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박 6일 브롬톤 기차 남도여행 후기

* 일정표는 이 글 맨 마지막에 있습니다.
* 브롬톤 여행 준비에 대한 일반 정보는 별도의 글로 정리한 게 있습니다.

이번 5월 첫주 황금연휴 기간에 브롬톤을 가지고 남도 여행을 다녀왔다. 장거리는 기차를 이용하고 도시 내의 이동만 브롬톤을 활용하는 캐주얼한 여행이었다.

브롬톤으로 여행을 해본 건 처음이었는데, 여행을 준비하고 또 갔다오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본다.

1. 브롬톤 여행의 개념

자전거 여행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오직 자전거만을 이용해서 여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도시 간의 이동은 철도나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도시 내의 이동은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다.

브롬톤은 그 중 후자, 즉 대중교통을 연동한 여행에 특히 최적화된 자전거다. 그 어떤 자전거보다 쉽고 작게 접히면서도 수 km 이내의 짧은 거리를 즐겁게 달릴 수 있다. 이왕 브롬톤으로 여행을 한다면 브롬톤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쪽이 바람직하겠다.

물론 브롬톤으로도 수백, 수천 km 이상의 대륙종주를 달성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짐이 잔뜩 실린 브롬톤으로 역풍이 몰아치는 해안도로를 달리거나 고갯길을 넘는 것은 어지간히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고통스럽고 힘들 수 밖에 없다. 그런 일은 브롬톤보다 투어링바이크처럼 장거리 여행에 최적화된 자전거에게 양보하는 쪽이 좋겠다.

자전거로 시내 구간에서 단거리 이동을 하는 것은 장점이 많다. 특히 지방으로 여행을 가면 더욱 그렇다. 도시의 크기가 크지 않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기에 부담이 적다. 시내교통은 노선이 적고 배차간격이 길어 제약이 많기도 한데 이럴 때 대중교통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면 시내 이동에 따른 시간 손실 역시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동하는 도중에도 원한다면 잠시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점은 덤이다.

다만 지방, 특히 시외구간의 경우 도로사정이 좋지 않고 산지가 많은 한반도 특성상 언덕을 만날 확률이 높으며 자동차가 거칠게 다니는 곳이 많다. 가능하면 그런 곳은 피하되 특히 가볍게 가는 여행이라면 해가 진 뒤의 라이딩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겠다.

2. 비행기? 기차? 버스?

브롬톤을 활용하기 가장 좋은 대중교통은 단연 기차다. 일단 브롬톤을 접어버리면 도시철도가 있는 도시에서는 대부분의 전철이나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제약이 없다. KTX,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을 이용할 때도 각 객차 사이의 짐칸이나 맨 끝 좌석 뒷공간을 활용하면 브롬톤을 쉽게 운반할 수 있다.

KTX 좌석 뒤에 수납된 브롬톤
KTX 좌석 뒤에 수납된 브롬톤

브롬톤을 비행기에 태우려면 미리 수화물로서 포장을 해야 한다. 브롬톤 전용의 하드케이스 또는 소프트케이스, 브롬톤이 들어갈만한 비닐가방, 박스 포장 등을 활용할 수 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포장방법 자체로 만만찮은 추가비용이 발생하고 자전거에 대해 추가 수화물 요금을 받는 항공사가 많다.

고속버스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탑승할 때 고속버스의 짐칸에 브롬톤을 접어서 넣고, 싯포스트를 뽑아 안장을 짐칸 천장에 고정하면 무사히 브롬톤을 운반할 수 있다. 다만 이때 폴딩부의 클램프는 모두 조여둬야 한다. 버스가 움직이며 발생하는 진동 때문에 클램프가 풀려서 부품을 분실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시외버스 또는 시내버스인데 이들은 별도로 짐칸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버스 안에 들고 타려면 기사님의 제지를 받는 경우도 많고, 설령 가지고 탈 수 있더라도 탑승객이 많으면 역시 민폐가 된다.

결국 처음 여행 경로를 짤 때부터 철도 위주로 짜는 쪽이 여러모로 몸과 마음이 편한 여행을 하게 된다.

3. 캐리어블럭과 가방 활용

보통, 자전거에 가방을 거치하고 짐을 실으려면 자전거 앞뒤에 랙을 장착하고 패니어를 올리게 된다. 투어링바이크처럼 짐을 싣는데 최적화된 자전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전거, 특히 미니벨로들은 패니어를 장착하는데 제한이 많다.

하지만 브롬톤은 캐리어블럭이라는 축복받을 물건이 있어 적어도 가방 한 개는 아주 쉽게 장착할 수 있다. 한계중량은 10kg이다. 자전거 앞쪽에 장착되므로 무게중심 배분에 유리하고 무엇보다 핸들바가 아닌 프레임에 장착되므로 조향에 이상이 없다. 정말 축복받아 마땅하다.

