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의 독서 기록

길고 길었던 <Harry Potter> 시리즈 원서 독서가 지난 연말로 끝났다. 모국어로 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그만큼 독서 진도도 빨리 나간다. 마침 연초이기도 해서 가볍게 읽히는 책 위주로 읽어나갔다.

<은하영웅전설> (전 10권)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완 옮김, 디앤씨미디어 펴냄

20년 전에 밤을 새며 읽었던 책인데, 그게 해적판인줄은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정식 판권을 갖고 있는 책을 전자책으로, 우선 외전은 제외하고 본편만 구입했다.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의 독서라 그런지 오래 전에 처음 읽을 때만큼의 몰입은 되지 않았다. 게다가 3권 즈음부터 이야기의 흐름이 급격히 느려지고 사족도 늘어난다. 원래 세 권 짜리 기획이 늘고 늘어 열 권이 되었기 때문일까. 3권 이후의 이야기 중 절반 이상은 덜어내도 전혀 상관 없어보인다. 때문에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꽤 지루하게 느껴졌다.

작품에서 제기하는 의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무능한 민주주의와 유능한 전제주의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옳은가. 전제주의는 지도자가 유능할 경우 매우 효율적인 진보가 가능하지만 퇴보 역시 대단히 효율적이다. 민주주의는 그에 반해 진보도 퇴보도 일정한 범위 내로 제한하는 여러 장치가 있다.

작중에서는 결국 유능한 전제주의가 무능한 민주주의를 정복했다. 하지만 이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라는 걸출한 지도자의 개인 역량에 의지한 결과일 뿐이다. 그토록 유능한 지도자가, 그것도 혈통을 이어가며 꾸준히 나타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비록 역사적 전환기에는 특정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더라도 그것이 안정화된 후에는 진보의 속도는 느리더라도 더욱 거대한 퇴보를 막아줄 수 있는 민주주의 쪽이 더 나은 제도로 보인다.

내용과는 크게 상관 없지만 일부 거슬리는 대목이 있다. 이를테면 주군의 명령을 받은 부하장수의 “존명.”이라는 대답이다. 원서에도 그렇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해적판의 “알겠습니다.” 내지는 “명령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쪽이 좀 더 부드럽게 읽힌다.

<번역을 위한 변명> 그레고시 라바사 지음, 이종인 옮김, 세종서적 펴냄

미국의 한 번역자가 자신이 가진 번역에 대한 생각, 그리고 자신이 번역한 작품들의 뒷이야기를 풀어 정리한 책이다. 책의 핵심은 저자의 번역론으로 요약할 수 있는 책의 전반부에 이미 다 나온다. 후반부는 전반부의 내용이 실제 번역 작업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있는 정도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작품의 상당수가 한국에서는 유명한 작품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게 다가온다.

나도 번역서를 읽으며 왜 역자가 글을 이렇게 썼는지에 대해 불평할 때가 많이 있었다. 결국 원서를 찾아서 읽는 결과로 이어질 때도 있었다. 물론 내 외국어 실력은 전문 번역자에 비할 바가 못 되기에, 독해 중 의미를 파악 못 하는 경우나 번역서보다 더 나은 한국어 번역을 제시하지 못 하는 경우가 잦다.

이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는 것처럼,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언어는 단순한 기호 체계가 아니라 해당 문화권의 인문학적 배경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서로 다른 두 문화권의 독자가 같은 내용을 읽고 받아들인 결과물이 같을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한 언어로 쓰인 문장의 함의를 다른 언어로 정확히 옮길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번역은 항상 창의성과 타협의 산물이 된다.

이러한 점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질 낮은 번역물이 계속 출판되어 나오는 현실을 마냥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번역서의 내용이 번역 작업의 한계상 원서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적어도 원작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읽을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번역서를 구입하는 독자들이 가지는 최소한의 기대치일텐데 말이다.

