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 가민 피닉스, 다시 애플워치 후기

들어가며

4년 동안 잘 쓰던 애플워치 시리즈 6를 올 초에 떠나보내고 대신 가민 피닉스 7 프로 솔라를 구입했다. 이후 3개월. 나는 가민 피닉스에 정착하지 못 하고 결국 중고로 떠나보내고 말았다.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애플워치 울트라 2였다.

가민 피닉스와 애플워치는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자주 비교되곤 하는 제품들이다. 마침 이들을 의도치 않게 짧은 시간 동안 돌아가며 써 본 셈이 됐다. 수업료는 제법 비쌌다. 돈 내고 배웠으니 교훈을 정리해본다.

스마트워치의 용도

종종 스마트워치가 왜 필요하냐, 정말 돈값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우선 말문이 막힌다. 기능만 따지고 보면 초등학생부터 할머님들까지 누구나 갖고 있는 스마트폰에 비하면 별 게 없는 게 맞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스마트워치의 가치가 없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작은 액정화면 하나를 손목에 항상 달고 다닌다는 폼팩터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달리 항상 몸에 붙어 있으며 스마트폰이 못 하는 일을 해내기도 한다다.

언제든 손목을 흘끗 내려다보면 시간, 날짜, 일기예보, 각종 알림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운동할 때도 암밴드와 심박계 대신 시계 하나만 차고 나가면 되니 편하다. 애플과 가민을 포함한 많은 회사들은 수집한 생체정보와 운동기록을 분석해서 각종 지표와 훈련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의 매개체가 바로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다.

내 경우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아도 필요한 정보와 알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운동기록을 쌓아나가며 성과를 확인하고 동기부여를 받는다는 점이 스마트워치 구입의 중요한 이유가 됐다. 이들이 각자에게 줄 수 있는 가치의 무게에 따라 스마트워치의 효용성과 가성비가 결정된다.

애플워치와 가민 피닉스는 시장에서 대체로 이 모두를 잘 하는 제품으로 손꼽힌다. 물론 애플워치가 운동을 포함한 일반적인 용도라면 가민은 운동에 좀 더 특화되었다는 차이는 있겠다. 그 차이는 두 제품의 사용경험에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애플워치 시리즈 6

장점

내가 생각하는 애플워치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폰과의 연동성이다. 애플워치는 오직 아이폰에만 연동할 수 있는 대신, 타사의 범용 스마트워치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사용자 경험과 연속성을 제공한다.

알람, 일정 확인, 음악 제어 정도는 타사 워치도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폰과 맥북의 잠금 해제는 애플워치로만 된다. 최근 통화, 메시지, 연락처, 일정 동기화, 심지어 아이폰에서 메시지 답장이 제대로 되는 건 애플워치 뿐이다.

아이폰과의 연동성은 셀룰러 모델을 쓰면 더욱 극대화된다. 운동하러 나갈 때 워치만 있어도 운동기록이 바로 동기화되는 건 물론이고 아이폰 없이도 전화, 메시지, 각종 알림 등을 모두 받고 필요하면 연락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도 아이폰은 자리에 놔둔 채 워치만 차고서 회사 안팎을 돌아다닐 정도다. 애플워치가 없을 때 가장 큰 역체감을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다.

셀룰러 모델과 애플 기기라는 점이 합쳐지면 의외의 장점도 생긴다. 작년에 택시에 아이폰을 놓고 내린 적이 있었는데, 워치에서 ‘나의 찾기’를 통해 아이폰을 분실 모드로 전환 후 알림이 울리도록 했고, 택시기사님께서 내 아이폰 번호로 건 전화를 내가 워치로 바로 받아 쉽게 통화가 된 덕분에 무사히 아이폰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애플의 순정앱과 앱스토어의 수많은 서드파티앱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애플 순정앱 중 자주 쓰기로는 타이머, 유용하기로는 계산기가 최고였다. 애플 순정앱이 못 하는 부분은 엄청나게 다양한 서드파티앱이 커버해준다. 날씨 확인용으로는 ‘Weathergraph‘, 헬스장에서는 ‘Strong‘을 잘 쓰고 있다.