이걸로 부족하면 R형 브롬톤은 짐받이도 활용할 수 있다. 전용 가방을 활용해도 되고 일반가방을 스트링을 이용해 고정해도 된다. 이 역시 한계중량은 10kg이므로 합하면 도합 20kg의 짐을 브롬톤에 실을 수 있다. 항공기 탑승시 수화물중량 제한이 15kg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양이다.

물론 백팩을 등에 짊어지고 움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자전거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금기시되는 일이며 나도 추천하고 싶지 않다. 가방을 자전거에 장착하면 다리힘만 추가로 들이면 된다. 가방을 등에 짊어지면 팔, 어깨, 허리에 추가로 부담이 온다. 여전히 백팩 무게는 자전거 위에 얹혀있으므로 다리에 가해지는 부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등판에 바람이 통하지 않으므로 땀이 차고 피로를 더 빨리 느끼게 된다. 어떻게든 모든 가방을 자전거에 붙이는 쪽이 바람직하겠다.

캐리어블럭에 장착할 수 있는 가방은 종류가 꽤 많다. 그 중 캠핑이나 여행용으로는 브롬톤 공식상품은 T백, 호환제품은 투어링백이 많이 사용된다. 둘 다 30L 이상 수납 가능한 큰 가방이다. 이번 엿새 일정의 여행용으로는 투어링백(38L)을 사용했다.

브롬톤과 투어링백
브롬톤과 투어링백

다만 브롬톤 여행용으로는 가능한 짐을 줄이고 또 가방의 크기를 줄이는 쪽이 좋겠다. 큰 가방은 정면 면적이 넓으므로 공기저항을 많이 받는다. 투어링백 정도 되면 범선의 돛 같은 역할을 해서, 역풍이 강하게 불면 평지도 미시령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4. 자전거 출입금지

여행을 다니다보면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생각보다 많다. 특히 박물관이나 문화유적 등이 그러하다. 브롬톤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경주 첨성대 - 딱 저기까지만 자전거 출입 가능
경주 첨성대 – 딱 저기까지만 자전거 출입 가능

때문에 이를 감안해서 여행 일정을 짜야 한다. 내 경우 경주에 도착한 첫날 브롬톤은 숙소에 맡겨둔 채, 자전거 출입이 안 되고 보관도 곤란한 불국사, 국립경주박물관, 동궁과 월지를 먼저 몰아서 관람한 뒤 이튿날 브롬톤으로 나머지 관광지를 둘러보는 식으로 여행했다.

자전거 출입이 안 되는 곳은 브롬톤을 입구에 묶어두거나, 안내소 등에 맡겨두거나, 내부 관람을 포기하는 방안 중 선택을 해야 한다. 브롬톤을 묶어둘 경우 프레임, 휠, 안장, 가방 등을 모두 한꺼번에 가로등 같이 고정된 시설물에 묶어두고, ‘내 시야에서 벗어나면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리를 오래 비워서는 안 되겠다. 유인 물품보관소가 있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물품보관소가 없어 안내소에 맡겨두는 것은 어찌 보면 내가 편하자고 다른 분께 폐를 끼치는 것이니 피하는 것이 좋겠다.

5. 여행 준비

자전거를 동반한 여행은 체력이 적잖게 든다. 라이딩을 시내구간으로 한정하더라도 여전히 그렇다. 여행은 레이싱이 아니다. 빠르게 가기보다는 멀리 또 안전하게 가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여행용 브롬톤으로는 6단에 P바가 가장 유리하겠지만 자전거로 이동하는 거리가 짧은 경우에는 브롬톤의 사양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다단화나 경량화 등의 튜닝도 분명 브롬톤 여행을 편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역시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내 경우에는 M2R에 S바를 올리고 외장 3단, 경량화 작업을 해서 무게를 줄이고 주행 효율을 최대한 올렸다. 특히 기어비를 가볍게 조정했는데(체인링 44T, 스프라켓 최대 19T) 일부 시외구간에서 고갯길을 넘을 때 아주 큰 도움이 됐다. 여행을 하다보면 기차에서는 브롬톤을 접어서 들고 다녀야 하는데 그 때 경량화 역시 분명 도움이 됐다. 하지만 전체 일정 중 언덕을 오르거나 브롬톤을 손에 들어야 하는 일이 그리 잦지 않으므로 역시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보다는 출발하기 전에 미리 자전거를 잘 정비하고 비상용 공구와 예비튜브 정도는 반드시 챙겨두는 것이 중요하겠다. 물론 사용법도 잘 익혀둬야 한다. 요즘은 각종 게시글이나 동영상 등 자료가 많으므로 몇 번 찾아보고 또 한두번만 해보면 쉽게 익힐 수 있다. 그리고 계획적으로 꾸준히 자전거를 타면서 체력과 근육을 기르고 라이딩 자세에 익숙해지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하겠다.

