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롬톤 8년 사용기

오랜만에 브롬톤 사용기를 써보기로 했다. 브롬톤 산지가 벌써 8년이 넘었고, 그 사이 거의 쉬는 기간 없이 꾸준히 타왔다. 이렇게 꾸준히 오래 쓰는 물건은 흔치 않다. 우선 올해를 시작으로, 이왕이면 앞으로는 매년 중반 쯤에 정기적으로 써볼 생각이다.

브롬톤은 돈 없었던 학생 시절부터 내 드림 바이크 중 하나였다. 심지어 군 복무 중 내 사무실 책상 옆에는 컬러 프린팅한 자전거 사진 3장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알렉스 몰튼, 바이크 프라이데이 티킷, 그리고 브롬톤이었다.

이후 전역, 취업, 결혼을 차례로 한 후 여유가 좀 생겼던 2016년, 드디어 브롬톤을 예약했다. 브롬톤으로 결정했던 이유는 몰튼과 티킷이 여전히 비쌌고, 신혼집이 작아서 접이식 자전거 둘 곳조차 마땅찮기도 했지만, 역시 브롬톤이 제일 예뻤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주 간의 기다림 끝에 직장예비군훈련 중에 샵으로부터 입고됐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고, 결국 브롬톤은 내것이 됐다.

이제는 기억도 잘 안 나는 순정톤 시절

당시 구입해서 지금까지 타고 있는 브롬톤이 로우락커 색상의 M2R 모델이다. 요즘 방식으로 쓰면 C라인 미드핸들바 어반 모델인데 머드가드와 랙을 추가한 셈이다. 원래는 M2L, 즉 머드가드만 있는 모델이었을텐데 리어랙이 있어야 폴딩시 자립과 밀바가 쉽다고 해서 샵에 추가금을 내고 머드가드 교체 및 리어랙 추가 후 출고받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S바에 티타늄 포크, 리어가 조합된 S2E-X에다 머드가드와 리어랙을 추가했을 것 같기도 하다. 이제와서 포크와 리어를 바꾸려니 지출이 너무 크고, 교체 후 남을 로우락커 파트도 처치곤란이라서다. 다행히 M바와 로우락커 색상은 봐도봐도 예뻐서 후회는 없다.

구입 후 특히 피자 배달톤으로 잘 썼는데, 리어랙에 짐 싣는 게 생각보다 편하지 않았다. 스트링 관리도 번거롭고, 고정도 생각처럼 잘 안 되고, 피자박스처럼 큰 짐은 페달링 때 뒷꿈치에 자꾸 걸리적거렸다. 결국 짐은 점점 안 싣게 됐지만 폴딩 안정성과 끌바 때문에 리어랙은 계속 유지 중이다. 물바다가 된 자전거도로도 뚫고 사무실까지 어떻게든 가야 하는 자출톤이기도 하기에 머드가드 역시 잘 쓰고 있다.

2023년 국토종주 중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브롬톤을 가장 열심히 탄 시기 중 하나였던 것 같다. 한여름을 제외하면 자출도 꾸준히 했고, 국토종주도 다녀왔고, 남산과 북악도 꽤 자주 오르내렸다. 다시 말해, 브롬톤으로 자출, 여행, 운동을 골고루 다 했던 한 해였다.

연말 야근 후 퇴근 중에

특히 재작년에 자출 가능한 회사로 옮기면서 마일리지가 많이 늘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최단거리로는 편도 13km, 운동삼아 조금 돌아가면 편도 20km 정도인데 90% 이상 자전거도로로만 구성된 경로라 조건이 괜찮다. 회사에 샤워 시설이 없어 여름에는 자출을 쉬는 대신 한겨울에도 자출을 계속 했다. 겨울 자전거도로는 사람이 거의 없어 혼자 도로를 전세낸 느낌이 좋다. 로드팩이나 따릉이 행렬에 치일 일도 없고. 공기 밀도 때문인지 힘은 더 드는데 그만큼 운동이 더 되니 오히려 좋다.