애플워치에는 애플 기기 답게 ‘갬성’적인 디테일이 있다. 요즘 어지간한 플래그십 스마트워치들은 고해상도 AMOLED 디스플레이를 쓰니까 화면은 다들 쨍하고 좋다. 그 와중에도 애플워치는 각종 가감속과 관성이 적용된 애니메이션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손가락에 딱 붙어 움직이는 스크롤의 느낌이 좋다. 진동도 가장 부드럽게 느껴져서 기상 알람에도 거부감이 덜하다.

단점

애플워치의 독보적인 단점은 배터리다. 애플워치 시리즈 6의 배터리는 리퍼 받은 직후에도 만 이틀 버티기가 어려워서 말 그대로 매일 충전해야 했다. 밤에도 수면추적 때문에 차고 자니까 충전할 기회는 샤워할 때 뿐인데, 충전 속도가 느려 정작 샤워하는 동안 완충이 안 된다. 그나마 시리즈 7부터는 고속충전 때문에 좀 나아진 모양이지만 배터리 사용시간의 한계는 여전하다.

전용 마그네틱 충전기도 번거롭기는 마찬가지다. 순정 충전기가 역시 가장 안정적인데, 휴대하기에는 케이블이 쓸데없이 길고 재질이 약하다. 충전기를 추가로 사자니 저가형 서드파티 충전기는 발열이 심했다. 결국 MFi 인증 받은 충전기를 써야하는데 가격이 상당해서 이게 맞나 싶다. 이제 아이폰도 USB-C로 나오는 마당에 워치도 Qi 호환으로 만들어주면 좋을텐데.

운동용으로 쓸 때의 한계도 몇 가지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 루틴을 운동앱에는 입력할 수가 없다거나, 전문 자전거 속도계에 비하면 기능이 아주 많이 떨어진다거나, 측정한 심박수를 다른 기기로 송출할 수가 없다거나. 덕분에 헬스장에서는 서드파티앱을 사용했고, 동네 마실 이상의 라이딩에는 가민 엣지 1040 속도계를 쓰면서 심박계를 따로 차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특히 라이딩할 때 나사가 제대로 빠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엔 BLE 지원 파워미터 연결이 가능해서 유용할 것처럼 보였는데, 정작 고리짝 시절 러닝 워치나 속도계도 지원하던 GPX 임포트와 익스포트 중 어느 것도 지원하지 않는다. 경로 파일 입출력이 불가능하니 당연히 경로 기능은 되는 게 사실상 없다. 운동 중 워치 화면을 아이폰으로 미러링해주는 기능은 아주 유용한데 정작 편집 자유도가 너무 떨어져서 한 번에 볼 수 있는 정보가 몇 안 된다. 이러니 동네 마실 밖에는 쓸 수가 없다.

가민 피닉스 7 프로 솔라

장점

‘기승전가민’이라는 말처럼 운동에서만큼은 가민이 최고다. 가민에 처음 입문 했을 때 그 양과 질에 압도됐을만큼, 너무 많아서 다 열거하지도 못 할 만큼 운동 관련 기능과 데이터가 많다. 특히 피닉스는 가민에서도 상위 기종이라 더더욱 데이터를 많이 뽑아준다. 운동 중 워치 화면도 다양한 데이터필드를 입맛대로 꾸밀 수 있다. 덕분에 운동 전, 운동 중, 운동 후 모두 다양한 분석과 가이드, 나아가 아주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준다.

GPS 정밀도는 가민이 애플워치 시리즈 6보다 훨씬 좋았다. 피닉스 7은 듀얼밴드 GPS를 지원하는데 반해 애플워치는 울트라를 제외하면 듀얼밴드 GPS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고가도로 아래에서 애플워치 6 단독 사용시 로깅은 커녕 현재 페이스도 못 보여준 구간에서도 피닉스 7은 크게 튀지 않고 기록이 됐다.

