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여행 1일차 (5 Jun 2019, Wed): 인천-밴쿠버, 입국심사, 키칠라노 비치, 그랜빌 아일랜드

인천국제공항 가는 길 @13:20 (KST)

유연근무제의 이점을 적극 활용해서 오전 근무만 마치고 퇴근했다. 일이 적지 않아서 점심도 거르고 빡빡하게 일해야 했지만 다행히 늦지 않게 짐 챙겨 나올 수 있었다. 회사 근처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리무진 버스가 고속도로 들어서자마자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돌발성 문제가 생겼단다. 내가 회사에 있을 때는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퇴근하자마자 문제가 생기냐… 당장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라 일단 통화를 끝냈지만 찝찝함이 오래 남았다.

그래도 모처럼 혼자 가는 여행인데 이런 찝찝함을 안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는지, 화가 났다면 왜 났는지, 어떻게 하면 기분이 나아질지에 대해 가능한 마음을 편히 가지고 들여다봤다. 다행히 이내 격해졌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회사의 상담심리사와 꾸준히 상담한 게 도움이 됐다.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마티나 라운지 @15:38 (KST)

공항 도착한 게 14:50이었으니 라운지에 착석하기까지 50분 가까이 걸렸다. 보통 공항에 사람이 어지간히 많지 않으면 늦어도 30분 내에 모든 수속을 마칠 수 있다. 이번에는 순전히 수화물 위탁과 면세점 때문에 시간이 좀 더 걸렸다.

평소 같으면 절대 수화물을 위탁하지 않는데, 이번 여행에서 신세질 친구 선물 중 액체류가 많아 어쩔 수가 없었다. 미주행 항공편이라 셀프 체크인이 안 되어 유인 체크인 창구를 이용해야 했고, 포장 상자가 트레이에 싣기 너무 작아 직원이 트레이에 일일이 테이프로 고정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면세점 역시 평소에는 이용할 일이 없는 곳이다. 내가 면세점에서 살만한 거라고는 위스키 정도인데, 들고 다니기 귀찮으니 보통은 귀국편 기내 면세점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역시 이번 여행에서 신세질 친구가 부탁한 게 있어 들렀는데, 평소에 이용 않던 곳이라 좀 헤매고 말았다.

2터미널 마티나 라운지는 처음이다. 아직 오래 되지 않아 깔끔했다. 먹거리는 제대로 된 식사보다는 대체로 분식 위주였다. 대신 마실 거리가 다양한 것과 100Mbps를 가볍게 찍어주는 와이파이가 좋았다.

일하느라 점심을 굶고 왔기에 라운지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작은 컵라면 하나에, 과일과 채소 위주로 챙겨먹었다. 지난달 영국 여행 때 비행기 탑승 전 양껏 먹었다 소화가 잘 안 되어 고생했던 기억 탓이다. 결과적으로 잘 한 선택이었다.

KE71 항공기 안 @18:51 (KST)

비행기에 탑승해서 자리를 잡았다. 이번 여행편은 인천-밴쿠버간 대한항공 직항 왕복편으로 예약했다. 장거리 비행을 유독 힘들어하는 터라 환승편을 알아보고 싶었는데, 이번 여행 일정이 짧은데다 중간에 기항할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직항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인천에서 밴쿠버까지는 10시간 이상 걸리는 꽤 먼 거리다. 탑승 직전에 장거리 비행에 대한 대비를 단단히 했다. 워터 파운틴에서 접이식 물통에 물을 채우고, 목에는 목 베개를 걸고, 챙겨온 모직 후드 집업을 입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썼다.

