩 샀다. 포장이 고급져서 확실히 선물용으로 좋아보인다. 나도 다구의 예쁨에 홀려 하마터면 충동구매할뻔 했지만, 겨우 돌아설 수 있었다.

Doubletree by Hilton Chelsea @20:42 (BST)

쇼핑한 물건들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호텔로 돌아왔다. 해가 워낙 길다보니 서머타임 중 저녁 9시가 다 됐는데도 아직 해가 다 넘어가지 않았다.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던 하루였다. 런던에서는 그냥 언제든 비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쪽이 안전할 것 같다.

이날 밥도 거르고 내셔널 갤러리에서 하루 종일 서 있었던 덕에 역시 체력 소모가 컸다. 며칠째 휴식 없이 강행군 중이라 이후 일정은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정해야 겠다.

비용 결산

  • Nurofen 200mg 16 tablets (Tesco Express) £2.20
  • National Gallery, Audio Guide £5.00
  • Poppie’s Fish & Chips £41.23 (Service Charge 15% 포함)
  • 합계 £48.43

런던 여행 4일차 (7th May 2019, Tue): 대영박물관-영국도서관-킹스크로스역


2019 런던 여행


디스트릭트선 (District Line) @09:34 (BST)

런던에 온 이후 계속 추위에 떨며 다녔더니 감기가 너무 심했다. 결국 아침 10시에 여는 대영박물관으로 가기 전에, 전날 공휴일이라 못 갔던 리든홀 마켓(Leadenhall Market)의 바버(Barbour)에 가서 비바람을 제대로 막을 수 있는 옷을 한 벌 사기로 했다.

공휴일 지난 후 첫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튜브가 많이 붐볐다. 러시아워의 전철이 미어터지는건 서울과 런던이 다를 게 없었다. 특히 오버그라운드역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 처음 온 차는 타지 못 했고, 다음 차도 유지보수 때문에 운휴되어 일정이 더 늦어졌다.

리든홀 마켓 (Leadenhall Market) @10:22 (BST)

리든홀 마켓 바버 매장

전날 코번트 가든에서는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사지 못 했던 바버 왁스재킷을 리든홀 마켓 바버에서 구입했다. 역시 한국인 직원은 없었지만 점원들이 아주 친절해서 기분 좋았다. 바버 옷은 참 예쁜데 비싸고, 비싼데 예쁜 것 같다. (£228.00) 택스 리펀이 가능해서 필요한 서류를 발급 받았고, 귀국 때 히드로 공항에서 신청한 후 두 달 만에 리펀을 받을 수 있었다.

구입한 옷은 비 올 때 쓸 수 있는 후드가 달린 비데일 라이트웨이트(Bedale Lightweight) 모델이다. 키 178cm의 마른 체형이 입기에는 M사이즈가 가장 좋았는데, 몸통 품이나 기장은 적당한 대신 서양 의류가 으레 그렇듯 소매가 손등을 거의 다 덮을 정도로 길었다. 왁스를 덜 먹인 대신 가벼운 모델로 골랐는데, 방수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무게도 그렇게 가볍다는 느낌은 받지 못 했다.

아내도 바버 재킷의 디자인과 색상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은데, 왁스재킷 특유의 촉감이 싫다고 구입하지 않았다. 확실히 미묘한 촉감이다. 여기에 주기적으로 리왁싱도 해줘야 하고, 보관에도 신경 써야 하니 가볍게 살 수 있는 옷은 아닌 것 같다.

대영박물관 가는 길 @10:24 (BST)

2층 버스에서 내려다 본 런던 도심

역시 평일 답게 사람이 북적거린다. 전날 Bank holiday의 황량했던 모습과 너무 큰 차이라 신기했다. 도로에는 자전거도 많은데, 브롬톤의 고향 답게 자전거 중 1/5 정도는 브롬톤인 것 같았다. 특히 다채로운 색상의 프레임을 섞은 믹스톤이 많고, 거의 빠짐 없이 헬멧을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10:59 (BST)

대영박물관 앞에 도착하자 짐검사 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런던의 여느 유명 관광지가 그렇듯 무기류나 캐리어 가방은 반입이 안 되니 주의하자. 짐 검사를 마치면 도네이션 해달라는 봉사자들과의 1:1 면담이 기다리고 있다. 남의 유물 뜯어다 전시하면서 도네이션 받는 것도 양심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 유물 관리에 기여하고 싶으면 박물관 내에도 도네이션 할 수 있는 곳이 많으니 여기는 가볍게 지나쳐도 좋다.

대영박물관 Great court
오디오 가이드; 다들 대영박물관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영국박물관

입장하자마자 바로 중앙의 Great Court로 가서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7.00) 대한항공에서 오디오 가이드 제작을 후원한 덕에 스카이패스 회원권이 있으면 할인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봤었는데, 막상 가보니 할인해주지 않았다. 오디오 가이드는 일부 유물에 한해 설명이 제공되었지만, 그 정도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됐다.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전에 먼저 이른 점심을 먹었다. Great Court 한켠에 식음료를 파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크림티 세트를 주문했다. (£5.50 x2) 근데 이게 아주 꿀맛이었다. 스콘, 클로티드 크림, 홍차로 구성된 세트인데 있을 건 다 있는데다 꽤나 든든하기까지 하다. 가격도 대영박물관 Great Court에서 먹는 것치고 저렴하게 느껴졌다.