1월 칼바람 속 바미트와 함께한 자출

원래 겨울 자출 땐 아주 두꺼운 자전거용 장갑을 끼곤 했는데, 가격이 비싼 건 물론이고 레버 조작이 불편했다. 대신 지난 겨울에는 바미트를 처음 써봤는데 브롬톤 핸들바에 장착하기가 좀 난해했지만 성능은 기가 막혔다. 혹한기에도 바미트에 간절기용 장갑만 껴도 충분할 정도였다. 여기에 가죽 신발 안에 양모 양말을 껴신고, 양모 버프에 귀도리를 두르면 한겨울 자출도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지금의 내 브롬톤이다. 프레임을 제외한 어지간한 큰 부품들은 대부분 튜닝이 되어 있다. 튜닝의 우선 순위는 편의성, 깔맞춤, 경량 순으로 보고 있다. 깔맞춤은 로우락커-실버/티타늄-블랙 컨셉이다. 결과적으로는 사실 좀 이도저도 아니게 됐다.

현재 무게는 12.2 kg. 속도계, 블랙박스, 스마트폰, 브롬톤 툴킷, 순정 펌프 등 라이딩 때 장착하는 액세서리가 모두 포함된 상태의 무게다. 액세서리 제외해도 11kg 대니까 상당히 무겁다. 핸들바, 싯포스트, 크랭크, 페달, 각종 레버 등에서 일부 경량화가 됐지만 다이나모 휠셋, 브룩스 안장, 머드가드와 리어랙으로 인한 중량화의 영향이 더 컸다. 덕분에 업힐이 포함된 코스를 타면 운동이 확실히 된다. 다이나모 허브를 켜면 운동 효과는 더욱 커진다.

나는 다이나모 허브를 쓰고 있어 일반적인 외장 기어 브롬톤보다 정리해야 할 케이블이 하나 더 많다. 뒷브레이크, 변속, 다이나모까지 케이블 3개가 프레임 앞에서 뒤로 넘어가야 한다. 여기에 이것저것 튜닝하면서 케이블 길이 정리를 게을리 한 탓에 케이블이 정말 엉망이었다. 그나마 얼마 전에 정리를 한 번 해서 많이 나아진 결과물이다.

핸들바 왼쪽에는 그립, 속도계 마운트, 앞브레이크 레버와 변속 레버를 장착했다.

그립은 브룩스 캠비움 에르고노믹 러버 그립 제품이다. 길이가 짧아 M바에 쓰기 좋고, 맨손으로도 촉감이 괜찮다. 원래 가죽 재질의 에르고노믹 그립을 몇 년 동안 쓰다 올초에 바꿨는데 관리가 편하고 덜 미끄럽다. 윗면과 아랫면의 무늬가 다른데 사용감에 꽤 좋은 영향을 준다. 그립 고정 볼트 머리를 오버토크로 날려먹어서 고생했는데 볼트 바꾸고 나서는 다행히 별 문제 없이 잘 쓰고 있다.

속도계 마운트는 알리발 핸들바 고프로 마운트에 트리고 가민 마운트를 조합했다. 속도계는 조만간 와후로 바꿀 예정인데 트리고 제품은 모듈화가 잘 되어 있어 헤드만 와후용으로 바꿔주면 와후 쿼터턴 어댑터 같은 것 없이 깔끔하게 장착할 수 있다.

변속 레버와 앞브레이크 레버는 H&H 제품이다. H&H 제품들이 좀 비싸긴 한데 예쁘고 편한 부분이 있어 내 브롬톤에도 여럿 쓰고 있다. 근데 매번 조립설명서는 커녕 적정 토크도 알려주지 않아서 구입처나 대만까지 연락해서 물어보게 만든다.

M바는 핸들바에 액세서리 장착할 공간이 부족한 편인데 2017년식부터는 순정 브레이크 레버에 변속 레버와 벨을 장착할 수 있게 되어 편해졌다. 내 브롬톤은 2016년식이라 브레이크 레버를 바꿔야 누릴 수 있는 장점이다. 덕분에 약간의 경량도 할 겸 순정 브레이크와 호환되는 H&H 브레이크 레버를 장착했다.

브레이크감은 서드파티 제품치고 나쁘지 않은데 레버 길이가 좀 짧다. 익숙해지니 크게 불편하진 않다. 근데 브레이크 레버에 변속 레버를 장착하면 브레이크 레버 클램프 볼트를 가린다. 덕분에 브레이크 레버 조정하려면 매번 변속 레버를 탈거해서 좀 귀찮다.

