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obarefoot Ra ii 1년 사용기

내가 미니멀리스트 슈즈를 처음 신기 시작한 건 2019년 말이었다. 어느새 3년이 다 되어 가는 셈이다. 주로 신는 신발은 5켤레 정도 된다. 모두 미니멀리스트 슈즈다. 트레일 러닝용 샌들(Xeroshoes Z-Trail), 러닝화(Lems Primal 2), 캐주얼 미드컷 부츠(Lems Boulder Boot Mid), 겨울용 방수부츠(Lems Boulder Boot Waterproof), 드레스 슈즈(Carets FER), 그리고 출퇴근용인 Vivobarefoot Ra ii다.

그 중 출퇴근용 미니멀리스트 슈즈를 찾기가 제일 힘들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의 드레스 코드는 스마트 캐주얼이다. 알록달록한 컨버스 로우는 좀 부족하고, 반짝이는 드레스 슈즈는 수트를 입지 않은 이상 좀 과하다. 가죽 재질의 스니커즈나 캐주얼 옥스포드화 정도가 딱 좋다. 근데 미니멀리스트 슈즈는 보통 운동화나 등산화 형태가 많다. 덕분에 많은 검색과 조사를 해야 했다.

처음 출퇴근용으로 신기 시작했던 미니멀리스트 슈즈는 Lems Nine2Five다. 편하게 잘 신기는 했지만 조금이라도 복장이 포멀해지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었다. 광대 신발(‘clown shoes’)처럼 보인다는 레딧 리뷰가 있었는데 딱 맞는 표현이다. 옆에서 볼 때는 괜찮을 수도 있는데 앞에서 보면 앞코가 지나치게 넓은 부분이 너무 튀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구입했던 신발이 Vivobarefoot Ra ii다. 2021년 10월에 공홈 직구로 USD 150 주고 샀다. 제조사에서는 옥스포드화로 팔고 있지만 여전히 일반적인 옥스포드화의 외관과는 거리가 멀다. 분명 가죽 재질에 끈을 묶는 로우컷 슈즈지만 신발코가 둥글둥글하고 넙데데해서 잠깐만 봐도 흔한 신발이 아니라는 게 티가 난다. 그나마 캡토(Cap-toe)라 신발코가 두드러지는 Nine2Five보다는 플레인토(Plain-toe)인 Ra ii가 덜 광대 신발 같아 보인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그렇지만 미니멀리스트 슈즈의 미덕에는 충실한 신발이다. 신어본 미니멀리스트 슈즈 중에서는 신발코쪽 공간이 좁은 편이다. 특히 발등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게 느껴졌다. 물론 그럼에도 일반적인 옥스포드화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이 넓다. 내가 미니멀리스트 슈즈를 신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내성 발톱인데 Ra ii를 신으면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천연 가죽으로 만들어진 어퍼는 아주 얇고 가볍다. 너무 얇아 보여서 내구성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1년 신어보니 어퍼 쪽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밑창 역시 아주 얇고 가볍다. 제조사 설명으로는 두께가 4mm 짜리다. 미니멀리스트 슈즈니까 당연히 제로드롭으로 발꿈치나 아치를 지지해주는 구조물이나 쿠션이 사실상 전혀 없다. 덕분에 가죽 재질의 옥스포드화임에도 러닝화만큼 가볍다. 내가 신는 US Men 10 사이즈 기준 한 켤레에 520 g이다. 덕분에 하루 종일 신고 걸어도 부담이 없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다. 신발끈 끼우는 구멍에 아일렛이 없다. 내가 신는 동안은 별 문제가 없었지만 혹시 가죽이 구멍부터 찢어지기라도 하면 많이 곤란할 것 같다. 마감도 좀 아쉽다. 어퍼와 아웃솔간 부착이 제대로 안 되어 뜨는 부분이 있어 따로 손을 봐야 했다. 미국이나 유럽에 살았으면 교환을 받았을텐데 한국에서 직구한 물건이다 보니 그러기가 어려웠다. 1년 신어보니 아웃솔은 머잖아 바꿔야 할 수도 있지만 그에 비해 어퍼는 상태가 괜찮다. 20만원 짜리 신발을 버리고 새로 살 필요 없이 아웃솔만 교체할 수 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지난 1년 동안 거의 매일 같이 신은 신발이다. 어느새 아웃솔의 무늬가 닳아 없어진 부분도 부분부분 눈에 띈다. 당분간 더 신는데는 문제가 없겠지만 슬슬 새로 주문을 해야 할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혹시 더 마음에 드는 다른 신발이 있는지를 찾아봤지만 특별히 좋아보이는 신발이 없었다. 아마 내년도 Ra ii, 아니면 후속작인 Ra iii를 신고 열심히 돌아다니게 될 것 같다.

2 comments

  1.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로운 글이 올라와서 정말 좋습니다~

  2.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로운 글이 올라와서 정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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