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하노이 식당 – 모듬쌀국수


2019년 7월 현재, 문을 열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평일, 주말 모두 셔터가 내려가있네요.


하노이 식당
서울 영등포구 문래로 183 dmaps.kr/ddewv
모듬쌀국수 9,000원

2018년 12월 26일

하노이 식당에 가장 최근 방문했던 건 바로 지난주, 2018년 12월 26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처음 갔던 집은 아니었고, 기억 나는 것만 해도 지금까지 세 번 정도는 방문했었던 집인 것 같다. 블로그에 글을 잘 안 쓰던 중이었는데, 그냥 넘기기에는 아까운 집이라 간단히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하노이 식당은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횡단보도로 문래로를 건너면 바로 길가에 있는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이다. 가게는 작은 편이다. 둥근 테이블 두 개 정도에 대여섯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하나 있다. 주문은 현금과 카드를 모두 받는 자동판매기를 이용하면 된다.

쌀국수는 양지, 차돌, 힘줄, 그리고 이 셋이 모두 들어간 모듬쌀국수까지 네 가지를 고를 수 있다. 가격은 괜찮은 편이다. 어지간한 프랜차이즈 쌀국수 전문점들은 다들 한 그릇에 10,000원 이상을 받는다. 이 집은 가장 비싼 모듬쌀국수를 주문하더라도 9,000원이다. 게다가 양이 부족하면 면 추가는 무료다. 이 동네에서 10,000원 이하에 꽤 괜찮은 한끼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집은 그리 흔치 않다.

쌀국수 말고도 다른 메뉴도 있다. 철마다 달라지는데, 요즘은 타코와사비나 연어회, 간장새우 등이 있었다. 여러 병맥주(사이공/하노이/타이거 등)와 곁들일 술안주로 괜찮아 보이는데, 쌀국수 외에는 먹어보질 않아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이 가게가 문을 열고 얼마 안 됐을 때에는 주문하면 쌀국수 위에 고추가 정말 산더미처럼 나왔었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는 딱 위 사진 정도로 정리되어 나온다. 고추는 꽤 매운 편이고, 대파도 썰어놓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듯 향이 강하다. 덕분에 먹다보면 국물에 매운 맛이 꽤 많이 배어난다.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편이라, 이대로는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방문부터는 아예 고추를 빼고 주문을 하곤 했다.

역시 매운 걸 잘 못 먹는 나로서는 이제서야 맛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이 집의 쌀국수는 정말 괜찮다. 면이야 그렇게 특이할 것이 없다. 양이 넉넉해서, 어지간한 성인 남성도 굳이 면 추가를 할 필요가 없다.

고기와 육수를 보면, 가게에서 직접 고기를 듬뿍 썰어넣고 육수를 끓인 티가 역력하다. 덕분에 고기도 양이 아주 넉넉하다. 거의 면 반, 고기 반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모듬쌀국수 답게 양지, 차돌, 힘줄이 골고루 들어있다. 육수는 어지간한 쌀국수집에서는 맛보기 힘든, 정말 진한 고기 국물의 맛이 난다. 거칠지만 오래 끓인 곰탕 같다. 요즘 같이 추울 때 이렇게 고소하고 진하고 짭조름한 국물을 먹으면 속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해진다.

국물 맛을 보고 나면 이 집의 쌀국수에 왜 그렇게 고추가 많이 들어가는지 짐작할만 하다. 고기를 많이 넣고 푹 끓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잡내가 남는다. 다행히 잡내가 강하지는 않아서, 곁들여 먹는 고추, 대파, 작은 레몬 조각만으로도 감당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다만 역시 육수에 진하게 배는 고추의 향이 나로서는 감당하기가 좀 어려웠다.

그래서 고추를 빼는 대신, 별도로 요청하면 추가해주는 고수를 넣어봤다. 결과는 아주 훌륭했다. 입술과 입 안을 화끈거리게 하던 고추가 없으니 먹기 편했다. 거기에 남중국이나 동남아 고기 요리의 잡내 잡는데는 고수만한 게 없다. 고수의 상큼한 향과 맛이 잡내를 덮어주어 밑바탕은 진하면서도 윗맛은 깔끔한 육수를 즐길 수 있었다. 좋아하는 조합을 찾아냈으니 당분간 이 조합으로 자주 찾아가서 먹게 될 것 같다.

하노이 식당의 가장 큰 약점은 위치다. 겉으로 보기에는 목이 좋아보인다. 타임스퀘어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해 있고, 큰 길 가에서 바로 눈에 띄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타임스퀘어에서 굳이 밖으로 나와 광장을 가로질러 신호등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는 심리적 저항감이 상당하다.

하지만, 이 귀차니즘만 극복하면 타임스퀘어 내에 널린 가성비 심하게 떨어지며 대기열 마저 긴 식당들 대신 정말 괜찮은 고기 국물의 쌀국수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그것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하노이 식당은 아직은 손님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입소문 타면 손님이 늘어 줄 서게 될까봐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그러면서도 손님이 없어 그냥 없어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은 가게라 블로그에 굳이 글을 쓰게 되는, 그런 가게다. 지금 맛을 잃지 말고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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