여행 복장은 물론 자전거 전용 의류를 착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는 자전거 전용 의류 대신 평상복을 입었다. 물론 땡볕 아래에서 자전거를 타면 땀이 많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므로 위아래 속옷과 긴팔 셔츠는 흡한속건 소재이되 평상복으로도 활용 가능한 의류를 골라입었다. 쌀쌀한 저녁날씨와 비가 올 때를 대비해서 챙긴 윈드브레이커도 큰 도움이 됐다. (위아래 속옷은 유니클로, 긴팔 셔츠는 컬럼비아, 윈드브레이커는 노스페이스 자전거용)

헬멧, 고글, 장갑 등 안전장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특히 여행 중에는 자동차들과 도로에서 나란히 달릴 일이 많으므로 안전장구를 꼭 갖추어야 한다. 전조등과 후미등도 물론 장착했지만 그보다는 일몰시간을 미리 확인해서 해가 진 후 특히 시외에서 자전거를 탈 일 자체가 없도록 일정을 조정했다.

6. 결론

브롬톤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건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보통 지방도시는 대중교통이 미비한 경우가 많고 관광지가 도심에서 먼 경우도 많다. 브롬톤은 이런 불편함을 깔끔하게 해소해주었다.

어설프게 멀어 브롬톤이 없었다면 가볼 수 없었던 곳을 브롬톤 덕분에 가볼 수 있었다. 자동차를 탔다면 잠시 멈춰 둘러볼 수 없었을 곳에서 브롬톤은 잠시 멈춰 둘러볼 수 있었다. 브롬톤으로 도시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때는 큰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낙안에서 벌교 가는 길, 5월의 청보리밭
낙안에서 벌교 가는 길, 5월의 청보리밭

물론 브롬톤과 함께 하는 여행이 다른 여행들에 비해 무조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분명하다. 대부분은 날씨, 자전거 보관, 주차 또는 체력적 한계와 관련해서 문제가 생긴다.

이제 곧 뜨거운 여름이 온다. 한여름은 자전거로 여행하기에는 좋지 않은 계절이다. 하지만 선선한 가을이 오면 또 브롬톤을 타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이번에 한 번 해 봤으니 다음번에는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록. 5박 6일 브롬톤&기차 남도여행 일정

1일차 – 경주
오전: 서울역→신경주역 이동(KTX)
오후: 신경주역→경주 시내 이동 및 숙소 체크인(브롬톤), 불국사/석굴암(버스)
저녁: 국립경주박물관(도보), 동궁과 월지(도보)

2일차 – 경주
오전: 포석정, 나정, 오릉, 대릉원, 교촌마을, 첨성대, 계림, 반월성, 석빙고, 황룡사지, 분황사(브롬톤)
오후: 보문관광단지 라이딩 (브롬톤)
저녁: 경주역→신해운대역 이동(무궁화), 해운대 숙소 체크인(브롬톤), 달맞이고개(브롬톤)

3일차 – 부산
오전: 해운대, 수영강, 온천천 근처 라이딩(브롬톤)
오후: 광안리, 남포동, 서면 근처 라이딩(브롬톤)
저녁: 부전역→창원중앙역 이동(무궁화), 숙소로 이동(브롬톤)

4일차 – 마산
오전: 마산 해안도로 라이딩(브롬톤)
오후: 마산 산복도로 라이딩(브롬톤)
저녁: 마산역→순천역 이동(무궁화), 숙소로 이동(브롬톤)

5일차 – 순천
오전: 순천→낙안읍성 이동(브롬톤), 낙안읍성(도보), 낙안읍성→벌교읍 라이딩(브롬톤)
오후: 벌교 관광(브롬톤/도보), 벌교→순천만→순천 이동(브롬톤), 순천 시내 라이딩(브롬톤)
저녁: 순천역→익산역(KTX)→군산역(무궁화), 군산역→군산 숙소 이동(브롬톤)

6일차- 군산
오전: 군산 구도심 관광(브롬톤)
오후: 경암동 철길마을, 채만식문학관, 금강습지생태공원(브롬톤)
저녁: 군산역→영등포역(무궁화), 귀가(전철/브롬톤)

1일치 경주 불국사
1일치 경주 불국사
2일차 경주 포석정
2일차 경주 포석정
3일차 부산 광안리
3일차 부산 광안리
5일차 순천만
5일차 순천만
4일차 마산 월영동
4일차 마산 월영동
6일차 군산 고우당
6일차 군산 고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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