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완독은 사실 지난해(2022년) 버킷리스트였습니다. 읽기 전에는 로마, 역사, 타락이라는 제가 좋아하는 키워드를 충실히 갖춘 책이라 밤잠도 안 자고 읽게 될 줄 알았는데요, 막상 읽다보니 잘 안 읽히질 않아서 작년 오뉴월쯤 시작했던 독서가 올해 1월에야 끝났습니다.

이 책에서 로마제국이 쇠망한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게 설명됩니다. 서로마 뿐만 아니라 동로마,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이슬람 제국까지도 몰락의 이유는 모두 같습니다. 비대화된 관료 조직과 비효율적인 통치 체제, 공화정의 질박함 대신 자리 잡은 동방의 사치와 예법 때문에 제국의 속주들은 과도한 세금 부담에 시달렸고 이는 끊임 없는 반란과 외세의 개입으로 이어집니다. 팍스 로마나를 달성한 군사력이라도 멀쩡했다면 좋았으련만 공화정 당시 시민의 미덕과 상무 정신이 사라진 자리를 매수된 근위대와 외국인이 차지하면서 제국은 단단히 망조가 들게 되고, 결국 멸망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재밌게 바라본 점 중 하나는 로마에서의 시민의 역할입니다. 공화정 당시에는 신성불가침이었던 로마 시민의 권리는 동로마 분리 후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눈을 뽑고 혀를 자르는 대상이 되었을 정도로 영락해버립니다. 그럼에도 로마제국에서 제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지지가 필요했습니다. 비록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원전 유래한 로마 공화정의 껍데기나마 15세기까지도 일부 유지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로마제국 쇠망사이지만 단순히 로마제국만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중해부터 북해까지, 메소포타미아에서 브리타니아까지 로마의 영향권이었다 떨어져 나간 곳들을 모두 개괄하고 있으며, 유럽 중세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설명합니다. 그렇다보니 책의 분량도 어마어마합니다. 600쪽 이상인 책이 총 6권이니 3,600쪽을 거뜬히 넘깁니다. 완독에 유독 오래 걸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한국어 번역은 원서가 영문학계에서 받는 평가처럼 유려한 문장까지는 아니어도 읽는데 크게 지장은 없는 문체였습니다. 그럼에도 1,400년에 걸쳐 쏟아지는 수많은 인물, 민족, 지명, 국가, 사건, 전쟁, 도량형, 화폐 등을 따라가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주석이 정말 많았는데요, 일러두기에 따르면 원전의 모든 주석을 다 옮겨온 게 아닌데도 일일이 찾아 읽기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자책으로 읽은터라 굳이 책장을 뒤적일 필요 없이 터치 한 번이면 주석을 바로 읽을 수 있는데두요.

로마제국사보다는 중세유럽사를 읽은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분량이 워낙 많았어서 언제 또 한 번 더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로마사에 대한 각론을 다룬 책들을 좀 더 읽은 다음 다시 읽으면 또 로마사 전체를 개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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