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고

오랜만에 읽은 문학책이다. 그것도 한국 작가의 현대 수필이다. 한국 현대 수필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게 언제였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수필 책을 내 돈 주고 산 건 <지적 생활의 즐거움>이 유일했던 것 같았는데 이제는 유이해졌다.

‘일간 이슬아’는 작가 본인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다. 한 달에 만 원씩을 내면 평일 자정마다 한 편씩 총 스무 편의 수필을 받아볼 수 있는, 요즘 말로 하면 구독형 서비스다.

전에 SNS를 통해 우연히 ‘일간 이슬아’의 구독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구독하지 않았다. 수필에 별 관심이 없기도 했거니와 당시는 없는 시간을 쪼개어 가며 <마스터스 오브 로마> 읽기 바빠 뭔가를 매일 더 읽을 여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삼는 글의 질이 장기간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재미있었던 일상 웹툰, 시트콤, 개그 코너도 시간이 지나며 소재 고갈로 재미가 없어지고 결국 없어지기 일쑤다. 글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일간 이슬아’를 구독하는 대신 단행본을 샀다. 단행본으로 엮여 나온 글에 대한 평을 살펴본 뒤 구매함으로써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글의 분량을 생각하면 구독보다 단행본이 저렴하기도 하다. 나로서는 매일 막 나온 글의 생동감을 포기하는 대신 안전한 선택을 한 셈이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2018년 한 해 분의 수필이 담겼다. 모아놓고 보니 꽤 많은 양이다. 개중에는 취향에 맞는 글도 있고 아닌 글도 있고, 잘 읽히는 글이 있는 반면 꾸역꾸역 읽어야 했던 글도 있었다. 내게 잘 안 맞는 부분은 대충 건너뛰면서 재밌었던 부분은 여러 번 돌려 읽었다. 이것도 단행본이기에 더 쉽게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내가 평소 접하는 글은 주로 과학적 글쓰기에 기반한 논문, 데이터시트, 어플리케이션 노트 등이다.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만큼 쉽고 명료하게 써야 한다. 기교를 부릴 여지가 적다.

그러다 모처럼 우리말로 된 수필을 읽자니 읽는 내내 느낌이 생경했다. 낯선 문체, 낯선 표현, 낯선 사건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자의 문장을 읽는 일은 어찌나 재미난 지. 특히나 글이 발랄하고 솔직담백한 데다 톡톡 튀는 맛이 있어 더 재밌게 읽었다.

글은 대부분 먼 과거 아니면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것들이었다. 먼 과거보다는 가까운 과거에 대한 글들이 좀 더 와닿았다. 먼 과거에 대한 글은 대부분 작가의 가족사에 대한 것들이다. 내가 원체 남에게는 관심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작가 본인에 대한 거라면 몰라도 작가의 가족에 대한 것까지 흥미 있지는 않았다.

가까운 과거에 대한 글은 작가 개인의 일기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사소한 것도 있지만 충격적일 정도로 큰 개인사마저 있었다. 너무나도 내밀한 것들이라 내가 작가라면 완전히 발가벗겨지는 기분일 텐데 괜찮을까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잘 구성된 소설 속 인물도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실제 세상 속 인물만 못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과 내가 깊은 인상을 받았던 부분 사이에 괴리가 있는 점도 재미있었다. 작가의 주변인에 대한 묘사가 그다지 와닿지 않았음에도 작가의 아버지 ‘웅’이 목숨을 걸고 일해온 역사에는 경탄을 내질렀다. 유럽 여행 중 캣콜링과 위협을 받았던 부분은 내가 겪어보지 못 한 위험이 상존한다는 불편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내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2020년인 올해까지 시즌 3라는 이름으로 ‘일간 이슬아’ 연재를 계속해오고 있는 모양이다. 그간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았다는 얘기도 어디에선가 본 것 같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 실린 글은 2018년 한 해 치다. 그새 누군가는 2년 치의 글을 더 받아본 셈이다. 궁금하다. 다음 단행본도 빨리 나오면 좋겠다.

우리는 이렇게나 나약하고 가까이 다가온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건강과 평안이라는 게 얼마나 희귀한 상태인지, 지속하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안다.

45. 겁 많은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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