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멘지라멘 – 시오라멘, 파이탄라멘 (19.12.28 업데이트)

멘지라멘
시오라멘 9,000원
2019년 8월 24일 토요일 점심

관찰레와 판체타 사러 망원동 소금집델리에 찾아갔는데 판매하지 않는다고 해서 허탕치고 말았다. 모처럼 간 김에 점심이라도 먹고 올까 싶었지만, 정오가 채 안 된 시간인데도 이미 대기가 10팀 가까워서 그냥 돌아나왔다.

대신 합정역에서 소금집델리까지 가는 길에 눈에 띄었던 식당 중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자가제면’이라고 적혀있는 것 뿐만 아니라 제면기가 거리에서도 잘 들여다보이는 곳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던 라멘집이라 지나가면서도 기억에 남았던 집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파이탄(白湯) 라멘 전문점이었다. 키오스크 메뉴판에도 가장 첫 메뉴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런 줄도 몰랐다. 일단 사전 정보 없이 처음 들어온 라멘집이라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한 시오라멘을 주문했다. 주문은 키오스크에서 메뉴 선택에서 결제까지 손님이 알아서 해결하고 주문서를 주방에 전달하면 되는 식이다.

좌석은 모두 다찌였다. 자리 중간중간마다 고추기름, 후추 등과 함께 머리 묶는 고무줄이 놓여있어 주인분의 센스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좌석 뿐만 아니라 가게 전반적으로 깔끔해서 라멘 기다리는 동안 기분이 괜찮았다.

시간이 지나 라멘을 받아들었다. 라멘 나오기까지 체감상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다. 막상 받아들고 보니 토핑이 아주 실해서 기대감을 높였다.

일단 라멘을 받아들고 나니 상큼한 시트러스향이 먼저 치고 올라온다. 라멘 위에 마무리로 뿌려진 노란 과일 껍질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양이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데도 향이 아주 강렬했다. 자칫 너무 기름질 수 있는 라멘의 균형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다만 여러 토핑의 향을 골고루 느끼기에는 시트러스향이 너무 강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스프의 기저는 육고기 같았지만 쉽게 느껴지는 향은 해물의 감칠맛에 더 가까웠다. 기름은 적게 뜨는 편이었다. 여기에 잘게 썬 파가 올라가서 아주 진하기 보다는 부드럽고 다양한 층위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자가제면한 면은 내 취향보다는 약간 두꺼운 편이었다. 면은 심을 끊어내는 느낌이 느껴지는 정도로 적당히 삶겼다. 겉이 부드러워 스프를 살짝 머금어 어울림이 좋았다. 최근 주로 먹은 면이 아주 고소한 통밀 면이다보니 그만하지는 않았지만, 정성이 많이 들어간 게 역력히 느껴지는 좋은 면이었다.

이날 먹었던 라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차슈였다. 보통 라멘집에서 토핑으로 나오는 차슈는 두껍고 겉을 직화로 익혀내어 겉이 딱딱하고 지방이 가득한데, 이집의 차슈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받았을 때는 고기에 약간 붉은 기가 있어 덜 익었나 싶었다. 막상 먹어보니 놀랍도록 부드러운 식감에 감칠맛이 아주 풍부했다. 돼지고기 뿐만 아니라 닭고기 역시 전혀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워서 입 안에 넣어 몇 번 씹자 스르르 풀려버릴 정도였다. 수비드로 조리하신 것 같은데, 막상 수비드 차슈를 먹어본 건 처음이라 아주 신기했다.

멘마는 양이 아주 넉넉해서, 멘마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환영할만 했다. 썰어낸 조각의 크기와 두께가 아주 넉넉해서, 멘마의 아삭한 질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구운 토마토는 라멘의 맛 자체에는 큰 영향이 없었던 것 같다. 그보다 붉은 색감 덕에 라멘이 더욱 시각적으로 다채롭고 맛있어보였다. 아지다마고는 간이 너무 짜지 않게 배어, 맛과 식감 모두가 부드러웠다.

개별의 재료들은 너무 튀지 않게 조리되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다채로움이 조금은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심심한 것보다는 이쪽이 낫겠지만, 한 그릇의 라멘 안에서 너무 많은 걸 보여주시려고 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매일 같이 찾아갔을텐데, 강 건너인게 약간 아쉽다. 합정역에서도 망원역 쪽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야 하니 주로 2호선 타야 하는 내 출퇴근 경로에서도 미묘하게 벗어나 있고. 그래도 다음번에는 파이탄 라멘 먹으러 가봐야겠다.


멘지라멘
파이탄라멘 9,000원
2019년 8월 31일 토요일 점심

이날은 선선해진 날씨 덕에 모처럼 브롬톤을 꺼내 타고 나왔던 날이었다. 한강을 건너 망원동, 연남동, 합정동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회사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기 위함이었다.

돌아다니다보니 어느새 점심 먹어야 할 때가 되어, 바로 한 주 전에 갔었던 멘지라멘에 다시 들렀다. 브롬톤 보관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다행히 가게 안쪽 복도에 넣어둘 수 있게 배려해주셔서 걱정 없이 식사할 수 있었다.

일부러 멘지라멘에 다시 온 이유는 파이탄라멘을 먹기 위함이었다. 소나 돼지로 낸 육수보다 닭육수를 좋아하는 취향인데다, 제대로 된 토리파이탄라멘을 먹어본지 너무 오래 되었다보니 기대가 컸다.