대영박물관은 내부 구조가 무척 복잡해서 동선 짜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도 많고 유물도 많아 자칫 길 잃기 십상이다. Floor Plan을 잘 보고 돌아다니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무거운 짐이나 옷도 Cloakroom(유료)에 맡겨두고 최대한 가볍게 움직이는 게 좋겠다. 박물관 여기저기에 비치되어 무료로 이용 가능한 접이식 스툴은 가끔 앉을 때 편하긴 하겠지만 들고 다니기에는 꽤 묵직해서 체력 안배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대영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면 전시물의 높은 수준과 아름다움, 어마어마한 양에 반함과 동시에 끈질긴 약탈혼에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로제타석이나 이집트 미라 실물, 이스터섬 석상을 파내오거나 아시리아 궁전 벽체나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물을 통째로 뜯어와 전시할 정도다.

양적으로도 어마어마해서, 이날 6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유물만 보고 다녔지만 전체 전시실 중 절반도 채 못 봤을 정도였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서 평생 볼 세발솥을 다 봤듯, 대영박물관에서는 평생 볼 그리스 도기를 다 보고 온 것 같다. 한나절로는 하이라이트 유물만 겨우 둘러볼 수 있을 것 같고,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이틀 이상은 잡아야 할 것 같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다양한 문화권의 수준 높은 예술품을 보며 자라날 영국의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오직 대영박물관을 다 둘러보기 위해서라도 런던에 한 번 더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다른 나라에서 뜯어온 유물로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입장이니 무료 입장은 혜택이 아니라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드는, 복잡한 감상이 든 곳이었다.

영국도서관 (British Library) @17:29 (BST)

대영박물관에서 나와, 그리 멀지 않은 영국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 역시 처음 입장할 때 짐 검사가 있었다. 실제로 테러를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겠지만 꽤 철저하다는 생각을 했다.

도서실에 들어가려면 신분증(여권도 가능)을 이용해 등록해야 하고, 들어갈 때도 아주 까다로운 규정을 지켜야 한다. 카를 마르크스의 영국 망명 시절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 바로 영국도서관 도서실이어서 관심이 있었는데, 마르스크가 머물렀던 그 공간은 현재의 영국도서관이 아니라 대영박물관의 Great Court다보니 굳이 도서실에는 들어가보지 않았다.

전시실(Treasure Gallery)은 그런 번거로운 절차 없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영국도서관에 방문한 목적 역시 전시실이다. 1215년 잉글랜드의 존 왕에 의해 서명된 이래 사실상 영국의 헌법이자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마그나 카르타는 현재까지 4부의 원본이 남아있는데, 그 중 2부가 영국도서관에 있기 때문이다.

전시실 안쪽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 마그나 카르타가 전시되어 있었다. 사실 중세 영어로 적힌데다 세월이 흐르면서 글씨가 희미해져 문서에서 완전한 문장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았지만, 직접 본 것만으로도 묘한 만족감이 있었다. 바로 근처에 마련된 다양한 멀티미디어 매체를 이용해 마그나 카르타의 주요 내용과 영향에 대한 설명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전시실에는 마그나 카르타 뿐만 아니라 다른 귀중한 판본들이 많았다. <로빈슨 크루소>나 <레비아탄> 초판본, 간디가 인도 부왕에게 보낸 편지, 아일랜드 부활절 봉기 당시 보고서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종의 기원>도 있다고 들었는데 전시실에서 찾지는 못했다.

전시실 내부는 유독 어둡고 서늘한데다 조용하기까지 하다. 귀중한 판본을 보존하기 위해 플래시 사용 여부와 상관 없이 사진 촬영도 금지다. 스마트폰을 꺼내들면 어디선가 직원이 나타나서 제지한다.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말자.

킹스크로스역(Kings Cross Station) @18:24 (BST)

영국도서관 전시실을 둘러본 후 고풍스러운 세인트판크라스역(St Pancras International Station)을 지나면 바로 닿을 수 있는 킹스크로스역으로 향했다. 런던의 길거리를 걸으며 한국과는 다르다고 느꼈던 점이 몇 있었다. 수염을 기른 남성이 많고, ‘길빵’과 무단횡단이 잦고, 셀룰러 통신이 실내외를 막론하고 잘 안 터진다는 점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팬이지만, 이번 여행에는 일정이 부족해서 워너 브라너스 스튜디오 런던의 더 메이킹 오브 해리포터(The Making of Harry Potter) 투어에 참가하지 못 했다. 대신, 킹스크로스역에 있는 플랫폼 9 3/4에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별 달리 대단한 게 있지는 않다. 작중에서 짐수레를 끌고 벽 속으로 사라지던 바로 그 지점에 반쯤 벽에 박힌 짐수레가 있고, 기숙사 목도리를 빌려준다. 그리고 직원이 사진을 찍어주면 돈을 주고 사는 식이다. 가격은 꽤 비쌌다. (1장 £9.50, 2장 £15.00, 3장 £20.00) 사진을 직접 찍으면 돈을 안 내도 된다는데, 왠지 다들 돈을 내고 찍고 있었다. 나는 기념 사진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눈으로만 훑어보고 지나쳤다.