탑승해보니 베개, 담요, 생수, 슬리퍼, 치약, 칫솔, 헤드폰까지 모두 기본 제공됐다. 특히 헤드폰은 2핀 짜리 기내용 전용 플러그가 아니라 일반 3.5파이 플러그를 사용하는 점이 신기했다. 결과적으로 담요와 슬리퍼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KE71 항공기 안 @19:47 (KST)

이륙 후 고도가 안정되자, 기내식이 나왔다. 이번 밴쿠버 여행을 위해 미리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 특별 기내식 중 하나인 과일식을 신청했다. 역시 장거리 노선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가기 위한 궁리 중 하나였다.

막상 과일식 받아보니 꽤 만족스러웠다. 밀타임 중 가장 먼저 식사를 받아보는 것도 좋았고, 상대적으로 소화가 잘 되어 속이 편했다. 양이 약간 모자라는 것도 같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과하게 먹지 않은 쪽이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다.

과일식의 구성은 무난했다. 수박, 파인애플, 사과, 메론, 오렌지, 바나나 등 다양한 과일이 조금씩 제공됐다. 통조림이 아닌 생과일이고, 말라있지도 않아서 만족스럽게 잘 먹었다.

KE71 항공기 안 @20:27 (KST)

진작 밥을 다 먹고 한숨 돌리고 있자니 다른 승객들의 식사가 나왔다. 슬쩍 보니 메뉴는 비빔밥인듯. 남들보다 식사를 한 시간이나 일찍 한 셈이다. 기내식 먹을 때는 항상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

기내 온도는 어느새 20도까지 떨어졌다. 조금씩 한기가 돌았다. 비행기 탈 때 미리 긴팔 후드 집업을 입었더니 상체는 괜찮았는데, 긴 바지 입은 하체가 추웠다. 담요로 하반신을 둘둘 감싸니 좀 버틸만 했다.

저녁을 소화시키는 동안 넷플릭스에서 받아간 드라마 <셜록> 시즌 2를 봤다. 얼마 전 영국 갔다 너무 추워서 바버 재킷을 샀었는데, 드라마 속 왓슨도 바버 재킷을 입고 있었다. 딱 영국이나 밴쿠버 같은 서안 해양성 기후를 보이는 곳에 딱인 옷 같다. 한국은 봄, 가을이 건조한데다 미세먼지가 잦아 왁스 재킷 입기에는 별로다.

KE71 항공기 안 @2:40 (KST+1)

뒤척거리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많이 잤다. 6시간 정도 잤는데, 이 정도면 지금까지 내 여행 이력 중 손꼽히게 길게 잔 편에 속한다. 안대,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목베개가 큰 도움이 됐다.

인천에서 밴쿠버로 갈 때는 늦은 오후에 출발해서 같은 날 점심 때 도착하는 일정이라 첫날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가는 동안 최대한 자둬야 한다. 반대로 인천으로 돌아올 때는 인천 도착이 늦은 오후라 시차 적응하려면 너무 많이 자면 안 된다. 기내에서 노는 건 그때 놀면 되겠다.

KE71 항공기 안 @2:54 (KST+1)

두 번째 과일식이다. 아침으로 나온 거라 그런지 양이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어 좋다. 과일식 먹으니 배가 확실히 빨리 꺼지기는 하지만, 출출한 정도라 별 불편함은 없다.

KE71 항공기 안 @4:21 (KST+1)

슬슬 바깥에 육지가 보인다. 곧 착륙할거라는 안내도 나왔다. 길었던 비행이 끝나간다. 이런저런 준비를 잘 했더니 역시 지난달 런던 때보다 비행을 조금은 편하게 버텨낸 것 같다.

창 밖을 보니 빽빽한 침엽수림이 내려다보인다. 6월인데 여기저기 눈도 쌓여있다. 신기했다. 전혀 다른 대륙으로 여행왔다는 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밴쿠버 국제공항 (Vancouver International Airport) @13:14

도착했다. 밴쿠버 국제공항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보였다. 대신 캐나다의 자연 환경을 상징하는 여러 장식물로 잘 꾸며져 있었다. 특히 물이 흐르게 해둔 곳이 많아서, 물소리를 들으며 움직이는 게 기분 좋았다. 입국장으로 가는 통로가 출국장 머리 위에 고가도로처럼 매달려있는 점, 캐나다의 공용어인 영어, 프랑스어 외에도 중국어가 안내판에 같이 병기되어 있는 점도 눈에 띄었다.