<로마의 일인자: 마스터스 오브 로마 1부> (전 3권+가이드북) 콜린 매컬로 지음, 이은주, 홍정인, 강선재, 신봉아 옮김, 교유서가 펴냄

흥미진진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다. 로마 공화정은 그리스 폴리스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뿌리처럼 여겨지는 정치 체제다. 하지만, 작중에서 그려지는 로마 공화정은 뇌물과 우민정치로 오염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듯이, 삼두정치, 카이사르의 독재, 아우구스투스의 황제 즉위를 거치며 로마의 공화정은 소멸되고 만다. 이 소설은 그 거대한 역사적 수레바퀴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음모와 인간 군상을 그려낸다.

이 책을 읽는데 가장 큰 장벽은 보통의 한국 독자로서 로마의 고대사와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가이드북이 첨부되어 있으나 본문을 이해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그리고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책 한 권을 다 읽기도 전에 ‘이 사람이 어디에 나왔었지?’라며 앞장을 뒤적이게 만든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동명이인이 세 명 이상 나온다거나, 같은 사람을 경우에 따라 프라이노멘, 노멘, 코그노멘으로 구분해서 부른다는 점도 적응이 어렵다.

이런 장벽만 극복할 수 있다면 세간의 평대로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임은 분명하다. 실제 역사와 겹쳐지고 또 떨어지며 다양한 복선을 깔아두는 이야기가 훌륭하고, 무엇보다 주요 등장인물 각자가 풍기는 매력이 대단하다. 올 상반기 중에 전 시리즈 완독을 목표로 꾸준히 읽어나갈 생각이다.

<플루언트: 영어 유창성의 비밀> 조승연 지음, 와이즈베리 옮김

원래 이런 류의 책은 잘 구입하지 않는다. 나는 나름대로 외국어를 이해하기 위한 나름의 틀과 학습법을 이미 가지고 있다. 이미 나에게 최적화된 외국어 학습관을 가진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외국어 학습에 대한 책을 읽는 건 그 시간에 외국어를 더 공부하는 것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다고 느낀다.

그래서 예전에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본 이후 기억에서 지웠던 차에 리디북스에서 기간한정 무료대여로 풀렸기에 대여를 해서 읽어보았다. 시간이야 투자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책값은 굳었으니까.

사실 책의 내용 중 그렇게 새로운 것은 없었다. <번역을 위한 변명>에 대해 썼던 것처럼 언어는 단순한 표음 또는 표의기호가 아니라 문화적 상징의 집합체다. 때문에 외국어로 된 단어와 문장을 한국어로 1:1 대응하여 옮기는 식의 외국어 교육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사상누각일 수 밖에 없다. 이 책도 그러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다만 영어에 대해 내가 몰랐던 것 몇 가지를 알게 된 것은 도움이 됐다. 몇 가지 어미가 어근의 유래에 따라 형태를 바꾸어 접속된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단어를 익히며 어근과 어미 사이에 무언가 내가 모르는 규칙이 있을 것 같다는 희미한 느낌은 있었는데 저자의 깔끔한 정리가 도움이 됐다.

하지만 나에게는 딱 거기까지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이는 내가 평소 갖고 있던 외국어관과 저자의 외국어관 중 상당 부분이 일치하는 내용이었기에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사전을 뜯어먹으며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집을 내려놓고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시장에는 건축가가 일반인을 위해 쓴 책이 많다. 그냥 많은 것도 아니고 아주 많다. 하지만 그 중 대부분은 사실 그다지 새로울 내용이 없다. 건축은 역사가 아주 오랜 학문이고, 그만큼 건축이 지켜야 할 틀은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면 아래 잠겨있는 유빙의 대부분은 똑같은데 그 위 드러난 부분 정도가 개별 건축가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전부인 셈이다.

읽으며 느끼기에는 이 책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 했다. 오히려 짧은 글을 모아서 펴낸 책이기에 뒤로 갈수록 일관성에서 벗어나 약간의 산만함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읽은 건축 분야의 책이기에 이전의 기억을 되살리고 저자의 건축관을 살펴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그렇게 인상에 강하게 남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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