바로 옆에는 열댓평 정도 되어 보이는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물건의 구색이 꽤 잘 갖춰져 있어서 둘러볼만 했다. 가격은 역시나 꽤 비쌌는데, 구경하다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도비 틴싸인(£7.00) 하나와 도비 티셔츠 한 벌(£19.99)을 구입했다.

Nenno Pizza @18:55 (BST)

킹스크로스역 근처에 있는 Nenno Pizza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 편안하고 캐주얼한 느낌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주문은 카프리치오사 피자, 카르보나라 스파게티, 하우스와인 중 레드로 했다. 먼저 나온 와인은 약간의 산미와 페퍼민트, 블랙커런트향이 풍겼다. 너무 가볍지도 끈적이지도 않아서, 이후 나온 요리왁 함께 먹기 좋았다.

카르보나라는 기대했던 이탈리안식이었다. 달걀의 꾸덕한 맛과 염장육의 향이 잘 배어든 오일의 조화가 좋았다. 카프리치오사 피자 역시 맛있었다. 도우가 얇은데도 아주 쫄깃해서 식감을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토마토 소스는 감칠맛이 어마어마했다. 역시 어지간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실패할 수 없는 선택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38.50 = 카프리치오사 £11.25 + 스파게티 카르보나라 £10.25 + 하우스와인 250mL £6.75 x2 + 서비스 차지 10%)

피카딜리선(Piccadilly Line) @20:05 (BST)

아침에는 그렇게 붐볐었는데, 늦은 저녁 시간의 튜브 안은 꽤 한산하다. 튜브 안에서는 셀룰러 데이터 통신이 잘 안 되다보니, 미리 볼 거리나 읽을 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파리 브라우저의 읽기목록에 넣어둔 문서들을 읽으니 시간이 잘 갔다.

종이 트래블카드는 끝까지 말썽이다. 그나마 아내 것은 개찰구에서 이상 없이 동작하는데, 유독 내 것만 구입 이래 단 한 번도 정상동작하지 않았다. 매번 개찰구에서 직원에게 트래블카드를 보여주며 이거 동작 안 된다는 얘기를 해야 했다. 이런 일이 잦은지 다들 별 말 없이, 또는 스마트폰에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주의와 함께 수동으로 개찰구를 열어주었다.

비용 결산

  • Barbour Bedale Lightweight Waxjacket £228.00
  • 대영박물관 오디오 가이드 £7.00
  • 대영박물관 크림티 세트 £5.50 x2
  • 킹스크로스역 플랫폼 9 3/4 기념품 가게 £26.99
  • Nenno Pizza £38.50
  • 합계 £56.50 (+ 옷 £228.00, 선물 £26.99)

런던 여행 3일차 (6th May 2019, Mon): 시티 오브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런던박물관-런던탑-코번트 가든)


2019 런던 여행


Doubletree by Hilton Chelsea @7:05 (BST)

전날 바스-스톤헨지 투어가 꽤 피곤했는지 평소보다 일어나는 시간이 늦었다. 원래는 이날 대영박물관에 갈 예정이었지만, 바깥 날씨가 좋아보여 시티 오브 런던(The City of London)에 가는 걸로 일정을 변경했다.

시티에서는 세인트폴 대성당-런던 박물관-런던탑-코번트 가든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이 중 런던 박물관은 무료, 세인트폴 대성당과 런던탑에서는 2-for-1 할인을 이용해 반값에 입장할 수 있었다. 모두 입장료가 비싼 곳들이라 여행 비용 절감에 많은 도움이 됐다.

임페리얼 워프역 오버그라운드 승강장

런던 와서 평일 러시아워에 튜브를 처음 타보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이날은 공휴일(Bank holiday)라 튜브는 한산하기만 했다. 역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한국보다 속도가 훨씬 빨라 적응 여부와는 별개로 신나게 탔고, 종이 트래블카드는 오늘도 튜브 개찰구에서 인식이 안 되어 짜증이 났다.

세인트폴 대성당 (St. Paul’s Cathedral) @08:41 (BST)

세인트폴 대성당 입장 시작 시간인 아침 8시 30분에 맞추어 도착했다. 결과적으로 아주 잘 한 선택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사람이 많이 몰려 구석구석 둘러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장료는 £20.00이었는데, 2-for-1 할인을 이용해서 한 명 입장료만 내고 아내와 둘이 입장할 수 있었다. 런던 와서 2-for-1 할인을 처음 받았는데, 할인 받는데 필요한 쿠폰에 필요한 내용을 미리 적어갔더니 낭비되는 시간 없이 빠르고 편리하게 입장할 수 있었다. 2-for-1 할인을 받을 수 없다면 인터넷에서 사전 예매하는 쪽이 저렴하고 별도의 줄을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원래 계획은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딱 한 시간 반만 있다 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내부가 아주 흥미로워서 예정보다 훨씬 긴 두 시간 반 동안 둘러보게 됐다. 입장료에 포함된 멀티미디어 가이드는 동선이 좀 헷갈렸지만 내용은 아주 재미있고 유익했다.