변속 레버는 올해 새로 나온 H&H 듀얼탭 7단 변속 레버 Ver.2 제품이다. Ver.1 제품은 내구도에 문제 있다는 얘기를 본 적 있는데, Ver.2는 여러 부분을 개선해서 나왔다고 해서 써보고 있다. 스램 더블탭처럼 레버 하나로 변속이 다 되니 편하다. 대신 레버 각도상 엄지로 편하게 누르려면 변속 레버를 핸들바 안쪽으로 최대한 밀어넣어야 하는데, 그러면 브레이크 레버가 그립에서 너무 멀어진다. 결국 적당한 위치를 찾아 장착했다. 근데, 더블탭은 스램 특허이지 않나? (…)

핸들바 오른쪽에는 그립, 휴대전화 마운트, 뒷브레이크 레버, 벨을 장착했다.

휴대전화 마운트는 픽디자인 모터사이클 바 마운트다. 보통 로드에 많이 쓰는 아웃프론트 마운트는 폴딩시 간섭 때문에 쓰기가 애매하다. 대신 모터사이클용 마운트는 부피가 작아 장착이 편한데다 진동 감쇄 댐퍼도 달려있다. 재작년까지는 쿼드락을 썼는데 쿼드락 케이스가 일상용으로는 너무 두껍고 무겁고 불편해서 픽디자인 시스템으로 바꾸게 됐다. 자석으로 알아서 붙으니 장착이 쉽고, 일단 자석으로 자리가 잡히면 세라믹 재질의 구조물에 기계적으로 꽉 물리게 되어 있어 고정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벨은 브롬톤 2022년 이후 연식 전용으로 나온 브롬톤 순정벨이다. H&H 브레이크 레버에 바로 장착했다. 스퍼벨도 하나 갖고 있는데, 액세서리 장착할 공간이 좁은 M바에서는 장착각이 잘 안 나온다. 순정벨은 스퍼벨보다 소리는 좀 부족하지만 장착이 훨씬 깔끔하다.

핸들바는 H&H 티타늄 에르고노믹 M바 제품이다. 기존 2016년식 M바를 2017년 이후 M바로 바꾸면서 핸들바 높이가 30mm 정도 낮아졌고, 이 핸들바로 바꾸면서 25mm가 더 낮아졌다. 순정 S바 모델과 M바 모델의 핸들바 높이 차이가 90mm 정도 되니까 S바 모델에 로우라이저바 장착한 높이 정도가 된 셈이다. 순정 M바에 비해 뒷쪽으로 2도 더 꺾이고 길이는 40mm 더 길다고 하는데, 타보니 확실히 자세든 조향이든 더 편하다. 폴딩했을 때 바닥과 여유도 충분해서 굳이 커팅은 하지 않았다.

블랙박스 마운트는 트리고 브롬톤 고프로 마운트에 렉마운트의 가민 마운트를 조합했다. 폴딩했을 때 블랙박스와 포크 간의 간섭 때문에 블랙박스가 몸쪽으로 들어와서 고정되도록 설치했다.

브롬톤 특성상 핸들바 조립부가 액세서리 달기 참 좋은 위치이긴 한데, 핸들바 고정이 제대로 안 되면 라이딩 중 갑자기 핸들바가 돌아갈 수도 있는 안전 문제가 있다. 플라스틱 와셔 개수를 조절해가며 토크렌치 이용해서 조여줬는데 핸들바를 고무망치로 때려도 안 돌아가는 정도라 일단은 괜찮을 것 같다. 최근 나온 노브디자인 핸들 센터 고프로 어댑터 같은 제품은 핸들바 클램프 바깥쪽에 설치되는 형태라 이런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한 번 고려해봐야겠다.

블랙박스는 id221 제품이다. 지금 보니 벌써 몇 달이나 썼는데 렌즈 보호필름이 아직도 그대로다. 영상은 멀쩡히 잘 나오니 그냥 놔둬도 될 것 같다. 아직은 별 문제 없는데 이전에 쓰던 고스트XL처럼 혹한기 칼바람 속에서도 멀쩡하게 버틸런지 궁금하다. 오토바이용으로도 많이들 쓰는 제품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긴 하다.

프론트 휠셋은 20홀 짜리 SON 다이나모 허브를 이용한 완성 휠셋이다. 원래 SP 다이나모 허브로 14홀 짜리 경량 휠셋을 짜서 쓰다가 작년 국토종주 앞두고 브롬톤 순정 이중림을 이용한 완성 휠셋으로 교체했다. 자출(과 야근)을 하다 보니 전조등, 후미등 충전이 너무 귀찮아서 선택한 다이나모 허브인데, 이런 측면에서는 아주 만족스럽다. 라이트를 켜면 특히 저속에서 약간의 저항이 더 느껴지는데 운동이 더 되는 거니까 오히려 좋다.

