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유즈라멘 – 유즈시오라멘, 시오라멘

유즈라멘
유즈시오라멘 9,000원
2019년 5월 30일 목요일 저녁

자전거 동호회에 벙개의 목적지로 자주 언급되는 가게가 몇 있다. 보통은 서울 변두리나 근교의 맛집이 많은데, 이 집만큼은 서울 도심인 서부 서울역 쪽에 자리잡고 있어 독특했다. 맛에 대한 평도 꽤나 괜찮아서 눈여겨 보고 있던 차에,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어 방문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높낮이가 포함된 독특한 가게 구조가 눈에 띈다. 크지 않은 가게 안에 계단이 있어 공간 활용이 어려웠을텐데 불편하지 않게 배치를 잘 해냈다. 여기에 입구 근처에 비치된 자전거용 펌프에서 자전거 동호인들의 방문이 잦은 집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주문은 자판기로 한 다음 교환권을 점원에게 건네는 식이다. 손님이 끊이지 않다보니 약간의 대기는 있었고, 음식 나오는 것도 아주 빠르지는 않았다. 대신 점원의 접객이 아주 인상 깊었다. 일본식처럼 너무 과해서 부담스러운 대신, 편안한 친절함이 듬뿍 느껴져 기분 좋았다.

첫 방문이라, 이 집의 대표 메뉴라는 유즈시오라멘을 주문했다. 여기에 야끼교자와 기린 생맥주(400mL)도 추가하니 금액이 꽤나 가파르게 올라간다. 라멘에 토핑까지 추가했으면 한끼 식사로서는 양적으로나 금액적으로나 아주 호화로웠을 것 같다.

다른 눈에 띄는 점은 메뉴에 하이볼이 있었고, 따로 요청하면 앞치마를 내어주는 모양이다. 나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점원이 흰 드레스 셔츠를 입은 손님에게 앞치마를 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먼저 나온 교자는 대체로 평이했다. 내 취향에는 바삭함이 약간 부족했지만 대신 아주 부드럽고 촉촉했다. 함께 나온 간장에서 나는 유자향이 노골적이다. 이 집의 셀링포인트가 유자임이 실감났다. 좌석마다 유자 착즙액까지 비치되어 있었다. 유자향 나는 간장과 교자의 육향 간의 조합은 좀 미묘하다. 각각의 맛이 분명한 대신 시너지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이어 주문했던 유즈시오라멘이 나왔다. 먼저 수프를 맛봤는데, 독특했다. 멸치와 밴댕이에서 나는 해물 특유의 강렬한 감칠맛이 먼저 올라오는데, 해물 수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드러움도 넉넉히 들어 있었다. 벽에 붙은 설명을 보니 해물육수와 닭육수를 섞어쓰신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 모양이다. 여기에 라멘의 이름만큼이나 진한 유자향이 먹기 전부터 다 먹은 후까지 은근히 올라온다. 꽤 다양한 맛과 향이 복잡하게 엉긴 수프였다.

면은 통밀을 이용해서 자가제면 한다고 한다. 실제로 면을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거뭇한 점이 보인다. 두께는 평범하게 얇은 편이지만, 뜨거운 수프에 한참 잠겨 있더라도 쉬이 풀어지지 않아 마지막 한 젓가락까지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강한 면이었다.

면을 입 안에 넣으면 겉면에 충실히 묻은 수프가 감칠맛과 유자향을 전해준다. 씹을 때 느껴지는 반발감은 아주 강한 편이었다. 특히 면 가장 안쪽의 심지 뿐만 아니라 중간부분, 겉면까지 조금씩 달라지는 반발감을 느껴보는 재미가 좋았다. 그래서 후루룩 마시는 대신 꼭꼭 씹어보게 되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통곡물의 고소함 역시 충실히 올라와 입 안을 채워주었다.

기본으로 들어 있는 면의 양도 그리 적은 편이 아니었는데, 면이 워낙 맛있어서 추가까지 하게 되었다. 면은 반 개 또는 한 개 단위로 무료 추가 가능한데, 한 개를 주문했더니 처음 주문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정도의 면이 나왔다. 이 역시 기분 좋게 싹 비워낼 정도로 마음에 드는 면이었다.