밴쿠버를 비롯한 캐나다 서부가 하이시즌으로 들어가는 시기라 그런지 입국심사대로 가는 줄이 내가 지금까지 여행 다니며 겪은 것 중 역대급으로 길었다. 분명 줄이 줄어드는 속도는 상당히 빠른데 아직 입국심사대는 보이지도 않는다.

밴쿠버 국제공항 입국심사대 @13:57

2016년 11월부터 캐나다도 미국 ESTA처럼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eTA 승인을 받아야 한다. eTA는 일찌감치 승인 받아놔서 걱정이 없었다. 입국심사대 근처 키오스크에서 eTA 신청 내용에 대해 다시 확인한 후 영수증 같은 걸 받을 수 있는데, 이걸 입국심사대에 여권과 함께 제출하고 입국심사를 받게 된다.

이전에 미국이나 영국에도 별 문제 없이 잘 입국했었기에 입국심사에 대해 그리 큰 걱정은 없었지만,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있었다. 이번 밴쿠버 여행에서는 캐나다 영주권자인 친구의 호의로 친구네 집에 묵기로 했는데, 덕분에 입국심사 때 단골로 요구 받는 항목인 호텔 예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실제 입국심사는 무사히 끝났다. 여권 외의 서류도 전혀 요구받지 않았다. 입국심사관과 주고 받은 질문과 답변은 이랬다.

Q: 캐나다에는 왜 왔니?
A: 여행.

Q: 캐나다에는 얼마나 있을거니?
A: 나흘.

Q: 캐나다는 처음 온 거니?
A: Yes.

Q: 캐나다에서 뭐할거니?
A: 친구 집 방문하고 밴쿠버 구경.
(‘친구’ 얘기 나오자 눈빛 변하는 걸 보고 ‘아차’ 싶었음)

Q: 친구랑 어떻게 아는 사이니?
A: 대학교 동기.

Q: 친구는 어떤 사람이니?
A: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작년에 아내와 같이 캐나다 영주권 취득, 이번에 XX(밴쿠버 내 지역명)에 집을 사서 나를 초대함.

Q: 너는 직업이 뭐니?
A: XX(다국적회사 이름)에서 일하는 전자회로 엔지니어.
(여기까지 대답하자 다시 눈빛 유해짐. 친구 말로는 엔지니어에 아주 호의적이라고 함.)

Q: (가방이 백팩 하나 뿐인 걸 보고) 짐은 그게 다니?
A: Yes. 나흘 있다 갈건데 이거면 충분하지.

입국심사 기다리는 줄에서 내 바로 앞이 내 또래의 한국 여자분이었는데, 입국심사에 대해 걱정이 많이 되셨는지 나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기도 하셨다. 내가 입국심사 통과하고 나가는 길에 돌아보니 출국장으로 나오는 대신 짐과 서류를 바리바리 들고서 어디론가 불려가는 것 같았다. 역시 캐나다 입국심사가 만만치 않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밴쿠버 국제공항 팀 홀튼(Tim Hortons) @14:15

입국 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위탁 수화물로 보냈던 친구 선물 꾸러미도 찾아 다시 백팩에 넣고서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생각해보니 비행기에서도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았다. 편히 자려고 일부러 카페인을 외면했던 건데, 덕분에 카페인성 두통이 극심하게 몰려왔다. 일단 카페인 섭취가 시급해서, 공항을 빠져나가는 대신 팀 홀튼에서 따끈한 커피 한 잔을 사서 자리를 잡았다. ($ 2.1)

여행 오면 가장 헷갈리는 것 중 하나가 화폐다. 환율이야 미국 달러 비슷하니 쉽게 적응할 수 있는데, 특히 동전 모양이 아주 구분하기 어려웠다. 커피 마시면서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들을 이리저리 굴려보며 익숙해지려 애썼다.

