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행기: 24시간 만에 5밀면 1국밥 먹고 오기

들어가며

연말연시 휴가를 맞아 모처럼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아내가 호텔 마일리지를 털어내려고 부산에 1박 숙박을 잡았는데요, 밀면에 갈급했던 터라 쭐래쭐래 따라가서 밀면 덕질을 실컷 하고 왔습니다.

허락된 시간은 부산에 1일차 오후에 도착해서 2일차 오후에 떠나기까지 대략 24시간 정도. 구체적인 가게까지는 정해두지 않은 상태로 무작정 출발해서 6밀면 먹고 오는 게 목표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10밀면까지 노려볼 수도 있었을텐데 이제 나이가 들어 예전만큼 많이 먹질 못하겠더라구요. 결과적으로 5밀면에 1국밥을 완식하고 돌아왔습니다.

밀면은 가게마다 맛이 천차만별이고 그만큼 취향도 많이 타는 음식인데요, 저는 ‘적당히’ 달큰하면서 고기에서 오는 감칠맛과 함께 한약재향이 ‘적당히’ 나는 밀면을 좋아합니다. 고기 국물 좋아하고, 동치미는 싫어합니다. 맵찔이라 매운 건 잘 못 먹습니다. 못 간지 오래 됐지만 원래는 개금밀면을 제일 좋아했었는데요, 고명으로 수육 대신 찢은 고기 올려주는 건 그 시절에도 좀 아쉽다 싶었었습니다. 참고하셔서 보시면 되겠습니다.

일미밀면

  • 부산 중구 대청로99번길 3 (카카오맵)
  • 밀면 6,000원, 수육(소) 3,000

점심 먹으러 가장 먼저 방문한 집은 일미밀면입니다. 부산역에서 남포동 사이에 있는 가게 중 전에 가 본 적 없는 집으로 적당히 골랐습니다. 골목길 안에 있어 지도를 보고 가는데도 못 찾고 놓칠 뻔 했습니다. 가게는 크지 않았고 학교 앞 분식집 같은 분위기였어요. 역시 밀면의 본고장 부산이라 그런지 12월 말인데도 손님이 꾸준히 있더라구요. 이건 이번에 갔던 가게 모두 다 그렇긴 했습니다.

육수는 간이 약하지 않은 편이고 적당히 달고 한약재향도 제법 납니다. 면은 얇은 편인데 탱글탱글하고 탄력이 좋았습니다. 저는 냉면이나 밀면에 식초, 겨자를 전혀 안 넣어 먹는데 면 위에 겨자가 약간 뿌려져 나와 먹는 내내 겨자향이 나더라구요. 싫은 느낌은 아니었고 약간의 킥처럼 느꼈습니다.

같이 주문한 수육은 소짜를 시켰더니 거칠게 썰어낸 수육 다섯 조각이 담겨 왔습니다. 사진은 먼저 한 조각을 먹어서 네 조각만 남아 있습니다. 차가운데도 부드럽고 전혀 퍽퍽하지 않으면서도 군내 없이 고소해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간다면 수육은 좀 더 양을 늘려서 중짜를 먹어볼 것도 같네요.

이번에 부산에서 먹었던 밀면 중 가장 제 취향에 잘 맞았던 집입니다. 부산역에서 버스로는 10분, 국제시장 방향으로 큰 길 따라 슬슬 걸어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로 멀지도 않습니다. 앞으로 부산 갈 일이 또 생기면 꼭 다시 들러볼 생각입니다.

왕밀면냉면 본점

  • 부산 서구 충무대로 122-1 (카카오맵)
  • 밀면 7,000원, 만두 5,000원

숙소가 송도 쪽에 있어 체크인하고 점저 먹으러 나왔습니다. 송도해수욕장 근처 밀면집은 두 군데 정도 있는 것 같았는데요. 그 중 한 군데는 겨우내 육수 뽑으시느라 영업은 안 하시는 것 같았고, 나머지 한 곳이 이 집이었습니다. 내부는 아주 깔끔했고 응대도 친절했습니다. 가게 이름대로 밀면과 냉면을 둘 다 하는 집이었는데요, 밀면으로 주문했습니다.

육수는 간과 육향이 모자라지는 않았지만 다른 밀면집보다는 약했는데 덕분에 좀 더 깔끔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거기에 약간의 약재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면은 약간 찔깃하다 싶을 정도로 탄력이 강하면서 재밌게 씹을 수 있는 식감이었어요. 그리고 이 집 밀면에 꾸미로 얹힌 수육이 생각 외로 굉장히 맛있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아주 고소하면서도 잡내가 없었어요.

국제밀면

  • 부산 연제구 중앙대로1235번길 23-6 (카카오맵)
  • 밀면 7,500원

조금 쉬다 저녁 먹으러 다시 나왔습니다. 1일차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가 제일 큰 고민이었습니다. 원래는 오랜만에 개금밀면 가볼까도 싶었는데요, 이번 부산 방문에서는 처음 가보는 가게들 위주로 들러볼 생각이라 전에 가보지 못했던 교대역 국제밀면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 가게는 몇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수육이나 만두 없이 물밀면, 비빔밀면, 사리추가 밖에 없는 메뉴판이 먼저 보였고, 또 유달리 맑은 온육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온육수는 맛을 보니 밀면 육수보다는 평양냉면 육수에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한약재 냄새는 느끼기 어려운 대신 잘 뽑은 사골 국물 같았어요. 밀면을 먹어보니 육수는 딱 온육수에 간장으로 간만 맞췄다는 느낌이었어요. 꾸미로 수육이 아닌 제대로 간이 된 장조림이 올라가 있었구요, 다대기가 제법 매웠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면은 적당히 쫄깃하고 탱글거리는, 밀면스러운 면이었습니다.

