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HOCK MRG-G1000B 1년 사용기

CASIO G-SHOCK MRG-G1000B

구입의 계기

G-SHOCK이라는 브랜드에는 왜인지 호감이 간다. 방수, 내충격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기능을 충실히 지원해주는 점이 좋다. 일본 브랜드 특유의 견실함이랄까,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G-GHOCK의 빅페이스 모델군에 해당하는 GA-120 모델을 데일리 와치로서 수 년 간 아주 만족하며 사용했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도 이제 나이가 들고, 직장에서의 연차가 쌓이며, 복장도 비즈니스 캐주얼에 가까운 쪽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다시 말해, 나에게도 오토바이의 디스크 브레이크를 형상화한 GA-120 모델이 잘 어울리지 않는 시기가 오고 말았다.

드레스 와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조금은 더 포멀하면서도 쿼츠 시계의 편리함, G-SHOCK의 내구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시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조건들을 완벽히 충족해주는 대안이 바로 MR-G 시리즈였다. 액정 없이 바늘과 문자판으로만 이루어진 얼굴을 하고 티타늄 브레이슬릿의 옷을 입었지만 G-SHOCK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여전히 강력한 내구성과 기능을 가졌다.

그렇게 나는 많은 고민과 단호한 결심 끝에 MRG-G1000B(이하 MR-G) 모델을 구입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마도 1년 좀 넘는 기간 동안 데일리 와치로서 꾸준히 착용해왔다. 사양을 나열하거나 사진 리뷰 등은 이미 넘치도록 많으니, 그보다는 실제로 사용해보면서 느낀 점 위주로 써보려고 한다.

외관

MR-G는 절대 작거나 얇거나 가볍지 않은 시계다. 처음에는 MR-G가 아닌 한 등급 아래의 MT-G를 구입하려다 단념한 이유가 58.6 x 53.5 x 15.5mm, 188g에 달하는 크기와 무게다. 손목이 얇은 편인데 MT-G를 올려놓으니 이건 시계가 아니라 암살용 둔기를 찬 것 같았다.

MR-G 역시 54.7 x 49.8 x 16.9mm, 153g로 MT-G보다 조금 더 작고 가벼울 뿐이다. 다행히 손목에 착용할 때는 작은 차이도 시각적이든 촉각적이든 크게 체감된다.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둔기로 보이는 건 겨우 면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구입 전에 반드시 매장에서 직접 착용을 해봐야 한다.

MR-G의 소재는 티타늄 합금 위에 DLC 처리를 해서 아주 높은 표면경도를 가진다고 광고한다. 구입 전에는 말 그대로 금강불괴 수준의 내구성을 가진 줄 알았었다. 실제로 사용해보면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일반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에 비해 흠집에 대한 저항이 아주 높은 것은 사실이다. 꽤나 험하게 다루었음에도 여전히 표면에서 흠집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오히려 처음 구입하고 놀랐던 건 유리였다. 반사방지 처리된 사파이어 글라스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일부러 광원을 반사시키려고 하지 않는 이상 마치 유리가 없는 것처럼 문자판이 또렷이 보인다. 흠집에도 강해서, 역시 험하게 다루었음에도 아직 눈에 띄는 흠집이 없다.

브레이슬릿은 여러 열로 구성된 아주 포멀한 형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꽤나 부드럽게 손목을 감싸준다. 형상 대비 착용감은 나쁘지 않다. 버클을 닫은 후 측면의 버튼을 눌러도 열리지 않도록 잠글 수 있는 기능은 좋다. 하지만 미세조정이 되지 않아 길이를 조절하려면 마디를 끊어내는 수 밖에 없다. 브랜드 내 위상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기능

사실 외관도 외관이지만, 내가 MR-G를 데일리 와치로 낙점한 가장 큰 이유는 그 기능이었다. MR-G보다 더 나은 외관을 가진 시계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이만한 외장에 이만한 기능을 모두 담은 시계는 적어도 당시의 나로서는 MR-G 외에는 찾을 수 없었다.

MR-G의 가장 중요하고도 큰 장점은 바로 ‘귀찮지 않다’는 점이다. 매일 자동으로 전파시계 또는 GPS 신호를 수신해서 시간 오차를 알아서 보정해준다. 시간 맞추는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이 항상 초 단위로 정확하다. 햇빛 아래에 있으면 알아서 태양광 충전을 해서 배터리를 채운다. 충전, 건전지 교체, 와인더 등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시계는 계속 간다.