안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성당답게 다양한 부조물과 많은 유명인들의 무덤이 있었다. 오디오 가이드에서 설명해주는 것 말고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 많았다. 미리 공식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부해놓고 가면 훨씬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중앙 홀에는 스톤 갤러리, 골든 갤러리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입구 앞에 심약자는 이용을 삼가라는 경고가 붙어있었는데, 막상 올라가보니 그럴만하다 싶었다. 500개나 되는 계단을 오르는데 상당한 체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톤 갤러리에서 골든 갤러리로 올라가는 층계는 아주 가파르고 발밑이 아찔하게 뚫려있어 내려다보기 무서웠다.

골든 갤러리에서 바라본 런던 시내 전경

대신 골든 갤러리에서 바라보는 런던 전경은 기가 막혔다. 발판이 좁고 바람이 불어 공포스러웠던데다 줄 때문에 계속 앞으로 걸어야 해서 여유 있게 전망을 감상하기는 어려웠다. 대신 그만큼 아찔한 높이에서 바라보는 런던은 정말 멋졌다. 스톤 갤러리에서는 공간으로나 시간으로나 여유 있게 경치를 즐길 수 있었지만, 역시 이런 광경은 높은 곳에서 보는 쪽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주의할 점은 입장하기 전에 가방 검사가 있고, 특히 여행용 캐리어 가방처럼 큰 가방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이는 런던에 있는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안 되고, 화장실도 없다. 입장하기 전 광장에 유료 화장실이 하나 있고, 지하 묘지 관람을 마친 후 나가는 길에 무료 화장실이 하나 있으니 계획적으로 이용하자.

런던 박물관 (Museum of London) @11:28 (BST)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300m 정도만 걸어가면 런던 박물관이 있다. 대체로 런던 여행 코스에 자주 포함되는 곳은 아니지만, 여행 가서 그 지역 박물관은 꼭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들르게 됐다. 입장료는 무료다.

잉글랜드나 영국이 아닌, 런던의 도시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목요연하게 훑어볼 수 있었다. 역시 시각적인 자극이 끊임 없이 이어지도록 잘 구성되어 있었다.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시간 소모가 컸던 덕에 런던 박물관은 나름 서둘러 둘러봤는데도 한 시간이 걸릴 정도로 전시의 양 역시 충실했다.

이런 지역사 박물관이 대체로 그렇듯 성인보다는 아이들 내지는 학생들에게 유익한 내용 위주로 짜여 있었다. 그럼에도 꽤 재밌었는데, 런던에 오기 전에 런던의 역사에 대해 미리 공부했던 내용을 실제 유물이나 자료를 통해 다시 확인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물관 근처에는 로마 시대 론디움의 성벽 일부가 아직 남아있다. 현대적인 마천루들 바로 옆에 길드홀 같은 중세 건물이 남아있고, 모퉁이를 돌아서면 로마시대 건축물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pod Bank Station @12:52 (BST)

이날 가장 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공휴일 때문에 시티 오브 런던 안에 문 연 식당이나 가게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인적 드문 시티를 걸어 걸어 헤매다 겨우 문 연 식당 한 군데를 찾아 들어온 곳이 pod이었다.

pod은 런던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체인점인데, 야채 가득한 건강식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다른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 가지 못 한 건 아쉬웠지만, 이미 추운 날씨 속에 도심을 한참 헤맸던지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현지에서의 평소 식단 느낌으로 한 번 먹어보기로 했다. (£13.98)

1층은 카운터와 키친이 있었고, 2층에는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따끈한 치킨 커리를 먹으며 몸을 녹일 수 있었다. 가격에 비해 양은 좀 적다 싶었지만 맛 자체는 괜찮았다. 고수가 들어있어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나는 ‘호’ 쪽이라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런던탑으로 가기 전에 리든홀 마켓(Leadenhall Market)에 있는 바버(Barbour)에서 비바람을 피하게 해줄 왁스 재킷 한 벌을 사러 갔다. 그런데 역시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월요일임에도 Bank holiday라 문이 닫혀있어 헛탕을 쳐야만 했다.

리든홀 마켓은 해리포터 영화판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모르고 갔었는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광경이 펼쳐져서 놀랐었다. 역시 열지 않은 가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돌아다니는 관광객이 꽤 있었다. 한창 영업할 때 가면 꽤 붐비는 곳일 것 같다.

런던탑 (The Tower of London) @13:46 (BST)

이번 런던 여행의 주목적은 역시나 박물관들이지만, 몇 가지 건축물을 직접 보는 것 역시 크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런던탑이었다. 인터넷에서 봤을 때는 아이보리 색의 화이트 타워 하나 달랑 서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런던탑은 중세 초기의 성채 도시 규모로, 화이트 타워는 그 중 일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꽤 큰 규모였다.

