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피양 서초점 – 평양냉면(순면)

2016년 9월 16일
평양냉면(순면) 17,000원

봉피양은 집 근처에 처음 생겼을 때 가 본 이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을지면옥 쪽이 더 취향에 맞고, 거기에 가끔 을밀대 정도를 별미삼아 먹는 쪽을 좋아하지만 역시 바로 집 근처에 있다는 편함을 이길 수가 없다.

하지만 봉피양 영등포점은 메뉴 선택폭이 좁은 편이다. 특히 봉피양 냉면의 강점은 순메밀면이 가능한다는 점인데, 모든 점포에서 다 되는 건 아니고 서초점과 방이점에서만 주문이 된다고 한다. 마침 강남역 근처에 가볼 일이 있어서, 이번에는 을밀대 대신 봉피양 서초점에 들러봤다.

가게는 고기구이를 같이 해서인지 그리 깔끔한 느낌은 아니다. 여기저기 고기기름과 고기내음이 배어있다. 개인적으로는 고기메뉴는 수육이나 편육처럼 삶아낸 것만 취급해서 가게가 기름누린내 없이 깔끔한 쪽이 좋다. 원래 벽제갈비가 고기집에서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다.

가격은 그 비싸다는 우래옥과 쌍벽을 이룬다. 순메밀로 면을 뽑는 것, 슴슴한 고기육수를 제대로 내는 것 모두 아주 어려운 일임은 알고 있으나 냉면 한그릇에 17,000원이라는 가격은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래도 우래옥이 더 이상 순면을 내지 않기에 이제는 남은 선택지가 많지 않다.

봉피양 평양냉면 순면

면의 질감은 전분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 툭툭 끊어지는 메밀면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있다. 그렇다고 젓가락으로 집기 어려울 정도로 끊어지지는 않아서, 일본의 니하치 소바 이상의 강도를 보인다. 100% 메밀로 표기했으니 밀가루를 추가하지는 않았겠으나 반죽을 용이하게 하고 식감을 살리기 위한 무언가가 더 추가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씹는 맛이 꽤 잘 살아있다. 우래옥의 일반 냉면도 한입 베어물면 메밀향이 강력하게 엄습해오는데 순면은 그보다 더한 메밀향을 뿜어낸다. 먹으면서 코와 치아가 모두 즐거웠다.

달고 시면서 육향이 물씬 풍겨오는 육수는 심심한 메밀면에 감칠맛을 더해준다. 봉피양에서는 꾸미와 반찬으로 얼갈이김치를 얹어주는데, 이게 달큰하면서 약간 짭잘해서 입맛을 더욱 돋워준다.

양도 꽤 넉넉하다. 어지간한 평양냉면집은 양에 있어 박하지 않다. 봉피양 역시 굳이 사리를 추가하지 않아도 육수까지 완식하고 나면 둥글게 부풀어오른 배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다.

맛은 아주 좋지만 서울 동남권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지리적 접근성의 제한, 그리고 순메밀 평양냉면을 만드는데 드는 수고를 생각하면 합당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이 발목을 잡는다. 돈 많이 벌면 매일 배달시켜 먹어야지 싶었던 냉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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