타이어는 원래 벨로또 제품들을 주로 썼었고, 작년부터는 국토종주 목적으로 컨티넨탈 컨택트 어반 타이어를 썼는데 약간 무겁지만 주행성, 내구도, 그립 전부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특히 비포장도로도 많이 탔는데 단 한 번의 펑크도 없었다. 지금은 슈발베 프로원을 쓰고 있는데 잘 정돈된 도로에서 쓰기 딱 좋은 레이싱 타이어 같다. 다만 한겨울이 되면 좀 더 두껍고 트레드가 많은 타이어로 바꿔줘야 하지 싶다.

전조등은 부쉬앤뮐러의 IQ-X 다이나모용 라이트다. 훌륭한 광량과 조사각의 조합으로 야간에 넓은 도로면을 멀리까지 골고루 밝혀준다. 그럼에도 반사판이 내장된 방식 덕에 눈뽕이 덜하다. 다만 전원 버튼이 전자식이라 라이트를 켜고 끄려면 다이나모 허브를 굴려서 전원을 넣어줘야 하는 점이 번거롭다. 꺼진 상태에서 켤 때도 앞바퀴를 굴려서 전원이 먼저 공급된 다음 버튼을 눌러야 켜지고, 끌 때도 사용 후 전원이 방전된 상태에서는 버튼을 눌러도 꺼진 상태 기억이 안 되어 다시 앞바퀴가 구르면 그냥 켜진다. 이게 불편해서 에델룩스로 바꿀까 싶기도 한데, 에델룩스도 무려 279,000원 짜리 전조등이라서… 혹시나 고장나면 그때나 고려해보기로.

장착은 브롬톤 순정 전조등 브라켓을 이용했다. 전에는 노브디자인의 라이트 포크 어댑터 구형을 썼는데 브레이크암 아래로 통과하는 방식이라 머드가드와 살짝 간섭이 있었다. 순정 브라켓은 그런 문제가 없고, 필요하면 와이어를 휘어서 라이트 위치를 잡아줄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리 요즘 튜닝 부품이 잘 나와도 순정이 최고인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게 싯포스트 클램프, 그리고 캐리어블럭이다. 모든 브롬톤용 프론트백은 순정 캐리어블럭 기준으로 제작되어 나온다. 그래서 사제 캐리어블럭을 쓰면 운이 나쁜 경우 가방 고정이 제대로 안 되어 라이딩 중 가방이 발사되는 수가 있다. 경험담이다. 역시 캐리어블럭은 순정이 최고다.

이지클램프는 브롬톤에 가장 처음 했던 튜닝 중 하나였다. 집을 드나들 때마다 폴딩과 언폴딩을 반복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빙그르르 돌아가는 순정 클램프가 영 불편했다. 이지클램프는 내장된 자석이 프레임에 붙어 고정되는 구조라 클램프를 조이고 풀기 정말 편해진다. 알루미늄 클램프와 티타늄, 카본 클램프레버 모두 노브디자인 제품이다. 다만 안전과 직결된 부품이라 매번 타기 전, 매주 정비할 때마다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랫쪽에는 유니언잭의 페달 홀더를 장착했다. 오래 전 순정 접이식 페달을 탈착식 페달로 바꾸면서 리어휠 쪽에 장착하는 페달 홀더를 오래 썼는데, 순정 T라인처럼 앞브레이크 축에 장착하는 페달 홀더가 나와서 작년부터 써보고 있다. 리어휠 쪽에 장착할 때에 비하면 아무래도 홀더가 오염될 일이 적어졌고, 폴딩시 홀더의 높이가 높아서 허리를 덜 숙여도 된다는 점이 좋아졌다.

체인링은 브롬톤 순정 50T 짜리다. 지금 쓰는 외장 7단(11-28T)에서는 나름 괜찮은 기어비를 내준다. 고속은 좀 아쉽기도 한데, 그만큼 업힐에서 여유가 있다. 지금 보니 체인링 볼트도 티타늄 같다. 언제 바꿨지? 기억이 안 난다.