한 번 충전하면 보름은 거뜬한 배터리도 훌륭하다. 애플워치 쓸 때는 가장 힘들었던 점이 충전 스트레스였다. 반면 피닉스 7은 주말에 자전거 정비할 때 파워미터와 같이 충전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얼마 전 해외에 나갔다 왔을 때도 가민 충전기는 아예 챙겨가지도 않았지만 아무 문제 없이 잘 쓰고 왔을 정도였다.

가민은 물론 타사 기기로 심박수 송출이 가능한 것도 편리했다. 덕분에 가민 피닉스 쓰는 동안은 심박계로부터 완전 해방됐다. 한겨울 라이딩 전에 심박계 차려고 상의를 다 벗었다 다시 입는 게 얼마나 귀찮았던가. 대신 라이딩 출발 전에 미리 숏컷으로 설정해둔 버튼을 눌러 심박수 송출 기능을 켜주기만 하면 자전거 속도계와 연동이 돼서 무척 편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터치 대신 버튼만으로 대부분의 조작이 가능한 것도 좋았다. 터치는 화면에 땀이나 손기름 묻는 것도 싫고, 비 맞으면 오동작하기도 하고, 겨울에는 장갑을 타는 통에 운동용 기기는 버튼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마침 가민 피닉스는 측면의 물리버튼 5개로 대부분의 기능 조작이 가능해서 마음에 들었다.

단점

가민 피닉스는 운동 추적과 배터리 사용시간이 훌륭한 대신, 일상용 기능은 애플워치에 비하면 많이 아쉬웠다. 특히 마이크와 셀룰러 미지원이 사용성을 많이 제약했다. 마이크는 후속 모델인 피닉스 8에 추가됐지만, 셀룰러는 여전히 가민 워치 중에는 지원하는 모델이 많지 않다.

워치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제약이 많았다. 앞서 적은 것처럼 아이폰에서 문자 수신 알람은 받을 수 있지만 답장은 못 보낸다거나, 연락처를 50개까지만 등록할 수 있다거나, 일정 등록이 어렵다거나. 사실상 알람 수신과 운동 관리 말고는 결국 스마트폰을 써야만 했다.

게다가 블루투스 연결된 상태에서도 가민 커넥트 앱이 아이폰 백그라운드에서 계속 돌아가고 있지 않으면 연동 관련 기능은 거의 먹통이 됐다. 사용하지 않는 앱은 아예 닫아버리는 편인데 커넥트 앱은 일부러 닫지 않고 살려둬야 했고, 그마저도 백그라운드에서 시간이 오래 지나면 간헐적으로 동기화가 끊기는 경우도 있었다.

수면 추적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수면 상태와 더불어 피로 회복, 날씨와 일정까지 브리핑해주는 기능은 마음에 들었지만 정작 인식된 수면시간 자체가 부정확했다. 침대에 반쯤 누워 책 읽는 시간이 수면으로 잡히기도 하고, 심지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던 시간대가 낮잠으로 잡히기도 했다.

가민 커넥트 앱의 사용자 경험은 정말 별로였다. 가민 워치나 자전거 속도계도 UI가 난해한데, 커넥트 앱은 기능이 워낙 많은데 반해 직관성이 너무 떨어져 쓰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기기 설정을 건드릴라 치면 로딩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잦았다. 근데 서드파티앱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가민 커넥트 IQ 앱에 비하면 커넥트 앱은 선녀라는 게 함정.

운동할 때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피닉스 워치의 심박수를 엣지 속도계로 자동으로 송출하는 기능이 없었다. 덕분에 매번 운동할 때마다 일일이 심박수 송출을 켜고 꺼줘야 했다. 이래서야 애플워치의 심박수를 엣지로 편법을 이용해 송출하는 거랑 프로세스상 크게 다를 게 없다. 다른 가민 기기들의 연동성을 생각해보면 영 아쉬운 부분이다.