밴쿠버국제공항역 (YVR-Airport Station) @15:05

분명 수요일 늦은 오후 비행기를 탔는데 공항 밖으로 나오니 또 수요일 늦은 오후다. 시차의 신비로움이란. 물론 귀국일에는 토요일 오전 비행기를 탔는데 내리니 일요일 저녁이라는 대비극이 벌어질 예정이다.

이제 친구가 퇴근하는 저녁 때까지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바깥 날씨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잔뜩 찌뿌린 하늘에서는 조금씩 빗방울이 날렸다. 일단 공항은 벗어나야 하니 친구에게 추천 받은 키칠라노 비치(Kitsilano Beach)에 나가보기로 했다.

스카이 트레인 표지판을 따라 고가 정류장으로 올라가서, 공항 구간을 포함한 데이패스를 구입했다. ($21.25 = Day Pass $10.25 + Canada Line YVR AddFare $5 + Compass Card Deposit $6) 추가 요금 $5는 내지 않을 수 있는 꼼수가 있는데, 별로 바람직하지 않아보여 정직하게 지불했다.

컴퍼스 카드 보증금은 나중에 돌려받을 수는 있는데, 방법이 좀 까다롭다. 보통은 공항에 있는 교통카드 보증금 반환 창구를 이용하면 되는데, 밴쿠버 공항에는 그런 게 없기 때문이다. 대신, 차이나타운에 있는 Compass Customer Service Centre나 워터프론트역에 있는 West Coast Express Office에 직접 방문하거나, 양식을 작성해서 우편으로 보내야 한다. 나는 그냥 친구에게 시간 있을 때 환불 받아 커피 사먹으라고 줘버리고 돌아왔다.

브로드웨이-시청역(Broadway-City Hall Station) @15:37

전철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러 가는 길이다. 주변의 느낌은 미묘하다. 영국 같기도 하고, 미국 같기도 하고. 지하철이나 영어 철자법은 영국 같고, 전반적인 문화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미국 서북부와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

구글맵을 참고해서 버스 정류장을 찾아간 후 버스에 올랐다. 여전히 날은 잔뜩 흐려있다.

키칠라노 비치(Kitsilano Beach) @15:50

버스에서 내려 Vine st를 따라 조금 걸으니 바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바다를 따라 수영장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이 수영장이 키칠라노 비치의 서쪽 끝에 해당했다. 여기서부터 동쪽을 향해 되는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날씨가 흐린데 생각보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날씨가 좋았으면 인파로 북적였을 것 같다. 햇빛이 없는데도 눈부시다는 느낌이 들어 선글라스를 쓰니 눈이 훨씬 편하다. 오기 전에 친구가 선글라스를 꼭 챙겨오라고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해안가를 따라 많은 새들이 날아다녔다. 갈매기, 까마귀, 비둘기가 뒤섞여있었다. 이 새들을 한 자리에서 보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중간중간 백사장도 꾸며져 있었다. 커다란 통나무를 벤치처럼 줄지어 놓은 게 독특했다. 나중에 보니 킷실라노 말고도 밴쿠버 주변 해수욕장은 모두 이런 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모래밭 중간에 길게 깔린 매트도 눈에 띄었는데, 휠체어 탄 사람도 해변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였다.

한참 해변을 따라 걷다 길가에 ‘Vancouver in the rain’이라는 제목의 글이 새겨진 시비 같은 것이 있어 좀 읽어보려던 찰나,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이 무슨 기막힌 타이밍이람. 가방에서 윈드브레이커 재킷을 꺼내 입고 후드를 뒤집어 쓰니 비가 더욱 세차게 쏟아졌다.