입장료는 £27.50으로 꽤 비싼 편이지만, 2-for-1 바우처를 이용해 한 명 무료 입장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 오디오 가이드는 내부에서 £5.00을 또 추가로 내야 대여할 수 있다. 한국어도 지원된다.

오디오 가이드 대여할 때 같이 제공되는 지도는 효율적으로 동선을 짜는데 도움이 됐지만, 오디오 가이드 자체는 건물이나 역사 설명은 괜찮았고 특히 당시의 분위기를 살린 음향 효과가 아주 재미있었다. 대신 세부 전시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열심히 영어 안내문을 읽어야 했다.

화이트 타워

구석구석 둘러볼 곳이 많고, 오디오 가이드에서 알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보니 다 둘러보는데 3시간 이상 걸렸다. 특히 화이트 타워는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내부 동선이 길고 층계가 많아 체력 부담이 크니 시간을 갖고 천천히 둘러보는 게 좋겠다.

영국 왕실 소장 보석 전시인 크라운 주얼(The Crown Jewels)은 워낙 인기가 많아 건물 밖 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줄을 길게 서야 했다. 그 와중에 중국 관광객들의 새치기와 고성방가가 아주 불쾌했고, 그래서인지 보석들 자체는 그렇게 큰 감흥이 없었다.

런던탑의 명물은 요먼 경비대와 까마귀라고들 한다. 매시 정각과 30분에 런던탑 정문으로 시간 맞춰 가면 요먼 경비대원을 따라 가이드 투어를 돌 수 있다.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지나가면서 본 걸로는 유쾌하고 유머 넘치는 설명을 해주고 계셨다. 까마귀들은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을 쪼기도 한다니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말자.

런던탑을 빠져나오면 바로 옆이 탬즈 강변이다. 바로 앞에 타워 브리지(Tower Bridge)가 있어, 딱 보기 좋은 각도에서 타워 브리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이날은 하루 종일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는 강행군이었기에 지친 아내와 잠시 벤치에 앉아 쉬어가기에도 좋았다.

코번트 가든(Covent Garden) @16:41 (BST)

아침에 사지 못 했던 바버 재킷 구입과 저녁 식사를 위해 시티 오브 런던을 벗어나 코번트 가든으로 이동했다. 2층 버스 맨 앞 자리에 탔는데, 평소와는 다른 눈높이로 거리를 바라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행복은 살 수 없지만 맥주는 살 수 있지요 – 그것들은 별 다를 것 없답니다

거의 열린 가게가 없었던 시티 오브 런던과는 달리, 코번트 가든은 공휴일인데도 어지간한 가게는 다 영업 중이었다. 그만큼 사람도 북적거렸다. 골목마다 자리 잡은 극장들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뮤지컬 극장들이 눈에 띄었는데, ‘마틸다’, 유명 작품이 많았다.

코번트 가든의 바버는 영업 중이었는데,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있었지만 몸에 맞는 사이즈가 없어 구입은 하지 못 했다. 구글맵 리뷰 중에는 한국인 직원이 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보지 못 했다. 그래도 직원분들이 아주 친절해서 비록 구입은 못 했지만 기분 좋게 돌아나올 수 있었다.

Hawksmoor Seven Dials @17:47 (BST)

육식의 나라 영국에 왔으니 역시 고기를 먹어야 하겠는데, 이왕이면 맛있는 걸 먹고 싶어 찾아온 집이다. 사람이 아주 많아 북적였는데, 다행히 빈 테이블 하나가 있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서로인(400g), 램 토마호크(모두 미디움-레어)에 그레이비 소스를 주문했고, 여기에 콘월 지방의 마이크로 브루어리인 Harbour Brewing Co.의 August Town Pale Ale을 주문했다. 모두 해서 £77.79로, 분명 적은 금액은 아닌데 한국에서 한우 로스구이 먹는 금액과 비교해보면 그렇게 비싼 금액은 아니었던 것 같다.

스테이크는 둘 다 겉은 아주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잘 가둬져 촉촉했다. 특히 램 토마호크는 양 특유의 냄새는 분명 있었지만 기분 나쁘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 신기했다. 여기에 그레이비 소스가 아주 좋았다. 진한 육즙에 강렬한 감칠맛이 어우러져서, 입맛을 더욱 북돋아주었다. 중량이 중량인만큼 양도 적지 않아서 정말 배터지게 먹을 수 있었다.

에일은 별로였다. 탭 아니면 적어도 병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받아보니 캔이었다. 그래서인지 에일만 마셨을 때는 쇠맛이나 쇠향이 좀 나서 그리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고기나 그레이비 소스와 먹었을 때는 쇠맛이 거의 나지 않았지만 이래서야 아무맛도 안 나는 일본식 드라이 라거를 곁들이는 것과 차이가 없잖은가.

피카딜리선 @19:14 (BST)

부른 배를 두드리며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피카딜리선을 탔다. 하루 종일 상당한 강행군의 연속었는데, 잘 먹고 맛은 별로였지만 어쨌든 술까지 마시고 보니 노곤함이 쏟아진다.

