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각본”을 읽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은 작년에 봤던 영화 중 제 취향에 있어 단연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 마음에 쏙 든 나머지 극장에서만 세 번 봤구요, 연말에 넷플릭스에 나왔길래 거기서도 두 번인가를 더 봤습니다. 수많은 상징과 은유가 시청각을 통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오는데 저의 우둔한 감성으로는 부여잡는 것보다 놓치는 것이 더 많아서 볼 때마다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각본집까지도 샀습니다. 발간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각 인터넷 서점마다 영화 대사를 차용한 센스 있는 독자평이 쏟아지기도 했었죠. 알라딘, 예스24 등에 아직 그 기록이 남아 있으니 읽어보면 퍽 재미가 있습니다. 그만큼 기대감이 컸던 각본인데요, 저 역시 제 돈 주고 영화 각본을 사 본 건 처음입니다. 각본의 형식이 익숙치 않다보니 처음 몇 페이지는 꽤나 헤맸습니다. 그래도 일단 속도가 붙으니 반 나절 만에 쭉 읽게 됐습니다. 분량이 많지 않으니 영화와 비슷한 호흡으로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영화를 여러 번 본 상태에서 읽은 터라 읽는 내내 영화의 장면과 배우의 대사가 같이 울려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각본과 영화는 대체로 일치했지만 또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았습니다. 각본에는 있지만 영화에서는 잘려나간 씬, 설정, 대사, 배우들이 눈에 띄었구요, 반면 영화에서는 분명 인상적으로 들었던 대사인데 각본에는 없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138분이나 됐음에도 각본에 비해 추가된 부분보다는 잘려나간 부분이 훨씬 많았습니다. 잘려나간 부분이 살아 있었다면 영화 속 인물과 사건의 인상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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