비를 맞으며 킷실라노 시월(Kitsilano Seawall)과 여러 박물관이 조성된 공원을 걸었다. 밴쿠버 다운타운이 가까워짐에 따라 바다 건너로 잉글리시 베이 비치(English Bay Beach)나 선셋 비치(Sunset Beach)도 차례로 보였다.

비가 와서인지 사실 풍경은 잘 와닿지 않았다. 분명 경치 좋다고 한 곳인데, 맑은 날에 와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나보다. 가까이서 보니 바닷물도 냄새 나고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

대신 어느새 구스 말고는 나 밖에 없는 공원을 걷자니 추적추적 쏟아지는 빗소리에 발 아래 밟히는 자갈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는 새소리가 기분 좋았다. 이번 밴쿠버 여행은 사실 일종의 도피성인데, 분명 도심에 있음에도 망중한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랜빌 아일랜드(Granville Island) @16:45

키칠라노 비치에서 바닷가를 따라 계속 걸어가자 그랜빌아일랜드로 이어졌다. 한 시간 정도 걸었는데, 걸은 시간은 짧았지만 여행짐을 짊어지고 있었던 탓에 어깨가 피곤했다. 백팩을 어디라도 맡겨두고 싶었는데, 테러 위험 탓인지 공공장소에는 코인락커가 전혀 없어 계속 짊어지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벤치에 앉아 쉬어가며 그랜빌아일랜드를 둘러봤다. 지도에서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작은 섬이다. 그냥 가볍게 둘러보려면 30분도 채 안 걸릴 것 같다. 대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있어 잠깐씩 눈길을 끌었다.

그랜빌아일랜드 북쪽에 위치한 퍼블릭마켓은 아주 깨끗한 동네 시장 같았다. 올리브 오일, 메이플 시럽, 훈제연어, 소시지 등을 파는 가게와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영미권에 한정되지 않은, 다양한 문화권의 식재료와 요리들이 뒤섞여있는 점이 독특했다. 이는 밴쿠버 여행 내내 느낄 수 있는, 밴쿠버의 특징 중 하나였다.

그랜빌아일랜드에는 그랜빌아일랜드브루잉(Granville Island Brewing)이라는 정직한 이름의 양조장이 있다. 펍도 같이 운영하고 있어, 간식으로 맥주 한 잔 해결할 요량으로 미리 확인해뒀던 곳이다. 막상 가보니 제법 유명세가 있는지 사람이 너무 많아 맥주 찬스는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퍼블릭 마켓 북쪽에는 수변에서 간단한 음식을 먹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친구가 올 때까지 주로 여기서 바다 건너 밴쿠버, 펄스 크릭(False Creek)을 오가는 배들, 그리고 갈매기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바로 근처가 시장에 어선 들어오는 항구라 그런지 갈매기가 유독 많았다. 갈매기와 관련된 안내나 경고가 많은 것도 신기했다.

Go Fish @18:00

저녁이 되자 날이 슬슬 개고 햇빛이 나기 시작했다. 저녁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대낮 같다. 한국보다 위도가 높다보니 서머타임 중인데도 시간대에 비해 해가 길게 느껴진다.

퇴근한 친구를 만나, 동네 어부들에게서 생선을 직접 사서 쓴다는 피시앤칩스 집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 친구가 강력히 추천하는 맛집이란다. 불과 한 달 전에 런던에서 피시앤칩스 먹고 왔던지라, 캐나다의 피시앤칩스는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다.

생선은 대구(Cod)였는데, 영국에서 먹었던 것과 좋은 의미로 비슷했다. 바삭하고 기분 좋게 기름지고 간도 적당히 되어 있었다. 감자튀김은 평범했다. 영국 것은 감자가 아주 크고 두꺼운 대신 크리미했는데, 여기는 별 다른 특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런던은 물론이고 밴쿠버 다운타운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가성비가 좋았다. 자리를 잘 잡으면 강 건너 그랜빌아일랜드와 밴쿠버 다운타운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도 있는데, 경치가 좋은 점은 장점이지만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는 음식이 바닷바람에 금방 식어버리는 건 단점이었다. 술을 안 파는 것 역시 큰 아쉬움이었다.