피카딜리선은 휴일 저녁 도심 구간이라 그런지 좁은 객차 안에 사람이 많아 붐볐다. 런던을 돌아다닐 때 큰 가방이나 큰 짐을 갖고 다니는 건 역시 안 될 것 같다. 튜브 뿐만 아니라 보도도 좁은 편이고, 어차피 주요 관광지들에는 짐 검사와 가방 크기 제한이 있어 큰 가방은 못 가지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호텔 들어가기 전에 호텔 바로 앞 테스코 익스프레스에서 생수 12팩 짜리를 샀다. 추운 날씨에 제대로 감기 들고 보니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물 두 병(심지어 한 병은 탄산수)로는 잔뜩 부어 화가 난 목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다행히 단돈 £2.00 밖에 하지 않아 큰 부담이 없었고, 여행 내내 큰 도움이 됐다.

비용 결산

  • 세인트폴 대성당 입장료 £20.00 (2-for-1)
  • 점심 (pod) £13.98
  • 런던탑 입장료 £27.50 (2-for-1)
  • 런던탑 오디오 가이드 £5.00
  • 저녁 (Hawksmoor Seven Dials) £77.90
  • 생수 12팩 (테스코 익스프레스) £2.00
  • 합계 £146.38

런던 여행 2일차 (5th May 2019, Sun): 바스-스톤헨지 투어


2019 런던 여행


Doubletree by Hilton Chelsea @06:10 (BST)

평소 한국에서도 새벽 6시 전에 일어나는 우리 부부는 영국 여행 중에도 무척 일찍 일어났다. 특히 이날은 한국에서 미리 신청해둔 바스(Bath)-스톤헨지(Stonehenge) 투어가 있어 일찍 일어나야 하기도 했다.

호텔 조식은 오전 7시부터 제공됐는데, 투어 집합시간인 8시에 맞추려면 호텔 조식을 챙겨먹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그래서 호텔 조식 대신 전날 패딩턴역 M&S에서 사 온 샌드위치와 우유로 아침을 대신하기로 했다.

샌드위치 안에는 쇠고기가 빈틈 없이 채워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육향과 소금간이 꽤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 각각 머스타드향과 허브향이 제법 났다. 다행히 나는 이런 향이 강한 음식에 별 거부감 없어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었다.

우유에서는 의외로 한국의 저온 살균된 우유 정도의 맛 정도만 느낄 수 있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좀 더 크리미하고 고소할 거라는 기대는 채워주지 못 했다.

해머스미스역 (Hammersmith Station) @7:40 (BST)

투어 출발 예정시간에 맞추어 해머스미스역으로 출발했다. 숙소에서 해머스미스역까지는 호텔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다보니 도시 전체가 대체로 인적 드물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내 트래블카드가 전날 패딩턴역에서 구입하자마자 망가져놔서, 여행 내내 개찰구 지날 때마다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하는 튜브보다 그냥 트래블카드를 보여주면 그만인 버스 타는 쪽이 훨씬 편했다.

해머스미스역은 아케이드가 결합된 제법 규모 있어 보이는 역이었다. 역시 인적은 극히 드물고 열린 가게도 없었다. 그 와중에 개찰구 앞에 ‘Thought of the DAY’라고 해서 적어둔 인용구가 눈에 띄기도 했다. (근데 구글링 해보니 에머슨이 한 말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는 모양이다.)

투어 출발 시간인 8시에 임박하자 한국 사람 여럿이 집합 장소였던 테스코 앞으로 모여들었다. 스무 명 가까운 투어 참가자 중 절대 다수가 여성이었고, 남성은 나처럼 가족 동반으로 온 서너 명 밖에 없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하긴, 나 같아도 런던에 동성 친구와는 같이 오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바스 가는 길 @8:51 (BST)

투어비는 1인당 한국에서 지불한 예약금 4만원에 현지지불금 £60, 현지 입장료와 식비 별도였다. 투어에는 한국인 가이드와 버스, 안내를 위한 무선 수신기 대여까지만 포함이었다. 생각보다 비싼 투어다.

먼저 바스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일랜드와 영국에 각각 2년씩 살았다는 가이드로부터 영국과 영국 문화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재미있고 유용한 내용이 많았지만, 다들 아침 일찍 나와서인지 졸려하는 분위기였다.

런던을 벗어나 교외로 접어들자 버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생경했다. 한국의 교외는 논밭 너머로 푸른 산이 겹겹이 펼쳐지는데, 잉글랜드의 교외는 높아봐야 야트막한 언덕 정도를 빼면 평탄한 농경지와 방목지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중간중간 말이나 양이 흩어져 풀 뜯는 모습, 꽤 자주 눈에 띄었던 로드킬 사체, 하늘을 둥글게 맴도는 맹금류까지 모두가 낯선 느낌이었다.

바스(Bath) @11:17 (BST)

저 멀리 보이는 곳이 바스

서양 역사서나 소설에는 계곡이 들어간 지명이 종종 등장한다. 계곡에 사람들이 모여살기도 하고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왜 굳이 그런 곳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지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국에서의 계곡이란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곳이니까.