크랭크는 H&H 사각비비용 제품이다. 사실 다른 크랭크셋도 많은데 굳이 이걸 쓴 이유는 파워미터 때문이다. 파워미터를 쓰고 싶은데 나는 클릿을 안 쓰니 페달형은 쓸만한 게 없고, 크랭크를 바꾸려면 비비쉘 페이싱에 비비도 바꿔야 하는 대공사라 크랭크형도 곤란한 상황. 근데 H&H 크랭크셋이 마침 스램 Direct Mount 스파이더 호환이라고 해서, 그러면 스파이더형 파워미터를 쓸 수 있겠다는 계산으로 장착했다. 실제로는 스램 규격과 비슷하긴 한데 세부 치수가 미묘하게 달라서 줄질과 사포질을 열심히 해야 했다. 그리고 체인링 교체하려면 크랭크암을 빼야 한다. 체인링 볼트 하나가 크랭크암에 가려지기 때문. 좀 아쉬운 부분이다.

파워미터는 SIGEYI 제품이다. 원래는 파워미터 없이 애플워치로 심박수만 측정하며 운동했었다. 근데 캐리어블럭에 랩탑용 백팩을 매단 내 자출 모드 브롬톤은 공기저항도 많이 받고, 업힐에서는 무겁고, 특히 야간에는 다이나모 휠셋 때문에 파워 손실도 있다보니 로드보다 속도가 느린 게 당연한데 더러운 스트라바놈들이 로드 기준으로 내 파워를 과소추정하는 것에 빡쳐서 구입했다. 원래 파워미터는 가격이 워낙 비싸 언감생심이었는데 대륙발 제품들이 들어오면서 그나마 접근 가능해진 것, 작년 애플 watchOS 10 업데이트부터 애플워치로 파워미터 정보를 BLE로 긁어올 수 있게 된 것도 한몫 했다.

파워미터 몇 달 써보니 확실히 재밌긴 하다. 파워미터 없던 시절 과소추정됐던 20W 이상의 파워를 찾은 것은 물론, 이제 심박과 파워 정보가 모두 있으니 라이덕, HealthFit, intervals.icu 등에서 온갖 데이터들을 뽑아볼 수 있다. 운동 능력이 올라가는 게 수치로 보이니 동기부여도 되고, 적정 페이스와 훈련 강도를 알게 되니 무리해서 퍼지는 일도 드물어졌다. 유이한 단점은 가민 뽐뿌가 온다는 것, 그리고 충전해야 할 기기가 늘었다는 거다.

페달은 2017년에 브롬바커에서 산 마그네슘 합금 좌측 탈착식, 우측 고정식 페달이다. 그동안 꽤 험하게 쓴 물건인데, 얼마 전에 징들을 바꿔준 걸 제외하면 아직도 별 문제가 없다. 그간 잘 버텨줬고, 무게도 괜찮고, 접지 면적도 넉넉하고. 마음에 든다.

이지휠과 리어샥은 모두 1223 제품이다. 디자인도 괜찮고, 이지휠 타이어나 리어샥 스프링 같은 개별 부품을 국내에서 다 따로 구할 수 있어 쓰고 있다. 전에 리어샥 소음 때문에 분해해서 윤활 작업을 했는데 구리스를 좀 과하게 발랐더니 허옇게 긁혀 나온 모습이다. 옷이나 손에 묻으면 귀찮으니 나중에 닦아줘야겠다.

메인 프레임에 붙어있는 검은 쇳덩어리 두 개는 노브디자인의 자석 발목 밴드다. 자출이든 운동이든 여행이든 빕타이즈 대신 평상복으로 자전거를 타다 보니 바짓자락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이다. 원래 탄성밴드 방식의 제품을 썼는데 자석식도 써보니 편했다. 원래 은색을 썼는데 올 초에 자출하다 흘리고 못 찾아서 검은색으로 다시 사서 쓰고 있다.

브롬톤 P라인에 추가된 미드스탑 블럭의 아이디어를 이용해서 C라인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품들이 여럿 나왔는데, 그 중 하나를 알리에서 사서 장착해뒀다. 폴딩한 상태에서 싯포스트를 뽑아 안장을 잡고 밀바하는 게 편한데, 그러다 턱 같은 곳에 잘못 걸리면 폴딩이 풀리며 곤란한 상황이 생기곤 했다. 미드스탑 블럭이 있으면 싯포스트를 다 뽑을 수는 없지만 적당히 밀기 좋은만큼 뽑은 상태에서는 턱에 걸려도 폴딩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확실히 자출하면 매일 끌바하는 내 입장에서는 많이 편해졌다.

