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면옥 – 냉면, 비빔냉면

을지면옥
서울 중구 충무로 72-1
냉면 13,000원, 비빔냉면 13,000원
2022. 5. 21 (토) 점심

을지면옥에 오랜만에 방문했습니다. 을지면옥에 처음 갔던 건 2004년이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먹어보는 평양냉면이었는데요, 무슨 걸레 빤 것 같은 밍밍한 국물에 식감 이상한 면이 담겨 나왔는데 이걸 냉면이라고 부르는 사실이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결국 그냥은 못먹고 수육 찍어먹는 간장양념을 냉면에 부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도 며칠 만에 또 신기하게 생각이 나서 찾아가서 다시 먹어본 후부터는 꽤나 열심히 다녔었습니다.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많습니다. 이제는 재개발로 철거 진행 중인 골목길 안으로 사람들이 빼곡하게 줄을 섭니다. 저는 줄서기가 싫어 주로 겨울 저녁 시간에 찾아가곤 했었습니다. 비교적 한산한 가게 안에 어르신들께서 냉면을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이곤 하셨죠. 지금은 방송과 SNS의 영향인지 젊은 사람들이 많아진 게 큰 차이입니다.

가격은 많이 올랐습니다. 어느새 을지면옥도 냉면 한 그릇에 13,000원을 받습니다. 그새 워낙 물가가 많이 올랐다 보니 예전에 6~7천원 하던 때와 비교해도 여전히 조금 힘을 준 한 끼 식사 정도의 가격대로 느껴집니다. 편육 반 그릇(100g)은 1만원도 안했던 것 같은데 역시 많이 올랐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오긴 한 모양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차림새는 변한 게 없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우선 따끈한 면수부터 내어줍니다. 여름 초입의 대낮이라 더운 국물이 당길 리가 없는데도 고소한 면수는 잘도 들어갑니다. 하지만 면수는 역시 한겨울에 먹을 때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해가 일찍 떨어진 겨울날 저녁, 추위에 떨며 종로를 지나 을지로까지 눈길을 걸어가 자리에 앉아마자 받아드는 면수의 온기와 맛은 정말 각별했거든요.

을지면옥의 비빔냉면입니다. 저는 을지면옥의 비빔냉면은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동행이 주문한 덕분에 조금 맛을 봤습니다. 비빔양념 맛은 의외로 평범합니다. 고추, 간장, 참기름, 다진마늘 맛이 차례로 들어옵니다. 세상에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기보다는 어디 하나 빠질 데 없이 익숙한 맛을 구현한 쪽에 더 가깝겠습니다. 을지면옥의 면은 메밀향이 도드라지기 보다는 은은한 향에 전분의 탄력이 느껴지는데요, 비빔양념이랑도 잘 어울리는 맛이었습니다.

그래도 평양냉면 집에 왔으면 냉면을 먹어야죠. 예전에는 올 때마다 파와 고춧가루를 전부 빼달라고 했었는데, 워낙 오랜만에 온데다 바쁜 시간대라 얘기를 못했습니다. 육수는 간간하면서도 은근한 육향이 납니다. 소와 돼지를 섞었다는 이 오묘한 육향이 마음에 듭니다. 근데 여기에 뿌린 파와 고춧가루의 자극이 너무 강합니다. 육수와 면 모두 맛과 향이 은은해서 더 그렇습니다. 게다가 냉면을 먹다보면 파향이 육수에 스며들며 맛이 끈적해지는 느낌이라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이라 그런지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을지로 주변 재개발이 한창이라 을지면옥이 언제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송 중이라는 얘기도 얼핏 들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와 재개발 때문에 오래된 가게들이 사라져 가는 요즘입니다. 어느 방향이든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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