하지만 바스에 와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스는 강 양안을 따라 완만하게 솟은 언덕에 자리 잡은, 말 그대로 계곡 도시였다. 낮은 산비탈을 따라 18세기 양식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어, 런던보다도 훨씬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이날 오전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 새파란 하늘과 서늘하고 맑은 공기, 따뜻한 햇빛의 조화 덕에 도시가 더욱 아름다워보였다.

바스에서는 로열 크레센트(Royal Crescent), 서커스(The Circus), 제인 오스틴 센터(The Jane Austin Centre) 순서로 가이드 인솔 하에 워킹 투어가 진행됐다. 이후 외부 가이드 투어가 안 되는 로만 바스(The Roman Bath)에 입장해서 각자 둘러보고, 점심 식사 후, 풀테니 다리(Pulteney Bridge)를 버스에 탄 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로열 크레센트
서커스 중 일부

로열 크레센트와 서커스는 건물의 외관과 특징, 역사적 배경 설명을 들은 후 여기에서 누가 살았었는지에 대해 듣는 정도였다. 제인 오스틴 센터는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15분정도 주어졌는데, 화장실 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거의 둘러보질 못 했다. 건물 자체는 아주 작고 좁았지만 전시물이 꽤 충실해보였고, 기념품 가게도 괜찮아보였는데 제대로 둘러보질 못 했다.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되는 단체 투어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로만 바스 가는 길에는 로마 시대 성벽이 조금 남아있는 곳이 있었다. 따로 관리는 안 되는 모양인지 성벽 위에 쓰레기와 빈 술병이 널부러진 걸 보니 안타까웠다. 로만 바스 바로 앞에서는 바스 수도원(Bath Abbey)도 있었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중세 수도원으로, 시간이 허락한다면 둘러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 해 아쉬움이 있었다.

로만 바스

로만 바스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티켓을 구입하는데도 한참 줄을 서야 했다. 입장료는 £20.00으로, 한국어 멀티미디어 가이드 포함이었다. 제공된 멀티미디어 가이드가 꽤 잘 되어 있는데다 시설 자체의 복원도 충실히 해놓아 아주 흥미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적어도 서너 시간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는데, 투어 일정상 단 한 시간 밖에 허락되지 않아 대충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전시 막바지에는 온천수를 직접 마셔볼 수 있는데, 쇠맛이 아주 강렬했다. 비위가 약하면 굳이 마셔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후 주어진 점심식사 겸 자유시간에는 구글맵에서 평이 좋은 식당 몇 군데에 도전해봤지만 대부분 예약이 다 차 있거나 자리가 없어 앉을 수 없었다. 펍에도 가봤는데, 일반 식당과는 자리 잡고 주문하는 방법이 다르다보니 한참 헤매기만 하다 결국 아무것도 못 먹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대신 길거리의 작은 인도 음식점에서 팔라펠(Falafel)과 사모사(Samosa)가 든 커리랩과 차이(Chai)로 점심식사를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좌석 없이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양이 푸짐하고 내용물이 실해서 먹고 보니 꽤 든든했다. 커리랩 £5.00, 차이 £2.00으로, 영국 치고 가격도 저렴했다.

이후 버스에 올라 간단히 풀테니 다리를 둘러봤다.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와 유명해졌다는데, 다리 자체는 영화 ‘향수’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위에 건물이 있다는 것 말고는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보다 근처의 공원이 잘 꾸며져 있어 보기 좋았다.

바스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근처 언덕 위에 잠시 멈춰 바스를 전체적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포토 타임이었던 모양인데, 그 사이 날씨가 궂어져 사진 찍기 적당치 않기도 했고 역시 눈으로 직접 보고 기억에 남기는 쪽이 더 좋았다.

바스는 전체적으로 18세기의 영국 도시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장소였다. 비록 관광지의 느낌이 강했고 투어로서는 불과 서너 시간 밖에는 머물지 못 했지만, 둘러볼만한 건축물이나 박물관이 있어 자유여행으로 왔다면 적어도 만 하루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있는 곳 같았다.

스톤헨지 가는 길 @14:23 (BST)

이날 투어 중 둘러본 잉글랜드 교외에는 목초지가 아주 많았다. 방목해둔 양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시대의 주력 산업이 모직업이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유채꽃밭도 많았다. 한창 꽃이 핀 시기라 햇빛 아래 유채꽃밭 근처를 지나가면 눈부실 정도로 시야가 샛노랗게 빛났다. 한국 같았으면 이 정도 유채꽃밭에는 으레 유채꽃 축제가 열리고 관광객으로 넘쳐났을텐데 영국의 유채꽃밭에는 아무도 없는 게 신기했다. 처음에는 바이오 디젤 용도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질 좋은 유채유(또는 카놀라유)를 얻는 용도인 모양이다.

