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준비: 여행 계획 짜기

여행 계획의 필요성

여행의 결심이 섰으면 계획을 짜야 한다. 아무런 계획 없이 일단 떠나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최소한의 틀은 미리 잡아둬야 마음이 편하다.

여행 전 계획에 열 올리는 것에는 한국의 비극적인 노동 환경 탓도 있다. 휴가를 한 번에 길게 쓰기 어려우므로 제한된 시간을 가능한 낭비 없이 쓰고 싶은 것은 사람의 당연한 심리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슬픈 일이다.

예전에는 분 단위로 꽉 짜인 여행 계획을 따라가곤 했었는데, 요즘은 그보다는 여유 있게 준비한다. 무리한 여행 계획을 짜느라 출발하기도 전에 미리 진 빠질 필요가 없기도 하거니와, 여행은 항상 계획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계획을 짜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 순서는 이렇다: 먼저 여행 갈 시기를 결정하고, 가고 싶은 곳들을 나열하고, 효율적인 동선을 짜고, 시간 대비 일정이 너무 많으면 날짜를 추가하거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시간이 남으면 다른 계획을 추가하거나 만약을 위한 여유 시간으로 잡아둔다.

여행 시기의 선택

보통 여행 준비는 여행 시기나 여행지 둘 중 하나를 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 경우, 시기보다는 주로 여행지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가 먼저 정해진다. 홋카이도에서 펭귄을 본다거나, 마추픽추에 가본다거나 하는 식이다. 때문에 여행지보다는 시기를 정하는 것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각자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 정해진 휴가 일정이 없다. 공식적인 여름휴가, 비공식적인 겨울휴가가 있긴 하지만 둘 다 특정 주차로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적당히 편할 때 쓰면 되는 식이다. 그래서 여행의 시기는 한국에서의 사정보다는 현지의 사정을 보고 결정하는 편이다.

한겨울의 모스크바도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만, 끔찍하게 춥고 일조시간이 짧아 여행하기에는 좋지 않다. 술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옥토버페스트 기간의 뮌헨은 비싸고 붐비기만 하는 곳이다. 전자는 비교적 보편적인 비수기이고 후자는 특정 사람에게 적용되는 비수기라고 볼 수 있다.

성수기가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유명 관광지는 사람이 특히 많이 몰려 제대로 즐기기 어려운데다 숙소나 음식이 호되게 비싸기 때문이다. 기껏 아까운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 사람의 홍수에 치이기만 해서야 즐거운 휴가를 보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성수기와 비수기를 모두 빗겨간 중간 시즌을 좋아한다.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시즌을 고를 수 있는 여건은 안 되지만,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중간 시즌을 고르는 편이다.

일정 구체화

일단 출국일과 귀국일이 정해지면, 항공권이나 숙소를 예약하기 앞서 일정을 조금 더 구체화해본다. 아주 세세할 필요는 없고, 현지에서의 동선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그래야 다양한 조건의 항공권과 숙소 중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london travel plan based on a map

먼저 구글맵에 가보고 싶은 곳들을 검색해서 저장해본다. ‘저장’ 메뉴에서 ‘가보고 싶은 곳’ 항목을 활용하면 된다. 어느 정도 채워나가다 보면 서로 인접한 목적지들이 보이는데, 그런 곳들끼리 묶어서 그룹으로 만들어준다.

(위 지도에서 그룹으로 묶인 곳들은 실제 소요시간 등을 감안해서 조정된 결과다. 처음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워보이는 곳들 위주로 묶어주면 충분하다.)

london travel attractions business time table

그리고 종이나 Excel을 이용해서 표를 만들어본다. 이렇게 하면 된다. 특이사항이 있는 날짜에는 색상 등을 이용해서 강조해준다. 위 표 기준으로, 금요일에 평소보다 늦게까지 여는 박물관이 몇 곳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예상 소요시간은 구글에서 “How much time is needed to see the british museum” 같은 식으로 검색하면 알 수 있다. 단, 구글이 찾아주는 예상 소요시간은 대부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한 바퀴 돌아보는 기준이므로 항상 여유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요일별 영업시간은 구글맵에서도 알 수 있지만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보는 쪽이 더 정확하다. 여기에 각 그룹간 이동거리가 멀다면 필요한 교통편도 추가한다. 하루에 몇 번 없는 교통편이라면 시간표를 미리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이제 다 됐다. 현지에 머무르는 여행 일정에 그룹 단위의 방문지들을 채워넣으면 된다. 하루로 부족하면 우선순위에 따라 일정을 조정하거나 여러 날에 걸쳐 채우면 되고, 시간이 남으면 근처의 다른 곳을 찾아보거나 휴식, 쇼핑 등을 위한 여유시간으로 쓰면 된다.

사전에 예약을 받는 방문지도 있는데,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다면 너무 일찍 예약할 필요는 없다. 현지에서는 물론, 출발 전까지 많은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마지막 순간까지 일정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사전 예약

항공권

가격도 중요하지만 공항과 항공사를 잘 보자. 저가 항공사 중에는 목적지에서 말도 안 되게 먼 시골 공항을 쓰는 경우도 있고, 수화물 개수나 무게 제한이 서로 다르기도 하다. 많은 저가 항공사들은 위탁 수화물에 무조건 요금을 부과하고, 중국 항공사들처럼 기내 수화물 무게 제한이 5kg(!!)에 불과한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특히 나처럼 위탁 수화물 없이 기내용 백팩 하나만 활용하는 경우 무게 제한은 특히 치명적이다.

그리고 최초 입국편, 최후 출국편은 미리 예약해둬도 좋다. 특히 일부 국가는 출국 항공권이 없으면 입국을 거부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전에 발권은 아니라도 최소한 확정까지는 해둬야 한다.

대신 입국과 출국 사이의 이동수단의 확정은 가능한 뒤로 미루자.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여행 중에서는 많은 일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마지막 순간까지 일정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숙박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 위주의 여행은 굳이 모든 일정의 예약을 미리 할 필요가 없다. 요즘은 워낙 인터넷 서비스들이 잘 되어 있어 당일에도 몸 누일 침대 하나 정도는 구하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옥토버페스트나 카니발 같은 세계구급 행사가 있을 때는 예외.)

그에 반해 호텔은 당일 예약하려면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뛰므로, 한 달 전에는 예약해두는 게 좋다. 취소가 가능한 일반 예약과 환불 불가(no refund) 예약의 가격차가 크지 않다면 일반 예약으로 진행하자. 역시 여행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함으로, 경험상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숙소의 위치를 정할 때 최우선은 교통의 편리함이다. 구글맵에서 대중교통 세부정보 옵션을 켜주면 적당한 동네를 시각적으로 찾아보기 쉽다. 도심에 비해 부도심이나 교외는 숙소의 가성비가 좋지만 러시아워와 치안에 유의하자.

최종 일정 점검

늦어도 여행 출발 일주일 전에는 미리 세워뒀던 일정을 점검하자. 특히 방문할 곳들의 영업시간이나 영업일이 달라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보고, 중기 일기예보도 참고해서 일정을 최대한 최적화해보자. 대부분은 그룹 단위의 순서를 조정하는 것만으로 대응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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