주문 후 잠시 기다린 끝에 파이탄라멘을 받아들었다. 눈으로 보기에도 아주 구수하고 진해보였다. 스프부터 먼저 한 입 맛을 봤다. 고소하고 감칠맛이 좋으면서도, 라멘치고 너무 기름지지 않아 끝맛이 깔끔하고 부담스럽지 않았다. 정갈하게 잘 우려낸 닭곰탕 같았다. 여기에 조금 더 복잡한 맛의 층위가 있었는데, 능력이 부족한 탓에 세세히 구분해 낼 수는 없었다.

간은 내 입맛에는 약간 센 편이었다. 라멘치고는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닌데다, 토핑들이 대체로 짜지 않아 짠맛의 밸런스는 나쁘지 않았다. 주방에 요청하면 간을 조절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모양인데, 이날은 이집에서 처음 파이탄라멘을 먹은 날이라 그대로 먹어보기로 했다.

면은 각진 사각형 모양으로, 식감과 탄력이 좋았다. 특히 지난주에 먹었던 시오 스프보다 파이탄 스프와의 궁합이 더 좋다고 느꼈다. 시오라멘을 먹었을 때는 깔끔하다는 느낌이었는데, 파이탄라멘에서는 중후한 스프의 풍미를 잘 받아내어 더욱 맛있었다.

수비드한 차슈는 역시 훌륭했다. 과하게 짜지도 않고, 토치로 구워낸 차슈처럼 겉이 딱딱하지도 않았다. 대신 부드럽고, 씹으면 달큰한 즙이 터진다. 돼지고기 뿐만 아니라 닭고기 차슈도 같이 제공되다 보니, 역시 닭의 느낌을 담은 파이탄 스프와 잘 어울렸다.

토핑은 시오라멘 대비 비슷한듯 달랐다. 파이탄라멘에는 유자껍질(추정)과 멘마가 올라가지 않았다. 지난번에 먹었던, 두껍게 썰어낸 멘마의 식감이 생각나서 주방에 여쭤보니 멘마가 파이탄라멘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넣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멘마를 따로 조금 내어주셨는데, 말씀대로 파이탄라멘과의 궁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하지 않았던 면 추가를 요청했다. 1인분을 요청했더니 처음 라멘에 들어있던 정도의 면이 다시 나왔다. 토핑으로 차슈와 대파도 얹어주셔서, 심심하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갓절임과 고추기름도 조금씩 맛을 봤다. 갓김치는 입에 넣으면 처음에는 고소한 참기름향, 나중에는 알싸한 고추기름향이 올라온다. 씹을 때 조직에서 섬유가 찢어져 나오는 식감이 차졌다. 대체로 향이 강해서, 조금씩만 곁들이는 쪽이 좋았다.

고추기름은 생각보다 많이 매웠다. 그래서 라멘에는 몇 방울 정도만 넣어봤는데, 고소하고 부드럽던 스프맛에 자극적인 고추기름향이 가장 윗층에 더해져서 맛의 층위를 늘리는 효과가 있었다.

파이탄라멘은 기대만큼 맛있어서 스프까지 깨끗하게 비워내고 나왔다. 요즘 먹는 양이 줄어 정말 맛있는 집이 아니면 면 추가도 하지 않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위치가 내 평소 동선에서 약간 벗어난 곳이라, 가려고 하면 결심이 필요하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다.


멘지라멘
파이탄라멘 9,000원
2019년 12월 28일 토요일 점심

마지막 방문으로부터 한 달 쯤 됐나 싶었는데 블로그를 보니 지난 8월 방문이 마지막이었다. 역시 평소 출퇴근 동선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는 점이 어렵다.

몇 달 만에 와보니 달라진 점이 눈에 띈다. 일하는 분도 바뀌었고, 다찌 밖에 없었던 가게에 4~5인용 테이블이 하나 생겼다.

공식 인스타그램에 재료 소진으로 마감한다는 공지도 종종 보이곤 하는 걸로 보아 영업이 꽤 잘 되는 모양이다. 마음에 드는 가게가 영업이 잘 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적어도 다음번에 다시 찾아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니까.

어쨌든 쌀쌀한 날씨에 뜨끈하고 끈적한 고기 국물이 먹고 싶었던터라 파이탄라멘을 주문했다. 면을 삶고, 물기를 털고, 토핑이 얹히고, 통후추 갈리는 소리가 나고 이내 라멘 한 그릇을 받아들었다.

돈코츠 못잖게 구수하지만 덜 부담스럽고 깔끔한 파이탄라멘이다. 수비드 장비에 대한 뽐을 선사했던 부드럽고 감칠맛 넘치는 챠슈도 여전히 좋다. 특히 면을 추가로 부탁드리면 챠슈에 대파까지 또 얹어주시는데, 정말 무료로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푸짐하고 맛있다.

왠지 면이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겉면의 거뭇한 점이 눈에 띄고, 씹을수록 고소함이 좀 더 강하게 올라오는 것 같다. 계절 탓일 수도, 기분 탓일 수도. 미각이 후달리니 구분하기가 어렵다.

어쨌든 한 그릇 잘 비우고 나왔다. 테이블이 생긴 덕에 홀이 약간 좁아져서 지난번처럼 브롬톤 타고 가면 민폐도가 올라갈 것 같다. 최대한 덜 귀찮으면서도 자주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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