가게 벽에 붙은 공지를 보니 23년 1월부터는 밀면 가격이 9,000원으로 오른다고 합니다. 사실 지금 7,500원도 밀면 치고는 절대 싼 가격이 아닌데요. 하긴, 회사 근처 허름한 칼국수집도 한 그릇에 9,000원 받는 요즘입니다. 누구도 치솟는 물가의 파도를 비켜갈 수는 없나 봅니다.

삼부돼지국밥

  • 부산 서구 충무대로 195-2 (카카오맵)
  • 돼지국밥 8,000원, 내장국밥 8,000원

2일차 아침. 아침에도 밀면 먹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침 일찍 밀면 내는 가게는 드뭅니다. 밀면집은 빨라야 10시는 되어야 문을 여니까요. 대신 (서울보다는 훨씬 따뜻하지만) 차가운 겨울 바다 바람을 맞았으니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먹기로 했습니다.

송도에서 남포동 나가는 길에 냉동창고가 늘어선 동네에 있는 오래된 국밥집을 찾았습니다. 가게 외관은 물론 안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관광객이 올만한 위치가 아닌데 오래 장사를 해온 것 같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높아졌습니다.

보통 돼지국밥집에 오면 국밥 뚝배기와 반찬을 큰 쟁반 하나에 담아 통째로 내어주는데요, 둘이 오니 테이블에 반찬을 일일이 따로 차려주셨어요. 반찬은 김치, 깍두기, 부추무침, 마늘, 양파, 고추, 새우젓, 막장까지 모두 넉넉한 양이었습니다.

이내 나온 돼지국밥은 아주 맛있었어요. 메뉴에 따로국밥이 없었는데 밥을 말지 않고 따로 나오는 점이 밥을 국에 말아먹지 않는 저는 일단 마음에 들었구요, 푹 익어 부드럽게 씹히던 고기는 양도 제법 충실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돼지 잡내는 없었구요, 특이한건 다대기에 된장 비율이 높았는지 다대기를 국물에 푸니까 달큰한 맛이 강해져 미소라멘 먹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간이 이미 충분해서 굳이 새우젓이나 부추무침을 더 넣지는 않고 먹었습니다. 아내는 내장국밥을 먹었는데 내장이 부드러워서 괜찮았다고 하더라구요.

해운대가야밀면

  • 부산 해운대구 좌동순환로 27 (카카오맵)
  • 밀면 8,500원, 만두 5,000원

이어 아점을 먹으러 바로 출발했습니다. 남항대교, 부산항대교, 광안대교를 쭉 타고 바다와 부산 시가지를 구경하며 해운대로 왔습니다. 지난번에는 해운대밀면에 가봤으니 이번에는 해운대가야밀면에 가봤습니다. 외관부터 장사 잘 되는 집이라는 게 보였어요. 12월 말 평일 점심 때인데도 주차장에는 차가 많았습니다. 웨이팅에 대한 안내와 번호표 기계 같은 것도 눈에 들어오구요. 다행히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주문은 자리마다 비치된 태블릿으로 주문하고 바로 선불 결제까지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번에 부산에서 먹었던 밀면 중 가장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역시 해운대라 그런 걸까요? 밀면을 받아보니 그릇이 일단 유독 큰 게 특이했습니다. 정작 밀면 양은 그냥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정도였어요. 양지로 만든 장조림이 꾸미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육수는 짭짤하면서 달큰한데 한약재향이 끝에 약하게 남았습니다. 면은 적당히 쫄깃하고 무난한 느낌이었습니다.

황산밀면

  • 부산 동구 중앙대로180번길 6-11 (카카오맵)
  • 밀면 7,000원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가기 전 부산역 근처 황산밀면에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영주시장 안에 있는 가게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바로 길 건너 부산역 쪽으로 옮긴 모양입니다. 이름만 같은 다른 가게인가 싶었는데 내부에 지금은 작고하신 주인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실향사에 대한 내용이 붙어 있는 걸로 봐서는 같은 집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북 출신께서 여신 음식점답게 메뉴는 일반적인 밀면집들과는 좀 다릅니다. 밀면 말고 냉면도 있는데 메밀로 만든 평양식 면과 전분으로 만든 함흥식 면을 모두 팝니다. 거기에 대표적인 평양 음식인 어복쟁반이 간판 메뉴입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밀면이니까 물밀면 하나를 주문했습니다.

육수는 깔끔하고 달큰한데 육향과 약재향이 아주 은근하게 납니다. 면은 유독 단단하고 탄력이 강했는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납니다. 전분 비율이 꽤 높은 모양입니다. 꾸미에는 배가 올라가는데 묘하게 냉면 같은 느낌이 납니다. 다대기에는 양파가 잔뜩 들어가 있는데 갈지 않고 성기게 다져 써서 씹는 맛이 남아 있습니다. 밀면인만큼 분명 새콤달콤하고 자극적인데 이게 묘하게 과하지 않게 잘 정돈되어 절제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갔던 밀면집 중 아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집입니다. 저도 만족스럽게 먹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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