구동계는 H&H 드레일러와 텐셔너를 이용한 외장 7단(11-13-15-18-21-24-28)에 스램 11단 체인을 조합해서 쓰고 있다. 원래 썬코드 드레일러와 텐셔너를 썼었는데 초기 버전 텐셔너는 길이가 지금처럼 길지 않아 폴딩 때 체인이 늘어지는 경우의 수가 더 많았었다. 깔끔한 폴딩을 위해 텐셔너를 긴 걸로 바꾸는 김에 H&H로 깔맞춤을 했다. 휠셋은 국토종주 앞두고 실버락 7단 허브, 브롬톤 순정 이중림, 두꺼운 스포크를 이용해서 28홀 2크로스 패턴으로 튼튼하게 새로 짰다. 전에 쓰던 알리발 경량 휠셋에 비하면 무겁지만 넓어진 림 덕분에 다양한 타이어들을 좀 더 안전하게 쓸 수 있고, 특히 리어 휠셋은 튼튼한 조합으로 오래 쓰고 싶어 선택했다.

외장 7단 자체는 아주 만족스럽다. 여전히 순정 6단만은 못하지만 꽤 넓은 기어비 범위를 쓸 수 있게 됐다. 평지 속도보다는 오르막을 편하게 올라갈 수 있는 방향으로 기어비를 맞춰놨고 덕분에 작년 국토종주는 물론 업힐에 운동하러 가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다만 튜닝과 유지에 손이 좀 많이 가는데, 나중에는 5단 정도로 범위를 줄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체인 윤활에는 작년까지 스쿼트 체인루브를 썼는데, 집에서 자가정비 하다 보니 바닥에 떨어지는 왁스똥이 감당이 안 되어 오랜만에 건식오일로 되돌아갔다. 눈에 보이는 오염도는 오일이 왁스보다 나쁠 수 밖에 없지만 대신 텐셔너 풀리 같은 곳에 찌꺼기는 훨씬 덜 쌓이고, 쌓이더라도 스프레이형 디그리서로 쉽게 씻겨나가 관리가 편하다. 왁스 쓸 땐 한겨울에 눈밭을 달리고 나면 눈을 닦아줘도 체인이 금방 녹슬곤 했는데, 오일 쓰면 방청 측면에서도 좀 낫지 않을까 싶다.

외장 7단의 문제 중 하나는 1단 기어에서 체인이 뒷브레이크 케이블에 닿는다는 점이다. 전에는 케이블 타이로 뒷브레이크 케이블을 안쪽으로 잡아당겨서 해결했었는데 요즘은 이것도 여러 곳에서 전용 부품이 나온다. 내가 쓰는 건 유니언잭 제품이고 기능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

외장 7단 작업 후 최적화 과정에서 결국 비비도 H&H의 세리믹 베어링 사각비비로 바꿨다. 사실 세라믹 베어링은 기분 낼 목적 그 이상은 의미 없고, 이 비비의 진짜 핵심은 비비 내부 스핀들을 자유롭게 좌우로 움직이며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써본 다른 비비들은 체인라인이 직선일 때 6단 정도에 체인이 위치하게 되는데, 스프라켓을 최대한 밖으로 밀어내면서 이 비비로 체인라인을 안으로 밀어넣으면 5단, 저단 폴딩시 체인이 리어 긁는 걸 감수하면 4단까지도 밀어넣을 수 있다. 4단이면 7단 기준 딱 중간이라 제일 이상적인 체인라인이 된다.

근데 락링을 아무리 잘 고정해줘도 크랭크암을 흔들어보면 느껴지는 은근한 유격을 완전히 잡을 수가 없었다. 치수를 측정해보니 락링 내경과 스핀들 외경 차이가 제법 된다. H&H에 직접 문의를 했었는데, 스핀들 위치를 가변하는 게 핵심 기능인 제품이라 스핀들을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일부러 얇게 제작했다는 답을 들었다. 그렇다고 유격 있는 비비를 그 비싼 돈을 받고 팔다니, 그게 말이 되나 싶었다. 일단은 쓰고 있는데 더 이상 못 참는 임계점에 도달하면 결국 바꾸게 될 것 같다.

