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5일, 2017년 4월 22일
물밀면 6,000원
** 현재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가게입니다. **
밀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하지만 부울경 지역, 넓게 봐도 영남지역을 벗어나면 밀면 잘 하는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서울에 있는 밀면집 여러군데에 가봤지만 아주 만족할만한 집은 없었고 그나마 먹을만한 집이 한 집 정도였을 정도니.
그러다 우연히 지금 집에서 걸어서 몇 분 거리 밖에 안 되는 서울 영등포 문래동에 밀면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봤다.
문래동 철강골목 구석진 곳에 있는 크지 않은 가게다. 따로 사람을 쓰지 않고 사장님 혼자 주문, 조리, 서빙, 정리까지 다 하신다. 사장님의 우람한 팔뚝이 자가제면에 대한 믿음을 더해준다.
겨울에는 영업을 아예 않고, 영업하는 계절에도 시간을 잘 맞춰서 가야한다. 그나마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변동이 있을 수 있어서 가기 전에 사장님 인스타그램 확인이 필요하다.
평일 점심 11:30-14:00 저녁 18:00-20:00
토요일 11:30-16:00
일요일 휴무
https://instagram.com/pushnudle
원래 4월 15일 토요일에 가벼운 마음으로 가봤는데 맛과 양이 아주 마음에 들어 일주일 뒤인 4월 22일 토요일에 재방문을 했다. 이때도 아주 맛있게 먹고 왔다.
밀면은 물/비빔, 中/大 (모두 6,000원) 중에 고를 수 있는데 나는 물밀면 大를 주문해서 먹었다. 양이 어지간한 중국집 짜장면 곱배기보다도 훨씬 많은데 그나마도 면이 모자라면 더 주신단다.
면은 비교적 얇고 넓적한 직사각형 모양이다. 아주 쫄깃하면서도 가위 없이 끊을 수 있을만큼 적당히 탄력이 있다. 4월 15일에 갔을 때는 약간 과하게 삶긴 것 같았는데 4월 22일에 갔을 때는 딱 맞게 삶겨서 나왔다. 이틀 다 면이 찬물에 잘 씻겨나와서 전분이 끈적이지 않아 깔끔했다.
육수는 다른 밀면집들이 보통 사골육수에 한약재(당귀, 감초 등)을 섞어쓰는데 이집은 거기에 닭육수를 추가로 섞은 것 같은 맛이 났다. 찬 육수이니만큼 육향은 강하지 않지만 닭육수 특유의 감칠맛이 섞여있고 밀면하면 으레 떠올리는 한약재향도 은은히 났다.
양념은 특히 알싸하게 쏘는 매운맛이 돈다. 이 양념이 비빔밀면에 그대로 올라가서, 첫 방문 때 곁들여먹었던 비빔밀면은 내 입맛에는 과하게 매웠었다. 최근 사장님 인스타그램을 보니 양념이 맵다는 의견이 많아서 매운맛을 좀 낮췄다고 한다. (오늘 또 가서 먹어볼랬는데 LG서비스센터 대기열이 너무 길어 기다리다가 결국 못 갔다.)
고명은 오이, 무와 함께 손으로 찢은 닭고기가 올라간다. 헌데 大는 면이 워낙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고명의 양이 적어보인다. 어차피 밀면에 고명은 거들뿐 육수 묻혀 먹는 면이 주인공이니 나는 별 상관없이 맛있게 잘 먹었다.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두 번째 방문에서는 제육덮밥도 같이 주문해서 먹었다. 두 명이 왔을 때 밀면 大 하나에 제육덮밥 하나를 주문하는게 만드는 사장님은 귀찮아도 먹는 입장에서는 괜찮다고 하시는데 정말이었다. 제육덮밥은 특별히 자극적이거나 한 맛은 아니고, 학교 앞 밥집에서 먹는듯 익숙하고 정겨운 맛이었다. 불맛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약하게 배어있어 밥을 곁들여 먹기에도 아주 좋았다.
주방 안쪽은 불을 제대로 안켜두고 일하고 계셔서 잘 모르겠으나 테이블 위는 비교적 깔끔해보였다. 그런데 창틀 안쪽에 오래된 먼지가 쌓여있는 게 보였다. 혼자 일하시는 가게라 손이 모자라실 수도 있겠지만 밀면 먹으면서 그런게 자꾸 눈에 띄니 결코 입맛을 돋운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창틀에 판자를 덧대는 작업이 있었다. 덕분에 더 이상 창틀은 실내가 아니라 실외가 되었다. 뭐, 상관없겠지.
서울에서 먹는 밀면은 공장제 면을 공장제 냉면육수에 말아주는 지뢰 같은 집도 많다. 그 와중에 모처럼 서울에서도 제대로 된 밀면을 먹게 되니 아주 마음에 든다. 집에서도 가까우니 거의 주말마다 찾게 될 것 같다.