토핑은 독특한 부분이 많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루꼴라였다. 유자 라멘은 일본에도 유명한 가게가 있지만 루꼴라 들어간 라멘은 처음이었다. 여기에 아지다마고, 멘마, 김, 그리고 이베리코 돼지고기로 만든 차슈가 얹혔다.

온센다마고는 다른 강렬한 재료들에 비하면 은은한 느낌으로 냈고, 익힘 정도는 적당했다. 멘마에서는 유자향이 특히나 더 강렬했다. 식감은 역시 부드러운 편. 차슈는 꽤 두께감이 있는 편인데, 씹을 때마다 어마어마한 고소함과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을 즐길 수 있었다. 여기에 중간중간 들어간 지방이 맛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 챠슈의 겉면을 따로 구워내어 불맛 역시 빠지지 않았다.

여기에 루꼴라와 김까지 하면 맛, 향, 식감까지 특징이 강한 재료가 대부분이다. 토핑 뿐만 아니라 면과 수프 역시 마찬가지다. 먹다보면 여기저기서 ‘저요! 저요!’하고 다양한 식재료들이 존재감을 강렬하게 어필한다.

그렇다보니 전반적으로 퓨전 요리의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특별히 불협화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깔끔히 정돈된 맛은 아님이 확실하다. 매일 같이 찾아가서 먹는 것보다는 가끔의 별미 정도로 좋아보인다.

그래도 서울역 근처를 지날 일이 있을 때면 이 집에 다시 방문하게 될 것 같은 이유는 면 때문이다. 면의 질감과 익힘 정도가 내 취향을 정확히 저격했다. 비교적 맛이 투명한 편인 시오라멘이었던 덕분에 면의 특징도 더욱 적나라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2019년 6월 24일 업데이트

거의 한 달 만에 재방문했다. 이번에는 유즈시오라멘 대신, 유자가 안 들어간 시오라멘을 주문했다. 가격은 동일하다.

막상 먹어보니 내 취향에는 유자가 들어가지 않은 쪽이 더 좋았다. 유즈시오라멘은 유자와 루꼴라와 챠슈와 김 등이 서로 다투는 느낌이었다면 시오라멘은 한층 정갈해진 느낌이다. 차슈 먹을 때는 약간의 시큼함이 있으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자리마다 비치된 유자 착즙액을 한두 방울 뿌려먹으니 딱 좋았다.


2019년 6월 25일 업데이트

하루 만에 또 방문했다. 이번에도 시오라멘. 유즈시오라멘보다 좀 더 좋은 균형감에, 취향을 정확히 자극한 면의 식감이 역시나 훌륭했다. 스프도 스프지만, 자가제면했다는 면이야 말로 전날 와서 먹었음에도 또 와서 먹게 된 강력한 동기였다.

그런데 추가해서 먹는 면에 문제가 있었다. 마감에 가까운 시간이라 그런지 온센다마고 반 개를 더 얹어주신 것까지는 좋았었는데, 면의 식감이 지금까지 먹었던 그것이 아니었다. 젓가락으로 들어올렸을 때 이미 떡져서 스프에 담근 후에도 잘 풀어지지 않았다. 입 안에 넣고 씹으니 깔끔하게 쫄깃했던 원래 그 맛 대신, 끈적하게 치아에 달라붙는 불쾌한 느낌이었다. 혹시나 싶어 재차 면 추가를 주문해봤는데, 그 역시 똑같았다.

이전까지는 추가한 면이라도 상태가 이렇지 않았었기에,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 그냥 나와버리고 말았다. 다음번 방문 때도 추가 면의 상태를 잘 보고, 또 그러면 원래 의도된 것인지 한 번 물어봐야겠다.


2019년 7월 4일 업데이트

열흘 만에 다시 방문했다. 이번에는 한창 디너 타임이 진행 중인 18시 30분 정도였고, 사람이 많아 잠시 대기 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시오라멘을 주문했다. 전체적으로는 역시 유자향이 없는 게 내 취향에 맞다. 대신 차슈에만 유자착즙액을 몇 방울 떨어뜨렸을 때 느껴지는 조화가 좋다.

이날도 면을 두 번 추가해서 먹었는데, 처음 나온 면과 추가해서 먹은 면 모두 괜찮았다. 특히 탄력 있게 씹히는 느낌이 참 좋았다. 시간대에 따라 편차가 있는게 아닌가 싶다. 역시 몇 번 더 가보는 수 밖에 없겠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