후미등은 부쉬앤뮐러 플랫라이트 다이나모 버전이다. 뭐 복잡한 기능 없이 심플하게 자기 역할을 한다. 조도도 그만하면 충분하고, 정차 중에도 오래 잘 켜진다. 다만 후미등이 너무 아랫쪽에 있어 시인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전에는 안장 레일에 건전지 쓰는 부쉬앤뮐러 후미등을 추가로 달고 다니기도 했었다. 겨울에 코트 입고 안장에 앉으면 결국 가려지는 부분인데다 건전지 관리가 귀찮아 결국 떼어내고 말았지만.

리어랙은 H&H 티타늄 리어랙을 카피한 알리발 리어랙이다. 무게도 300g 초반으로 비슷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 디자인은 H&H가 오리지널로 알고 있어 H&H로 사려고 했는데 단종이 됐는지 물건을 구할 수가 없었다. 미니랙은 무게가 더 가볍긴 하지만 후미등 브라켓이 없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랙이 작으면 접었을 때 안정감이 떨어지는 문제 때문에 좀 무겁더라도 큰 리어랙을 골랐다. 스트랩이 없으니 짐은 못 싣고, 순전히 안정적인 폴딩과 끌바 목적이다.

안장은 브룩스 스왈로우를 쓴지 서너 달 정도 됐다. 원래 쓰던 셀레 아나토미카 안장이 굉장히 편하긴 한데,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못 생겨서 바꿨다. 나는 패드 없는 평상복 바지로 자전거를 타는지라 가죽 안장 말고는 대안이 별로 없었고, 그 중 제일 날렵하게 생긴 스왈로우를 샀다. 예전에 B17도 결국 회음부 통증을 극복하지 못 하고 방출했었는데, 사실 지금 스왈로우도 만만찮다. 그나마 프루파이드를 발라가며 타다 보니 성형은 B17보다 빨리 되고 있다. 추워지면 성형도 잘 안 될텐데 빨리 모양이 제대로 잡히면 좋겠다.

싯포스트는 2017년에 이베이에서 샀던 티타늄 싯포스트를 오래 쓰다가 얼마 전에 H&H DC형 티타늄 싯포스트로 바꿨다. 그냥 조립했더니 타는 중에 소음이 있어 구리스를 발라가며 안장을 다시 장착했더니 괜찮아졌다. 원래 쓰던 싯포스트보다 길이가 긴건지, 아니면 벙이 순정보다 작아서인지 싯포스트를 끝까지 뽑으면 애매하게 너무 높다. 그나마 높이를 가늠하도록 숫자가 각인되어 있어 다행이다. 싯포스트 인서트도 오래 썼는데 조만간 높이 조정도 할 겸 바꿔야 하지 싶다.


브롬톤 튜닝 내역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은, 가격이 정말 비싸다는 거다. 일반 부품이나 용품도 ‘자전거용’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가격이 훅 뛰곤 하는데, ‘브롬톤용’이라는 말이 붙으면 그 폭이 몇 배가 된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브롬톤은 전용 부품이 많고, 브롬톤 튜닝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으니 업체들이 가격을 비싸게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그렇지, 신뢰성 시험과 품질 관리가 제대로 되는지 의심스러운 부품을 그 돈 주고 사는 건 다시 생각해도 미친 짓 같다.

그와는 별개로 브롬톤 자체는 정말 재밌는 자전거다. 주행성에 한계는 있지만 또 ‘생각보다는’ 훨씬 잘 나간다. 그래서인지 업힐이나 장거리를 브롬톤으로 타면 더 힘든 만큼 더 큰 보람을 맛볼 수 있다. 생활차로는 차고 넘친다. 프론트백과 리어랙을 활용하면 최대 20kg까지 짐을 실을 수 있고, 점프가 편하다. 무엇보다 브롬톤만큼 작고 예쁘게 접히면서도, 접었을 때든 폈을 때든 이동이 편한 자전거는 여전히 없는 것 같다. 그냥 보기만 해도 예쁘고 흐뭇하다. 브롬톤은 그런 자전거다.

남은 한 해 동안 브롬톤을 이용한 여행 계획은 없고, 대신 자출과 운동을 열심히 해볼 작정이다. 요즘 날이 좋으니 자전거 도로에 아침 저녁으로 사람들이 많다. 이번 겨울은 아주 매섭게 춥다고 하는데 얼른 겨울이 와서 다시 아무도 없는 자전거 도로에서 혼자 브롬톤 타고 즐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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