워터프론트역(Waterfront Station) @18:20

밴쿠버는 북미 도시치고 유독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편인 것 같다. 지하철 노선을 거미줄처럼 깔만큼의 인구 규모는 안 나오지만 대신 전철, 버스, 시버스를 조합해서 꽤 괜찮은 대중교통망을 구축해놨다. 여전히 많은 한계가 있지만 도심 지역이라면 대중교통만으로 둘러보는 게 가능해보인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서 친구와 같이 버스 타고 워터프론트역으로 왔다. 워터프론트역 근처 팀 홀튼에서 명물이라는 아이스캡(Iced Capp)을 한 잔씩 사서 마셨다. ($5.25) 맛은 외관에서 보이는 것 그대로 시원하고 달큰한 간식 거리였다.

워터프론트역에서 시버스를 타고 바다를 건너 노스밴쿠버의 론즈데일퀘이역(Lonsdale Quay Station; 현지인들은 ‘key’로 읽는듯)으로 왔다. 시버스 안에서는 다운타운, 가스타운(Gastown), 코울 하버(Coal Harbour)가 그리는 밴쿠버의 스카이라인을 즐길 수 있었다. 터미널이나 배 내부도 깔끔해서, 홍콩의 스타페리보다 나았다.

론즈데일퀘이역 근처 공원에서 친구 아내를 만나 아이스크림 먹고 산책하다 친구네 집으로 들어왔다. 동네 여기저기 공원이 잘 꾸며져 있고 날씨가 좋았던데다 남쪽으로 바다 건너 보이는 다운타운뷰와 북쪽으로 보이는 눈 덮인 산이 모두 보기 좋아 산책하는 즐거움이 좋았다.

저녁 파티를 위해 잠시 주류 판매점(BC Liquor Store)에 들러 술도 좀 사왔다. 캐나다는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한국보다 주류 판매가 아주 엄격히 통제됐다. 술은 주 정부 소유 공기업에서 직영하는 가게에서만 살 수 있고, 살 때마다 신분증을 두 가지씩 제시해야 했다.

대신 북미 서해안 아니랄까봐 엄청나게 많은 현지 술들이 있었다. 특히 현지 브루어리에서 빚었다는 크래프트비어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고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대체로 홉향이 강한 에일류가 많았는데, 필스너나 밀맥주 역시 찾으려면 넘치도록 찾을 수 있었다.

친구집 @21:40

염치 불구하고 나흘씩이나 신세지러 왔음에도 친구네 부부는 반갑게 맞이해줬다. 사온 술과 이런저런 먹거리들을 곁들여가며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이번 여행에서는 어디를 둘러볼지에 대해 신나게 대화를 나눴다. 특히 집에서 바다와 도시의 야경이 내려다보여 더욱 즐거운 시간이었다.

북미에서 호텔이 아닌 일반 가정집에서 묵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확실히 한국과는 주택 구조가 달랐다. 가장 내밀한 공간인 침실은 문 두 개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도록 다른 공간과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욕실은 욕조 밖에는 물 빠지는 곳이 없어 친구가 미리 주의를 줬다. 현관 옆에는 게스트룸과 게스트용 욕실이 있어, 이번 방문에서 내가 지낼 수 있도록 내어주었다.

자기 전에 다음날 여행 계획에 대해 친구 부부에게 의견을 구했다. 역시 밴쿠버에 여행 왔으면 빠질 수 없는 스탠리파크를 돌고 다운타운 구경하다 친구가 퇴근하면 같이 저녁 먹는 걸로 정리가 됐다.


2019 캐나다 밴쿠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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