다시 말해 퇴근 후 집에 와서 시계를 창가에 두기만 하면 알아서 정확한 시간을 맞추고 해가 뜨면 충전까지 한다. 지금까지 MR-G를 쓰면서 시간이 1초 이상 틀리거나 시계가 멈추는 경험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 시계에 대해 가장 만족하는 점이다.

해외에 나가서도 편하다. GPS 신호를 수동으로도 받을 수 있는데 현재 위치 정보를 같이 받으면 지역에 맞는 시차와 DST가 알아서 적용된다. 몇 안 되는 월드타임 예시 도시 중 맞는 것을 찾기 위해 열심히 바늘을 돌릴 필요가 없다.

물론 일본 쿼츠시계 중 알아서 시간을 맞추고 알아서 충전하는 시계는 MR-G 말고도 많다. 하지만 MR-G는 G-SHOCK의 미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나는 이 시계를 꽤 험하게 썼다. 수없이 물에 담궈지고 던져지고 부딪히고, 직업 특성상 강한 전자파에도 매일 같이 노출된다. 그럼에도 아직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 외에는 모두 부차적인 것들이다. 나는 12시간제보다 24시간제를 선호하는데 보조다이얼 중 24시간제로 시간을 표시해주는 것이 있다. 월드타임, 스톱워치, 타이머, 알람처럼 어지간한 G-SHOCK 시계가 담고 있는 기능들은 MR-G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야광 페인트는 꽤나 밝고 오래 가며, 내장된 LED는 눈부실 정도로 밝아서 어두운 곳에서도 시간을 읽는데 불편함이 없다.

단점

물론 단점도 있다. 써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

가장 기대를 했으나 마찬가지로 가장 실망을 한 건 GPS였다. 생각보다 감도가 약하고 동기화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외로 나갔을 때 비행기에서 내려 브릿지를 지나 공항을 완전히 나가기 전까지, 지붕이 있는 환경에서의 GPS 수신은 거의 실패한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GPS 신호를 받아 자동으로 시차를 보정하는 편함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내에서 수동으로 용두를 돌려 월드타임을 조정해서 맞추는 쪽이 훨씬 빠르고 편하다.

액정 없이 아날로그식 바늘로만 이루어져서 생기는 단점도 있다. 바늘이 보조 문자판을 가리는 경우, 바늘을 치울 수 있는 기능이 없다. G-SHOCK의 다른 제품군 중에는 이미 적용된 기능인데 무브먼트가 달라 적용이 안 되는 모양이다. 월드타임 등 보조기능을 설정할 때 용두로 바늘을 돌려야 하는데, 이게 디지털 액정에 뜨는 숫자를 버튼으로 조작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굼뜬 것이 사실이다.

앞에서도 썼지만, 나는 티타늄 합금에 DLC까지 적용했으니 시계의 표면은 금강불괴인줄 알았다. 하지만, 날 흠집은 결국 난다. 단지 상대적으로 잘 버텨줄 뿐이다. 문제는, 다른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는 폴리싱해버리면 그만이지만 MR-G, 특히 브레이슬릿까지 모두 DLC가 적용된 MRG-G1000B는 폴리싱이 안 될 것 같다. 그냥 쓰는 수 밖에.

결론

나는 아직 MRG-G1000B 정도로 내 요구에 잘 부응하는 시계를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옥스포드 셔츠를 기본으로 하는 내 평소 복장에 잘 어울리는 외관, 귀찮음 없이도 정확하고 멈추지 않으며 내게 필요한 정보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기능성, 막 굴려도 튼튼한 신뢰성까지.

물론 사소한 단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백 만원 짜리 가격표가 CASIO, G-SHOCK이라는 브랜드 가치에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있다. 여기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아, 얘를 대체할만한 시계를 본 적이 딱 한 번 있긴 하다. 이태원 G-SHOCK 플래그십 스토어 세미나에서 후속작인 MRG-G2000B를 봤을 때. 하지만 아직은 내 손때 묻은 MRG-G1000B가 더 좋다.)

One comment

  1. 정말 모든 걸 갖춘 시계죠.. 디테일한 리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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