만족도가 괜찮았던 러닝, 사이클링에 비해 웨이트 트레이닝은 실망스러웠다. 가민 커넥트의 워크아웃에서 루틴을 만들어넣을 수는 있는데 UI가 끔찍하게 불편했고, 운동 중 휴식시간에 계속 화면이 돌아가고, 운동 후 수행능력을 추적관찰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루틴 관리는 스마트폰으로 해야 했는데, 이게 귀찮아서 헬스장을 잘 안 가게 되어버리는 부작용이 생기고 말았다.

그리고 손목 자세에 따라 측정된 심박수의 차이가 아주 컸다. 헬스장에서 세트 끝나고 쉬는 시간 동안 손목을 움직여보면 심박수가 심하게는 두 배 가까이도 차이가 났다. 워치 착용 위치나 스트랩을 바꿔봐도 완전히 해결은 못 했다. 애플워치는 비슷한 상황에서도 괜찮았다는 점에서 비교가 됐다.

가민의 충전 방식도 애플만큼이나 별로였다. 요즘 세상에 전용 단자를 쓰는 유선 충전이라니, 낯설다. 그나마 손톱만한 크기의 USB-C 젠더를 구해서 순정 케이블 대신 잘 썼다. 시계 뒷면에 커버 없이 노출된 충전단자는 땀에 의한 부식에 취약해보이기도 했다. 가민의 비보무브 트렌드처럼 이미 Qi 충전 지원하는 모델도 있는데, 플래그십에는 왜 적용을 안하는지 모르겠다.

번외로, MIP 디스플레이도 별로였다. 번외인 이유는 AMOLED와 MIP 중 굳이 MIP 모델을 고른 건 나였기 때문. MIP는 해상도와 색조가 떨어지는 대신 소비전력이 작다. 여기에 햇빛 아래서는 엄청나게 쨍한 화면을 자랑한다. 반면 실내에서는 어두운 화면과 물 빠진 색감 때문에 가독성이 나빴다. 결국 바깥보다 사무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나에게는 틀린 선택이 되고 말았다.

닫으며: 애플워치 울트라 2

결국 많은 고민 끝에 가민 피닉스 7 프로를 처분하고 다시 애플워치로 돌아왔다. 그 중에서도 애플워치 울트라 2를 구입했다. 사실 이미 구형이 된 시리즈 9 스테인리스 모델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는데, 시리즈 6 쓰면서 배터리 충전으로 스트레스 받았던 기억 때문에 울트라 모델로 골랐다.

사용해보니 확실히 기존 모델보다 배터리 사용시간이 길고, 충전이 빠르다. 시리즈 6는 배터리 교체로 리퍼 받은 직후에도 하루 반 정도 밖에 버티지 못 했지만 울트라는 사흘 정도는 쓸 수 있었고, 이틀에 한 번씩만 충전해도 고속충전 덕에 샤워하는 동안 완충이 됐다. 덕분에 충전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다.

GPS는 듀얼밴드를 쓰는 가민 피닉스 7이나 엣지 1040과 비교해봐도 훌륭했다. 가민쪽 로그는 확대해보면 약간의 지글거림이 남아있었던데 반해 애플워치 울트라는 아주 매끈한 선이 나온다. 너무 깔끔해서 인위적인 스무딩이 의심될 정도다. 다음에는 일부러 지그재그로 주행을 해봐야겠다.

그 외에는 아직 원래 쓰던 애플워치 시리즈 6 44mm 스테인리스 모델 대비 큰 차이는 잘 모르겠다. 화면이 크고 밝아졌다는데 생각보다 체감이 잘 안 되고, 본체 무게가 꽤 늘었지만 그보다 훨씬 무거운 티타늄 브레이슬릿을 주로 쓰는데다 요즘 러닝을 안 해서 역시 체감이 잘 안 된다. 그나마 새로 생긴 모듈 Ultra 워치페이스가 디지털 시간 가독성이 좋으면서 컴플리케이션을 7개나 지원해서 마음에 든다.

물론 애플워치의 다른 단점은 해결이 안 된 상태다. 그래도 제일 큰 단점 하나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기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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