날씨는 하루 종일 변덕스레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했다. 해가 나면 쾌적했지만, 흐리고 바람이 불면 한기가 돌았다. 역시 옷을 좀 더 따뜻하게 입고 왔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스톤헨지(Stonehenge) @15:09 (BST)

스톤헨지 비지터 센터

스톤헨지 주차장에 내리면 주변은 비지터 센터(Visitor Centre) 외에는 허허벌판이다. 비지터 센터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21.10) 제법 시각적으로 잘 꾸며진 박물관을 먼저 관람했다. 확실히 박물관에서 사전 정보를 충분히 읽어보고 가는 쪽이 실제 스톤헨지에 도착해서도 이것저것 찾아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다.

박물관에서 나와, 입장료에 포함된 셔틀버스를 타고 비지터 센터에서 약 2km 떨어진 스톤헨지로 향했다. 걸어가는 사람도 많아보였는데, 스톤헨지 가는 길에도 여러 유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걷는 것도 꽤 끌렸지만, 투어 중이다보니 얌전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셔틀버스에 올랐다. 셔틀버스는 승하차 때 차고가 낮아져 오르내리기 편했다.

예전에는 스톤헨지 한가운데까지 직접 걸어들어갈 수도, 돌을 직접 만져볼 수도 있었다는데 이제는 보존 목적으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적당히 떨어진 관람로를 따라 둥글게 걸으며 스톤헨지를 여러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관람로 입구 근처는 관광객, 특히 중국 사람들로 아주 붐볐다. 대신 관람로를 따라 입구 반대쪽으로 가면 스톤헨지를 제법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영국 오기 전에 읽었던 책들이나 박물관에서 보고 온 정보들을 실물과 맞춰보는 과정도 재미있었지만, 내가 스톤헨지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토머스 하디의 소설 ‘더버빌가의 테스’ 후반부의 한 장면이었다. 결국 고립되어 사회적 편견의 제물로 바쳐지고 만 주인공의 운명을 나타내는 장치로 나온 것이 스톤헨지였는데, 실제로 와보니 황량한 벌판 가운데 홀로 솟아있는 모습 덕에 소설 속의 장면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스톤헨지 관람을 마치고 비지터 센터로 다시 돌아왔다. 나가는 길에는 당연하게도 기념품 가게를 거치도록 동선이 짜여 있었다. 나는 여행 와서 기념품이나 쇼핑에 돈 쓰는 걸 아주 싫어하는데, 스톤헨지 기념품 가게는 구색이 아주 훌륭했다. 특히 영국의 유명한 왁스 재킷 회사인 바버(Barbour)와 콜라보한 후드 재킷이 있었는데 워낙 예쁘기도 했고 마침 평원에서 칼바람 맞다 온 터라 정말 구입해버릴 뻔 하기도 했다.

다시 투어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린 끝에 런던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동안 가능하면 잉글랜드 교외의 정경을 좀 더 눈에 담고 싶었지만, 하루 종일 추위에 덜덜 떨었던 터라 극심한 피로감에 결국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래도 잠들기 직전 자유질문 시간에 가이드에게 영국식 펍(Pub) 이용법을 물어볼 수 있었다. 일반 식당은 입구에서 좌석 배정, 주문, 계산까지 모두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루어진다. 펍은 정반대로, 들어가면 알아서 자리를 잡고, 역시 알아서 카운터로 가서 선불로 주문하고 필요하면 자리를 알려주는 식이란다. 이때 들었던 내용 덕분에 이후 여행 중에는 펍에서 즐거운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Nando’s Hammersmith @19:22 (BST)

투어 출발했던 해머스미스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역시 스톤헨지에서 덜덜 떨며 돌아다녔던 통에 배가 고팠다. 아내가 미리 알아뒀던 닭요리 전문 체인점인 Nando’s가 해머스미스역 바로 근처에 있어, 그리로 향했다.

치킨 한 마리에 사이드 큰 것 2개 또는 작은 것 4개가 제공되는 Full Platter(2인분)에 IPA 2병을 주문했다. 주문할 때 소스의 매운 정도(Extra mild-Mild-Medium-Hot-XX Hot)를 선택할 수 있었다. 사전 정보에 의하면 한국사람들에게는 ‘XX Hot’도 그리 매운 편이 아니라고 했는데, 나는 유독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편이라 ‘XX Hot’ 대신 한 단계 아래인 ‘Hot’으로 주문했다. (£31.15)

일단 양이 굉장히 많았다. 2인분이라고 했는데 치킨 뿐만 아니라 사이드의 양도 굉장히 많아서 사이드는 거의 남겼다. 맛은 아주 약간 매콤한 굽네치킨 비슷했다. 소스의 맛과 닭의 식감이 모두 비슷한 느낌이었다.

가게 한켠에는 여러 종류의 소스가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는 주문할 때 선택할 수 있었던 매운 소스들도 있었는데, 막상 가장 맵다는 ‘XX Hot’ 소스도 먹어보니 아주 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시 한국의 매운맛에 대한 기준이 유럽에 비해 꽤 높은 편인 모양이다.

비용 결산

  • 바스-스톤헨지 투어 현지지불금 £60.00 ×2
  • 로만 바스 입장료 £20.00 ×2
  • 점심 (Chaiwalla Indian Street Food) £7.00 ×2
  • 스톤헨지 입장료 £21.10 ×2
  • 저녁 (Nando Hammersmith) £31.15
  • 합계 £24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